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51화 (51/125)

# 51

헬 나이츠 3권 (1화)

Episode 21 망령을 부리다 (1)

1

우르르쾅쾅!

쏴아아아―

밤하늘에서 번쩍하고 천둥번개가 친다. 번개는 땅 밑까지 뻗치며 요란한 소리를 낸다.

잠시 후 밤하늘에 구멍이라도 뚫린 것처럼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바로 앞도 구분하기 힘들 정도의 비다.

그 뒤로 동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 안에 죽은 두 제자의 스승의 은신처이기도 하다. 스승은 언제나 그랬듯 그려진 마법진 위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 그 마법진에서 은은한 마기가 흘러나오며 스승의 몸을 휘감고 있다.

그때였다.

파앗―

소리가 들리며 벽에 걸려 있던 마정석이 깨졌다. 감고 있던 눈을 번쩍하고 뜬 스승은 곧바로 깨진 마정석으로 시선이 갔다.

그 순간 스승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 그는 그 마정석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다. 예전에 깨진 마정석은 라예키르의 생명석이고, 방금 깨진 것은 스타니스의 생명석이다.

스타니스의 생명석이 깨졌다는 것은 그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승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음? 스타니스 너마저…….”

스승의 얼굴에 점차 분노의 빛이 드러났다.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점점 얼굴마저 일그러졌다. 스승은 가슴 밑에서 끓어오르는 분노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이놈을 그냥 두지 않겠다.”

강한 어조로 말을 하는 스승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동굴 입구로 시선을 던진 그는 분노로 일그러졌던 눈빛을 가라앉혔다. 그때 번개가 강하게 내려쳤다.

번쩍!

번개에 의해 동굴 입구에 한 명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스승은 그를 발견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그 인영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스승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스승은 그를 보며 나직이 말했다.

“벨키라노냐?”

스승의 말에 검은 로브와 후드를 쓴 그가 말했다.

“네, 스승님.”

대답을 하고는 그의 시선이 마정석으로 향했다. 첫 번째와 세 번째 마정석이 깨어져 있다. 벨키라노는 그 마정석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스타니스와 라예키르가 죽었군요.”

무미건조한 음성이었다. 마치 자신과는 관계가 없는 듯한 말투였다. 스승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렇다. 아무래도 이그나탈의 호위 기사에게 죽음을 당한 것 같다.”

“이그나탈?”

스승의 말에 벨키라노의 음성이 약간 올라갔다. 그도 솔직히 의외라는 듯했다.

“그가 확실합니까?”

벨키라노가 약간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스승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일 가능성이 높다. 스타니스도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움직였으니 말이다.”

“그럼 라예키르도?”

“그런 것 같다.”

“흐흐, 흐흐흐.”

벨키라노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다. 그의 웃음에 스승은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너는 첫째와 셋째가 죽었는데 웃음이 나오느냐.”

“하하,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군요.”

“으음…….”

스승은 낮은 신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세 사람의 관계가 어떤지 잘 알고 있다. 자신의 제자이지만 세 사람은 서로 경쟁하는 관계다. 특히 둘째인 벨키라노는 더욱 심했다.

자존심도 세고 워낙에 승부에 집착을 하는 녀석이기에 두 경쟁자가 죽었으니 이제 자신 혼자 남는 것이 아닌가. 무엇보다 스승의 모든 진전을 다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스승은 그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흑마법사에 있어서 그 정도는 충분히 있을 만한 일이었다. 특히 벨키라노는 흑마법을 익히는 속도가 무척이나 빠르다. 이해력도 높고, 무엇보다 야망이 큰 녀석이기에 스승도 조심스러워하는 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감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쨌든 두 제자가 죽었으니 이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스승 본인이 직접 나설 수는 없는 문제다. 만약 이그나탈이 나섰다면 이대로는 그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래서 어서 빨리 7클래스를 넘어서야 했다.

하지만 움직일 수 없기에 둘째 제자인 벨키라노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넌 가만히 있을 생각이냐?”

그러자 벨키라노가 몸을 돌렸다.

“흐흐, 설마 제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래도 한때는 같이 동고동락하며 지냈던 사이인데. 걱정 마십시오. 제가 나서겠습니다.”

“으음……. 베이런 후작 쪽은?”

“그쪽은 이미 손을 써 놓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습니다. 걱정 마시고 어서 빨리 7클래스에 올라서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이그나탈을 상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벨키라노의 말에 스승의 표정이 바뀌었다. 실실 웃으며 대답하는 벨키라노를 쳐다보고 있자니 녀석에게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궁금했다. 하나 현재로써 믿을 사람은 벨키라노뿐이었다.

“알겠다. 너만 믿겠다. 단, 조심해야 한다. 스타니스와 라예키르가 그 녀석에게 죽었다.”

스승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벨키라노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며 말했다.

“흐흐흐, 저를 그 두 녀석과 같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렇게 멍청하지 않습니다.”

벨키라노의 말에 스승은 움찔했지만 이내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후후후, 하긴 네 녀석의 영악함은 내가 잘 알고 있지. 그래도 신중해야 할 것이야.”

“걱정 마십시오. 어쨌든 복수는 해 줄 테니.”

대답을 마친 벨키라노가 몸을 돌려 동굴을 벗어났다. 그때 다시 한 번 번개가 내리쳤다.

번쩍!

우르르르쾅쾅!

그 사이 벨키라노의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스승은 동굴 입구를 응시하다가 이내 천천히 눈을 감았다.

2

보일란 성의 회의실.

그곳에는 바론이 홀로 나와 있다. 그는 이마에 잔뜩 땀을 흘리며 초조한 모습으로 서성거렸다. 그의 얼굴은 약간 경직된 상태였고, 두 손은 만지작거리며 불안한 모습이었다.

“젠장,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이리저리 서성이며 중얼거리는 바론은 더욱 초조함을 감추지 못했다. 오늘 바론이 이곳 회의실에 있는 이유는 광산에서 벌어진 전투에 관한 보고를 하기 위해서였다.

원래 책임자는 제이크이지만 바론이 그곳의 지휘를 맡았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제이크가 바론을 불러 전투 보고를 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처음 해 보는 보고이기에 바론은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허겁지겁 회의실로 와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이 쿵쾅거리고 땀은 왜 이렇게도 많이 흐르는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아이고, 미치겠네. 왜 이렇게 떨리지.”

자신의 생각과 달리 손과 발은 하염없이 떨고 있었다. 긴 숨을 들이쉬며 진정하기 위해 애써 보지만 쉽지가 않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 바론은 그 자리에 얼음이라도 된 것처럼 꼼짝을 하지 못했다. 잔뜩 경직된 얼굴로 회의실 문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그곳으로 아이린,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 마지막으로 제이크가 들어섰다. 제이크는 서 있는 바론에게 다가갔다. 바론은 제이크가 다가오자 더욱 경직된 자세로 차렷 자세가 되었다.

그 모습을 힐끔 보던 제이크가 히죽 웃었다.

“뭘, 그리 긴장하고 있어.”

“네? 네에?”

“후후후. 긴장하지 말고 잘해 봐!”

제이크가 바론의 어깨를 살짝 두드린 후 자리로 가서 앉았다. 아이린,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 그리고 제이크의 시선을 받은 바론은 침을 꿀꺽하고 삼켰다.

곧이어 제이크의 음성이 들려왔다.

“자! 보고해 봐!”

“네, 알겠습니다.”

잔뜩 긴장한 얼굴로 보고서를 들었다. 그리고 전쟁 상황에 대한 보고를 하기 시작했다.

“보고하겠습니다. 현재 병사들 피해는 총 55명, 그중 15명은 크게 다쳐 몇 달간 치료를 해야 하고 나머지 40명은 잔부상으로 며칠만 요양하면 될 것입니다. 사망자는 없고 적들은 모두 일망타진되었습니다.”

간단한 보고이지만 적들을 모두 죽였다고 말할 때에는 자신 있게 말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작 2주일밖에 훈련되지 않은 병사들인데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아이린과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번졌다. 바론은 보고를 마치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제이크가 그를 보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잘했어!”

“가, 감사합니다.”

제이크의 칭찬에 경직되었던 바론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를 보며 제이크가 말했다.

“됐어! 나가 봐.”

“네.”

바론이 인사를 하고 회의실을 나갔다. 밖으로 나온 바론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몇 자 되지도 않는데 정말 떨리네.”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쉰 바론은 히죽 웃으며 힘차게 복도를 걸어갔다.

“그래도 기분은 좋은데.”

마치 자신이 대장이 된 것처럼 뿌듯한 느낌이 들었다.

바론의 보고를 들은 회의실 분위기는 다소 들뜬 분위기였다. 아이린이 제이크를 보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그녀는 사망자가 나오지 않았다는 것에 매우 놀란 얼굴이었다. 베일 기사단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레드베어 용병단의 전투력을 알고 있다. 아무리 전술을 짜고, 싸웠다고 해도 한 사람의 사망자도 나오지 않았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린의 말에 제이크가 웃으며 말했다.

“후훗, 운이 좋았어. 어쨌든 병사들이 훈련에 잘 따라줘서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야.”

제이크는 모든 공을 병사들에게 돌렸다. 하지만 아이린은 알았다. 제이크가 없었다면 광산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을 말이다.

“아무튼 대단하세요.”

아이린이 밝게 웃으며 말했고, 제이크는 다소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한편, 네빌 집사의 표정은 다소 어두웠다. 그를 보던 아이린이 물었다.

“집사님, 무슨 걱정이라도 있으세요?”

그녀의 물음에 네빌 집사가 약간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한 놈이라도 살려 뒀으면 배후를 알아낼 수 있었을 텐데요. 그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네빌 집사의 말에 베일 기사단장이 바로 말했다.

“그거야 채플 백작가에서 한 일 아닌가?”

“우리들이야 채플 백작가에서 한 일인 것을 압니다. 하지만 그건 단지 심증일 뿐 물증이 없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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