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33화 (33/125)

# 33

헬 나이츠 2권 (8화)

Episode 14 채플 백작의 도발 (2)

“무슨 말을 하려고 이리도 뜸을 들이는 것이야. 어서 말해!”

채플 백작의 닦달에 로이 남작은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꺼내었다.

“병력의 출진을 다시 한 번 재고해 주심이…….”

“닥쳐! 지금 그게 말이라고 해!”

채플 백작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로이 남작도 굽히지 않고 자신의 주장을 말했다.

“그러나 보는 눈들이 많습니다.”

“내가 그 따위 것에 신경 쓸 것 같아! 다시 그런 소리하려면 입 닫아!”

채플 백작은 아예 말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로이 남작은 채플 백작의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잘 알았다. 광산은 에페로 자작가의 것이고, 그걸 강제로 취하려고 한다면 주위에 있는 영지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급기야 왕국에서도 나설지도 모를 문제였다. 그런데 채플 백작은 돈에 눈이 돌아가 버려 정작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로이 남작은 그런 것을 깨우쳐 주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도저히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다. 채플 백작이 직접 나서지 않고 다른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다.

생각을 달리한 로이 남작이 입을 열었다.

“백작님.”

그러자 채플 백작이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나를 막을 생각이라면 말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아닙니다. 그것이 아니라 생각을…….”

로이 남작이 막 말을 하려고 할 때 집무실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채플 백작이 소리쳤다.

“들어와!”

곧이어 한 명의 병사가 들어왔다. 그를 발견한 채플 백작이 급히 물었다.

“그래 어찌하고들 있더냐?”

그 병사는 광산에 정찰을 보낸 전령이었다. 병사가 왔다는 것은 뭔가 확실한 정보가 들어왔다는 소리였다. 채플 백작의 얼굴에는 다급함이 어려 있다.

반면 로이 남작은 입을 다문 채 뒤로 물러났다. 채플 백작에게는 로이 남작의 말보다 무릎 꿇고 보고를 올리는 전령의 말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전령은 심각한 얼굴로 채플 백작에게 말했다.

“백작님, 보일란 성에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응? 어째서?”

채플 백작의 얼굴이 바뀌며 물었다. 로이 남작도 뭔가 일이 생겼는지 귀를 쫑긋했다.

“보일란 성에서 인근 주민들로부터 병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오후에 약 300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모집되었습니다.”

“뭐, 뭣이? 확실한 것인가?”

“네, 그렇습니다. 지금쯤 아마도 훈련을 시키고 있을 것입니다.”

전령의 보고에 채플 백작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로이 남작도 마찬가지였다. 채플 백작은 어지러운지 소파로 가서 앉았다.

“확실히 병사들이었더냐?”

채플 백작이 나직이 물었다. 그러자 전령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네, 제 두 눈으로 확인을 했습니다. 제 생각에는 아무래도 광산을 지킬 모양입니다.”

“빌어먹을! 벌써 병사들을 모집하다니.”

채플 백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그들이 이렇듯 빨리 움직일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치 못했다. 그런데 채플 백작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도대체 돈이 어디서 생겨서 자신의 빚도 갚고, 게다가 병사들까지 모집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그 많은 돈이 어디서 생겨서 말이야.

“이보게 남작. 그들이 돈이 어디 있어서 저렇듯 행동을 하느냐 말이다. 내게 갚은 돈의 출처는 파악했는가?”

채플 백작이 물어보자 로이 남작이 입을 열었다.

“그게… 확인은 계속하는 중입니다. 다만 에페로 자작가의 영지가 최근에 사정이 매우 좋아졌다는 소문만 들려올 뿐입니다.”

쾅!

채플 백작은 앞에 있는 탁자를 강하게 내려졌다.

“도대체 그것을 알아내라고 한 적이 언제인데 아직까지 알아내지를 못해! 남작의 솜씨가 이것밖에 안 되나?”

채플 백작이 로이 남작의 자존심 끓는 소리를 했다. 로이 남작은 고개를 푹 숙이며 인상을 찡그렸다.

“아닙니다.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시면 바로 알아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겠네. 확실히 알아보게!”

“네, 백작님.”

로이 남작이 급히 말했다. 하지만 채플 백작의 분노는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았다.

“아무튼 느낌이 좋지 않아. 어디서 돈이 생겨났는지 모르지만 이대로 계속해서 지켜볼 수는 없다. 이대로는…….”

채플 백작이 두 손을 말아 쥐며 중얼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가뜩이나 라예키르도 사라진 마당에 일은 꼬일 대로 꼬인 상태였다.

그런데 빌빌거릴 것이라 여긴 에페로 자작이 어디서 생긴 돈으로 점점 방어막을 구축하고 있다. 확실히 자리 잡기 전까지 어떻게 해서든지 다시 광산을 되찾아야 했다.

“방법이 없나? 도대체 방법이 없냐 말이다. 이대로 가다가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하고 망해 버리겠어.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채플 백작은 더욱더 노성을 띠며 소리쳤다. 그러자 침묵을 유지하고 있던 로이 남작이 나서며 입을 열었다.

“백작님.”

“뭔가?”

“제가 아까 드리려던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로이 남작의 눈빛은 매우 신중했다. 그 눈빛을 확인한 채플 백작도 목소리가 다소 누그러지며 말했다.

“확실한 것이겠지?”

“네, 확실한 것입니다.”

“좋아, 말해 보게.”

로이 남작이 잠시 숨을 고르고는 입을 열었다.

“백작님께서 직접 나서기보다는 용병을 이용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용병? 그렇다면 또 돈이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채플 백작은 용병에게 맞기면 그에 따른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는 그것이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사실 광산을 개발하는 것에도 많은 돈이 들어갔다.

그것만 따져도 지금 상당히 손해 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광산을 찾기 위해 용병을 고용하려 한다. 또 돈이 들어가니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로이 남작도 오랫동안 채플 백작 곁을 지켰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채플 백작의 마음을 돌릴 방법을 알고 있었다.

“혹시, 돈 때문에 그러십니까?”

“뭐… 내가 돈 때문인가. 괜히 다른 사람에게 맡겨서 득이 될 것이 없다는 것이지.”

채플 백작은 로이 남작에게 속내를 들킨 것 같아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하였다. 하지만 로이 남작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어차피 선수금으로 조금 주고, 확실히 광산을 되찾으면 그때 나머지 돈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 사실 광산만 되찾는다면야 그동안 손해 본 돈쯤이야 금방 원상복구시킬 수 있지 않겠습니까. 게다가 직접 나선다면 보는 눈들이 많고 움직이는데 제약도 있습니다. 용병을 이용하면 그런 부분이 싹 사라지죠.”

로이 남작의 구슬림에 채플 백작은 고민을 하였다. 듣고 보니 어느 정도 일리도 있다.

“용병이라…….”

채플 백작이 눈을 빛내며 로이 남작을 바라보았다.

2

제이크는 병사들의 훈련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막고, 찌르기의 단순한 두 가지 동작이지만 200명의 병사들은 정말 열성적으로 연습에 임했다.

제이크는 그런 병사들을 쭉 살피며 진지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던 중 바론의 앞을 지나갔다. 바론은 제이크가 등장하자 곧바로 눈빛을 빛내며 더욱 강하게 창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보자 제이크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바론이야 지난번의 일로 제이크의 강함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어떠한 불만도 가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잘 보이기 위해 열심히 임했다.

‘저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듯 열정적으로 창을 휘둘렀다. 그가 휘두를 때마다 창에서 훙훙 하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려왔다.

제이크는 그런 바론의 모습을 보며 흐뭇한 얼굴이 되며 말했다.

“잘하고 있군. 열심히 해.”

“넵!”

바론은 힘차게 대답을 했다. 그러면서 더욱 거세게 창을 휘둘렀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곳을 벗어났다. 나머지 병사들도 제이크가 지나갈 때마다 마치 중독이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휘둘렀다.

하나같이 제이크에게 잘 보이려고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폴과 필이 손으로 입을 가리며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킥킥킥, 창 휘두르는 꼴 하고는.”

필이 우스꽝스럽게 웃음을 던졌다. 그러자 폴도 거들었다.

“예전에 나도 저랬을까?”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우리가 저랬을라고.”

“하긴, 찌르기가 더 빠르고 날쌨지.”

폴과 필은 자신들을 창술을 자랑하며 웃고 있었다. 그 소리가 훈련하는 병사들의 귀에도 고스란히 들어갔다. 모두들 창을 내찌르면서도 폴과 필을 날카롭게 째려보았다.

하지만 폴과 필은 그들의 눈빛을 깨끗이 무시했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째려보면 어찌할 건데 하는 것처럼 오히려 더 당당히 그들과 눈을 마주쳤다.

그때 제이크가 폴과 필에게 걸어왔다.

“늬들은 여기서 뭐해?”

“저요? 뭐, 그냥 구경하는데요.”

필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곧바로 폴도 말했다.

“얼마나 잘하는지 확인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제이크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너희 둘이 확인을 한다고?”

“네에!”

“왜요? 확인하면 안 되요?”

폴과 필이 대답을 했다. 제이크는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늬들이 하지 않아도 돼. 그러니 쓸데없이 놀지 말고 너희도 휘둘러!”

“엥?”

“헉, 저희들도 말입니까?”

폴과 필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제이크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말했다.

“당연하지. 수련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것이야. 어서 창 하나씩 들고 저들과 같이 훈련해! 아님 저들에게 너희들의 창술을 보여 주는 것도 나쁘지 않고.”

제이크의 말에 폴과 필의 눈빛이 바뀌었다.

“쩝, 알겠어요.”

“그리하겠습니다.”

폴과 필은 한쪽에 세워 둔 연습용 창을 하나씩 들었다. 얼굴에는 달갑지 않는지 잔뜩 인상을 찡그렸지만 한편으로는 200명에게 자신들의 창술을 보여 주리라 다짐을 했다.

창을 하나씩 들고 거들먹거리며 천천히 걸어갔다. 바론 옆으로 걸어간 폴과 필은 그를 힐끔 보았다. 그러자 바론이 인상을 팍 쓰며 소리쳤다.

“이곳 말고 저쪽 구석으로 가!”

“쳇, 알았다.”

“시끄러운 놈이군.”

폴과 필이 그렇게 중얼거리며 바론 곁을 지나갔다. 하지만 바론은 두 사람의 중얼거림을 듣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뭐야?”

그러나 폴과 필은 듣지 못한 듯 자리를 찾고는 창을 휘둘렀다. 그 모습을 바론이 무섭게 째려보았다. 그런 바론을 자극하는 창 소리가 울렸다.

쇄애애액!

우웅! 웅! 우웅!

이 소리는 폴과 필에서 들려오는 창 소리였다. 마치 허공이 쪼개지는 것 같은 아주 날카로운 음성이었다. 그 모습을 보던 바론의 입이 쩌억 하고 벌어졌다.

자신이 아무리 휘둘러도 저런 소리는 절대로 낼 수가 없었다. 하물며 빠르기도 그렇고 폴과 필이 휘두르는 창이 마치 뱀의 혓바닥처럼 날름거리는 것 같았다.

괜히 기가 죽는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폴과 필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었다.

“야, 폴! 살살해.”

“그러는 너야말로 살살하는 것이 어때?”

“이 정도면 살살하는 거지.”

“나도 마찬가지네요.”

그리 말하면서 두 사람은 미친 듯이 창을 허공에 찔러댔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다. 더욱더 자신을 뽐내며 창을 휘둘렀다. 그러는 사이 주위에 있던 병사들은 창 소리에 기가 죽어 버렸는지 고개를 숙였다.

그들은 죽을힘을 다해 휘두르지만 폴과 필이 휘두르는 소리에는 한참을 못 미쳤다. 바론도 인상을 쓰며 혼잣말을 하였다.

“빌어먹을, 저놈들 대체 정체가 뭐야?”

어리바리하면서도 말장난이 심하고, 하지만 무기를 휘두르는 속도와 바람을 가르는 소리. 도무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거 제이크 다음으로 자신이라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저 둘도 강할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순간 바론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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