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9
헬 나이츠 5권 (19화)
제이크 백작가의 영지는 영지전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그 선두에서 아크가 열의를 가지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미 후버드 후작에게도 싸워보자는 의사를 전한 상태였다. 그 소식을 전하자마자 후버드 후작의 군대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움직였다.
아크 또한 그에 맞춰 기사와 병사들을 준비시켰다. 제이크와 아이린, 네빌 집사도 그 외적인 부분에서 도움을 주었다.
필과 폴은 전쟁을 한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기뻐하며 어서 빨리 싸우러 나가자며 떼를 썼다. 그런 그들을 진정시키는 역할은 제이크의 몫이었다.
그의 눈빛 한 번에 필과 폴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그사이, 아이린은 네빌 집사와 함께 전쟁 동안 먹을 물과 음식, 그리고 장비까지 하나하나 체크해 나갔다.
그렇게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을 때, 경비를 서고 있던 병사가 소리쳤다.
“왕궁에서 온 급한 전령입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네빌 집사가 왕궁에서 온 전령을 맞이하였다.
“어서 오십시오.”
“제이크 백작님은 어디 계십니까?”
“지금 집무실에 계십니다.”
“국왕 전하의 긴급한 전령입니다. 직접 전해야 하니 안내해 주십시오.”
“아, 알겠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네빌 집사는 고개를 갸웃하며 의아해했다. 지금 하버트 왕국의 후버드 후작과 영지전을 펼치려고 하는 와중에 갑자기 국왕 전하의 전령이 찾아온 것이 이상했던 것이다.
네빌 집사는 잔뜩 의문을 품으며 제이크가 있는 집무실로 향했다.
똑똑똑.
“네빌입니다.”
“들어와.”
집무실 문을 열고 네빌 집사가 안으로 들어섰다. 집무실은 이번 영지전에 대한 준비로 아이린, 아크, 제이크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제이크가 묻자 네빌 집사가 바로 말했다.
“왕궁에서 급한 전령이 도착하였습니다.”
“왕궁에서? 왜 하필 지금?”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급한 전갈이라면서 백작님께 직접 전달해야 한다고 합니다.”
“알았어. 들여보내.”
“네.”
네빌 집사가 밖으로 나가 전령을 안으로 들여보냈다. 전령은 안으로 들어와 제이크 앞에 섰다. 얼마나 급히 달려왔는지 그의 갑옷 곳곳에 먼지가 자욱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는 품에서 서신을 꺼내 제이크에게 내밀었다.
“폐하께서 직접 전해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제이크는 그것을 받아 들고 봉인을 뜯었다. 서신을 펼쳐 내용을 확인하는데, 제이크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는 서신을 와락 구기며 던져 버렸다.
“미친 거 아냐?”
제이크의 목소리에 아이린이 급히 구겨진 서신을 집어 들고 내용을 확인하였다. 그 내용은 왕국의 기사인 아크는 이번 영지전에 참여시키지 말라는 내용이었다. 혹여 영지전에 왕국의 기사가 참여했다가 자칫 국가전으로 발전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만약 자신의 말을 무시하고 참여시켰다가는 왕국을 적으로 돌릴지도 모른다는 말도 함께 적혀 있었다.
아이린은 구겨진 서신을 들고 부르르 떨었다. 옆에 있던 아크도 서신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아나, 씨팔! 국왕이 이래도 돼? 이따위 왕국의 기사 칭호 도로 가져가라고 해! 씨팔, 이딴 칭호 때문에 내가 얼마나…….”
아크가 열을 내며 소리쳤다. 아이린도 선뜻 위로를 하러 나서지 못하였다. 그녀도 이건 해도 너무한 처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게요, 왕국의 기사 칭호가 이런 족쇄가 될 줄 알았다면 받지 말 걸 그랬어요.”
아이린도 처음으로 서운한 감정을 내세웠다. 제이크도 분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의 눈동자가 검게 변하였고, 그의 몸 주위로 검은색 마기가 일렁거렸다.
국왕의 서신을 전하러 온 전령에게 그 마기가 쏟아졌다.
“으으으윽…….”
전령은 검은 마기가 자신의 몸을 감싸자 당황하였다. 그러다가 목이 조여지자 손을 부르르 떨며 곧 숨이 끊어질 듯 보였다. 아이린이 그 모습을 보지 않았다면 그 전령은 마기에 의해 몸이 가루로 변해 버렸을지도 몰랐다.
“여보.”
아이린이 제이크의 팔을 붙잡았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제이크의 눈동자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오며 아이린에게 향했다. 전령을 감싸고 있던 검은 마기도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전령은 바닥에 쓰러진 채 기침을 하였다.
“콜록, 콜록, 콜록!”
제이크가 그에게 다가갔다. 그러고는 무릎을 꿇고 있는 전령에게 귓속말을 하였다.
“가서 국왕에게 전해. 그냥 난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고. 그런데 자꾸만 날 조용히 살게 내버려 두지 않는지 그에 대해 묻겠다고 말이야. 이 전쟁을 끝내고 조만간 찾아가겠다고 전해.”
제이크는 나직이 속삭였지만, 그 말을 듣는 전령의 몸은 부르르 떨렸다. 눈동자에는 공포심마저 들어 있었다. 제이크의 말이 끝나자 전령은 고개를 빠르게 끄덕이고는 몸을 일으켜 집무실을 나갔다.
그런 모습에 아이린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
“뭐라고 했어요?”
“아니야. 그냥 잘 알겠다고 국왕에게 전하라 했어.”
제이크가 웃으며 말을 했지만, 아이린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제이크가 그렇게 경우 없는 짓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때, 제이크가 박수를 쳐 주의를 환기시키며 말했다.
“자자, 정신들 차리자고. 이제 상황이 바뀌었으니, 그에 맞게 다시 계획을 세워봅시다.”
제이크의 말에 아이린과 네빌, 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크는 자꾸만 자신 때문에 일이 틀어지자 더욱 미안해하였다.
“매제, 내가 면목이 없습니다. 이번 전쟁이 끝나면 왕국의 기사 칭호는 당장에 돌려주겠습니다.”
“아니, 그러지 마. 국왕과의 담판은 내가 지을 테니, 처남은 이번 보급을 책임져 줬으면 좋겠는데. 그리해 줄 수 있지?”
“다, 당연합니다.”
“그리고 있다가 따로 나 좀 봐.”
제이크의 말에 아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3
회의를 마친 아크는 지하 연무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 연무장 입구에 도착한 아크는 문을 열고 아래로 내려갔다.
지하 연무장은 횃불로 내부를 밝히고 있었다. 그 중앙에 제이크가 서 있었다.
“매제, 저 왔습니다.”
“아, 처남.”
제이크가 반갑게 그를 맞이하였다. 아크는 넓은 지하 연무장을 바라보며 잠시 눈을 반짝였다.
“이곳에 이런 연무장이 있다니, 조금 놀랐습니다.”
“하하하, 다행이지 않나. 내가 연습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이 말이야.”
“그보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자꾸 안 좋은 일만 생기고…….”
아크는 진심으로 미안해하였다. 동생을 위해, 영지에 도움을 주기 위해 왔는데, 자꾸만 일이 꼬여가고 있었다.
“신경 쓰지 마. 미친놈들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때 그냥 후작가도 처리해 버리는 것인데…….”
제이크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 당시는 여러 사정상 여건이 되지 않았다. 돈도 없을뿐더러 그만한 병사들도 없었다. 딱 백작가를 흡수시키는 것이 한계였다.
물론 지금의 상황이었다면 베이런 후작가도 집어삼켰을 것이다. 그런데 아크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차라리 그럽시다. 후버드 후작가를 집어삼켜 버립시다.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말입니다.”
“뭐?”
아크의 입에서 의외의 말이 나오자 제이크는 눈을 크게 떴다.
“사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하버트 왕국의 후버드 후작에 대해서 들은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얘기?”
제이크가 관심을 가지며 물었다.
“후버드 후작은 원래 하버트 왕국 왕비의 오라비입니다. 그 덕에 출세하여 이렇듯 커버린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너무 커버렸다는 것입니다. 왕비의 뒤를 믿고 너무 안하무인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국왕이 왕비의 오라비인 그를 어찌할 수도 없었고, 그래서 변방 국경 지역으로 보내 버린 것입니다. 하지만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바깥에서는 가만히 있겠습니까. 변방으로 쫓겨났다는 분풀이를 주변 마을과 영지들에게 해 댔습니다. 게다가 뒤로 챙기는 어마어마한 재화는 국왕도 모를 정도라고 합니다. 그 때문에 국왕은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왕비 때문에 어떻게 할 수도 없고 말이죠. 그런데 이번 기회에 매제께서 후버드 후작을 처리해 준다면 하버트 국왕으로서는 손대지 않고 코를 푸는 격일 것입니다.”
“으음…….”
제이크는 아크의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대로 영지전을 통해 후작령을 차지해 버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하버트 왕국의 국왕이 들고일어난다면 그 또한 문제가 되었다.
그렇지만 아크가 말한 대로 국왕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졌다. 녀석의 영지를 차지하거나, 아니면 몰래 녀석을 처리해 준다면…….
제이크가 생각을 하고 있는 사이, 아크가 말을 덧붙였다.
“만약에 후버드 후작령의 상당수를 차지한다면 하버트 왕국은 물론이고, 마론 왕국에서도 함부로 굴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제이크는 아크의 제안이 왠지 솔깃하였다.
“알았어. 우선 하버트 왕국 국왕의 진짜 의중을 떠보면 되겠지.”
제이크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의 말을 들은 아크가 물었다.
“매제가 직접 찾아가 볼 겁니까?”
“아니, 필과 폴, 두 녀석을 보낼 생각이야.”
“그 두 녀석을요?”
아크의 눈이 커졌다. 그러다가 이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사고는 치지 않겠죠?”
“걱정 마, 고문하는 데에는 도가 트인 녀석들이니까. 죽을 만큼 공포를 심어줘서 약간의 후유증이 남지만…….”
제이크는 끝말을 흐렸다. 아크도 다 듣지는 못했지만, 그 두 녀석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그때, 문득 아크는 자신이 왜 이곳으로 왔는지에 대해 궁금증이 들었다.
“아, 맞다. 절 여기에 부른 이유가 무엇입니까?”
“아, 그건 자네에게 검술을 좀 배워볼까 해서 말이야.”
“네에? 검술요?”
“으응, 그것도 성기사 검술을 말이야.”
순간, 아크는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손가락으로 귀를 후빈 후 다시 물었다.
“정말 제게 검술을 배우고 싶단 말입니까?”
“그렇다니까.”
“아니, 나보다 강하신데, 왜요?”
“난 사실 파괴를 목적으로 하는 검술이니까. 게다가 오랫동안 피 맛을 보면 이성을 상실해 헬 나이츠로 변할지도 몰라. 그리되면 그곳은 지옥이 되어버려. 물론 그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지만 지금은 그럴 상황이 아니라서 말이지.”
“그럴 상황이 아니라는 말이 무엇입니까?”
“그건 지금 당장 말해줄 수가 없어. 어쨌든 가르쳐 줄 거야, 말 거야?”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상성이 맞겠습니까? 어둠과 빛인데…….”
“하하하, 괜찮아. 어차피 마기는 갈무리할 것이고, 무엇보다 난 어둠이기 전에 빛에 있었거든. 그러니 걱정 마.”
“알겠습니다. 매제가 원한다면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래, 고마워. 어쨌든 난 당분간은 인간 기사들처럼 싸우는 것을 배워야 하거든. 이곳에 남아 있을 아이린과 애들을 위해서는…….”
뒷말은 아주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으응? 뭐라고 했습니까? 뒷말을 듣지 못했습니다.”
“아니, 열심히 해보겠다고.”
“아아,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검술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런 후, 제이크는 아크에게서 신성제국의 성기사들만 할 수 있는 성기사 검술을 배웠다. 워낙에 감각이 있고 센스가 있어 한 번 가르치면 곧바로 흡수를 해버렸다.
그가 배우는 속도에 아크는 놀랐다. 약 일주일 만에 제이크는 아크가 가지고 있던 성기사 검술을 거의 마스터한 것이다.
아크가 보기에 제이크의 전투 센스는 가히 신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리고 서서히 전쟁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