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7
헬 나이츠 3권 (17화)
Episode 27 무너지는 백작성 (2)
그러자 채플 백작가의 기사단장인 알포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이오. 채플 백작가의 병력 중 2,000명이 놈들의 손에 죽었소. 그런데 복수는커녕 꽁지 빠진 사람처럼 도망을 치자니 억울하지도 않소?”
알포네 기사단장의 말에 가신들은 모두 고개를 숙이며 입을 다물었다. 기사들도 알포네 기사단장의 말에 힘을 보태었다.
“맞습니다. 놈들에게 복수를 해야 합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기사들은 눈을 번쩍 뜨며 강하게 말했다. 하지만 채플 백작가의 귀족들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모하게 진군할 수는 없습니다. 지금 후방에는 적들이 밀고 올라오고 있습니다. 앞에도 적들이 있고, 이런 상황에서 보일란 성을 공격한다면 후방에서 쳐들어오는 적들에게 꼼짝없이 몰살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을 기약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후방은 내가 책임지겠소.”
듣고 있던 알포네 기사단장이 말했다. 그러자 귀족 한 명이 말했다.
“그럼 전방은 어찌할 것이오?”
그 말에 알포네 기사단장이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그도 물러설 생각은 없었다. 이렇듯 기사들과 귀족들 간의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채플 백작이 눈살을 찡그리며 심각한 표정에 잠겨 있었다.
옆에 서 있던 로이 남작은 그런 채플 백작을 보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래, 너무 성급했어. 충분한 생각을 한 후 움직였어야 했는데…….’
로이 남작은 속으로 생각을 하며 조용히 채플 백작을 불렀다.
“백, 백작님.”
그의 부름에도 채플 백작은 대답하지 않았다. 혼자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이다. 현재 후방에 있는 존재들은 분명 흑마법사에 의해 움직이는 병력들일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의 병사들은 그들을 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고 보일란 성을 앞에 두고 퇴각할 수도 없었다. 놈들이 이렇게 나올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플 백작의 불찰이었다.
“으음.”
채플 백작은 신음을 흘리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도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그 사이 귀족들과 기사들 간의 대립은 점점 그 수위가 올라갔다. 이대로 가다가는 큰 싸움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쾅, 쾅, 쾅!
채플 백작이 탁자를 강하게 내려쳤다. 모든 걸 자신이 결정해야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모두 조용!”
그의 언성에 떠들썩하던 막사 안이 조용해졌다. 모두의 시선이 채플 백작에게 쏠렸다. 이제 그의 결정만 남은 것이다. 귀족들은 돌아가서 다음을 기약하자는 것이고, 기사들은 어차피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물러선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죽은 병사들의 복수도 해야 했다.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채플 백작은 아직까지 쉽사리 결정을 내지 못했다. 무거운 침묵이 계속 흘러가고 채플 백작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드디어 결정을 내린 것이다. 귀족들과 기사들은 모두 침을 꿀꺽 삼키며 채플 백작의 입에 집중되었다.
“퇴각하도록 하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알포네 기사단장의 눈이 크게 떠졌다. 반면 귀족들의 얼굴은 밝아졌다. 알포네 기사단장이 채플 백작에게 말했다.
“백작님, 정녕 퇴각하시는 것입니까? 죽은 병사들을 그냥 모른 체하시려는 것입니까?”
그의 말에 채플 백작이 강한 눈빛을 띠며 째려봤다.
“내가 언제 모른 척한다고 했나?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돌아가서 제대로 정비를 한 후 다시 올 것이다. 그때는 저놈들에게 수십 배로 갚아 줄 것이며, 오늘 당한 수모를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다.”
채플 백작의 무거운 언성에 알포네 기사단장도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 드러난 분노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알포네 기사단장이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 솔직히 그도 지금 무리를 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부하들이 죽었다는 생각에 이성을 잃은 것도 사실이었다. 현재 냉정을 찾은 그도 지금은 퇴각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퇴각을 하는 것으로 회의는 끝이 났다. 막사 안에 모인 가신들이 모두 돌아가 퇴각할 준비를 서둘렀다. 홀로 막사에 남은 채플 백작은 인상을 찡그리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그도 이 분노를 어찌 해야 할지 몰랐다. 생각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보일란 성으로 쳐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은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을 책임지고 있는 수장이었다.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하고 판단해야 했다. 게다가 자신이 너무 감정적으로 대응했다는 것을 알았다. 순간적인 분노에 휩싸여 너무도 대책없이 움직인 것이다.
그 결과 2,000명의 병력을 잃은 것이다. 여기서 더 이상 큰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되었다. 자신의 성으로 돌아간 후 더 확실하게 준비를 한 후 완벽하게 움직여야 했다.
그전에 흑마법사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도 알아야 했다. 아니면 신성제국의 성기사단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든지 말이다.
“그래, 이번에는 그냥 물러나 주지. 하지만 다음은 절대 없다.”
채플 백작이 강한 어조로 말을 했다. 막사 안의 공기는 매우 무겁게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는데…….
2
채플 백작의 퇴각 명령에 보일란 성으로 향하던 본진은 다시 산을 넘기 위해 오르기 시작했다. 대신 이번에는 정찰 기사 10명을 선두에 두고 그 뒤에 멀리 떨어져서 본진이 이동하기로 했다.
퇴각하는 병사들의 어깨는 축 쳐져 있었다. 제대로 싸워 보지도 못하고 큰 피해만 입고 돌아가는 그들의 발걸음이 가벼울리 만무했다. 채플 백작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된 싸움 한 번 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그의 기분은 가히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리하게 보일란 성으로 쳐들어가는 것도 지금 상황에서도 좋지 않았다. 그저 애써 속으로 잘한 선택이라며 위로했다.
산을 올라가는 그들의 발걸음은 매우 무거웠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난관에 봉착했다. 이 산을 넘기 위해서는 하나의 길을 지나야 하는데 그 길은 마치 술병의 목 같은 좁은 길이었기 때문이다.
거긴 많이 움직여야 동시에 10명 정도가 통과할 수 있는 길이었다. 그래서 예전에 두 영지가 하나의 영지였을 때 프라임 백작이 적을 막는 요충지로 많이 이용되던 지역이었다.
앞서 걸어가던 기사들 중 알포네 기사단장이 입구에 멈춰 섰다. 주위의 살펴보며 눈을 빛냈다.
그도 오랫동안 전쟁을 한 기사인 만큼 이곳이 매복을 하기에는 적격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주위를 살피던 알포네 기사단장이 한 명의 기사에게 지시를 내렸다.
“이곳에 적이 매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주위를 살펴 적이 매복했는지 확인해 보도록.”
“네, 단장님.”
지시를 받은 기사가 말에서 내려 주위를 정찰하기 위해 나섰다. 기사가 주위를 살피기 위해 떠나고 얼마 있지 않아 채플 백작이 이끄는 본진이 입구에 왔다.
채플 백작은 알포네 기사단장이 더 이상 진군하지 않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고 물었다.
“무슨 일인가?”
그러자 알포네 기사단장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앞에 좁은 길이 있습니다. 이곳을 지나야만 산을 내려갈 수 있습니다.”
“그럼 가면 되지 않는가?”
“하지만 적의 매복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확인 없이 들어갔다가 매복에 당하게 된다면 큰일입니다.”
그의 말을 들은 채플 백작이 표정이 어두워졌다. 넘어올 때는 아무런 공격도 없었다.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에 적이 매복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후방을 지키는 병력이 이미 적들에게 당하지 않았나.
“으음, 올 때는 괜찮았는데…….”
채플 백작이 나직이 말했지만 어차피 놈들이 함정으로 유인하기 위해서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퇴각하는 만큼 이곳에 매복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그럼 정찰을 보냈는가?”
“네, 조금 전에 보냈습니다. 그가 돌아오고 나서 움직이는 것이 좋겠습니다.”
“알겠다. 서둘러라.”
“네, 백작님.”
힘차게 대답을 한 후 알포네 기사단장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주변에 경계를 서고 난 후 정찰을 보낸 기사가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정찰을 나갔던 기사가 무사히 돌아왔다. 알포네 기사단장이 그를 발견하고 즉시 물었다.
“놈들은?”
“주위가 너무 조용합니다. 멀리까지 가서 주변을 샅샅이 확인해 보았지만 매복을 한 흔적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
기사의 보고를 들은 알포네 기사단장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금 좁은 길을 응시했다. 매복이 없다고는 하지만 왠지 모르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도 없었다. 이 산을 넘기 위해서는 이곳을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이 많은 병력을 길이 없는 산으로 이동시키기에도 무리가 있어 보였다. 잠깐 고민을 하던 알포네 기사단장이 결정을 내렸다.
“이동한다.”
“넵!”
알포네 기사단장의 지시가 내려지고 병력은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10명밖에 통과할 수 없는 곳이기에 줄을 지어 천천히 이동했다. 기사단이 먼저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채플 백작과 가신들이 이동했다.
병사들은 귀족들을 에워싸며 보호를 했다. 그렇게 천천히 좁은 길로 들어섰다. 알포네 기사단장과 기사들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하며 주위를 살폈다.
주변을 경계하는 그들은 바짝 긴장한 상태였다. 여기서 기습을 당하면 엄청난 병력 손실을 입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것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기습하는 것을 먼저 발견하고 대처해야 했다.
이동하는 기사들과 병사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잔뜩 경계를 하였다. 그렇게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반면 제이크는 좁은 숲길의 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높은 나무 위에 올라선 제이크는 채플 백작가의 병력이 좁은 길에 들어서자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후훗, 드디어 오는군.”
그 말과 동시에 제이크의 몸이 그곳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제이크가 모습을 드러낸 곳은 좁은 길의 거의 끝자락이었다.
그곳에 모습을 드러낸 제이크는 사람의 인적이라고 없는 무심한 숲을 응시했다. 발에 밟히는 것은 오직 낙엽뿐이었다. 그런 곳에 뒷짐을 진 채 조용히 중얼거렸다.
“놈들이 들어왔다.”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제이크가 서 있던 왼쪽의 땅이 들썩였다. 낙엽으로 수북이 쌓인 그곳에 작은 공간이 생겨나며 몇 명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그들 중 한 명인 바론이 얼굴을 내밀었다.
“그, 그렇습니까? 우린 언제까지 여기에 숨어 있으면 됩니까?”
“나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 그럼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보다 앞의 길은 확실히 막았겠지?”
“넵, 대장!”
바론이 힘차게 말했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놈들이 오기만 기다리면 되겠군.”
제이크의 나직한 음성에 바론은 다소 긴장된 표정이 되었다. 물론 광산에서 처음으로 치열한 전투를 벌였지만 이번은 또 상황이 달랐다.
그때야 다섯 명이서 한 명만 상대하면 되니 수월했다. 그래서 큰 피해도 입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적의 병력은 무려 3천이나 되었다. 물론 좁은 길에 들어섰기에 기습을 한다면 큰 피해를 입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목숨은 장담할 수 없는 입장이다.
땅을 파고 숨어 있기는 하지만 그들도 긴장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것을 눈치챈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긴장되나?”
“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죠.”
“후훗, 하긴 그렇겠지.”
제이크도 인정했다. 그러자 바론이 나직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