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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47화 (147/154)

147. 마한 황제의 죽음

결국 남당에서 일어난 반군을 지원하기로 의견이 기울었으나, 다른 의견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남당과 적대하게 되는 것입니다. 연방이 지는 일은 없겠으나, 그래도 국가 간의 신의라는 것이 있는데 함부로 깨기에는 미묘하지 않겠습니까.

최승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설령 백성들이 저리 찾아왔다고는 해도 이것은 우리와 상관이 없는 일이다.

명분만 구하면 될 것이다.

"뭐 명분이야 충분히 그럴듯하게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나라를 바꾸고자 하니, 연방이 대국으로서 큰 결단을 내려 지원했다고 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백성들이 황제의 폭정에 들고일어난 것이다.

그런 백성들이 연방에 구원을 요청했고, 연방은 마땅히 대국으로서 그들을 어루만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명분을 좀 더 갖추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남당의 황실 혈통을 부정하지."

"이종가를 이용할 셈이십니까?"

그렇다. 이미 이종가를 이용해 먹기로 작정은 했으니까.

"그렇지. 이종가와 그 부인, 그 자식들에게 적당한 관직은 내려주지 않았던가?"

"예."

"명분은 있군. 남당의 황실은 당 제국의 황실의 피를 잇지 않았다 하지."

후당의 이종가만이 당나라의 계승을 논할 자격이 있다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당나라를 이었다는 남당은 이도 저도 아닌 잡종이 되어버린다.

"그럼 저희는 군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입니까?"

"그래도 준비는 해야겠지. 봉기가 실패할 때를 대비해야 하네."

봉기가 실패하면 다른 십국이 남당을 노릴지도 모른다.

그것만큼은 막아야지. 후당은 우리가 먹어야지 다른 누가 먹어서는 안 된다.

"난이 실패하게 된다 해도 남당은 꽤 타격이 클 것입니다. 군대를 출병하여 남당을 접수해야 합니다."

화총을 든 백성들이 들고일어난다면 남당도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닐 것이다.

그들 뒤에 연방이 있는 이상 피해가 크겠지.

확실한 것은 연방이 제해권도 장악하고 있으니 언제든 군사를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하면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겠군요."

"그럼 남당의 백성들에게 화총의 사격술을 가르칠 장수들도 선별하고 보내도록 하지."

지원할 군량과 무기를 모아 초주에 보내도록 한다.

마침 백성들이 자리 잡은 것이 초주라서 지원하기가 용이했다.

"예. 각하."

어차피 역병은 이제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장수들도 훈련만 시키면 화총 정도야 금방 익힐 것이다.

"그럼 병부의 장수들 중 선별하겠습니다."

"그리하게."

그렇게 남당의 일이 잘 풀려가는 듯 보였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좋은 소식이 들어왔다.

"마한 황제께서 황궁에서 신라인들에게 기습을 당하셨다고 합니다."

"뭐?"

신검이? 당했다고? 그렇게 당할 인물은 아닌데.

황궁에서 기습을 당했다는 것은 일반 백성이 한 짓이 아니다.

"범인들은 그 자리에서 모두 잡혔으나, 아직 배후가 밝혀지지는 않았습니다."

"흠. 신라 귀족층이겠군."

백제인들이 서라벌로 넘어가면서 밀려난 것은 신라 귀족 놈들이다.

전부 짓밟은 줄 알았는데. 아직도 그런 간이 부은 자가 있다더니.

지금은 그보다 신검의 생명이 문제다.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닌데.

"형님께서는? 많이 안 좋으시나?"

상황을 보고한 금성부의 관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검상이 깊은데, 아무래도 몸에 독이 퍼진 듯하여……."

말끝을 흐리며 다 말하지 못하는 것이 아무래도 치료하기 힘든 것 같다.

어쩔 수 없겠지. 이 시대에는 치료하지 못하는 병이 많으니까.

역시 의학이 발달해야 한다.

"의원들은 뭐라 하느냐?"

"일단 독을 긁어내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는 취했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면 신검도 얼마 남지 않았나. 천황도 살아 있는데, 신검이 먼저 죽다니.

"그럼 장인은 어떻게 되었는가?"

"천황께서는 무탈하시나. 황제께서는 각하를 꼭 좀 뵈어야겠다고."

진짜 가족이 아니더라도 나름 정이 들었었다.

아마 이번이 마지막일 수도 있으니 한번 만나 봐야겠지.

"알겠다. 그리고 신라의 귀족 놈들을 이참에 두들겨 잡아야지. 감히 내 형님에게 그리 해를 입히다니."

감히 연방 지도자의 형을 죽게 만든 놈들이다. 가만히 둘 수는 없다.

나는 평양의 일을 최승우에게 맡기고 곧바로 금성부로 내려왔다.

신검은 금성부에 있는 천황의 자택에 머물고 있었다.

금성부로 가는 것보다는 천황의 자택이 더 가까운 탓이었을까.

아니면 그만큼 깊은 상처였나.

"오셨습니까."

"숙부님. 아, 아버님께서… 흑."

도착하자 황후와 공주가 슬픈 얼굴로 내게 인사했다.

고개를 돌려 침대를 살피자 거친 숨을 쉬는 신검이 보였다.

"와, 왔느냐. 국사가 다망한데 이렇게 불러 미안하구나."

이대로 죽는 건 억울하지 않은가.

아니, 황제가 되기는 했지. 하지만 그래도 신라 놈들에게 가다니. 얼마나 한이 맺힐까.

"신라 놈들이 아무래도 검에 독을 바른 것 같다. 내 아무래도 오래 가지 못할 것 같구나."

그 자리에 내가 있었으면 죽을 일이 없었을 텐데.

"무슨 그런 나약한 말씀을 다 하십니까. 형님께서는 대백제국의 황제이십니다. 이 연방을 이루는 두 제국 중 남쪽의 황제가 되십니다. 약한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 이제 더는 무리야."

신검은 눈을 돌려 복부에 있는 상처를 바라본다.

확실히 심하기는 하다.

"형님. 어찌 이리 나약한 말씀을 하시는지요. 힘을 내셔야 합니다."

"참으로 고단하고도 길었구나."

"형님. 폐하."

백제가 세워진 뒤 끝없이 전장을 돌아다니던 신검이었다.

고단할 만하지. 황제가 되어서는 좀 쉬는 것 같더니만, 결국 신라 놈들에 의해 이렇게 죽을 운명이었나보다.

한참 끙끙 앓는 신검은 조심히 입을 열었다.

"아우야. 내 처음에는 네가 미웠었다. 매번 노력을 해도 모자란 나와 달리 너는 능력이 출중했으니까. 부황의 사랑도 독차지했었지."

"형님."

"하지만 너의 진심을 알고, 같은 배에서 태어난 아우들의 추악함을 알고 내 너와 함께 했지. 이제 생각해보니 그 못난 놈들이라도 보고 싶구나."

그 못난 동생들도 다 죽었다. 이런 말을 꺼내는 걸 보니 정말 죽으려나 보다.

"폐하, 어찌 이리 나약한 말씀을……."

"이제 어머니도 뵈어야지."

신검의 어머니도 한참 전에 세상을 떴다.

자식이 황제로 있는 것을 그리도 자랑스러워하던 사람이었지. 내게는 좀 귀찮은 사람이었으나 제 자식에게만큼은 한없이 정성을 들였었다.

결국 이것으로 형제들은 다 죽게 된 것인가.

"죽어가는 중에 참으로 미안하게 생각한다. 부디 황후와 내 딸을 잘 보살펴다오."

"그리하겠습니다."

"아버님도 뵙고 있을 테니, 너는 천천히 와야 할 것이다."

신이 지켜보고 있는데 빨리 죽을 수도 없다.

"예. 형님."

"황후와 공주에게도 늘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미안했소이다."

신검은 마지막에는 부인과 딸에게 사랑을 속삭이더니 마침내 눈을 감았다.

신검이 죽자 황후와 공주는 한참을 울었다.

장례식은 서라벌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황제의 예우에 맞게 치러지고 황후와 공주에게 한 유언에 따라 평양에 묻혔다.

"황후와 공주는 이제 어디에 계실 참이십니까?"

황후와 공주는 여전히 슬퍼하는 듯 보이나, 이는 백제 황실의 문제다. 신검이 죽은 이상 황위 문제도 결정을 내려야지.

"백제의 황위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사실 황위 계승을 생각하면 제 아들에게 갈 것입니다마는. 공주가 원한다면 공주에게 넘겨드리리다."

지금에 와서는 내 아들이 어리니, 황위를 누가 잇든지 상관은 없을 것 같다.

가만히 나와 황후의 시선이 조카인 마한공주를 향하자 마한공주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조카가 장성하기까지는 시간이 있으니 숙부께서 황제의 위에 오르시지요. 어차피 총리라는 지위에 더해질 뿐 아닙니까."

"너는 싫으냐?"

아버지랑은 달리 욕심이 적은 것 같다.

"아버님이 황위에 계시다가 비명에 가셨습니다. 어찌 그 자리를 받겠습니까."

마한공주는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그건 그렇겠구나."

"더군다나 그 옛날의 백제도 어라하들이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은 것으로 압니다. 지금의 백제도 그 저주를 받고 있나 봅니다."

생각해보니 옛 백제가 군주들 말년이 좋지 못했다.

암살당한다거나 어떻게든 죽어 나갔다.

응? 그럼 나보고 황위를 가져가란 것은 나보고 죽으라는 이야기인가?

"음, 알겠다."

"하지만, 신라 것들에게 복수를 해주십시오."

"응당 그리해야지."

마한공주는 한이 맺힌 눈으로 내게 복수해달라 청했다.

단순히 공주만이 아니었다. 신검의 죽음으로 백제 백성들의 분노는 어마어마했다.

"신라 이 졸렬한 놈들!"

"감히 우리 폐하를!"

"우리가 대체 뭘 했다고 이러는 거요?"

백제 백성들은 무고한 신라인들까지 두들겨 팼다.

막아야 된다는 생각은 굳이 들지 않았다. 서라벌에 뿌리박고 사는 놈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주인인 줄 알고 있으니까. 그러니 이번에 확실히 깨닫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서라벌 끝자락으로 쫓겨난 신라 귀족 놈들을 처리할 때이다.

이번에 아예 싹 뿌리를 뽑아 서라벌을 온전히 백제 땅으로 만들어야 한다. 백제인들만의 백제 땅 말이다.

봐주는 것도 한도가 있는 법이 아닌가.

나는 신라인 귀족층, 백제에 반발하던 무리들을 서라벌 거리에 끌어냈다.

"어찌 심증만으로 우리를 잡는다는 말이오!"

"너희들을 살려두지 않았으면 형님이 가시는 일은 없었겠지."

"우리는 아니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상식적으로 너희들이 아니면 누가 있겠느냐? 신라 황궁을 연방군 몰래 드나들 수 있는 것은 황궁 내의 길을 잘 아는 놈들인 너희들이 아니겠느냐?"

일벌백계로 삼듯, 나는 칼을 들어 모조리 벴다.

그렇게 전 신라 귀족층들을 모조리 몰살했다.

신라인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면서 두려워하였다.

이제야 깨달은 거겠지. 신라가 아닌 백제의 시대라고.

"숙부님. 감사합니다."

마한공주는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아니다. 이 정도로 무슨…… 그래, 이제 조금은 한이 풀렸느냐?"

"숙부님. 제가 청을 하나 드려도 되겠습니까?"

"말하거라."

우리 귀여운 조카 소원이라면 다 들어줘야지.

그런데 조카의 입에서 들려온 것은 정말 뜻밖의 말이었다.

"제게 정치를 가르쳐 주십시오. 필요하다면 무예도 익히겠습니다."

"공주는 혹시 총리가 되고 싶으냐?"

의외로 신검 밑에서 이런 인물이 태어났네.

"예."

"단순한 야망이냐, 아니면 정말로 이 나라를 위해 무언가 해보고 싶다…… 이런 뜻에서 나온 말이냐?"

"야망이 없다고 하면 거짓이겠지요."

그래. 그거 솔직해서 마음에 든다.

"그래. 뭐, 너 말고도 총리가 되고 싶은 자들은 많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총리가 되어 무엇을 하고 싶으냐?"

총리가 되고 싶은 놈은 아주 많을 것이다.

말이야 바른말이지 두 황제를 아래로 두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지위다. 아마 욕심이 나는 놈들 천지겠지.

물론 이 자리는 아무렇게나 주는 자리가 아니다.

능력이 있는 놈 중에 장관들에게 뽑혀야 한다.

"숙부님이 가꾸신 연방을 태평성대로 이끌어 내부를 단속하고 백성들을 어루만져 천년만년 갈 수 있는 연방의 발판을 마련할 것입니다."

"하기는 내가 나라를 발전시키기는 했으나 전쟁이 많았지. 내 다음 총리는 커다란 연방을 단단하게 다질 인물이 되어야 해."

내가 자주 걱정하던 것이기는 하다.

"평소 이 조카는 숙부를 존경해 왔습니다. 그저 마한 땅에 지나지 않던 백제 땅을 크게 일으키시지 않으셨습니까?"

과연 여장부가 될 아이일까.

신검이 그래도 살아생전 내 뜻대로 움직여줬으니 공주가 능력이 된다면 내 들어줄 생각도 있다.

"내 너에게 스승들을 붙여줄 수는 있으나, 나는 총리를 세습시킬 생각이 없다."

세습을 시킬 거면 차라리 황위를 노렸을 테니까.

"알고 있습니다. 제힘으로 오를 것입니다."

"좋다. 내 자식들이 백제와 고려의 황위를 잇고 조카가 총리를 잇는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겠지. 스승들을 붙여주고 무예는 내가 직접 가르치겠다."

"감사합니다!"

총리의 자리가 너의 것이라면 알아서 자리를 찾게 될 것이다.

아니면 다른 이가 가지게 될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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