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95화 (95/125)

# 95

헬 나이츠 4권 (20화)

Episode 38 저희 아가씨,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3)

3

“젠장, 그런 거였어. 그 위험 신호가 이런 것을 말하고 있었어.”

집무실을 빠져나온 제이크는 당황한 얼굴로 복도를 걸어가며 중얼거렸다.

“뭐? 결혼?”

제이크는 걸어가던 걸음을 멈추며 다시 한 번 소리쳤다. 여태까지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니, 인간 세상에 나온 후로는 한 번도 그런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다.

갑작스런 결혼 얘기가 나오고 그 상대자가 아이린. 작위를 잇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제이크는 마음의 준비도 되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휴가도 거의 끝나가고 있는 상태였다. 제이크는 고민을 하며 복도 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저절로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때 폴과 필이 달려왔다.

“도련님.”

“놀러 가요, 도련님.”

하지만 제이크는 두 사람의 말에 대꾸를 하지 않았다. 잔뜩 인상만 찡그린 채 창밖만 바라보았다.

“에효.”

제이크의 입에서 또다시 한숨이 흘러나왔다. 폴과 필은 그런 제이크의 모습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잉? 왜 그러세요?”

“무슨 고민이라도 있으세요?”

폴과 필이 궁금증을 느끼며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고개를 돌려 두 사람을 보았다.

“그러니까 그게……. 아니다, 되었다.”

제이크는 폴과 필을 보며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둘의 얼굴을 보니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졌다. 분명 온 동네방네 떠들고 다닐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뭔데요? 말해 보세요.”

“요즘 들어 왜 이렇게 비밀이 많아요.”

필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 그러자 제이크가 움찔했다.

“숨기는 것이 있다면 속 시원하게 말씀해 주세요.”

필이 말했다. 제이크는 말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하지만 이 두 사람에게 말해서 무얼하겠냐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됐어. 오늘은 너희들끼리 놀아라.”

제이크는 말을 하고는 복도를 걸어갔다. 걸어가는 그의 걸음이 유난히 힘들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폴과 필은 고개를 흔들었다.

“왜 저러지?”

“나야 모르지. 뭐 어쨌든 우리는 놀러 가자.”

폴이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래.”

필도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 아이린과 제이크의 결혼 얘기는 성 전체에 퍼져 나갔다. 누가 소문을 퍼뜨렸는지 모르겠지만 일파만파로 펴졌다.

이에 곤혹스러운 것은 제이크였다. 소식을 접한 가신들이 하나둘 찾아와 매달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이크 님밖에 없습니다.”

“아이린 님을 싫어하시는 것입니까?”

“제발 결혼을 해 주십시오. 이왕 도와주시는 김에 화끈하게 도와주세요.”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가신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제이크를 괴롭혔다. 그 후로 제이크는 몰래몰래 숨어 다녀야 했다. 아이린과도 만남을 피했다.

아직 마음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계속적인 부담이 오자 결국 몸을 피하는 방법밖에 없었다. 누구는 야속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제이크에게는 이럴 수밖에 없었다.

간신히 가신들을 피해 지붕으로 올라간 제이크는 동쪽 하늘에 떠오르는 달을 바라보았다.

“후우, 내 꼴이 참 우습네. 내가, 그것도 헬 나이츠인 내가 마계의 군단장인 내가, 뭐가 무서워서 사람을 피해 다녀. 참내.”

생각하면 할수록 기가 막혔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결혼에 대해 생각을 했다. 가신들이 저렇게 성화인 이유도 알고 있다. 가문의 사정상 어쩔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제이크는 현재 휴가를 얻어 나온 상태이지 않는가.

“후우, 잠시 휴가를 왔는데. 여자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마계에서도 수많은 매혹적인 마족들이 접근했지만 다 거절했다.

그땐 인간 여인을 아내로 맞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계에 인간 여인이 있을 리 만무했다. 그래서 결혼 생각을 접었다.

그리고 인간 세상에 나와서는 다시 돌아갈 생각에 결혼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차피 마계로 돌아가야 되고, 언제 또다시 인간 세상에 나올지도 모르는 실정이었다.

그러니 무슨 결혼이겠는가.

제이크가 깊은 생각에 잠겨 고민에 빠져 들었다. 그런데 문뜩 아론이 떠올랐다. 그를 살릴 수만 있다면 어쩌면…….

제이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곧장 몸을 날려 아론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창문을 통해 아론이 누워 있는 침상에 도착했다. 그는 재빨리 아론의 상태를 살폈다. 상태를 살피던 제이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현재 아론의 상태는 이미 생명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자신의 능력으로도 살릴 수가 없었다. 꺼져 가는 생명력은 이제 보름이면 끝인 것 같았다.

“하아, 너무 늦었군. 하지만 방법은 없지 않지만…….”

제이크는 아론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죽어 가는 아론을 살릴 방법은 하나였다. 마왕으로부터 인정받은 권능으로 아론을 헬 솔져로 만드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폴과 필을 보다시피 인간이 될 수 없다. 반마족의 상태로 피를 갈구하며 사람의 인성을 상실하게 된다. 하물며 이렇듯 생명력이 꺼져 가는 상태라면 사람의 인성은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살아날 수는 있다. 하지만 그걸 과연 아이린이 좋아할까? 그 의문에 도달하자 제이크는 쉽게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는 한참이나 아론을 바라보고는 이내 고개를 흔들며 몸을 돌렸다. 방문을 열자 그 앞에 아이린이 보였다. 아이린의 눈이 크게 떠졌다.

“어! 제, 제이크 님.”

“으응, 아, 안녕.”

갑자기 어색해진 두 사람. 하긴 결혼 얘기가 온 성안에 돌고 있는데 어색하지 않으면 이상했다. 하물며 제이크는 아이린을 거의 피하고 있지 않는가.

아이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오, 오빠를 만나셨나요.”

“응.”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는 몸을 뒤로 뺐다. 아이린이 방에 들어올 수 있게 했다. 아이린이 방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누워 있는 아론을 바라보았다.

“오빠는 어때요?”

아이린이 물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답했다.

“솔직히 말해야겠지?”

“네.”

“혹시나 하는 희망 같은 것은 품지 마. 하지만… 미안.”

제이크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는 고개를 흔들며 사과했다. 헬 솔져로, 그것도 사랑하는 오빠를 인성이 없는 그런 자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한 자체가 문제였다.

제이크의 말을 들은 아이린이 손으로 입을 가렸다. 그사이로 흐느낌이 들려왔다.

“흐흑.”

제이크의 눈이 가라앉았다.

아이린은 한참을 바라보았다. 눈물은 어느 정도 멈춘 상태였다.

“하아.”

아이린이 한숨을 내쉬었다.

큰오빠는 가망성이 없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역시 자신이 결혼하는 것밖에 없었다. 그 사실을 안 아이린은 답답하기만 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몰라주는 제이크도 답답했다.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한 방울 두 방울 눈물이 떨어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제이크는 괜히 마음이 찡해졌다.

“저, 우리 잠시 걸을까?”

제이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순간 아이린은 눈물을 훔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이크와 아이린은 방을 나서며 밖으로 향했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정원을 거닐었다. 밝은 달빛이 비추고 있어 어둡지는 않았다. 정원을 걷는 내내 두 사람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서로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그러다가 아이린이 먼저 용기를 내어 말했다.

“부, 부담스럽죠.”

“응? 뭐가?”

“결혼 얘기요.”

“아.”

제이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 모습을 보는 아이린은 저도 모르게 가슴이 콩닥콩닥거렸다. 무슨 말을 할지 잔뜩 기대가 되었다.

“아니, 뭐…….”

제이크는 어색한지 말을 얼버무렸다. 그 모습에 아이린은 다소 실망한 얼굴이 되었다.

“제가 가신들에게 잘 말해 놓을게요. 다시는 제이크 님을 괴롭히지 않을 거예요.”

아이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자신도 모르게 눈에 눈물을 맺혔다. 자신의 마음도 몰라주는 제이크가 너무나도 야속했다.

그래 인연이 아니라면 이 사람을 놓아 주는 것이 현명했다. 아이린은 속으로 그리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제이크의 입에서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왔다.

“나라도 괜찮다면…….”

“네에? 방금 무슨…….”

아이린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제이크가 쑥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손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아니, 나라도 괜찮다면 결혼을 하겠다고.”

거의 기어들어 가는 말로 대답했다. 그 순간 아이린의 얼굴이 환해졌다.

“당연하죠!”

아이린은 그대로 제이크의 품에 안기었다. 자신의 품으로 달려 들어온 아이린을 본 제이크는 순간 당황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 아이린…….”

“가만히 계세요. 그냥 지금은 절 안아 주세요.”

아이린이 대담하게 말했다. 제이크는 그런 아이린을 보며 살짝 놀랐지만 이내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등을 두 손으로 살포시 안았다.

하늘에 떠 있는 둥근 달이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보며 부끄러운지 살짝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Episode 39 결혼식 (1)

1

아이린의 마음을 받아 준 제이크는 그 다음 날 가신들이 모인 자리에 불려 나갔다.

제이크가 정식으로 아이린과 결혼을 하겠다고 하자 가신들을 박수를 치며 축복을 보내 주었다. 아이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푹 숙인 채 부끄러워했다.

“하하하! 이리 경사로운 날이 다 있습니까. 이제야 에페로 자작령이 제대로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암, 그렇고말고요.”

가신들이 저마다 박수를 쳤다. 기뻐했다. 그중에서 제일 마음이 뿌듯한 사람은 바로 네일 집사였다.

그는 이제야 한시름 놓는 듯 아이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자작님. 하늘에서 지켜보고 계십니까. 아가씨께서 드디어 평생 반려자를 찾았습니다. 정말 잘되었죠?’

네빌 집사의 눈가에 어느새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의 시선이 다시 제이크에게 향했다. 싸울 때는 냉정하면서도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달랐다.

부끄러운지 연신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여러 가신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제이크가 에페로 자작가의 수호자나 다름이 없었다.

연일 자작가를 위해 힘써 주고, 위태롭기만 했던 자작가를 다시 일으켜 준 사람이 아닌가. 항상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아가씨와 짝이 되어 함께 서 있는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그도 두 사람에게 걸어갔다.

“아가씨…….”

네빌 집사는 인자한 얼굴로 아이린을 불렀다. 아이린도 그를 넌지시 바라보았다.

“집사님…….”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말을 꺼내지 못했다. 오직 눈빛만으로 대화를 하는 듯 보였다.

그렇게 바라보다가 이내 제이크에게 시선을 던졌다. 제이크도 그를 보며 미소를 보였다. 네빌 집사가 제이크의 두 손을 살포시 잡았다.

“제이크 님, 저희 아가씨를 행복하게 해 주세요.”

“흐음. 당연한 소리를 하고 그래.”

제이크는 부끄러운지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그 모습에 아이린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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