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헬 나이츠 2권 (9화)
Episode 14 채플 백작의 도발 (3)
“제길!”
그러고는 그도 미친 듯이 창을 휘둘러댔다. 나머지 병사들도 더욱더 힘을 내었다. 그 모습에 제이크는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어수룩하지만 폴과 필의 전투력은 무엇보다 제이크가 잘 알았다.
두 사람의 창 소리에 나머지 200명의 병사들에게 자극을 줬다는 것이 제이크로써는 괜찮은 것 같았다.
뒷짐을 진 채 천천히 몸을 돌려 단상으로 향했다. 그때 저 멀리서 네빌 집사가 헐레벌떡 뛰어오고 있었다. 제이크가 그를 보며 멈추었다.
“집사가 여긴 무슨 일이야.”
네빌 집사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말했다.
“제이크 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제이크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는 숨을 한 차례 고르고는 다급하게 말했다.
“레드베어 용병단이 채플 백작령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이크는 혹시라도 무슨 큰일이 일어난 줄 알았다. 그런데 한낱 용병단이 채플 백작령에 들어간 것으로 이리도 호들갑을 떤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모르시겠습니까? 레드베어 용병단이 채플 백작령에 들어간 것은 채플 백작이 불러서 간 것이라는 겁니다.”
그 순간 제이크의 눈빛이 싹 바뀌었다.
3
제이크는 네빌 집사와 함께 보일란 성의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아이린과 두 명의 사내가 근심 어린 얼굴로 앉아 있었다.
한 명은 제이크도 익히 하는 얼굴이었다. 바로 에페로 자작가의 기사단장인 베일이었다. 제이크는 베일 기사단장을 보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오랜만이오.”
“반갑소.”
베일 기사단장도 인사를 하였다. 두 사람은 제이크가 지하 연무장에 나타난 후로 두 번째 만남이었다. 베일 기사단장은 에페로 자작가에 있다가 그 소식을 접하고 걱정이 되어 달려온 것이다. 베일 기사단장이 제이크를 응시했다. 제이크도 지지 않고 쳐다봤다. 두 사람 사이에서 어색하면서도 묘한 기운이 흘렀다.
베일 기사단장은 제이크를 보자 그때의 일이 또다시 떠올라 저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하지만 제이크는 그때의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게 잠깐 동안 두 사람의 시선이 부딪쳤다. 그 모습을 보던 네빌 집사가 급히 말했다.
“제이크 님,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그때서야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린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베일 기사단장도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제이크는 자연스럽게 나머지 남자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러자 그 남성이 제이크의 시선을 느끼고 인사를 하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벨란 상단에 있는 칼이라고 합니다.”
“반갑소.”
제이크도 고개를 까닥하며 인사를 하였다. 그러면서 칼이라는 인물을 유심히 살폈다.
벨란 상단은 지난번에 목걸이를 비싼 가격에 사 간 상단이었다. 그것을 알 리 없는 제이크는 약간 경계의 눈초리를 띠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바로 말했다.
“벨란 상단은 최근에 저희들과 자주 거래를 하는 상단입니다.”
네빌 집사의 말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아이린을 보았다.
“어떻게 된 일이지?”
제이크의 물음에 아이린이 걱정스런 얼굴로 말했다.
“여기 계신 벨란 상단에서 영지에 물건을 가져오면서 소문을 들었다고 해요.”
아이린의 말에 제이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칼에게 향했다.
“그게 사실이오?”
칼이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으음.”
제이크가 낮게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유심히 살피던 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그 말이 들려오자 제이크의 시선이 칼에게 향했다. 그러자 칼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되시는지?”
칼의 물음에 제이크 대신 아이린이 말했다.
“아, 이분은 제이크 님이세요. 우리 가문을 도와주시는 분이시죠.”
아이린이 밝은 표정을 말하자 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제이크… 님이요?”
칼의 반응에 제이크는 물론 아이린, 네빌 집사도 의아해했다.
“왜 그러세요?”
아이린이 물었다. 칼은 제이크를 똑바로 응시하며 재차 물었다.
“성이 어떻게 되시는지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물어도 되겠습니까?”
칼의 물음에 제이크의 눈빛도 살짝 바뀌었다. 아이린이 환한 얼굴로 제크에 대해서 입을 열었다.
“아, 제이크 님의 성은…….”
그때 누군가 탁자 아래에서 팔을 잡았다. 깜짝 놀란 아이린이 살짝 그것을 보았다. 제이크의 팔이었다. 아이린를 그를 보았다. 제이크가 아주 희미하게 고개를 흔들었다.
자신의 대해서 밝히지 말라는 것이다. 그것을 눈치채고는 아이린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칼을 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이크 님께서 사정이 있어서 더 이상은 말씀드릴 수가 없네요.”
그러자 칼이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아, 그렇습니까? 어쩔 수 없군요.”
칼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제이크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제이크도 칼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제이크로써는 아직 자신의 신분을 밝혀서는 안 되었다. 왜냐하면 채플 백작가와의 전투가 곧 벌어질 것 같은데 최소한으로 자신의 신분을 노출시켜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이크는 왠지 모르게 칼을 경계하게 하고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한편으로는 제이크가 칼을 다시 보게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한 동안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보다가 칼이 시선을 피하며 아이린을 보았다. 그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아, 그럼 아까 하던 말 계속하겠습니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칼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이곳으로 오면서 들은 소식을 전했다.
“제가 상단을 이끌고 먼저 들은 곳이 바로 채플 백작가의 영지였습니다. 물론 아시겠지만 이곳으로 오기 위해서 거쳐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곳에서 우리가 가지고 온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우리가 필요한 물건을 흥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채플 백작가의 영지에서 보기 드물게 많은 용병들이 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저희 상단들은 원래 그런 것이 민감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무엇보다 소문을 잘 듣고 말입니다. 그래서 살짝 알아보았습니다. 그 결과 채플 백작가에서 용병단을 모집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자세히 알지 못했지만 돌아가는 것이 뭔가 의심스러웠습니다. 다행이 채플 백작가와 거래를 하고 있던 터라 그곳에서 하나의 소식을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자세히 언급은 하지 않았지만 에페로 자작가와 상관있다는 얘기였습니다. 물론 저의 추론이지만 그가 하는 말이 걸려서요.”
칼의 말에 아이린이 급히 물었다.
“뭐가 걸린다는 것이죠?”
“그자가 하는 말이 에페로 자작령으로는 웬만하면 가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하더군요. 하지만 이미 거래한 것이 있기에 이렇게 왔고 얘기를 해 드리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레드베어 용병단이 채플 백작과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도 접했고요.”
칼의 이야기가 끝이 났다. 주위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침묵을 깬 쪽은 제이크였다. 그는 눈빛을 가늘게 하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실을 알려주는 이유가 뭐지?”
그러자 칼이 살짝 당황하는 얼굴로 말했다.
“그, 그야 당연히 우리와 거래하는 곳이고… 무엇보다 상단 일을 하면 신용이 그 첫 번째입니다. 그 신용을 위해서라도 무슨 이유인지는 알고 넘어가야 했기에…….”
칼은 말을 하면서도 얼굴은 매우 당혹스러워했다. 그것을 놓칠 리 없는 제이크였지만 한편으로는 상인이라면 당연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상단을 운영하는 상인으로써는 자신과 거래하는 곳이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은 아닌지 먼저 확인을 해야 했다. 그래야 다음 거래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이크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베일 기사단장 뒤에 서 있는 바론에게 시선을 던졌다.
“흐음. 이봐, 너!”
바론은 졸지에 제이크를 따라와 집무실 한편에 서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제이크가 부르자 깜짝 놀란 눈이 되었다. 아이린,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의 시선이 그에게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바론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네, 네에?”
당황한 얼굴로 힘겹게 대답을 한 바론은 제이크의 손짓에 엉거주춤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살피며 다가갔다.
“부, 부르셨습니까?”
아이린,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은 왜 이 녀석이 이곳에 있는지 의문을 가졌다. 하지만 제이크가 데려온 것이니 그만한 이유는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레드베어 용병단이라고 아나?”
“그, 그걸 왜 제게……?”
바론이 살짝 당황했는지 말까지 더듬었다. 제이크는 그런 바론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보니까, 전직 용병이었던 것 같은데……. 아니야?”
‘헉, 어떻게 알았지?’
바론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완전히 자신을 꿰뚫어 본 것이 아닌가. 게다가 이 사실은 그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연무장에 있는 동료들 말고는 말이다.
병사로 지원하면서 자신이 예전에 용병 일을 했다고는 서술했지만 직접적으로 제이크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그리고 훈련 중일 때도 다른 동료들이 말하지도 않았다. 아니, 정확히 말을 하면 제이크와 병사들은 훈련 상황에 대한 얘기만 했지 사생활에 대해서는 한 번도 얘기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제이크가 간파를 한 것이다. 바론은 놀란 눈이 된 채 제이크를 응시했다. 그 모습에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마치 별일 아니라는 듯 말이다.
“뭘 그리 놀란 얼굴이야. 쉬는 시간에 네가 보여 줬던 검술과 상처, 그리고 말하는 것에서 용병의 냄새가 났어. 그러니 그리 놀랄 필요는 없어.”
“헉!”
바론은 헛바람을 삼켰다. 그렇다면 자신이 쉬는 시간에 동료들에게 자랑 삼아 보여 주었던 검술을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바론은 언제 제이크가 지켜보고 있었는지 꿈에도 몰랐다. 더욱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다, 다 보고 계셨습니까.”
바론이 조심스럽게 말을 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손을 가로저었다.
“어쨌든 그것이 중요한 것은 아니잖아. 레드베어 용병단에 대해서 네가 알고 있는 대로 말해 봐.”
제이크가 담담히 물었다. 그리고 바론이 어느 정도 정신을 차리며 그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을 하였다.
“레드베어 용병단은 몇 십 년 전부터 용병 일을 해 온 정통을 가진 집단입니다. 용병단 대장의 이름은 마틸라 베어라고 하고, 대대적으로 자손들에게 용병단이 물려지고 있습니다. 대장의 힘은 아마도 대륙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힘이 장사라고 합니다. 레드베어 용병단의 용병들은 대략 200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그들이 하는 일이 매우 지저분한 것들만 전문적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항간에 소문에 의하면 마틸다 베어가 용병단을 인계받고부터라고 합니다. 어쨌든 그들이 채플 백작과 계약을 맺었다면 아마도 조금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바론의 이야기를 들은 아이린의 표정이 급속도록 굳어졌다. 그녀는 걱정스런 얼굴로 조심스럽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