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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46화 (146/154)

146. 습격

싸울 힘이 없다는 것은 남당의 토벌군을 상대로 이길 수 없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

"연방에게 요청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연방에?"

"연방도 우리 황제와 마찰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렇다면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무기라든가 지원군이라든가."

연방도 당나라 조정과 마찰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해 볼 만 하지 않은가.

"설마 나라를 엎자는 것인가?"

"따지고 보면 개나 소나 나라를 엎는 시국인데, 우리라고 못 할 것이 무엇입니까?"

말이야 바른말이지. 왕후장상의 씨가 어디 있는가.

지금 분열된 중국 왕조에서 제대로 된 황통이 어디 있을까.

전부 오랑캐 출신이거나, 끽해야 귀족 집안 출신일 것이다. 그런 마당에 자신들이라고 나라를 세우지 못할 까닭이 있을까.

"어차피 연방의 시대라면……."

그렇다면 굳이 당나라 백성으로 있을 필요가 있을까.

당나라 사람으로 있어 보았자 전국 시대의 전쟁에 동원되어 죽는 것이 전부다.

살아도 역병 구실로 평생 격리당해 살 것이 아닌가. 어느 나라의 백성이 되든 상관없겠지.

"나라를 연방에 넘기자는 말이오?"

"못할 것이 무엇이오? 황제가 백성을 버리는데, 백성도 나라를 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오!"

수주의 백성들은 일제히 들고일어났다.

그리고 수주를 시작으로 마치 불이 퍼지듯이 각주의 백성들도 저마다 들고일어났다.

수주, 초주, 선주 등에서 격리당한 백성들이 일제히 일어난 것이다.

일찍이 들고일어났던 민란에 비해 규모도 훨씬 컸다.

이들은 왜구 탓에 관군조차도 발길이 끊겼던 초주에서 합류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연방과 협상을 해야 합니다."

"역병이 있으니 연방도 함부로 군사를 파견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정작 합류는 했으나 문제가 있었다.

연방도 남당에 역병이 도는 것을 안다. 그 말인즉, 군사를 요청한다고 해서 연방이 군대를 보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 반대로 연방으로 이주 가는 것도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기나 군량이라도 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럼 차라리 오월과 민은?"

"오월과 민은 당보다 작은 나라요. 이왕이면 큰 나라와 접촉해야 우리가 지원을 더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오."

오월과 민은 땅으로 붙어 있으나, 얼마나 지원해줄지 알 수 없다. 심지어 그 두 나라도 연방에 패배하고 계속된 전쟁에 피폐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무기도 좋은 연방이 낫다.

"음, 그게 나을 것 같소이다. 연방군은 바다에서 볼 수 있으니 남은 배를 타고 가서 연방군과 협상을 해야 할 것이오."

남당의 백성들은 배 몇 척을 끌고 동쪽 바다로 나아갔다.

한참 나아가니 남당 백성들이 연방에 넘어오는 것을 막는 연방의 함대가 보였다.

연방의 함대는 저 멀리서 보이는 조각배를 보고 병사들을 움직여 활을 겨냥했다.

"당나라 백성들은 그곳을 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함대를 맡고 있던 명길이 조각배의 백성들에게 엄포를 놓자 당나라 백성들은 백기를 흔들었다.

그 모습에 명길은 병사들에게 활을 내려놓게 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모양이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우리는 적들이 아니오! 할 말이 있소이다! 연방으로 가려는 것이 아니오!"

연방으로 가려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슨 이유로 온 것인가?

"이쪽으로 넘어오지 말고 말하라!"

적이 아닌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런 문제가 아니다.

역병에 걸리지 않았어도 역병이 있는 땅에서 바다로 넘어온 자들. 허튼 수를 부린다면 살려둘 수 없다.

그런데 그건 괜한 걱정이었다.

"우리를 도와주시오! 무기와 군량을 지원해 주십시오!"

"그게 무슨 소리냐?"

명길은 대체 저 백성들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무기와 군량의 지원? 그게 무슨 소리인가.

"황제가 우리를 버렸고, 우리는 황제의 관리를 죽였소! 이미 이 나라의 반역자니, 끝까지 맞서 싸울 생각이오!"

어떻게든 맞서 싸울 것이다. 오로지 그 생각뿐이다.

이미 저질렀으니 이대로 가면 죽게 될 것이다. 그냥 죽어줄 수는 없다. 연방으로부터 어떻게든 지원을 받아 조정에 맞서 싸워야 한다.

가만히 듣던 명길은 이게 어쩐 일이냐 싶다가도 나름 이해가 갔다.

지금 남당은 역병으로 의심받아 격리되는 병자들이 많았다.

단순히 일반 백성만이 아니었다.

민란을 일으킨 백성들 중에서는 권력다툼에 지거나 관리들에게 밉보인 자들도 있었다.

‘아주 다양한 복식이로군. 이거 참.’

명길은 기가 찼다.

저 다양한 복식은 안 봐도 뻔할 뻔 자였다.

그렇다면 이걸 잘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본국에 알려 남당을 본격적으로 요리해야 할 것이다.

"알겠다. 내 평양에 연락할 테니. 그때까지는 기다리도록."

"부탁이오. 빠른 시일 내로 지원을 받아야 하오! 만일 봉기가 성공한다면 우리는 연방의 백성이 될 것이오!"

남당의 상황을 보면 절대 군사들을 파병할 상황은 아닐 것이다.

당장 전국에 반란의 불이 붙었는데 당나라 조정도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배를 내어 줄 테니, 그곳에 머물도록 하라."

명길의 입가에 그윽한 미소가 지어졌다.

* * *

중경 금성부.

백제국 마한 황제 부여신검은 호위 수십과 함께 황룡사에 들렀다가 황궁 밖을 거닐었다.

최근 천황가와 함께 절을 다니면서 마음이 평온해졌다.

예전에는 그리도 황제의 자리에 욕심이 났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이 자리가 참으로 덧없다고 여겨졌다.

문득 밤하늘을 바라보니 달밤이 참 아름다웠다.

"달밤이 참 좋구나."

달빛이 서라벌을 비추니 이리도 아름다울 수 있는가.

괜히 천년왕국의 수도가 아니었다.

"폐하. 날이 찹니다. 어서 궁으로 가셔야 합니다."

"음, 조금만 더 있다 가자꾸나. 천황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호위의 걱정에 신검은 고개를 저으면서 천황에게 눈을 돌렸다.

공식적으로는 백제 황제가 천황까지 맡게 되었으나, 그것은 신검 다음 황제의 몫이었다.

연방에 편입된 후에도 여전히 일본의 천황은 천황으로 불렸다. 함께 황룡사를 다니기 시작하면서 신검과 천황은 자연스럽게 친분을 맺게 되었다

"신라의 달밤이 그리도 좋다 들었는데, 백제 땅이 되어 둘러보니 참으로 좋구려."

"이런 날 술 한잔 기울이면 아주 좋을 텐데 말입니다."

"내 그럴 줄 알고 후지와라를 시켜 신라주라는 것을 가져왔소이다."

천황이 호쾌하게 웃으면서 술병들을 여럿 꺼냈다.

참 눈치도 빠르다. 신검은 씨익 웃었다.

"허. 다 알고 계셨습니까?"

"허허허. 신라주가 그리도 좋다기에 챙겨 뒀는데 이렇게 될 줄 알았겠소이까?"

백제의 황제와 일본의 천황은 달이 잘 보이는 정자로 가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역시 달밤에 마시는 술맛이 최고로군."

"그러게 말이오. 크하하하핫!"

비록 안주 없이 술만 있다지만, 달밤에 마시는 술맛은 참으로 달달했다.

"응? 그런데 이게 대체 무슨 소리지?"

"그러게 말이오. 혹시 근처에서 군사들이 훈련이라도 하나?"

"금성부 병사들의 훈련은 낮에 끝났을 터인데?"

바로 그때 어둠 속에서 화살이 날아왔다.

"끄윽!"

"커헉! 폐하! 피하시옵소서!"

"대체 어떤 놈들이 감히 백제 황제께서 계시는 곳을!"

신검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화살이 쏟아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자객들의 기습이었다.

"이곳은 백제 황제가 아니라 신라 황제께서 계셔야 하거늘! 감히 백제의 부여 씨가 뻔뻔하게 차지한다는 말이냐!"

"황제, 신라 도적놈들인가 보오!"

신라? 신라 놈들이 갑자기 무슨 일이란 말인가?

금성부의 신라인들은 지금까지 잠잠했다. 그런데 갑자기?

"흥. 얍삽하게 뒤를 노리는 것이 졸렬한 신라 놈들답구나!"

"닥치시오! 오늘 황제의 목이 떨어질 것이오!"

황제의 목이 떨어진다라. 웃기지도 않는 소리다.

황제가 되기 이전부터도 계속 전장에서 뛴 몸이다.

목 같은 것은 내놓은 지 오래되었다. 그래서 이런 상황도 무덤덤하다.

다만 술에 취한 것이 조금 문제일 뿐.

"허, 이 갑자기 무슨."

"천황께서는 뒤에 계십시오."

신검은 죽은 호위의 검을 뽑아 남은 호위들과 함께 자객들에게 맞섰다.

"부여신검을 죽여라! 대신라국 만세!"

"나라를 당에 팔아먹고 당을 끌어들여 삼한을 겨우 통일했던 놈들이 말이 많구나!"

"시끄럽다!"

신검과 자객들의 전투가 이어졌다. 하지만 신검은 전쟁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었다.

당연히 살아남은 호위도 마찬가지다.

신검과 호위는 신라인 출신 자객들을 훌륭하게 물리쳤다.

"흥! 겉만 번지르르하지, 아주 약해 빠졌구나!"

신검은 자객들을 베어 넘기면서 흡족하게 웃었다.

간만에 몸을 좀 푼 느낌이다.

"커헉!"

"제, 제발 살려주시오."

살아남은 자객들은 신검에게 살려달라 빌었다.

굳이 살려 둘 이유가 없으나 배후를 캐내는 데는 쓸모가 있을 것이다.

"네놈들 배후가 누구냐! 큭?"

살려달라는 것도 잠시 자객은 칼을 신검의 배에 박았다.

"말할 것 같으냐? 죽어라! 신검!"

"폐하!"

서걱!

신검의 배에 칼을 꽂은 자객은 검에 힘을 주었다가 호위가 휘두른 칼날에 목이 잘렸다.

배에 박힌 검을 잡은 채, 눈을 부릅뜬 신검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크흡. 하아. 펴, 평양의 아우에게 얼른 이 소식을 전하라!"

얼마 후 몰려온 연방군에 의해 신검은 급하게 천황의 사저로 옮겨져 의원들이 상처를 치료했으나, 독이 이미 체내 깊숙이 퍼지고 있었다.

* * *

서해에서 명길이 연방 군부에 올린 보고가 있다.

그 내용은 우리로서도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남당의 백성들이 우리보고 무기와 군량을?"

남당의 백성들이 조정과 맞서 싸워야 하니 무기와 군량을 지원해 달라는 것.

생각해 보니 이거 꽤 나쁘지 않다.

단순히 우리를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보고 한 지원 요청이 아니다.

금릉의 당 조정을 무너뜨리고 나면 연방의 백성이 되겠다고 한다.

즉, 나라를 들어 바치겠다는 뜻이다.

"음, 굳이 우리 군사들을 날릴 필요가 없는 것인가."

이렇게 되면 남당의 백성들 스스로가 나라를 무너뜨리고 그 땅을 우리가 지배하게 된다.

굳이 남당 정벌을 위한 군대를 준비할 이유가 없어진다.

"차라리 잘 되었습니다. 굳이 저들 스스로가 나라를 무너뜨린다면 좋겠지요."

"역병에 관해서는 좀 지켜봐야 하나 지금 나아지고 있다고 하니, 괜찮지 않겠습니까."

역병은 이제 다 잡혔다. 여기에 우리가 군대를 지원하지 않고 백성들 스스로가 들고일어난다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다.

"무기에서 총은 안 될 것입니다."

"칼과 창, 활을 지원하고 공성 무기를 지원해야 합니다. 총은 훈련할 시간도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오히려 총이 더 훈련할 시간이 짧아 좋지 않나?

화살도 제대로 못 쓰는 고기 방패보다야 그냥 총을 드는 편이 나을 것 같다.

화총을 쥐여 주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래야 전투력도 오르지.

"총까지 지원하지. 봉기는 성공해야 하니까. 훈련은 우리가 장수들을 파견해서 그들의 훈련 고문을 맡으면 될 것이다."

"그럴듯합니다만 문제는 이 봉기가 정말로 성공 가능성이 있는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역병으로 많이 어려운 처지지만, 남당의 군사력은 여전히 무시할 수 없다.

백성들만으로는 그들을 이길 수 없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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