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93화 (93/125)

# 93

헬 나이츠 4권 (18화)

Episode 37 미쳐 버린 베이런 후작 (4)

“내 방? 왜 내가 여기 있지?”

“그야 이곳이 후작님의 성이니까…….”

게이런 남작이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그러자 베이런 후작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야, 나는 에페로 자작령을 공격하려던 중이었어. 게이런 남작, 그래 지금 공격하고 있는가?”

베이런 후작의 물음에 게이런 남작은 놀란 눈이 되며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부인은 눈물을 머금으며 말했다.

“여보, 도대체 왜 이러세요! 정신 차리세요!”

“무슨 소리야, 나 말짱해.”

베이런 후작은 힘이 없는 말로 계속해서 말했다. 게이런 남작은 그런 베이런 후작의 모습을 보며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베이런 후작을 잠시 잠재우고 신관과 부인, 게이런 남작이 방을 나왔다.

방 입구에서 신관을 보며 물었다.

“후작님이 왜 저러시나? 왜 예전에 있었던 일을 말씀하시지?”

신관도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글쎄요. 아무래도 일시적인 기억상실증 같습니다.”

“기억상실증?”

부인이 놀라며 말했다.

“네, 현재로써는 그것 말고는…….”

게이런 남작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 지금 베이런 후작님의 상태는 매우 심각했다. 환각 증세에 이번에는 기억상실증까지 왔다.

게이런 남작은 곧바로 신관에게 말했다.

“자네는 어서 빨리 후작님께서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하게. 그리고 마님께서는 우선 이 사실을 기사들과 병사들이 알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물론 집에서 일하는 하인과 하녀들에게도 말이죠. 가신들에게는 제가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알았네. 게이런 남작이 알아서 하게.”

“네, 마님.”

게이런 남작이 인사를 하고 급히 몸을 돌려 걸어갔다.

부인은 잠시 그 자리에 서서 생각을 하였다. 지금 베이런 후작이 저 상태라면 어쩌면 빨리 후계자를 내세울 것이다.

분명 가신들이라면 그렇게 진행시킬 것이다. 큰 아들인 필립은 현재 왕국에 있었다.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부인은 서둘러 빌슨이 있는 방으로 걸어갔다.

베이런 후작의 현재 부인은 둘째였다. 첫째 부인이 사망하고 현재의 부인이 정부인이 되었다. 첫째 부인 사이에 아들이 있는 그의 이름은 필립이었다.

그는 왕국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만약 베이런 후작이 죽으면 제일순위가 바로 첫째 아들인 필립이었다. 하지만 현재 부인은 자신의 아들인 빌슨을 내세울 생각인 것이다.

빌슨의 방에서 베이런 후작의 상태에 대해 들은 아들은 길길이 날뛰었다.

“아니, 아버지가 미쳤다니! 강경하신 아버지가 말이야!”

빌슨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 아이린과 결혼을 못하게 된 것도 억울한데 그것을 해결해 줘야 할 아버지가 저 상태이니 답답하기도 했다.

그에 반해 부인은 냉정했다.

“아들, 이번이 어쩌면 기회일 수 있다. 네 형이 왕성에 가 있는 지금 이 시기가 적기야!”

“네에? 그 말이 무슨 뜻이에요?”

빌슨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바보. 아버지가 저 상태니 당연히 후계자를 정해야 하지 않겠느냐? 아마도 분명 가신들이 후계자를 거론할 것이야. 그러니 지금을 놓치지 말고 네가 베이런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야 해!”

“하지만 엄마. 필립 형이 있잖아요.”

빌슨의 말에 부인은 답답한 얼굴이 되었다.

“답답한 녀석아. 그럼 너는 평생 이렇게 살 것이니? 당당히 베이런 가문의 후계자가 되어야 하지 않겠니, 네 형을 제치고 말이야.”

어머니의 말에 빌슨의 눈빛이 반짝였다.

“형을 제치고?”

“그래, 네가 베이런 가문의 후계자여야 해.”

“알았어요, 엄마!”

빌슨도 결심을 굳힌 듯 눈을 빛냈다.

“오냐, 가신들을 규합하는 것은 내가 할 테니. 너도 단단히 준비를 하여라.”

“네, 엄마.”

빌슨이 웃으며 말했다.

이틀이 지난 후 후작부인이 각 가신들을 만나고 다닌다는 것을 안 게이런 남작이 이를 갈았다.

“벌써부터 움직이는군. 하긴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실 분이 아니지.”

게이런 남작은 첫째 아들인 필립 쪽에 있었다. 그가 당연히 베이런 가문의 후계자이고, 그가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부인의 움직임에 긴장을 하였다.

그리고 첫째 아들 필립 쪽에 있는 가신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하였다.

“부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소. 게다가 빌슨 도련님도 말이오.”

“그렇다면 빌슨 도련님을 후계자에 앉힐 생각인 것이오?”

“저들의 움직임으로 보아 아마도 그런 것 같소.”

“허허, 이럴 수가. 필립 도련님을 두고 어찌 이런 일을…….”

“그러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소. 왕성에 있는 필립 도련님을 어서 불러들여야 하오.”

“알겠소. 지금 당장 서신을 띄우겠소.”

그렇게 게이런 남작을 중심으로 한 첫째 아들파와 부인을 중심으로 한 둘째 아들 파의 대립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한편 제이크는 유유히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 누구도 제이크를 보고도 건드리지 않았다. 지금 현재 제이크는 이곳 기사의 행색으로 있기 때문이었다.

성안의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제이크가 피식 웃었다.

“훗, 그래. 이렇게 되어야지. 그래야 에페로 자작령에 대한 신경을 끄지. 그리고 이 정도면 되었겠지?”

복도를 걸어가는 제이크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그도 베이런 후작이 쓰러지고 돌아가는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았다. 서로 자기들끼리 물어뜯기 시작했다는 것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 제이크가 의도한 일이었다.

제이크는 씨익 웃으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밝은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그래, 이 정도면 내가 할 일도 끝났어.”

다시 고개를 내린 제이크가 자신의 품속에서 검은 주머니를 꺼내었다. 그것을 손에 쥐고 툭툭 던졌다.

“후훗, 망각의 가루를 들고 나오길 잘했군.”

그리 말을 한 후 그것을 다시 품 안에 넣고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머리 뒤쪽으로 가져갔다.

“그럼 나도 슬슬 복귀해 볼까?”

그렇게 말을 하고는 유유히 후작성을 빠져나왔다.

Episode 38 저희 아가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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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페로 자작령으로 피넌 성에 있던 베일 기사단장이 500명의 병력을 이끌고 들어서고 있었다. 그들은 베이런 후작군이 모두 돌아갔다는 소식을 접하고서야 복귀를 한 것이다.

성 밖에는 아이린을 포함해 네빌 집사와 여러 가신들이 나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성에 도착을 한 베일 기사단장은 옆에 있는 부관을 보며 말했다.

“모두 여장을 풀고 충분히 휴식을 취하도록 지시를 내리게.”

“알겠습니다.”

지시를 받은 부관은 곧바로 병력을 해산시켰다.

베일 기사단장은 말에서 내려 아이린에게 다가갔다. 그는 예의를 표하며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 아가씨.”

아이린이 환한 미소를 베일 기사단장을 맞이했다.

“고생하셨어요.”

“제가 무슨 고생은요. 모든 일은 제이크 님께서 다 하셨는데요.”

베일 기사단장이 약간 멋쩍은 듯이 말했다. 그러자 아이린이 베일 기사단장의 어깨 너머를 보며 물었다.

“그런데 같이 오지 않으셨어요?”

“누구 말입니까?”

베일 기사단장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가 나섰다.

“제이크 님과 같이 오시지 않았는지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제이크 님요? 아직 안 왔습니까? 같이 오지 않았는데요. 전 복귀하라는 명령만 듣고 곧바로 왔습니다.”

“그래요.”

아이린이 약간 아쉬운 표정이 되었다.

그때였다.

폴과 필의 음성이 들려왔다.

“도련님!”

“왜 이제 오시는 것입니까?”

그 소리에 아이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도 고개를 돌렸다. 성 입구로 검은 갑옷을 입고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는 제이크가 보였다.

폴과 필이 제이크에게로 뛰어갔다. 제이크는 폴과 필을 보며 고개를 끄덕인 후 아이린 앞으로 걸어갔다. 제이크가 아이린 앞에 섰다.

“다녀왔어.”

“네, 수고하셨어요.”

아이린은 약간 수줍은 듯이 말했다. 네빌 집사와 베일 기사단장도 입을 열었다.

“무사히 돌아오셨군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베일 기사단장이 물었다. 그러자 네빌 집사도 거들었다.

“폴과 필에게서는 폐허 성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아이린도 그 뒷부분이 궁금했다. 그저 할 일이 있다며 가고 난 후 노르딘 성에 주둔하고 있던 베이런 후작군이 서둘러 다시 후작성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렇게 보고를 받고 얼마나 고민을 했던가. 도대체 무슨 마법을 부려 그들을 쫓아내었는지 정말로 궁금했다.

세 명은 눈을 반짝이며 제이크를 응시했다. 제이크는 세 사람의 시선을 받자 약간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이거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니 조금 부끄럽네.”

제이크는 어색한 웃음과 함께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아이린이 다가와 말했다.

“솔직히 말해 줘요. 어떻게 했어요?”

그러자 제이크가 손을 들며 말했다.

“자, 잠깐만. 그 일은 들어가서 하자고. 여기에 계속 서 있을 참이 아니라면 말이야.”

그제야 아이린이 깜짝 놀라며 말했다.

“어멋! 내 정신 좀 봐. 너무 반갑고 궁금한 나머지……. 우리 안으로 들어가요.”

“하하, 죄송합니다.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네빌 집사도 민망한 얼굴이 된 채 제이크를 집무실로 안내했다. 제이크는 고개를 끄덕인 후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그 뒤를 아이린과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이 따랐다.

집무실로 들어온 일행들.

제이크가 의자에 앉았고, 곧이어 차가 나왔다. 제이크 맞은편에는 아이린, 네빌 집사, 베일 기사단장이 있었다. 폴과 필은 구석에 널브러져 있었다.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아이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자, 이제 얘기해 주세요.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그녀의 물음에 제이크는 피식 웃었다.

“궁금해?”

“당연하죠. 엄청난 병력의 베이런 후작군을 단 세 사람이서 물러나게 했잖아요.”

아이린이 놀라며 말하자 제이크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냥 유령 놀이를 좀 했지.”

“유령 놀이?”

세 사람이 동시에 말하며 고개를 갸웃했다. 그 모습에 제이크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것이 뭔 줄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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