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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백제에서 살아남기-154화 (에필로그) (154/154)

154. 에필로그

"뭐가 또 문제입니까?"

요시코가 퉁명스럽게 물었다.

"이거 내가 몸이 좀 쑤셔서 그렇지."

신 놈들 비위 맞추겠다고 열심히 달렸는데 말이다.

아는 역사까지는 달렸는데 과연 제대로 한 것일까.

무조건적인 정복 전쟁이라도 해야 했을까. 그 여신이 승리하려면 몽골 제국급으로 나라를 넓혔어야 했나.

지금이라도 조카를 설득해서 저기 중앙아시아까지는 먹어야 할까?

로마랑 직접 국경이라도 닿아야 하는 걸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는데. 너무 먼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솔직히 지금 유럽은 노릴 수도 있을 것도 같다.

[대조선제국 업적달성!]

[중원은 여전히 혼란스럽고, 세상천지 어디를 둘러봐도 조선만 한 제국은 없습니다!]

[신들의 대리전에서 우승하셨습니다!]

어? 우승? 나 돌아갈 수 있는 건가?

"잠깐, 뭔가 이상하지 않나? 정말 내가 우승이라고?"

"네."

"부인은 내 말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까?"

"당연하지."

어?

갑자기 요시코의 목소리가 바뀐 듯하여 그녀를 쳐다보니 어느새 나는 이상한 공간에 있었다.

언젠가 신을 보았던 새하얀 공간이다.

아니, 잠깐. 내가 지금 죽기라도 했나? 아닌 듯하다. 심지어 눈앞에는 부인도 있다.

"아니, 잠깐, 여기는 어디?"

"익숙하지 않습니까?"

요시코의 모습이 예전에 보았던 여신처럼 변했다.

혹시 그녀가 여신이었나? 생각해보니 좀 닮기는 했었다.

"신? 당신이 왜 갑자기 나에게 존댓말을?"

"그야 당신 아내로 산 지 수십 년이 아닙니까? 물론 분신 같은 몸이지만. 한 이불 덮고 산 지 꽤 됐는데, 신의 기억을 찾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습니다."

뭐? 한마디로 요시코가 기억을 잃은 여신이었다 이런 말인가?

잠깐, 그럼 다른 부인들은? 최근에 능글맞아진 고연화나 소온도 설마?

문득 궁금해졌다.

확실히 보통 여자들과는 달리 잘 늙지 않은 것을 보면 수상하다.

"설마 다른 부인도?"

"그녀들도 다른 신의 분신 같은 거라고 봐야 합니다. 물론 자각은 없지만요. 원래 신들이 하계에 강림해서 누군가를 도울 때는 신으로서의 기억을 잃게 됩니다. 그럼에도 본능적으로 돕게 되는 거고."

기억은 없지만 나를 돕도록 설계되어 있다라…. 진짜 영화 속에서나 보던 것이네.

"내가 당신과 아이를 낳기까지 했던 거고?"

"네."

여신이 얼굴을 붉히고 있다.

"잠깐, 그거 완전…… 이거 반칙 아니야? 대리인들을 왜 도와줘?"

"중간부터 탈락하는 자들도 있었으니까요. 유럽의 경우에는 대리인들이 대부분 어느 정도 기반이 있거나 역사에서 나름대로 힘이 있던 존재들이었으니, 그것을 감안해서 점수를 짜게 주거든요. 또는 당신 같은 케이스에 나름대로 조력자를 붙여준다거나. 뭐, 탈락자들은 직접 다른 대리인을 도와줄 수 있어요."

"그럼……."

"탈락해서 당신에게 흥미가 돌아 돕는 자들도 있을 거예요. 그 예시로 기억이 없는 고연화나 소온이 그럴 테고."

"그래도 내가 우승이라니."

설마하니 내가 우승하게 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지.

"뭐, 처음 기반이나 빙의한 인물의 상황이라든가 가정환경 등, 다양한 이유로 점수 같은 것이 추가로 붙어서요. 영향력 같은 것도요. 그러니 땅만 무작정 넓혀서는 의미가 없어요. 뭐, 몽골제국 수준의 땅은 확실히 넓죠. 하지만 얼마 못 가서 분열하고 말잖아요? 기반이 얼마나 탄탄한지도 달려있어요."

"으음."

생각해보니 몽골제국은 오래 못 갔지. 강한 전투력을 보유하고 있으나 따지고 보면 잠깐 흥한 경우다. 몽골족은 전투는 잘하지만, 통치에는 쥐약이니 말이다.

"특히나 지금 시대는 정보통신망도 발전되지 못하였습니다. 당연히 무식하게 땅만 넓은 것보다 중앙집권화로 나라의 미래를 확실히 다져두는 것이 더 높은 점수라 할 수 있지요."

그러고 보니 나는 서역에서 여러 정치 제도나 다양한 학문도 발달시켜 왔다.

"음, 그런가. 앞으로의 미래는 알고 있나?"

"확실한 것은 이 나라의 미래는 밝다는 정도입니다. 그나마 내게 허락된 정보로 말씀드리자면…… 중원은 끝없는 전국 시대의 혼란 끝에 인구가 조선보다 줄어들게 되고, 후한은 조선의 제후국으로 남게 됩니다."

"여신이라더니."

"여신이라도 신급이란 게 있잖아요."

정말로 괜찮을까? 나라가 크면 그만큼 통치력이 강해야 하는데. 내가 만든 나라가 얼마나 이어질 수 있을까.

"그래도 자잘한 건 알 수 있지? 부여씨 가문이라든가."

"고씨가 된 조선 황실과 다르게 부여씨로 남은 당신의 가문은 초대 총리와 2대 총리인 부여은의 영향이 커서 정치계의 엘리트 가문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가문보다 총리나 장관 배출이 많았습니다."

"다행이군."

역사가 그대로만 쭉 진행된다면 나라가 분열될 일은 없을 것이다.

"원 역사 이씨의 조선과 달리 당신이 세운 조선은 강력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신대륙을 개척합니다. 그 과정에서 유럽 열강과 같은 일을 벌이지만 21세기까지도 쭉 대국으로 남게 됩니다."

"만족스럽다."

"으음. 너무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정보를 줬는데."

여신은 곤란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같은 침대를 쓰는 사이인데 그 정도야 뭐."

그야말로 내가 원하는 역사다.

원 역사처럼 나약한 역사가 아닌 강국으로 남는 역사가 탄생했다.

"뭐,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여신은 내게 고개를 숙였다.

"어, 음. 내 아내라고 해야 하나…… 뭐라 해야 하는 것이 맞나?"

여신이라고 해야 하나?

솔직히 배신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잘 지낸 아내가 알고 보니 그 썩을 신이었다니. 나를 여기로 보낸 그 얄궂은 위인이라니.

나와 함께 한 그 모든 것이 연기였던 걸까.

뭐. 나도 살려고 발버둥 치느라 집안에 많이 신경을 쓰지 못했으니 요시코나 다른 여자가 신이라 해도 내 뭐라 할 말은 없지만.

"편한 대로 부르세요."

"요시코. 그럼 신의 3일 휴가는 어떻게 되는 건가?"

이 개짓거리를 하고도 이 여신은 고작해야 3일을 쉬게 되겠지.

"이제 와 3일 휴가가 뭐가 중요합니까? 신이 조정하지 않는 한, 신계와 하계는 시간의 개념이 다릅니다."

"잠깐, 신이라면…… 당신들은 죽지 않는 건가?"

이제 와 안 늙는 것이 수상하다.

설마하니 이 세계 자체가 신의 유희로 만들어진 것이라 신인 내 부인들만 늙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인가.

"인간의 몸이니 죽기야 죽겠죠. 그런 것은 신경쓰지 마시구요. 자, 당신에게 선택지를 드릴게요."

"무슨 선택지?"

"당신은 새로운 조선의 국부가 될 겁니다. 이렇게 내기가 끝났으니, 이제 선택하셔야죠. 어떻게 하실지. 지금 이 세계의 미래에서 다시 태어난다든가."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강대국이 된 미래 조선의 모습은 나쁘지 않겠지.

어쩌면 원래 세계의 한국보다 훨씬 잘살고 남 눈치 보지 않는 강대한 나라로 남아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그 미래로 가면 이질적일 거 같기는 하다.

"다른 선택지는?"

"원래 세계에서 풍족하게 살아간다든가."

이것 역시 나쁘지 않다. 역사가 바뀌든 말든. 나 하나 먹고 살기도 힘든 것이 원래 세계니. 그냥 풍족하게 사는 것도 괜찮다.

"그럼 당신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는 다시 신대로 당신은 당신대로."

여신은 뭔가 풀이 죽은 모습이다.

그렇겠지. 지금까지 함께 한 세월이 얼만데. 아마 미운 정이라도 있을 것이다.

음, 그렇다면 다른 선택지를 가지고 싶은데.

"세 번째 선택지가 있지 않나?"

"예?"

솔직히 땅을 넓히고 아무리 개발한다 해도 지금 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이 없다.

산업 혁명으로 세상을 발전시키기에는 아직 그럴 처지도 아니고. 설령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미래지식을 어떻게 끄집어내서 산업 혁명을 이룬다 해도 죽을 때까지는 현대생활처럼 살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말이다.

"확실히 TV, PC, 스마트폰은 없어서 불편하지만 말이야. 여기서 이렇게 끝내지 말고, 그냥 그대로 너희들과 살다 죽어도 되지 않나? 나도 책임이 있지."

눈앞의 여신이나 기억이 없는 고연화나 소온도 따지고 보면 나 하나 바라보고 온 것이 아닌가.

이유가 어디에 있든 간에, 나 하나 이기게 해주겠다고 와 줬는데 내기가 끝났다고 이대로 버리는 것은 인간으로서 최악이 아닌가.

"우리와 인간으로서 살고 싶다고요?"

"그래. 더해서 죽고 나면 현세에서도 다시 태어나고 싶고."

"욕심도 많으셔라."

나 원래 욕심 많은 인간이다.

솔직히 지금껏 해온 걸 생각하면 이 정도 보상은 바라도 되는 것이 아닌가.

"그 긴 기간 동안 나를 굴린 네가 할 말은 아니지."

"뭐, 휴가 3일 반납하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만."

신은 나와 함께 하겠다고 휴가 3일을 그대로 내버렸다.

설마 신들에게 휴가 3일이 그 정도 값어치를 할 줄이야.

"잠깐, 그럼 일은 어떻게 해?"

"인간세계의 나와 신계의 내가 서로 나누면 될 일이에요. 말했듯이 이쪽 시간대나 저쪽 시간대도 이어붙여야 가능한 거라."

"그쪽도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군."

요시코는 어깨를 으쓱였다.

"좋아요. 그렇게 합시다. 같이 살아요. 그럼."

여신은 웃으면서 다시 요시코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역시 저 모습이 낫다. 신으로서의 모습은 뭔가 찝찝했으니까.

제3의 선택을 한 나는 결국 이 세상에 남기로 했다.

다음 생이 있든 말든. 이미 이 세계에서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순간. 나는 이 세상의 사람이다.

그러니 불편한 세상이라도 나날이 발전해가는 나라를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 * *

조선 제국 초대 총리 부여금강은 백제 완산주 궁에서 태어나 금강 같은 힘으로 대제국을 일으켜 고려와 백제를 평화통일하였다.

그는 중원의 전쟁에 개입하여 중원 통일을 막았으며 중원 최대 세력인 오대의 한나라를 신하국으로 삼았다.

또한 반도와 만주, 초원, 열도를 하나로 묶었으며 남당의 동쪽을 경략하여 언제든 중원에 개입할 여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주에 진을 설치하여 국제 무역거점 겸 바다를 완전히 장악하였다.

그는 서역의 기술자들을 들여 도로와 건물을 정비하였으며, 로마의 정치 제도를 받아들여 조선국의 제도를 만들었다.

또 법률을 정비하여 나라를 안정시켰다. 무기개발과 강력한 군사들을 키워 감히 외적이 공격할 수 없는 강한 군사력을 길러냈다.

2대 총리인 부여은은 금강의 조카로, 백제국 2대 황제 부여신검의 자식이다.

이제 막 2대 총리가 된 부여은에게 주어진 숙제는 금강이 세워둔 제국의 안정을 꾀하는 것이었다.

당시 제국은 여전히 연방이라는 불안한 체제였다. 하지만 부여은의 활약으로 황실이 통합되었으며 연방에서 제국으로 탈바꿈하였다.

그녀는 금강의 대외정책을 계승하여 중원이 절대 하나로 통일할 수 없도록 하였으며 상씨의 한나라를 온전히 제후국으로 만들었다. 또 항로를 개척하여 저 멀리 인도까지 길을 여니 해양제국의 시대로 이어졌다.

이후에도 부여씨 가문에서는 총리를 비롯한 장관들이 선출되어 명문가의 집안으로 자리 잡게 되었으며, 가끔 폭정을 하는 총리도 있었다.

17세기에는 누르하치라는 인물이 반란으로 총리부를 장악하고 국호를 대금제국으로 하는 등의 반란을 일으켜 황실이 흔들렸으나, 북경유수 임경업이 현덕부에서 황족 고원, 당시 지방 군권을 쥐던 부여선과 함께 군사를 끌고 평양을 탈환하여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19세기 말에 열강의 침탈이 중국을 잠식하면서 조선의 패권을 흔들려고 하자 조선은 국호를 대한으로 바꿔 한민족이라는 개념 아래에 다시 국민이 단결하여 서양 열강과 맞서 싸웠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룩한 대한은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중국의 독립을 승인하였으며, 역사는 지금의 대한민국으로 이어진다.

한 여교사가 칠판에 적은 금강의 업적을 쭉 한번 훑어보고는 보드 마커를 내려놓고 학생들에게 금강에 대해 가르쳤다.

"그렇게 부여금강의 일대기는 말 그대로 금강의 역사였단다."

"선생님. 그럼 금강은 산업 혁명에 대해 알고 있었나요?"

"맞아요.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시작될 무렵. 동시기에 조선에서는 부여가문이 산업 혁명을 이끌었잖아요."

교사는 학생들의 질문에 전부 대답하지 못했다.

당연하다. 부여금강의 산업 혁명 이야기는 금강이 남긴 유언 탓에 나온 떡밥이니까.

"총리 금강이 뛰어났다고 하지만, 산업 혁명이나 미래에 관해 알고 있었다는 것은 순전히 루머라고 하지."

"솔직히 그 전라도 끄트머리에서 대제국을 만드신 분이신데. 뭔가 루머라고 하기에는 미묘하지 않아요?"

"맞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금강의 업적을 생각한다면 미래를 알고 움직인 것 같으니까.

뭐 확실히 뭐라 단정 짓기는 어렵겠으나, 금강이 산업 혁명의 기초에 관해 유언을 남긴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부여씨 가문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는데, 대답을 하지 않더래. 집안의 비밀인 모양이지."

"그럼 선생님, 금강 총리 각하의 무덤속, 총리 각하의 시체가 정말로 썩지 않았나요?"

학생들의 물음에 교사는 허탈하게 웃었다.

"음. 뭐 그건 믿든 말든 자유인데, 진실이라고 했으니 거짓은 아니겠지?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금강이란 인물은 어느 시대든, 한국사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손꼽혔다.

국사를 모른다고 해도 금강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정도로 금강이 남긴 발자취는 어마어마했다.

특히, 미래를 알고 행동한 것 같은 행보는 금강이 총리 시절 교역했던 서양의 국가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세계적으로 꽤 알아주는 인물이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개인의 리더십만으로 제국을 건설했다가 사후 제국이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금강은 자기가 죽고 난 이후 연방이 무너질 것을 우려해 통치제도도 정비하고 새로운 총리 후보를 세웠다,

게다가 그의 인생 업적이라 할 만한 화약개발은 한국이 지금까지 군사 강국을 유지하게 할 수 있었던 업적 중 하나였다.

수업을 마친 교사가 학교를 나섰을 때는 교문 밖에서 그녀를 기다리던 사내가 있었다.

사내는 여자에게 말했다.

"대체 자기가 삼은 대리인에 대해 가르치는 교사가 어디 있냐고. 응? 요시코."

"뭐 어때요? 내가 내 잘 난 남편 자랑 좀 하겠다는데. 그런데 그거 엿보셨습니까?"

사내는 피식 웃었다.

"나도 내 아내를 볼 수도 있는 거지."

"자, 그럼 집으로 가요."

사내는 여자와 손을 잡고 밤길을 걸었다.

부여금강이란 인물은 시대가 지난 뒤에도 새로운 신분으로 살면서 신계를 넘나들었다.

꽤 오래 살았으나, 옆의 여자에게 영향을 받은 건지 딱히 늙지도 않고 오랫동안 살고 있었다.

하도 오래 살다 보니 때로는 여자의 일을 돕고, 때로는 신처럼 대리인 내기를 했다.

뭐 이런 삶도 나쁘지 않았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부여금강의 이야기는 두고두고 회자가 될 것이다.

[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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