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29화 (29/125)

# 29

헬 나이츠 2권 (4화)

Episode 12 어둠이 걷히고…… (2)

“지난밤에 제이크 님께서 사라졌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말에 제이크의 몸이 움찔했다. 그러나 곧이어 들린 네빌 집사의 말에 제이크는 피식 웃었다.

“아가씨에게는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고맙네.”

“별말씀을요.”

네빌 집사가 환하게 웃으며 물러났다. 그 사이 폴과 필은 또다시 밥투정을 하고 있었다.

“우엑, 왜 이렇게 맛없는 거만 잔뜩 있어.”

필이 음식을 우걱우걱 씹으며 말했다. 그러자 폴이 나섰다.

“어차피 먹을 거면서 왜 자꾸 투정해!”

“쳇, 지도 그랬으면서.”

폴의 핀잔에 필이 이죽거렸다. 하지만 아이린과 제이크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했다. 매일 식사 때마다 일어나는 일이라 신경이 무뎌진 것이다.

하지만 네빌 집사는 달랐다. 그는 음식을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자존심이 무척이나 상했다. 그렇다고 먹고 있는 밥을 확 빼어 버릴 수도 없었다.

‘으윽, 그냥 처먹으면 안 되나.’

인상을 찡그리며 속으로 말했지만 차마 내뱉지는 못했다. 이것이 다 제이크가 옆에 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네 사람은 말없이 식사를 하였다.

어느 정도 식사가 거의 끝나가고 아이린이 조용히 물었다.

“식사 마치고 곧바로 광산에 올라가실 거죠?”

“응! 가야지.”

제이크의 대답에 아이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그럼 저는 바로 준비를 하겠어요.”

식사를 끝낸 아이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이크는 아직 끝나지 않았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해서 식사를 하였다. 아이린이 그런 제이크를 힐끔 쳐다보고는 환한 얼굴로 식당을 나섰다. 제이크의 고개를 들려지며 식당을 나서는 아이린의 뒷모습을 보았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가 스르륵 번졌다.

3

오후가 되자 채플 백작은 더욱더 안절부절못했다. 집무실에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주위를 서성거렸다. 그때 문이 열리며 로이 남작이 들어섰다.

“백작님!”

채플 백작이 재빨리 몸을 돌려 로이 남작을 보았다.

“그래, 왔느냐.”

“네, 지금 밖에 있습니다.”

“어서, 어서 들라 하라.”

로이 남작이 집무실 밖을 향해 소리쳤다.

“들어오너라.”

문이 열리고 보일란 성으로 보냈던 전령이 들어왔다. 그는 채플 백작을 향해 무릎을 꿇고는 인사를 했다.

“채플 백작님께 보고합니다.”

“어떻게 됐느냐?”

채플 백작의 물음에 전령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것이…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뭐야? 아무렇지 않다니 똑바로 얘기해 봐!”

채플 백작이 전령을 다그치며 물었다. 하지만 보고하는 전령도 이해가 되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말을 몰아 보일란 성으로 갔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에페로 자작가의 기사들로 가득했습니다. 게다가 아주 말짱했습니다. 이상하게 여긴 저는 몰래 숲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광산도 멀쩡했습니다. 다만 광부를 비롯해 그 누구도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전령의 말을 듣고는 채플 백작은 어이없는 얼굴이 되었다. 그는 도대체 어찌 된 일이지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았다. 전령이 들고 온 소식은 전혀 뜻밖의 소식이었기 때문이다.

“믿을 수가 없군. 라예키르가 갔다면 분명 무슨 사단이 났을 텐데 말이야.”

채플 백작의 중얼거림을 들은 로이 남작도 동조를 하며 다시 전령에게 물었다.

“확실한 것이냐?”

“그렇습니다. 제 눈으로 똑똑히 확인을 했습니다.”

“이상하군.”

로이 남작도 이해가 되지 않는 눈치다. 채플 백작이 잠시 고민을 하더니 이내 물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성이 멀쩡하단 말이냐?”

“네.”

전령이 신속히 대답했다. 채플 백작의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전투 흔적 같은 것은 전혀 없고?”

“그렇습니다.”

“누구 다쳤다는 소문도 없고 말이지?”

“그, 그렇습니다.”

“어찌 이런 황당한 경우가…….”

채플 백작은 손으로 머리를 짚었다. 갑자기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도대체 라예키르는 뭐하고 있는 것이지? 설마 일이 어려워지자 도망친 것은 아니겠지.”

채플 백작의 중얼거림에 로이 남작이 말했다.

“절대 그렇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분이 어떤 분이신데……. 백작님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알아, 알고 있다. 하지만 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단 말이냐. 그 이유가 도대체 뭐냐 말이지? 자네는 말할 수 있나?”

채플 백작은 답답한지 로이 남작을 보며 물었다. 하지만 로이 남작도 딱히 무슨 일인지 알지 못했다.

“그, 그건 저도…….”

로이 남작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무리 고민을 해 보아도 무슨 일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다고 직접 눈으로 확인한 전령이 거짓말을 할 일도 없었다.

그때 채플 백작이 눈을 반짝였다.

“혹여, 변을 당했나?”

“그, 그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분은 6클래스 흑마법사입니다. 그분을 해할 자는 에페로 자작가에는 없습니다.”

로이 남작이 강하게 말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6클래스 흑마법사가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가 구사하는 흑마법을 직접 눈으로 보지 않았는가.

그가 소환한 키메라가 채플 백작가의 정예 기사단을 묵사발 내는 것을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에페로 자작가에서 채플 백작가의 기사단처럼 세지 않을 것이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다.

절대 라예키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문제는 하나였다. 바로 라예키르의 배신이었다.

“그럼 라예키르가 배신을 한 것밖에 없겠군.”

“서, 설마요.”

로이 남작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채플 백작의 말도 일리가 있다. 이렇듯 그를 상대할 자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상황인데도 손을 쓰지 않은 것은 분명 배신하고 돌아갔다는 결론밖에 없다는 것이다.

“원래 흑마법사 놈들이 영악하지 않는가. 일이 틀어지자 몸을 뺀 것이지.”

채플 백작이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 하지만 로이 남작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하지만 백작님. 먼저 광산을 원한 것은 라예키르 님이었습니다. 그분이 그토록 원해서 우리가 나섰고, 큰돈을 들여 일을 추진했습니다. 그런데 어찌…….”

“그럼 이 일을 도대체 어찌 생각한단 말이냐. 보일란 성은 아무렇지 않고, 그곳에 그 계집년이 들어와 있다고 하지 않는가. 게다가 그 누구도 죽었다거나 부상당했다는 소식이 없어. 그럼 한 가지밖에 없잖아!”

채플 백작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로이 남작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면서도 낮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분은…….”

로이 남작으로서는 절대적으로 라예키르를 믿고 있었다. 그의 흑마법을 직접 눈으로 보았고, 게다가 로키 산맥에 있는 광산을 강하게 원하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모습도 보이지 않는다. 로이 남작이 다시 한 번 깊게 생각을 해 보았다. 아무리 아니라고 부정을 하려고 해도 계속해서 채플 백작의 말에 무게가 실렸다.

“정말 백작님의 생각처럼 그분이 배신을 하고 손을 뺐다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은 또다시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래! 큰일이지. 이를 어쩐다.”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생각을 해 보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고, 그 옆에서 무릎을 꿇은 채 있는 전령은 멀뚱멀뚱 눈만 껌벅인다.

로이 남작도 믿지 않으려 하지만 자꾸 배신을 했다는 생각만 든다.

“백작님, 그럼 저희는 어떻게 합니까?”

“그걸 왜 내게 물어! 빌어먹을!”

채플 백작이 신경질을 내며 버럭 소리를 질렀다. 로이 남작은 고양이 앞에 쥐처럼 몸을 움츠리며 입을 다물었다.

“젠장, 도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거야. 내 광산은, 도대체 내 광산은 어찌한다.”

채플 백작이 답답한 마음에 거칠게 말을 해 보지만 쉽게 답을 얻지 못하고 전전긍긍했다.

4

어딘지 모르는 깊은 숲 속의 한 동굴.

사방은 온통 수풀로 우거졌고, 자세히 찾아보지 않으면 쉽게 눈에 띠지 않는 그런 동굴이다. 동굴 안은 마치 미로마냥 길이 엉켜 있다. 하지만 중앙의 길을 쭈욱 따라 들어가면 하나의 공간이 나온다.

둥근 원형의 탁자와 그 위에 있는 등불. 게다가 왼쪽 벽에는 네 개의 마정석이 걸려 있다. 둥근 원형 탁자에는 나이 지긋한 한 명의 노인이 앉아 있다.

그는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 옆방에도 한 명의 흑마법사가 있었다. 그는 책장에 꽂인 책들을 하나하나 살피고 있다.

아마도 흑마법이 적힌 마법서인 것 같다. 그것을 펼쳐 확인을 하고는 골똘히 생각에 잠겨드는 모습이다.

그때였다.

벽면에 걸려 있던 네 개의 마정석 중 하나의 마정석이 깨졌다.

파앗!

그 소리에 놀란 흑마법사가 재빨리 그곳을 달려왔다. 그리고 깨진 마정석을 보며 헛바람을 삼켰다.

“헛!”

“스승님, 스승님. 저 마정석은 라예키르의…….”

중앙에 앉아 있는 흑마법사의 눈빛이 가라앉으며 조용히 말했다.

“알고 있다.”

스승이라 불린 그 흑마법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 마정석의 도구는 자신의 생명의 마법을 걸어놓은 것이다. 누군가 변을 당하거나 죽거나 하면 마정석이 깨어진다. 그리고 라예키르의 생명의 마정석이 깨졌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죽었다는 의미다.

“으음.”

스승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 옆에 앉아 있던 첫째 제자인 스타니스의 표정이 굳어졌다.

“라예키르가 죽다니. 도대체 어찐 된 일이지?”

스타니스는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표정이 되었다.

사실 중앙에 앉아 있는 스승에게는 세 제자가 있었다. 첫째가 여기 있는 스타니스였고, 둘째가 벨키라노 그리고 마지막으로 라예키르였다.

스승과 세 제자 간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자신이 가르친 제자였고, 게다가 6클래스까지 올라선 흑마법사였다.

아무리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해도 흑마법사들은 일종의 동질감이라는 것이 있다. 세상에 배척당하고 마법계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서러움을 함께 공존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중 세 명의 제자들은 서로에 대해 각별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스타니스는 그것이 조금 강했다.

“어떤 놈이 라예키르를 죽였는지 모르지만 복수해야 합니다.”

스타니스가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스승이 손을 들어 스타니스를 진정시켰다.

“스타니스. 일단은 무슨 일인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고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너도 알다시피 라예키르는 6클래스까지 올라선 흑마법사다. 그를 함부로 할 자는 이곳에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그러니 그를 죽인 자라면서 엄청난 힘을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신중해야 한다.”

“하지만 스승님, 제 동문이고 스승님의 제자입니다. 그냥 이대로 두고 볼 수는 없습니다.”

스타니스가 강하게 다시 한 번 말했다. 그러자 스승이 그를 진정시켰다.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신중해야 한다고 말이다.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보는 것이 급선무이니라.”

스승의 말에 스타니스의 눈빛이 가늘게 떠졌다. 그는 생각을 했다.

‘스승님이 아마도 7클래스를 돌파하기 위해 몸을 사리시는구나. 하지만 제자가 죽었는데 기다려 보라니. 이건 말이 되지 않아.’

스승은 7클래스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벽에 막혀 있어 섣불리 움직이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흑마법사가 7클래스를 넘어선다는 것은 대륙에 전례 없는 일이며 전설이 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승님께서 마음이 약해져 움직이지 못한다고 여긴 것이다.

사실 그 숲의 광산도 스승님의 7클래스의 벽을 넘어서는 것을 인도하기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그 일을 라예키르에게 맡겼고, 일이 착착 잘 진행되고 있다고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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