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8
헬 나이츠 4권 (3화)
Episode 31 흑마법사의 흔적 (3)
“무슨 일인가?”
레딘이 다가왔다. 기사는 머쓱해진 얼굴로 말했다.
“단장님, 그러니까… 돌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돌이 꿈쩍도 하지 않다니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입니다. 병사들 세 명이 달라붙어도 돌들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기사의 말에 레딘의 눈빛이 바뀌었다. 전혀 움직이지 않는 돌. 세상에 그런 돌이 어디 있겠는가. 레딘이 돌 근처로 다가갔다.
손에 힘을 주어 밀어 보았다. 역시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서로가 달라붙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음.”
레딘이 깊은 신음을 흘리고 있을 때 베이런 후작이 다시 나타났다. 해가 중천에 떴는데 여태까지 소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하나도 치우지 않았다. 수십 명의 병사들이 붙어 있는데도 돌을 치우지 못했다는 것에 베이런 후작은 화가 났다.
그는 당장에 레딘에게 다가가 소리쳤다.
“레딘 지금 뭐하고 있는가! 시간이 정오가 다 되었는데도 하나도 치우지 못했단 말인가!”
베이런 후작의 윽박지름에 레딘이 몸을 돌려 말했다.
“돌들이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뭣이, 어찌 돌들이 꿈쩍도 하지 않아! 말이 되는가?”
베이런 후작이 깜짝 놀라며 말했지만 레딘의 눈빛을 보니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런데 문득 레딘이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이상한 것이 있습니다.”
“뭔가?”
“돌들이 전부 검은색입니다. 이런 돌은 생전 처음 보는 것입니다.”
“생전 처음 봐? 그럼 누가 마법이라도 부렸단 말인가?”
베이런 후작이 어이없다는 듯 내뱉은 말에 레딘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에 따라 베이런 후작의 얼굴도 굳어졌다.
“자네의 생각은 정말 마법이란 말인가?”
“네, 그렇지 않고서야 수십 명의 병사가 달라붙었는데도 하나도 옮기지 못했습니다. 아무래도 흑마법의 기운이…….”
레딘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베이런 후작이 놀랐다.
“뭣이, 흑마법?”
“네, 지금으로서는 그것밖에는 없습니다.”
레딘의 말에 베이런 후작은 허탈한 얼굴이 되었다.
“허, 그럼 이것도 흑마법에 의해서인가?”
“장담은 하지 못하지만 간밤에 일어난 일이라면. 시체도 그렇고…….”
레딘의 말에 베이런 후작의 얼굴은 이미 일그러질 때로 일그러졌다. 그의 분노는 점점 더 올라갔다.
“으으윽! 빌어먹을 흑마법사!”
이를 갈며 분노를 표출할 때 게이런 남작이 다가왔다. 그는 베이런 후작을 보며 말했다.
“후작님, 이럴 것이 아니라 우리도 흑마법사를 부르는 것이 어떻겠습니다. 흑마법에는 당연히 흑마법사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게이런 남작의 말에 베이런 후작의 눈빛이 바뀌었다.
“그래, 맞아. 우리에게도 흑마법사가 있었지. 게이런 남작!”
“네, 후작님.”
“당장 벨키라노를 부르게.”
“알겠습니다.”
게이런 남작이 즉시 움직이고, 베이런 후작은 레딘을 향해 말했다.
“레딘, 자네는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여기 있는 돌들을 전부 치우도록 하게.”
“네, 후작님.”
지시를 받은 레딘은 고개를 숙여 답했다.
베이런 후작은 고개를 끄덕인 후 다시 폐허 성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이곳에서 하루를 더 지내야 할 것 같았다. 나머지 지휘관들도 베이런 후작의 뒤를 따라갔다.
베이런 후작은 그들을 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 병사들에게 진지를 구축할 것을 명하게.”
Episode 32 흑마법 vs 흑마법(?) (1)
1
베이런 후작군은 길을 막고 있는 돌덩이를 처리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마치 아교로 붙인 것처럼 협소한 통로를 막고 있는 돌들은 움직일 생각을 않했다. 온 힘을 다 쏟아붓고 있지만 자꾸만 실패를 했다.
마치 거대한 자연의 장벽처럼 느껴졌다.
“으윽! 젠장, 뭔 놈의 돌덩이가 이리도 꿈쩍을 하지 않아!”
“이봐, 좀 더 힘 좀 써 보라고.”
“젠장! 힘쓰는 거 안 보여!”
병사들은 돌덩이 하나에 매달려 용을 쓰며 떠들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레딘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루하루가 급한 시기에 이렇듯 턱하니 길을 막고 있으니 어찌 답답하지 않겠는가.
레딘은 굳어진 얼굴로 장벽처럼 되어 버린 돌들을 바라보았다.
“젠장, 길이 이곳뿐이라니.”
레딘은 다른 우회도로를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지도를 살펴보아도 우회도로가 없었다.
사실 이곳은 자작령과 폐허가 되어 버린 성을 잇는 유일한 길이었다.
옛날 프라인 백작가 시절에 폐허 성은 사실 요새였다. 전쟁이 벌이지고 폐허 성 요새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적들을 막기 위해 힘을 쏟아부었지만 엄청난 대군으로 밀어붙이는 적들을 막지 못했다.
그래서 프라인 백작은 그곳이 뚫릴 경우 적들의 발걸음을 늦추게 하기 위해 일부러 협소한 골짜기에 길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단 하나의 길.
그러면 적들의 발도 묶을 수 있고, 아군은 재정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곳이 막혔으니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아주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것이다. 바로 베이런 후작군의 발을 막고 있는 것이다.
“옆의 흙을 파서라도 돌덩이를 끄집어내!”
“네, 단장님.”
레딘의 지시에 병사들은 돌을 들어내는 것을 멈추고 옆의 흙을 손으로 파기 시작했다. 현재는 흙을 들어낼 마땅한 도구가 없기 때문이었다.
창이나, 검, 병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로 흙을 팔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것마저 여의치 않았다.
“제기랄, 돌덩이가 꿈쩍도 하지 않더니. 이제는 흙마저 괴롭히네.”
“도대체 이곳에 무슨 짓을 했기에 이래!”
병사들의 투덜거림은 계속되었다.
돌덩이도 검은데 흙마저 검게 물들어 있었다. 그 흙을 만지는 병사들은 왠지 기분이 더러웠다.
“뭐지, 젠장! 기분이 찝찝한데.”
“나도 그래. 흙을 만지니 기분이 너무 더러워!”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병사들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레딘이 눈을 부릅떴다.
‘기분이 이상하다고?’
레딘이 그곳으로 다가갔다. 손을 흙에 가져다 댔다. 그 순간 자신의 손으로 검은 기운이 밀려들어 왔다.
‘이, 이것은 검은 마기?’
레딘은 눈살이 찌푸려졌다.
‘역시 흑마법이었나?’
레딘은 손에 있는 검은 흙을 만지작거리며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돌덩이를 들어내는 작업은 하루가 지났지만 아직 제자리걸음이었다. 수십 명이 교대로 작업을 펼치고 있지만 길을 뚫지 못했다.
군막에 있는 베이런 후작은 잔뜩 인상만 찌푸린 채 어찌하지는 않았다. 그저 어서 빨리 처리하라고만 할 뿐이었다. 아무리 닦달을 해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한창 작업을 하던 병사 한 명이 괴성을 지르며 땅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내 손! 내 소온!”
그 병사의 신호가 되어 다른 쪽에서도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소, 손이 썩어 들어가!”
“크악! 내 손도…….”
여기저기서 병사들이 손을 부여잡고 쓰러졌다. 그들은 고통에 일그러진 채 괴성을 질러댔다.
“크아아악!”
“으아아악!”
그러자 작업을 진행하던 기사가 급히 달려가 레딘을 불러 왔다.
“단장님, 큰일 났습니다!”
“무슨 큰일?”
단장은 자신의 군막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이 기사가 달려들어 와 큰일이 났다는 소리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틀 동안 사건들이 여러 가지 터졌기 때문에 그 소리만 들어도 가슴부터 뛰었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기사의 표정으로 보아 심상치 않아 보였다.
“작업을 하는 병사들의 손이…….”
그 말을 듣는 순간 레딘은 즉시 작업을 펼치는 곳으로 뛰어갔다. 어제 그가 흙을 만졌을 때 검은 마기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 마기에 아무래도 병사들이 상처를 입은 듯 보였다.
“젠장, 어제 내가 말렸어야 했는데…….”
레딘은 달려가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면서 어제 작업을 중지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되었다.
레딘이 도착했을 때 그곳에 있던 기사들이 우선 작업을 중단시킨 모양이었다. 그리고 신음을 내뱉고 있는 병사들이 손을 부여잡고 고통에 몸부림을 치고 있었다.
“단장님, 병사들의 손이 검게 물들었습니다.”
그곳을 지휘하던 기사가 다가와 말했다. 레딘은 고개를 끄덕인 후 고통에 신음하고 있는 병사들에게 다가갔다.
다행히도 십여 명만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부상을 입은 병사의 손을 보았다. 검게 변한 손이 보였고, 점점 부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레딘은 인상을 쓰며 말했다.
“어서, 병사들을 치료하라. 그리고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작업을 중단하고, 어제부터 흙을 만진 병사들도 만약을 대비해 치료를 받도록 하라.”
“네, 단장님.”
기사는 몸을 돌려 두려움에 떨고 있는 나머지 병사들을 향해 소리쳤다.
“자, 모두 작업을 중단하고 각자의 군막으로 돌아간다. 그곳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손이 이상하다고 느낀 병사들은 즉시 치료를 받도록!”
“아,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 고통에 몸부림치는 동료 병사들을 보며 슬그머니 움직였다. 그들의 눈동자는 매우 흔들리고 있었으며 다들 자신의 손을 보며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혹여, 자신도 저들과 같이 되지는 않을까 해서였다. 그때 기사가 소리쳤다.
“뭣들 하고 있어. 어서 서둘러 움직여.”
“예, 예에!”
“잠깐, 부상 병사들을 치료사에게 데리고 가.”
“하, 하지만…….”
병사들이 꺼려하는 눈치였다. 혹시라도 자신들에게 병을 옮기지는 않을까 해서 말이다. 그들의 눈치를 본 레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같은 동료가 부상을 입었는데 모른 척하겠다는 것이냐. 그러고도 베이런 후작가의 병사라고 할 수 있나! 어서 데리고 가지 못해!”
레딘의 고함에 병사들은 눈치를 살피더니 천천히 부상당한 병사들에게 걸어갔다. 양 옆으로 부상병사들을 짊어진 그들은 천천히 이동을 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딘도 즉시 몸을 돌려 베이런 후작이 있는 군막으로 향했다.
어쨌거나 이 같은 사실을 전하고 흑마법사가 오기 전까지 당분간 작업을 중단해야 한다는 것을 보고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곳에 남은 기사들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제길! 간악한 놈들!”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지?”
기사들은 분을 이기지 못하고 악을 내질렀다.
그 모습을 저 멀리 동산에서 지켜보는 두 개의 눈이 있었다. 바로 폴과 필이었다.
필은 기분이 좋은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고, 폴은 어깨가 축 늘어진 채 힘겨워하고 있었다.
필이 그런 폴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자식, 잘했어!”
그러자 평소와 달리 몸을 휘청거리는 폴이었다.
“제길, 나 건드리마.”
폴의 힘없는 말에 필이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라? 많이 힘들어?”
“으으, 보면 모르냐. 저것을 막느라 피를 얼마나 사용했는데. 아직도 피가 모자라.”
“흐흐, 알았어. 그래도 너의 피 때문에 놈들을 묶어 둘 수 있었잖아. 도련님이 칭찬해 주실 거야.”
“큭, 젠장! 칭찬보다는 피가 더 급해!”
“알았어, 알았어. 내가 피를 구해다 줄게.”
폴이 인상을 쓰며 말하자 필이 흐뭇한 얼굴로 답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