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헬 나이츠 3권 (4화)
Episode 22 죽지 않는 용병대장 (2)
“로이 남작입니다.”
“들어와라.”
집무실 문이 열리며 로이 남작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잔뜩 잠에 취해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채플 백작은 못마땅한 얼굴이 되었다.
“쯧쯧. 지금 상황이 어떤 상황인데 잠이 오더냐!”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로이 남작을 향해 으르렁거렸다. 로이 남작은 당황하며 황급히 허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백작님.”
“됐고, 지금 당장 보일란 성으로 떠나거라.”
그 소리에 놀란 눈이 된 로이 남작이 슬며시 물었다.
“갑자기 그곳에는 왜……?”
쾅!
채플 백작이 주먹을 쥐며 책상을 내려쳤다. 로이 남작이 움찔했다.
“이런 멍청한 놈! 용병단이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해야 될 것이 아닌가! 그들 중 한 명이라도 살아남아서 우리가 사주한 것이라 불면 어떻게 될 것 같은가!”
채플 백작의 노기 띤 음성에 로이 남작의 눈이 번쩍 떠졌다. 잠이 확 달아나는 것 같았다.
“제가 그 생각을 미처 못했군요. 지금 당장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말을 마친 로이 남작은 황급히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로이 남작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채플 백작은 잔뜩 인상을 찌그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런 놈을 믿고 내가…….”
그로부터 이틀이 흘렀다.
채플 백작은 초조한 마음으로 로이 남작이 가져올 소식을 기다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채플 백작의 초조함은 극을 향했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집무실 문이 벌컥 열리며 로이 남작이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는 다급함과 걱정이 어려 있었다. 채플 백작 앞으로 달려온 그는 황급히 말했다.
“백작님, 큰일났습니다.”
채플 백작 또한 집무실에 들어선 로이 남작의 표정을 보고 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어, 어찌 되었느냐?”
“그, 그것이…….”
로이 남작은 잠시 망설인 후 입을 열었다.
“알아본 결과 광산에 투입된 용병들은 모두가 죽음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단 한 명이 살아남았습니다.”
로이 남작의 말을 들은 채플 백작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저, 정말이냐?”
“네, 백작님.”
“누구냐 도대체 어떤 놈이냐?”
“용병대장이 살아남았습니다.”
용병대장이 살아남았다는 것을 듣는 순간 채플 백작은 이제 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사색이 된 얼굴로 로이 남작을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그 녀석이 불지는 않았겠지?”
채플 백작의 말에 로이 남작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알아본 결과 다행스럽게도 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채플 백작의 표정이 다소 밝아지며 말했다.
“그것이 사실이냐?”
“네, 그렇습니다.”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이 급히 말했다.
“그렇다면, 그 녀석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지 않느냐?”
“그렇습니다. 만약 놈이 불면 큰일이지요.”
“그래, 어떻게 하든 녀석의 입을 막아야 한다.”
채플 백작의 말에 로이 남작이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암살자를 이용해 녀석을 죽이는 것이 빠르겠군요.”
로이 남작의 말에 채플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겠군. 이번에는 실패없이 처리하도록!”
“맡겨만 주십시오.”
로이 남자의 얼굴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절대 실패하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하지만 로이 남작을 바라보는 채플 백작의 얼굴은 약간 불안해 보였다.
‘이번에야말로 실패했다가는…….’
채플 백작은 속으로 생각하며 집무실을 빠져나가는 로이 남작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2
보일란 성의 집무실에는 아이린과 네빌 집사가 놀란 눈이 된 채 앉아 있었다. 그 앞에 여유로운 얼굴로 앉아 있는 제이크가 보였다. 그 뒤로 온몸에 붕대를 칭칭 감은 미지의 인물이 서 있었다.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제이크와 붕대를 감은 인물을 번갈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정말 저 사람이 레드베어 용병단의 용병대장이에요?”
아이린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맞아.”
제이크가 답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중얼거렸다.
“이상하군요. 분명 다 죽었다고 들었는데…….”
네빌 집사는 믿기지 않는 눈치였다. 올라온 보고서에는 분명 한 명도 살아남지 않았다고 했다. 게다가 병사들을 지휘를 했던 바론을 통해서도 살아남은 사람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저렇게 한 명이 버젓이 살아 있는 것이다.
네빌 집사도 그렇고 아이린도 쉽게 믿지 않는 눈치였다. 그래서 제이크가 말했다.
“나도 다 죽은 것이라 생각했지. 그런데 요놈이 숨이 붙어 있었던 거야. 그래서 내가 살렸지.”
“저, 정말로 살리셨단 말입니까?”
네빌 집사가 재차 물었다.
“지금 눈으로 보고 있잖아.”
제이크가 뒤쪽으로 눈짓을 보내며 말했다. 하지만 뒤쪽에 있는 용병대장이라고 말한 사람은 온몸을 붕대로 칭칭 동여매고 있으니 확실치가 않았다. 그렇다고 제이크가 거짓말을 할 사람도 아니었다.
네빌 집사는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으니 제이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아이린이 환한 얼굴로 말했다.
“어쨌든 잘되었어요. 용병대장이 이렇게 살아남았으니 물증도 확보했고, 내일 아침 당장 채플 백작가에 찾아가겠어요.”
아이린은 결연한 의지를 내비치며 말했다. 네빌 집사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했다.
“당연히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이 사실을 온 나라에 알려야 합니다.”
네빌 집사 또한 굳은 의지로 말했다. 그런데 제이크는 달랐다. 두 사람의 행동에 제동을 걸었다.
“안 돼!”
“네에?”
“안 된다니요?”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제이크의 제지에 놀란 얼굴이 되었다. 해명을 부탁하는 눈빛으로 제이크를 쳐다봤다. 그러자 제이크가 말했다.
“이 녀석은 물증이 될 수 없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왜 물증이 될 수 없다는 것이죠?”
“맞습니다, 제이크 님. 레드베어 용병단의 대장이라면 확실한 물증이지 않습니까?”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화들짝 놀라며 말했다. 제이크는 그런 두 사람을 찬찬히 바라보며 말했다.
“채플 백작은 분명 발뺌을 할 것이야. 그럼 어렵게 만든 물증을 버리게 되는 것이지.”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과 네빌 집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동안 봐온 채플 백작이라면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위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두 사람은 조금 전까지 물증을 확보한 것에 대해 기쁨을 표출했다. 그런데 제이크의 말을 듣고는 다시 시무룩해졌다. 물증을 가지고 있어도 그 효용 가치가 없다면 있으나마나 한 것이다.
두 사람의 실망한 표정을 보던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한 표정은 성급한 판단이야.”
제이크의 말에 두 사람의 표정이 갑자기 밝아졌다. 제이크가 저리 말을 했다면 분명 무슨 방법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린이 황급히 물었다.
“그런 말을 하신 것을 보면 방법이 있는 것이군요.”
“정말입니까, 제이크 님.”
네빌 집사도 약간 흥분된 얼굴로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히죽 웃으며 용병대장을 보았다.
“있지. 그것도 아주 큰 방법이 말이야.”
“말씀해 주세요. 어떤 방법이에요?”
아이린은 답답한지 물었다. 네빌 집사도 궁금한 눈치였다. 제이크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물었다.
“그전에 한 가지 물어보지.”
“어떤?”
“이대로 계속 채플 백작에게 휘둘릴 생각은 아니겠지.”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이 바로 말했다.
“당연하죠. 여태까지 채플 백작에게 당해 왔어요. 이제 당한 것을 고스란히 돌려줘야 해요. 몇 배로 말이에요.”
아이린은 말을 하면서 입술을 잘끈 씹었다. 그녀의 단호함에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후훗, 좋아. 그럼 채플 백작이 다시는 광산을 넘보지 못하도록 아예 사라져 주는 것이 속 편하지 않겠어?”
“네에?”
아이린이 놀랐다. 네빌 집사도 마찬가지다.
“그, 그야 그렇지만…….”
“답답해요.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세요.”
아이린이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러자 제이크가 용병대장 마틸다를 툭툭 치며 말했다.
“이 녀석은 미끼야. 그것도 아주 큰 미끼!”
“미끼?”
“그래, 조만간 놈들이 분명 미끼를 물 거야. 우린 느긋하게 기다리면 되고 말이지.”
여유롭게 말을 하는 제이크. 그런 그의 모습에 약간 불안한 얼굴이 된 네빌 집사가 물었다.
“어떤 것을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과연 그들이 순순히 미끼를 물까요?”
“후훗, 놈들은 분명 용병대장이 자신이 의뢰를 했다는 것을 불 것이라 생각하고 있겠지. 그리고 그에 대한 만반의 준비도 할 것이고 말이야. 그리 생각하면 똥줄 타는 쪽은 바로 채플 백작이야. 우리는 그냥 느긋하게 지켜보기만 하고 되고.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채플 백작가를 먹어 버리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잖아.”
“네에!”
“허헉!”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과 네빌 집사의 두 눈이 동그랗게 떠지며 헛바람을 삼켰다. 제이크의 말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기 때문이다.
“제이크 님, 그렇다면 이 미끼가 바로 채플 백작을 삼키기 위한 것이란 말입니까?”
“후훗. 왜? 그러면 안 돼?”
제이크가 웃으며 말했지만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얼굴이다.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이내 제이크에게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는 제이크는 별 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뭐가 그리 놀라고 그래. 어차피 채플 백작가쯤이야. 하룻밤이면 꿀꺽 할 수 있는데. 그전에 명분을 만들면 되지. 그래서 이 녀석이 필요한 것이야.”
“…….”
제이크의 계속되는 말에도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입을 열지 못했다. 그야말로 제이크가 꺼내는 말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냥 단순히 압박을 가해서 다시는 광산을 넘보지 못하게 하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제이크의 생각을 달랐다. 그것은 단지 일시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아예 채플 백작을 포기하게 하는 방법은 그자가 사라지는 것뿐이었다. 그 일을 제이크가 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미친 놈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왠지 모르게 믿음이 갔다. 그것은 제이크가 내뱉었던 말은 여지없이 이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며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제이크가 말을 했으니 분명 그리될 것만 같았다. 아이린과 네빌 집사는 서로 바라보며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제이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