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77화 (77/125)

# 77

헬 나이츠 4권 (2화)

Episode 31 흑마법사의 흔적 (2)

“크, 큰일 났습니다!”

달려오는 병사를 본 기사는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동료는 어찌하고 또 혼자 오는 것이냐! 네 녀석이 정녕 혼쭐이 나야 정신을 차릴 것인가!”

기사는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다그쳤다. 하지만 병사는 몸을 부르르 떨며 겁을 먹은 얼굴이었다. 그 모습에 이상함을 느낀 기사가 물었다.

“뭐냐? 무슨 일이 생겼나?”

“그, 그것이… 죽어 있었습니다.”

“뭣이?”

병사의 말에 기사는 놀란 눈이 되었다.

“죽었다니 적이 침입한 것인가?”

기사는 다급하게 물었다. 하지만 병사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것이 아니오라 모, 몬스터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몬스터? 어디냐? 그곳으로 안내해!”

“네에.”

병사가 서둘러 그곳으로 뛰어갔고, 기사가 그의 뒤를 따랐다.

베이런 후작이 있는 군막 앞에는 처참하게 망가진 시체 두 구가 놓여 있었다.

이 일로 인해 진영은 혼란 속에 빠져 버렸다.

간부들은 병사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며 떠날 준비를 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끔찍하게 죽은 동료의 시체를 보고 흔들리지 않는 병사는 없었다.

이런저런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다.

“적의 기습이 있었데.”

“아니야, 아주 무섭게 생긴 마물의 습격이라고 하던데.”

“정말이야?”

“그렇다는데, 심장을 뜯어먹었다고 하더군.”

“으으으, 이럴 수가. 진짜 마물이야?”

병사들은 서로 수군거리며 겁을 집어먹고 있었다.

그때 기사가 나타나며 소리쳤다.

“무슨 잡담을 하고 있어! 어서 서둘러 떠날 준비들 하지 못해!”

기사의 고함에 모여서 수군거리던 병사들이 흩어졌다. 그들의 모습에 기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베이런 후작은 간밤에 일어난 일의 보고를 받고 급히 밖으로 나왔다.

가슴이 뚫린 채 죽은 두 구의 시체를 확인한 베이런 후작은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어찌 된 일인가, 레딘?”

시체를 확인하던 레딘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흠, 가슴이 뚫린 것으로 보아 심장이 뽑힌 채로…….”

“뭐, 심장이?”

레딘의 말에 베이런 후작의 얼굴이 놀람으로 바뀌었다. 반면 레딘은 침착함을 유지한 채 말을 이어 갔다.

“뚫린 가슴을 보니 심장만 없었습니다.”

“지, 짐승의 짓인가?”

“짐승의 짓이라고 하기에는 다른 것들이 너무 멀쩡합니다. 게다가 굳이 심장만 파먹었을 리도 없을 것이고요.”

“으음, 그럼 누구의 짓이지?”

베이런 후작이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레딘은 다시 자리에 앉아 시체를 유심해 살폈다.

그 순간 레딘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 모습을 본 베이런 후작이 급히 물었다.

“무엇인가? 뭔가 알아내기라도 했는가?”

베이런 후작의 질문에 레딘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를 바라봤다.

“후작님 아무래도 흑마법사의 소행인 것 같습니다.”

“뭣이? 흑마법사?”

베이런 후작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러자 레딘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언제가 이런 얘기를 들었습니다. 흑마법사들이 인체 실험을 한다는 것을요. 그들은 살아 있는 생명체의 심장을 뽑아, 그것으로 실험을 한다는 소문을요.”

“맞아, 나도 그런 소문을 들은 적이 있지. 그러나 그것은…….”

베이런 후작은 단지 소문이라 치부를 했던 것이다. 하지만 레딘의 생각은 달랐다.

“물론 소문일 것이라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런 짓은 흑마법사가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무리 적들이 왔다고 해도 이렇듯 두 명의 병사만 처리할 리 없고, 굳이 심장만 뽑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레딘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었다. 그냥 죽이면 그만이지 이렇듯 심장만 뽑았을 리가 없었다.

순간 베이런 후작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며 점점 분노가 일어났다.

“감히! 내 병사들을 건드렸단 말인가?”

이를 빠드득 깨무는 베이런 후작의 모습에 레딘이 말했다.

“후작님 일단은 병력을 지금 즉시 진군시키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사건은 일단 제가 더욱 수사를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흐음, 알겠네. 일단은 병력을 진군시키도록 하게. 그리고 병사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잘 말해 두고.”

“네, 후작님.”

지시를 내린 베이런 후작은 바닥에 있는 두 구의 시체에 시선을 던졌다. 잠시 바라보던 그는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돌려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주위에 있던 몇몇 지휘관이 수근거렸다.

“정말 흑마법사의 짓일까?”

“레딘 단장님께서 말씀하지 않았나.”

“으윽, 정말 무서운 일이군. 어찌 사람의 심장을…….”

“내 말이 그 말이네. 정녕 흑마법사들이 인간을 상대로 인체 실험을 하다니.”

“정말 조심해야겠어.”

지휘관들이 수군거리며 눈치를 살폈다.

시체를 보던 레딘이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지금 뭣들 하고 있는 것인가! 후작님의 말씀을 듣지 못했나, 어서 진군할 채비를 하지 못해!”

레딘의 언성에 지휘관들이 깜짝 놀라며 부랴부랴 뛰어갔다.

그들의 모습을 보던 레딘도 두 구의 시체에 시선을 던졌다. 그의 표정이 몹시도 어두워졌다.

“너희 둘은 시체를 잘 안장시키라.”

레딘이 옆의 병사들에게 말했다.

“넵, 단장님.”

병사들은 시체를 천에 말아 들고 갔다.

잠시 후 정리를 마친 베이런 후작이 말 위에 올라탔다. 그는 잘 정열된 병력을 살피고는 곧바로 말했다.

“진군한다!”

베이런 후작의 명령이 떨어지고 천천히 앞으로 움직였다.

그때였다.

앞서 정찰을 보낸 기사가 다급히 달려왔다. 그는 곧바로 베이런 후작 앞에 내려서며 무릎을 꿇었다.

“후작님, 큰일 났습니다.”

“큰일?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베이런 후작은 점점 기분이 나빠졌다.

새벽에 일어난 일도 그렇고, 또다시 큰일이 났다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하룻밤 사이에 여러 가지의 일이 생기니 머리가 아파 올 지경이었다.

“그, 그것이… 길이 막혔습니다.”

“뭣이라?”

베이런 후작은 또 한 번 놀란 얼굴이 되었다.

어제 확인을 할 때까지 전혀 문제가 없던 길이었다. 그런데 하룻밤 사이에 길이 막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다고 정찰을 갔다 온 기사가 거짓말을 할 리도 없었다.

“내가 직접 확인하겠다.”

베이런 후작은 즉시 말을 몰고 뛰어갔다. 그 뒤로 레딘을 비롯해 각 지휘관들이 뒤를 따랐다.

3

두두두두!

말을 몰고 간 베이런 후작은 검은 돌들로 막힌 곳에 도착했다.

이히히힝!

말이 울음을 터뜨리며 멈춰 섰다.

베이런 후작이 즉시 말에 내려 막힌 곳으로 갔다. 그 뒤에 레딘을 비롯해 각 지휘관들이 도착했다.

베이런 후작은 막혀 버린 길을 보며 멍한 상태가 되었다. 뒤따라온 지휘관들이 입을 열었다.

“정말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나?”

“그러게나,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 길이 막혀 버린 것이지?”

지휘관들은 의뭉스런 물음을 던지며 막힌 길을 쳐다봤다. 베이런 후작도 마찬가지였다.

폐허 성을 빠져나가는 단 하나의 길인 이곳이 막혀 버렸으니 더 이상 전진을 한다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한편으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몰랐다.

“도대체 이게 어찌 된 일이지?”

베이런 후작은 협소한 길이 돌들로 막힌 곳을 보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레딘이 그곳으로 걸어갔다.

“흐음.”

신음을 흘리며 꼼꼼히 살펴보았다. 그저 평범한 돌들이었다. 다만 돌들이 전부 검다는 것이었다. 그 점이 레딘을 의문 짓게 하고 있었다.

그 옆으로 베이런 후작이 다가왔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돌들이 길을 막고 있는 것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레딘도 자세히 알지 못했다.

“음, 어제는 돌들이 없었지 않는가. 이미 척후병으로부터 그리 보고를 받았는데.”

베이런 후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레딘도 그렇게 보고를 받았다.

“저도 확인을 했습니다. 이런 돌들은 그때는 없었는데…….”

“그렇다면 놈들이?”

베이런 후작이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러나 레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정도의 돌로 길을 막기에는 많은 인원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 인원이 움직인다면 분명 소리도 컸을 것이며 밤 사이에 이렇게 많은 돌을 옮기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여기에 돌이 있을 수 있어!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고서야 어찌 이런 경우가 있어!”

베이런 후작이 소리를 질렀다.

레딘은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자신도 어찌 된 영문인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열을 내는 베이런 후작이 길을 막고 있는 돌들을 보았다. 그러고는 레딘을 향해 입을 열었다.

“그건 둘째치고 어서 저 돌들이나 치워!”

“네,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레딘이 인사를 하고는 병사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어서 저기 있는 돌들을 치워라.”

“넵! 단장님.”

베이런 후작은 인상을 찡그리며 몸을 돌렸다. 등 뒤에 휘날리는 망토를 툭 치며 신경질을 냈다.

“젠장, 하나하나 모든 것이 신경 쓰이는군.”

베이런 후작이 그곳에서 사라지고 병사들을 데리러 갔던 기사가 왔다. 그의 뒤로 수십 명의 병사들이 보였다.

병사들은 기사의 지휘 아래 막힌 돌들을 치우기 위해 움직였다. 검은 돌로 막힌 협소한 길은 그야말로 촘촘히 막혀 있었다.

대충 만든 함정이라면 힘으로 뚫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윽! 제길, 왜 이래!”

“으랏차차!”

병사들이 돌들을 움직이기 위해 힘을 썼다. 하지만 돌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두세 명이 달라붙었지만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무슨 돌이기에 꿈쩍도 하지 않는 거야?”

병사들이 투덜거리며 돌들을 발로 툭툭 찼다. 그때 뒤에서 지켜보던 기사가 소리쳤다.

“뭐하고 있어! 어서 서둘러 치우지 못해!”

그러자 한 병사가 몸을 돌려 말했다.

“안 됩니다.”

“뭐가 말이냐?”

“돌들이 꿈쩍도 하지 않아요.”

“네, 맞습니다. 도저히 빠지질 않습니다.”

“뭔 소리들을 하고 있어?”

그 병사의 말에 다른 병사들도 앓는 소리를 하였다. 기사는 무슨 말을 하냐며 다가갔다.

“읏차!”

기사가 하나의 돌을 건드려 봤다.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도 나름대로 힘이 장사라는 소리를 들어왔다. 자그마한 돌 하나도 들지 못하자 민망함이 밀려왔다.

“어라, 왜 이러지?”

기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 뒤에 병사들이 입을 열었다.

“어떻습니까?”

“역시 움직이지 않죠?”

“시끄럽다!”

기사는 버럭 소리를 지르며 다시 한 번 돌을 들기 위해 힘을 줬다.

“으라라라찻!”

하지만 검은 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젠장!”

기사는 오히려 돌을 발로 차며 화를 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