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70화 (70/125)

# 70

헬 나이츠 3권 (20화)

Episode 28 베이런 후작의 욕심 (2)

이곳의 주민들도 알고 있다. 채플 백작이 에페로 자작가와 전쟁을 벌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리고 채플 백작이 아닌 에페로 자작가의 병사들이 입성했다는 것은 채플 백작이 패했다는 소리가 된다.

주민들은 불안하기 시작했다. 몇몇 주민들은 서둘러 집 안으로 몸을 숨겼다. 저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이크 일행들은 주민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채플 백작가의 성이었다.

채플 백작가의 성을 지키고 있는 몇 십 명의 병사들은 제이크 일행의 등장으로 모두 창을 버리며 항복을 했다. 그들도 무리하게 덤벼들지 않았다. 솔직히 목숨이라도 벌어 보자는 심산이었다.

어쨌거나 제이크도 항복을 한 병사들을 굳이 죽이지는 않았다. 그들을 죽여 봤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채플 백작가에 있던 병사들을 간단히 제압한 후 성 안으로 들어갔다. 말로만 들었지 이렇듯 화려한 성은 처음 보았다. 제이크도 마찬가지였다.

“완전 돈으로 도배를 했군.”

제이크가 약간 굳어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폴과 필도 마찬가지였다. 외부와 달리 내부의 장식품도 전부 다 고가였다. 작품들 중 하나만 팔아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어 보였다.

“돈에 환장한 놈이구먼.”

“이거 왕궁보다 더 화려하게 꾸민 것 같아.”

필의 말에 폴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너, 왕궁에 가 봤어?”

“아니.”

“그런데 어떻게 알아.”

“몰라, 그냥 느낌이 그래.”

“키키키, 그렇구나. 야, 우리는 저쪽으로 가서 구경하자.”

폴이 필을 이끌고 어딘가로 향했다. 제이크는 그런 두 녀석을 보다가 자신도 놀란 눈이 되었다. 그도 이렇듯 화려한 성은 본 적이 없었다.

어릴 적이지만 왕궁에 놀러갔을 때 그곳에서 보았던 것보다 더 화려했다.

제이크가 성을 구경하는 동안 병사들이 성 내부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채플 백작의 자식들을 잡아왔다. 모두 5명의 자식들이었다. 그들 모두 처음에 반항이 심했지만 한 대 맞더니 매우 고분고분해졌다. 그들은 모두 제이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때 이층이 매우 소란스러웠다. 제이크가 귀를 쫑긋 세우며 그 목소리를 들었다. 여자의 목소리였다.

“네 이놈들! 내가 누군지 아느냐! 이것 놓치 못할까?”

“조용히 하고 갑시다.”

병사가 말했다. 그러자 그 여자의 목소리는 더욱 올라갔다.

“조용? 감히 누구에게 조용하란 말을 하느냐! 너 어디 소속이야? 감히 나에게 이런 짓을 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보느냐!”

그녀의 목소리는 더욱 높아만 갔다. 제이크는 그 말을 듣고는 절로 웃음이 나왔다.

“후후후.”

고함 지르며 붙들려 나오는 여성이 누군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채플 백작의 부인이 분명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이층 계단으로 그녀의 모습이 드러났다.

말끔한 드레스 차림에 붉은 머리를 예쁘게 말아 올린 중년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양팔이 붙잡힌 채 병사들에게 이끌려 내려오며 온갖 욕을 하며 악을 썼다.

병사들은 그녀를 데리고 오며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드디어 제이크 앞에 섰다. 그녀에게 무릎을 꿇게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백작 부인인데 최소한의 예의는 지키게 했다.

백작 부인은 제이크를 날카롭게 째려보며 앙칼진 음성으로 말했다.

“너! 내가 누군지 몰라? 난 채플 백작가의 부인이야. 너희들이 이러고도 살아남을 것 같아?”

“역시 귀족이라는 것인가? 끝까지 자존심은 있군.”

제이크의 비웃음에 백작 부인의 얼굴이 점점 붉어졌다.

“어, 어떻게 그런 말을!”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 되나 보군.”

“상황? 무슨 상황 말이냐?”

백작 부인이 의아해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나직이 말했다.

“우리가 이 성을 접수한 상황 말이야.”

“뭐, 뭣이? 네놈들이 왜 이 성을 접수했다는 것이야?”

“그야 당연히 영지전에서 승리를 했기에 접수한 것이지.”

제이크는 백작 부인의 말에 꼬박꼬박 답변을 해 주었다. 그녀의 모습을 보니 왠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제이크의 말을 못 믿어 했다.

“흥! 믿을 수 없다! 백작님께서 패하다니,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백작 부인이 발작을 하며 소리쳤다. 그러자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며 이해가 되겠지?”

“……?”

제이크의 말에 백작 부인은 의문 부호를 그렸다. 그리고 잠시 후 초췌한 모습을 하고 포박을 당한 채플 백작이 들어왔다. 그의 모습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멍한 상태로 거의 반미치광이로 변한 채플 백작은 그 옛날의 모습이 아니었다. 채플 백작을 발견한 부인은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그만 기절을 하며 쓰러졌다.

바론이 다가왔다.

“이들을 어찌할까요?”

“살려 줘.”

“네에? 그냥 살려 주란 말입니까?”

“그래. 굳이 죽일 필요가 없잖아. 게다가 이미 모든 재산을 잃었고, 빈털터리가 되었는데 어찌하겠어. 무엇보다 절망에 한 번 빠져 봐야 해. 그래야 다시는 욕심을 부리지 않지.”

제이크의 말에 바론은 알겠다며 채플 백작과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가고 제이크는 곧바로 집무실로 향했다.

채플 백작이 사용하는 집무실은 성의 맨 꼭대기에 있었다. 계단을 밟고 한참을 올라간 끝에 그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제이크는 수수한 집무실을 한 차례 훑어보고는 창가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백작령의 모든 것이 한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도시를 살폈다.

“흠, 그리 나쁘지는 않군. 확실히 어둠에 물들어 있는 지금의 영지에 비한다면 말이야.”

제이크는 에페로 자작가의 영지보다는 훨씬 나아 보였다. 물론 예전 프라인 백작가의 영지보다는 못하지만. 제이크는 천천히 훑어보고는 몸을 돌렸다. 채플 백작가의 깃발이 걸려 있고 그 앞에는 의자가 있었다.

그곳으로 걸음을 옮긴 제이크가 의자에 앉았다.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는 두 손을 모아 배에 올렸다. 그리고 다리를 꼬았다.

그때 필과 폴이 들어와 제이크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

“우와, 도련님 멋있습니다.”

“그래?”

제이크도 장단을 맞춰 주었다. 그러면서 폴이 제이크 옆으로 다가왔다.

“도련님, 영주가 되고 싶으세요?”

“영주? 거 귀찮은 것을 왜 해.”

제이크가 낮게 말했다. 그러자 필이 입을 열었다.

“에이, 그래도 한 번쯤은 영주가 되고 싶잖아요.”

필의 말에 제이크가 나직이 말했다.

“영주라…….”

제이크도 한때는 영주가 되고 싶다는 꿈을 꾼 적은 있었다. 하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어차피 형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후훗, 이제 와서 영주가 되어서 뭘 하려고. 안 그래?”

제이크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폴과 필도 공감을 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래요.”

“우린 돌아갈 곳이 있으니까요.”

그러면서 다들 킥킥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2

에페로 자작가에 있는 아이린에게도 뒤늦게 승전 소식이 전해졌다. 채플 백작의 성을 완전히 접수했다는 소식도 함께 전해졌다.

올라온 보고서를 보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아이린은 그 자리에서 손뼉을 치며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호호호, 정말 대단해요. 어떻게 그런 일을…….”

아이린도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역시 제이크가 성공을 했다. 5천의 병력을 고작 200명의 병사들로 말이다. 물론 폴과 필이 모두 처리했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아이린은 제이크와 200명의 병사들이 해결한 것이라 여겼다.

“축하드립니다, 아가씨.”

“제가 축하받을 일은 아니죠. 모두 다 제이크 님 덕분이에요.”

아이린이 조용히 말했다. 그녀의 눈빛은 존경심이 가득 들어 있었다. 네일 집사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제이크 님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네, 맞아요. 여태까지 쉬운 일은 하나도 없었는데 제이크 님은 아주 쉽게 일을 처리해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 생각만 해도 놀랍다니까요.”

아이린도 흥분이 되는지 목소리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네일 집사도 연신 웃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제 저는 제이크 님을 확실히 믿습니다.”

“네에? 이제야 믿는다고요? 저는 처음부터 믿었는걸요.”

“하하핫. 그렇습니까?”

“네에!”

아이린과 네일 집사는 얼마 만에 이렇게 웃는지 몰랐다. 하물며 제이크가 나타나면서도 에페로 자작가의 모든 일이 술술 풀리고 있지 않는가.

한마디로 제이크가 에페로 자작가의 은인이며 복덩어리였다. 아이린과 네일 집사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때 문이 열리며 기사가 들어왔다. 아이린에게 인사를 하고는 입을 열었다.

“지금 제이크 님께서 돌아오셨습니다.”

“그래요? 어서 나가요.”

“네, 아가씨.”

아이린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집무실을 나갔다. 그 뒤를 네일 집사가 뒤따랐다.

말을 타고 나타난 제이크는 백작령을 어느 정도 정리를 하고 돌아왔다. 제이크 일행의 등장으로 얼굴이 환해진 아이린이 친히 뛰어와 그를 맞이했다.

“고생하셨어요.”

“수고하셨습니다, 제이크 님.”

네일 집사도 달려와 제이크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제이크는 다소 부끄러운 얼굴이 된 채 머리를 긁적였다.

“뭘, 대단한 일을 했다고.”

“어머나! 대단한 일이 아니라니요. 채플 백작가와의 영지전에서 승리를 했잖아요. 게다가 백작령까지 얻었는데 대단한 일이 아니라요. 겸손도 지나치면 실례예요.”

아이린의 따끔한 충고에 제이크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 그래. 고마워.”

“고맙긴요. 오히려 제가 고맙다고 해야죠.”

아이린도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런 아이린의 모습에 제이크의 입가에 웃음이 번졌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일 집사가 그런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아이린도 번뜩 정신을 차렸다.

“어멋! 내 정신 좀 봐! 들어가요.”

“그래.”

제이크도 고개를 끄덕이며 걸음을 옮겼다. 아이린과 네일 집사는 오늘처럼 걸음이 가벼웠던 적은 아마도 없었던 것 같았다.

3

영지전을 통해 승리한 만큼 채플 백작령에 대한 권리는 에페로 자작가에게 있었다. 그래서 그 사실을 왕실에 알리고 그에 따른 세금을 내야만 했다.

아이린은 어렵게 얻은 기회인만큼 어서 빨리 이 일을 마무리 짓고 싶었다. 그래서 제이크가 가져온 채플 백작가의 장부를 살펴 재정 상태를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장부를 보고 있는 아이린의 표정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겉보기에는 매우 돈도 잘 벌고, 화려하지만 그 속은 엉망이었다. 장부도 제대로 적지 않은 듯 확인하는 것도 어려웠다.

장장 두 시간가량을 소비해 장부를 다 보고 난 후 아이린이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여기도 엉망이네요.”

에페로 자작가보다는 좋지만 그래도 백작가 치고는 이리저리 빚진 곳도 많고, 게다가 성을 공사하면서 들어간 돈이 어마어마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