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 나이츠-104화 (104/125)

# 104

헬 나이츠 5권 (4화)

아크는 시장에 내려와 있었다.

그는 깊게 눌러쓴 후드 사이로 눈빛을 반짝이며 여기저기 구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전에는 이렇게 활성화되지 않았는데…….”

아크는 너무도 변해 버린 이곳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는 듯하였다.

“하긴 이곳을 떠난 지도 어언 10년이 지났으니…….”

조용히 읊조리는 아크의 얼굴에 깊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잠깐 생각에 잠겨 있던 아크의 기척에 곧 무언가 강한 무형의 기운이 느껴졌다.

“잉?”

아크는 기운의 주인을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그러고는 어느 한 지점에 멈춰 섰다. 천천히 고개를 든 아크는 어느 건물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 뚱뚱이와 길쭉이를 발견하였다.

‘저 녀석들은 뭐지?’

아크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그들 주위에 풍기는 검은색 기류를 느낄 수 있었다. 순간, 아크의 눈빛이 차갑게 내려앉았다.

“악의 기운이 느껴져. 그것도 강한!”

아크가 낮게 중얼거렸다.

필과 폴도 아크를 발견하고 중얼거렸다.

“처음 보는 녀석인데?”

“그러게. 제법 강한 인간이야.”

“느껴지는 기운도 기분 나쁘고.”

“맞아. 그 뭐냐, 신성의 기운인 것 같은데…….”

“저 인간, 어쨌든 강해.”

“동감이야.”

폴과 필이 얘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 아크는 시장터 중앙에 서서 두 사람의 시선을 받고 있었다.

“정말 대신관의 말이 맞다는 말인가. 이곳에 악의 종자들이 있다는 것인가…….”

아크는 혼잣말을 하고는 일단 주위를 살폈다.

“이곳은 사람이 너무 많다. 일단 다른 곳으로 옮겨야겠다.”

그렇게 결심을 한 아크는 일단 녀석들을 쳐다보았다. 그때까지 아크를 쳐다보고 있던 필과 폴은 녀석이 자신들을 똑바로 쳐다보고는 몸을 돌리자 히죽 웃었다.

“오호라, 따라오라 이거네?”

“새끼, 우릴 보고도…… 배짱이 있네.”

“따라가야겠지?”

“당연하지.”

필과 폴은 서로 마주 보더니, 곧 아크를 따라갔다. 대로가 아닌 지붕을 통해서 이동하였다.

그렇게 한참을 이동한 아크는 어느 한적한 곳에 도착하였다. 그 뒤에 곧바로 필과 폴이 도착했다. 필과 폴은 등을 돌린 채 서 있는 아크를 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마치 재미난 장난감을 만난 것처럼 즐거워 보였다.

반면, 아크는 인상을 잔뜩 찡그리고 있었다. 이처럼 악의에 가득 찬 기운을 가진 자들은 여태껏 처음 만나보는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킥킥킥.”

“으헤헤헤, 재밌겠다.”

필과 폴은 웃음기 가득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아크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네놈들은 누구냐?”

아크가 낮게 중얼거리며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천천히 벗었다. 아크의 얼굴이 드러나자 필과 폴이 고개를 갸웃하였다.

“응? 뭐지? 익숙한 얼굴인데…….”

“너도냐? 나도 그런데…….”

두 사람은 서로 바라보다가 필이 아크를 향해 물었다.

“야, 어디서 우리 만난 적 있냐?”

“난 처음 보는데.”

아크가 바로 말했다.

“그래?”

필이 다시 고개를 갸웃하였다. 그러기를 잠깐. 폴이 필의 어깨를 툭, 쳤다.

“돌머리 굴려봤자 돌 부스러기밖에 더 떨어지냐. 그냥 쓸데없는 생각 말고 한판 붙어!”

“맞아, 한판 떠야지!”

그제야 필과 폴은 여기 온 목적을 떠올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은 아크도 더 이상 말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로브를 살짝 젖혀 허리에 찬 검을 빼 들었다. 묵직한 중검이 아크의 허리에서 빠져나왔다.

“자아, 시작하지!”

아크가 나직이 말을 하며 앞으로 걸어갔다.

필과 폴의 눈빛이 반짝였다.

“히힛, 싸운다.”

“싸워, 싸운다고.”

두 사람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런 후, 두 주먹을 말아 쥐고는 다가오는 아크를 향해 빠르게 쇄도해 나갔다.

“그럼 간다.”

어느새 아크의 눈앞까지 다가온 필과 폴이 동시에 주먹을 내찔렀다. 아크는 움찔하며 중검을 들어 몸을 보호했다.

터엉! 텅!

두 개의 주먹이 중검의 검면을 강타하였다. 중검에서 전해지는 묵직한 기운이 손을 통해 전해졌다. 하지만 굳건한 두 다리로 충격을 버티며 중검을 휘둘렀다.

필과 폴은 동시에 뒤로 몸을 날렸다.

그러고는 또다시 교차하며 아크를 향해 돌진하였다.

아크는 갑자기 빨라진 두 사람의 공격에 살짝 당황하였다.

‘이, 이런 빠름은…….’

아크의 눈이 쫓아가지 못했다. 아크는 빠르게 교차하며 움직이는 폴과 필을 이리저리 고개를 돌려가며 확인하였다. 하지만 눈으로 쫓아가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사이 폴과 필은 마치 쌍둥이마냥 한 몸처럼 움직이며 아크를 마치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히히힛, 재미있다. 즐거워. 안 그러냐, 필?”

“그래그래, 재미있어. 이게 얼마 만에 싸우는 거람.”

필과 폴은 정말 즐거운 듯 싸움에 임했다. 반면, 아크는 정신이 없었다. 사방에서 몰아치듯 공격을 퍼붓는 두 사람 때문에 점점 정신이 없어졌다.

‘으윽, 이, 이럴 수가……. 녀석들이 이렇게 강했나?’

퍽, 퍼퍼퍼퍽!

“으윽!”

두 사람의 완벽한 연계 공격에 아크는 제대로 막지 못하고 타격을 허용하였다. 아크는 작은 신음을 흘리며 무릎을 꿇고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 앞에는 매우 신난 표정으로 통통 뛰고 있는 필과 폴이 있었다.

“일어나! 일어나!”

“아직 쓰러지는 것은 아니지? 좀 더 즐겁게 해주라.”

필과 폴의 말에 아크는 와락 인상을 찡그렸다.

“즐겁게 해달라? 훗, 고작 나를 놀잇감으로밖에 생각하지 않는단 말이지? 재미있군.”

아크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천천히 일어섰다.

“좋아, 놀아달라면 놀아줘야지.”

아크는 중검을 자신 앞에 푹 박았다. 그러고는 걸치고 있던 낡은 로브를 벗어 던졌다. 그러자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성기사 갑옷이 드러났다. 가슴 정중앙에 금색으로 박혀 있는 십자가는 성스러움마저 깃들어 있었다. 겉에 입고 있던 낡은 로브와는 완전 상반된 것이었다.

아크는 박아 놓았던 중검을 천천히 빼 들며 정면으로 겨누었다.

“자! 다시 와라!”

2

필과 폴은 다소 달라진 아크의 모습에 약간 당황한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곧 입가에 짙은 미소가 걸렸다.

“후후, 좀 더 재미있겠는데?”

“그러게. 진즉에 그리 나왔어야지.”

필과 폴은 그저 재미나게 놀면 되었다. 아크의 정체가가 무엇이든, 어떻게 변하든 상관이 없었다.

아크는 중검을 든 채 정면을 응시하였다. 필과 폴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금 전과 같은 방식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사사삿―!

핑!

휙, 휘릭!

폴과 필이 교차하며 주위를 맴돌았다. 아크는 가만히 중검을 든 채 정면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에 폴과 필이 동시에 사방에서 주먹을 내찔렀다. 아크는 자신 가까이 다가온 폴과 필의 기척을 감지하고 중검을 그대로 내리꽂으며 외쳤다.

“홀리 오러!”

그 순간, 중검에서 흘러나온 강한 빛이 아크 주위로 퍼져 나갔다. 폴과 필은 강한 빛에 순간 눈이 안 보였다. 동시에 빠르게 움직이던 몸이 순간 멈춰 버렸다.

“으윽? 뭐, 뭐야?”

“누, 눈부셔!”

폴과 필이 바동거릴 때, 아크의 중검이 움직였다.

부웅― 붕!

거대한 중검은 멈춰 버린 폴과 필을 그대로 베어버렸다. 아니, 베어버렸다기보다는 강타한 것이 정확한 표현이었다.

텅! 터텅!

“으악!”

“크윽!”

중검에 강타당한 폴과 필은 그대로 뒤로 날아가 몇 바퀴를 뒹굴었다. 뿌연 먼지를 일으키며 각자 반대로 날아간 필과 폴은 오랜만에 느껴보는 통증에 얼굴을 찌푸렸다.

“아야, 아프다.”

“큭! 아픔, 오랜만에 느껴보네.”

바닥을 뒹굴던 필과 폴이 서서히 일어났다. 하지만 그들의 얼굴엔 살짝 찡그러진 표정만이 전부였다. 오히려 기쁨이 가득한 듯했다.

“헤헤헤, 그래, 이리 나와야지.”

“정말 오랜만에 즐겁네.”

두 사람이 중얼거리자 이번에는 아크가 낮게 말했다.

“과연 그 즐거움이 어디까지 갈까?”

아크는 이번에는 기다리지 않았다. 중검을 내리깔며 기합을 외치고는 필에게 먼저 쇄도했다.

“타핫!”

필은 자신에게 먼저 덤벼드는 아크를 보며 당황하였다.

“어?”

그것도 잠시. 순식간에 앞으로 다가온 아크는 그대로 중검을 사선으로 쳐올렸다. 필은 미처 방비할 틈도 없이 중검에 의해 하늘 높이 띄워졌다.

텅!

터푸덕!

“피이일―!”

폴이 필을 부르며 재빨리 아크에게 달려가 주먹을 내찔렀다. 하지만 아크도 이미 알고 있던 터라 피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폴의 가슴을 향해 중검을 가로로 그었다.

폴은 주먹을 내찌른 상태로 가슴에 강한 통증을 느끼며 뒤로 날아갔다. 한참 날아가던 폴은 무릎을 꿇었다. 그는 잔뜩 인상을 찡그리며 고개를 들어 필의 상태를 확인하였다.

필이 꿈틀거리며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서야 자신도 몸을 일으켰다.

“필, 괜찮냐?”

“크윽, 드럽게 아프네.”

“괜찮은 것 같네.”

폴은 히죽 웃으며 아크를 바라보았다.

“제법 하네? 우릴 이렇게 몰아붙이고 말이야.”

“아직 끝났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크는 이번에는 아주 끝내 버릴 심산인 듯 중검에 서서히 홀리 오러를 주입시켰다. 그것을 본 폴이 살짝 아미를 찡그렸다.

“야야, 우릴 너무 자극하지 마. 그냥 즐겁게 놀자고 그러는 건데, 죽자고 달려들면 어떻게 해?”

“악의 종자는 신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신전의 일이다.”

아크는 그다지 신앙심이 깊지 않은 신전의 교리까지 들먹이며 이야기하였다.

“쳇, 그냥 놀자고 한 건데.”

“야, 폴. 저 사람 꽤 강해. 어떻게 할 거야?”

반대편에 있는 필이 소리쳤다. 그러자 폴이 말했다.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그냥 덤벼!”

그 말을 시작으로 필과 폴은 다시 덤벼들었다. 하지만 홀리 오러를 두른 아크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았다.

휘릭―!

펑! 퍼퍽!

아크는 필과 폴의 공격을 모두 막아내며 오히려 두 사람을 밀어붙였다. 처음에는 폴과 필이 아크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반대가 되었다.

탓!

“필, 뒤로 물러나!”

폴이 말했다. 폴 또한 뒤로 물러났다. 두 사람은 살짝 호흡을 고르더니, 이내 조용히 말했다.

“하아…… 인간, 세다.”

“알고 있어. 그래도 재미나지 않아?”

“재미는 있지. 그런데 이러다가 제어가 풀리는 것은 아닌지 몰라.”

“글쎄? 아직 밤도 아니잖아?”

폴이 힐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였다. 필도 하늘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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