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후백제에서 살아남기-148화 (148/154)

148. 황제의 진노

신검의 장례가 끝나고 황위는 자연스럽게 내가 넘겨받았다.

달라진 건 없다. 그저 황제를 겸하게 되었을 뿐, 나는 여전히 총리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당의 사신이 도착했다.

"무슨 일로 바다를 건너왔는가?"

"무슨 일이라니, 그건 우리가 할 말이오. 왜구를 잡는다더니 연방은 우리 당을 잡을 생각이시오?"

그건 무슨 소리일까. 전혀 아는 것이 없는데.

내가 전혀 모른다는 듯이 쳐다보자 사신은 화가 치밀었는지 얼굴이 붉어졌다.

"무슨 이유인지 말을 해야 알 것이 아닌가."

"남당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났습니다."

"오, 그런가? 안 됐군."

나는 강 건너 불구경하듯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그래서 어쩌라는 말인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 일과 무관하다는 표정으로 나는 무덤덤하게 대응했다.

"격리당한 백성들과 병사였던 자들이 초주에 모여서 들고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연방과 절대 무관하지 않습니다!"

"무슨 말인가?"

"이들이 연방의 신무기로 무장하고 있습니다!"

오, 벌써 그 지경에 이르렀나.

초주 백성들의 일 처리가 참 빠르다.

"그래서?"

"예? 그래서라뇨. 어찌 남의 나라에 이렇게 간섭하실 수 있다는 말입니까?"

본래는 백성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라 할 셈이었으나, 승리를 확신할 수 없는 지금 굳이 구제를 자청할 이유는 없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지. 우리의 신무기는 이주에서 거래되고 있네. 아마 백성들도 이주를 통해 얻은 거겠지. 가격도 비싼 편은 아니니 반군 중 돈 좀 있는 자가 얻은 것이 아니겠나."

끝까지 모른 척 잡아뗐다.

"그저 백성들이 신무기를 제대로 다루는 것은 어떻게 된 일입니까? 연방이 장수들을 보낸 까닭이 아닙니까?"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만, 생사람 잡지 말게. 너희들이 신무기라고 부르는 화총은 다루기 쉬운 도구지."

"끄응."

이미 장수들이 파견된 상황이지만, 힌트만 주면 알아서들 잘할 것이다.

사신은 결국 내게서 더 얻을 것이 없다 판단한 건지 남당으로 돌아갔다.

* * *

금릉.

남당의 황제 이경은 연방에서 돌아온 사신이 전한 소식에 분기를 참을 수 없었다.

"빌어먹을 부여금강 이놈! 어디서 이런 변명을!"

"폐하! 고정하시옵소서!"

신하들은 황제의 눈치를 보며 고정하라는 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 개만도 못한 놈이 감히 누구를 우롱해!"

참는 데도 정도가 있다.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는가.

그런데 그걸 가만 듣던 신하들이 서로 눈치를 보더니 한창 화가 치민 이경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그런데…… 그것이 사실로 파악되었습니다."

"뭐?"

"안남에도 일부 신무기가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다만 이주에 있는 연방의 신무기들을 전부 초주에 있는 반군이 독점해서 구입했다고…."

허, 그럼 조정이 독점했으면 그 신무기들이 전부 조정의 것이 아닌가.

좋은 기회를 놓친 것인가? 그 신무기만 있었으면 진작에 민과 오월도 제압했을지도 모를 일이 아닌가.

아니, 그 전에 그것이 사실이라는 게 더 놀랍다.

아무리 그래도 관련이 없는 것은 아닐 텐데?

"설마 그게 정말이라고?"

"연방에서 군수물자를 판매하는 상단의 규모도 큰 편입니다."

"그래서 연방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

"관련이 있어도 마땅히 저들을 꾸짖을 명분이 없습니다."

그 찢어 죽여도 시원찮을 오랑캐 놈들이 허튼 수를 부리고 있다.

분명 돈에 눈이 멀어 반군들에게 팔아넘긴 거겠지.

"그렇다면 연방으로부터 무기를 구입하는 것은?"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신무기는 전부 연방정부에서 공급받아 파는 건데 올해 물량은 그게 끝이라 합니다. 그들은 초주에서 반란이 일어났는지도 몰랐고, 남당과는 정식국교가 맺어지지 않는 상황이라 그저 남당인이 왔다는 이유로 팔았다고 하였습니다."

가만히 들어보니 연방의 행동이 이해가 갈 듯하면서도, 이게 영 사람을 약 올리는 것 같았다.

"애초에 우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무기를 판 쪽이 잘못된 것이 아닌가?"

"폐하, 만일 그 일로 연방에게 항의를 한다면 연방은 군사를 보낼 것입니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라는 것이 아닌가?

"그깟 놈들이 무서워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남당은 무너지고 말 것이네! 안 되겠다, 즉시 대군을 초주로 보내라. 신무기든 뭐든 대군을 보내면 초주를 쓸어버릴 수는 있을 것이다!"

"폐하. 하오나 지금 군사력은 통일을 위해서……."

"이대로 두면 통일이고 뭐고 나라부터 무너진다! 회하에 있는 군대까지 동원하라! 반군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이경의 황명 아래에 초주의 반군을 진압하기 위한 대군이 꾸려졌다.

그 수만 해도 무려 10만. 남당 황제 이경이 중원통일에 쓰기 위해 모은 군사력을 기어이 반군진압에 내었다.

회하에 있는 병력은 후당이 북진을 위해 준비해 둔 병력이었다.

그 군대를 뺐으니 황제가 반군진압에 얼마나 진심인지 알려주는 대목이었다.

물론 전략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다. 반군은 매일 같이 그 수가 늘고 있으니 나라를 완전히 좀먹기 전에 처분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남당의 통일 전쟁은 다시 요원해졌다.

진압군의 소식이 전해지자, 초주의 반군도 술렁였다.

"황제가 진압군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합니까?"

"수가 우리의 몇 배나 됩니다."

진압군의 수만 따져도 반군의 세 배 이상이 된다. 심지어 적들은 수많은 전투를 치러 정예 중의 정예인데, 과연 백성들 출신인 자신들이 이길 수 있을까.

얼마나 분노했으면 북쪽에 주둔시킨 군대마저 동원했다고 하니 황제가 얼마나 분노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정작 연방 본국에서 파견된 덕술이란 장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두려워할 것이 있나?"

"예?"

"연방의 신무기로 무장하지 않았나. 걱정 말게."

그건 그렇지만 과연 정말로 이 신무기가 조정을 상대로 써먹을 수 있는 걸까.

얼마 지나지 않아 초주는 완전히 포위되었다.

초주를 포위한 황제의 군대는 그 위용이 대단했다.

역병에 버려진 백성들의 민란을 토벌한 적도 있다고 한다.

초주의 반군은 황제의 군대를 보고 지레 겁을 먹기도 했다.

덕술은 가만히 반군의 상황을 살폈다.

‘이런 겁쟁이들 같으니. 이럴 거면 뭐하러 반란을 일으켜?’

설마하니 이대로 후회라도 하는 것일까. 그건 용서할 수 없다.

"초주의 반군 놈들아! 항복하라!"

"우리는 항복하지 않는다! 끝까지 맞서 싸울 것이다!"

덕술은 반군으로 위장해서 남당의 진압군을 향해 외쳤다. 그러자 반군의 사기는 크게 올라 전투준비를 마쳤다.

그때 덕술의 수하가 걱정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장군. 아무리 화총이 강력해도 화살에 비하면 거리가 짧습니다. 그러나 여기 반군들은 궁술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괜히 도발한 것이 아닙니까?"

"대포가 있는데 상관이 있나?"

"아."

"게다가 우리에게는 천보총이라는 것도 있네."

천보총. 화약국에서 만들어낸 새로운 화총으로 사정거리가 긴 총이었다.

덕술은 군부에서 그 천보총들로 무장한 새로운 화총수 부대를 만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초원 출신으로 눈이 밝았다. 천보총부대는 무려 지휘관만을 저격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초주를 공격하라! 감히 대당제국에 반기를 든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려라!"

10만에 달하는 대군이 일제히 초주를 향해 공격을 시작했다.

"화포를 준비하라!"

콰앙! 퍼어엉!

이주에서 가지고 온 화약의 대부분이 지금 초주에 있었다.

숙련된 포병들에게 훈련을 받은 반란군들은 화포를 이용해서 적들을 향해 포탄을 쏟아부었다. 하지만 황제의 군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황제의 군대다! 대당제국을 위해 우리 몸을 아끼지 말자!"

"우와아아아아아!"

"대당제국 만세!"

황제의 군대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일찍이 신무기에 대한 정보를 얻은 금릉의 조정은 적들의 신무기에 대적하는 무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처음 겪어보는 공격에 혼란에 빠지지 않을 정도로 단련을 해 왔다.

이미 예상한 것이라 황제의 군대에게는 두려울 것이 없었다.

피해가 계속 늘어만 가는 데도 바퀴벌레처럼 성벽에 매달리는 당 제국군은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덕술 장군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맞서고는 있습니다만. 놈들이 성벽 위에 올라오고 나면."

이쪽은 별다른 전술이 없다.

그냥 죽음을 각오하고 계속 맞서 싸우는 밖에.

"궁수들은 계속 화살을 날리고, 총수들은 사다리로 올라오는 자들을 사격하라."

"그것으로 되겠습니까?"

"생각보다 너무 일찍 사용하는 것 같은데. 맹화유궤를 사용하겠다."

맹화유궤는 안남 쪽에 의해서 도입된 것이다.

이주를 맡은 상귀가 안남과의 무역을 추진하자 그 지방에 의해서 도입된 것으로 불길을 쏘아대는 무기였다.

본국으로 몇 대를 보내고 초주에 대부분의 맹화유궤를 둠으로써 남당군과 맞서기 위해 준비한 것이다.

원 역사와 달리 연방이 무역을 독점하면서 얻을 수 있는 무기였다.

"대당의 전사들이여! 성벽을 오르라! 반군 놈들을 모조리 쓸어버리자!"

와아아아아!

죽어가면서도 사기가 충천한 남당의 병사들 탓에 성벽에 걸쳐진 사다리의 수가 늘어만 갔다.

탕! 탕탕!

"놈들의 무기는 다시 쓰려면 시간이 걸린다! 성벽을 타고 계속 올라라!"

"맹화유궤를 앞으로 내어라!"

성벽에 설치된 쇠 구멍에서 불길이 나와 남당병을 태웠다.

화르르르륵!

미처 불길을 예상치 못한 남당병이 사다리에서 굴러떨어지기도 했다.

"끄아아아아악!"

"다 태워죽여라!"

성벽 위에서 불이 내뿜어지자, 사다리를 오르던 병사들이 그대로 곤두박질쳤다.

설마하니 반군이 저런 무기를 가지고 있을 줄 누가 알았을까.

"무슨 반군 놈들이 저런 무기를? 여기서 밀리면 안 된다! 계속 공격하라!"

"황제의 개들을 막아라!"

남당군은 성벽에 계속 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피해는 점점 커져만 갔다.

오를 때마다 위에서는 쇠탄과 화염이 기다리고 있으니, 궁술도 형편없다고 무시하다가 되레 당하는 꼴이었다.

그렇게 한참 이어진 전투 끝에 남당군이 퇴각을 시작했다.

"퇴각하라! 퇴각하라!"

생각보다 피해가 너무 크다.

물론 남당병도 성벽 위에 올라 반군들을 많이 죽였으나, 남당군이 입은 피해에 비하면 반군의 피해는 적었다.

그렇게 승리를 하자 성에서는 반군들이 함성을 질렀다.

"대승입니다. 아군이 대승을 하였습니다!"

"잘 되었다!"

"하지만, 화약을 너무 소비하였습니다."

"괜찮네. 본국에서 계속 보급을 할 테니."

본국에서 계속 올라올 것이다.

화약은 충분하다. 문제는 생각보다도 이쪽 병력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들키지 않겠습니까?"

"저놈들은 아직 수군을 재건하지 못했으니 우리가 바다로 보급한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힘들 것이네."

설령 들킨다고 해도 나중에 반군에게 판매할 양을 전부 넘기는 거라고 말하면 된다.

아니, 그때 가서 잡아떼지 않아도 어차피 당군은 아무것도 못 할 것이다.

연방을 칠 병력은 남아있을까?

"하지만 승산은 확실히 있습니까?"

"솔직히 많이 힘드네. 당군의 상태를 보니 오합지졸도 아니고 충분히 강해. 이대로 가면 반군이 큰 피해를 입겠지."

생각보다도 남당군이 너무 강하다.

반군들이 이길 수 있던 것은 결국 무기 덕이 크다.

그렇다면 조금은 생각을 달리할 때다. 남당군을 격파하는 것이 아니라 남당군에게 최대한 많은 피해를 입히는 것.

"그렇다면 이것은……."

"싸우다가 장렬하게 모두 죽게 해야겠지."

그것이 반군도 바라는 것이다. 그들은 무기 없이 약하고, 대의가 있다기보단 더는 이대로 살 수 없어 들고 일어난 처지다. 게다가 연방은 무기의 지원만 한다.

연방은 그렇게 하여 남당의 힘을 빼면 될 뿐이다.

그런데 한참 남당과 반군의 전투가 계속되는 와중, 서쪽에서 새로운 움직임이 있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