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도 다시 매니저!-120화 (120/200)

제120화. 휴식 (1)

“그래서 또 뭐야?”

이진성 실장이 포기한 얼굴로 내게 물었다.

“어제 나라 댄싱 투나잇 끝나고 숙소 데려다줄 때 잠깐 이야기한 내용인데….”

“아, 맞네. 녹화는 잘했어?”

이진성 실장이 다른 내용보다 먼저 녹화에 관련해서 내게 물어왔다.

“결과는 좀 아쉬운데 본인은 만족하는 것 같아요.”

“결과가 아쉬우면 그게 다지. 딴 게 있나? 몇 등이었는데?”

“결과는 4등이었거든요.”

“괜히 나갔나. 4등이면 좀 그런데.”

이진성 실장이 4등이라는 소식을 듣고 아쉬워했다.

이진성 실장의 스탠스에서 알 수 있듯 이 바닥은 항상 과정보다 결과다.

“그건 아닌 거 같아요.”

“아무리 그래도 방송은 화제야. 4등이면 4팀 중 꼴등이잖아. 화제성도 안 나온다고.”

“상업적으로 보면 그렇지만요.”

“회사에서 상품만 봐야지 뭘 봐?”

“…….”

이진성 실장이 잘못됐다고 말할 순 없다. 예전에 나도 비슷하게 생각했듯이.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녹화에 대한 건 이야기가 얼추 끝난 것 같으니 내 본론을 이야기할 차례다 싶어 말을 꺼냈다.

“아, 팀장님 그래서 말인데요.”

“그래, 뭔데?”

“어제 나라가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꺼내서 좀 생각해 봤는데요.”

“여행?”

“네.”

“가면 되지 뭘.”

이진성 실장이 무슨 문제냐는 듯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애들 단체로 같이 가서 추억 쌓고 싶다길래….”

“야. 여기가 학교냐?”

내 말에 이진성 실장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말했다.

이진성 실장의 말에서 분노 섞인 기색을 감지해 나도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아뇨, 아뇨. 그러니까 저는 이걸 콘텐츠로 기획했으면 해서요.”

“콘텐츠?”

“네.”

내 말에 이진성 실장이 많이 누그러트린 어투로 계속 해보라는 듯 고개를 턱짓하며 말했다.

일단 한고비 넘겼고.

“이미지 소모 생각해서 애들 방송 잘 안 돌리는 것도 아는데요, 노래가 터지면서 꼭 그렇지만도 않잖아요. 화제성도 아깝고.”

“그런데?”

내 말에 이진성 실장이 호기심을 비췄다.

여기까지 왔으면 이제는 살살 약을 팔아야 할 시간이다.

“그래서 해외든 국내든 애들끼리 여행 보내고 애들끼리 케미나, 혹은 얘네를 좀 더 집중 조명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요.”

“그거야 걔네가 우리랑 쭉 가는 애들이면 괜찮은 기획인데 그게 아니잖아.”

이진성 실장의 이야기에 잠깐의 혼란이 왔다.

이진성 실장의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휴식기에 아예 노는 것보다는 좀 더 매력을 보여주는 편이 좋을 거 같아서요. 각자의 매력을 더 어필할 수도 있고요. 게다가 요즘은 다 가식 벗은 모습들을 원하잖아요? 관찰 예능도 대세고. 그래서 리얼리티식으로 마지막 앨범 전에 하면 어떨까 싶은데요.”

“음.”

뇌에서 필터링을 안 거치고 입으로 내 생각을 여지없이 말했다.

내 말이 의외로 설득력이 있었는지 이진성 실장도 고민하는 눈치였다.

생각보다 흐름이 괜찮다.

“애들이 벌어다 준 것도 꽤 되니까 각 소속사에도 협조 요청해서 ‘우리가 이렇게 메이킹 해주겠다! 그러니 돈 좀 써서 투자해라.’ 이렇게 제안하고 프로그램 편성 받아서 하면 어떨까요?”

“…….”

내 말이 쐐기를 박은 건지 이진성 실장이 손으로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잠깐의 생각이 필요한 듯 고민을 하더니 내게 말했다.

“나쁜 건 아닌 거 같긴 한데… 일단 기획서 써서 올려봐.”

“네. 알겠습니다.”

이제 맛있게 기획서를 포장하는 일만 남았다. 승인이 떨어질지는 모르겠지만.

“아, 그리고 오늘 성과급 들어오니까 그거 겸해서 오늘 4팀 회식할 거야. 오늘 업무 한 시간 일찍 끝내고 퇴근할 테니 알아두고.”

“네?”

난데없이 회식? 성과급?

예전에 정인수 대표가 말한 그건가 싶다.

“계속 바빠서 우리끼리 회식은 못 했잖아.”

“아….”

“4팀 다 같이 하는 건 아니고 매니저계열만.”

그러고 보니 회사 사람끼리 회식한 건 손에 꼽았다. 그냥 밥을 같이 먹은 적은 있어도 저녁에 따로 뭘 먹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이진성 실장이 했던 말 중 매니저 계열만이라는 게 스타즈 맡은 매니저팀만인지 다른 팀도 포함인지 모르겠다.

모르면 물어봐야지.

“그럼 저랑 팀장님 실장님 셋이서요?”

“어. 지금은 우리 팀밖에 없잖아. 경영팀이. 위너 6팀은 딴 곳으로 갔으니까.”

이진성 실장의 말처럼 4팀은 위너 6팀과 스타즈 두 팀으로 나뉘었는데 위너 6팀이 해체하고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지금은 신인 개발팀 쪽에 들어가 있는 걸로 알고 있다.

그래도 같이 한솥밥 먹던 사이라 같이할 줄 알았는데 아닌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한 시간 일찍 퇴근한다고 업무 밀리면 안 되니까 밀리지 않게 처리하고.”

“네.”

이진성 실장이 내게 말하고는 바깥으로 나갔다.

이진성 실장이 나간 곳을 쳐다보면서 오늘 업무량을 생각해봤다.

애들 여행 기획서까지 쓴다면 좀 빠듯할 것 같다.

그래도 내 일이니, 해야지. 별수 있나.

자리로 돌아가 업무를 시작했다.

* * *

치이익. 치익.

A+ 한우를 굽는 소리에 침이 절로 삼켜졌다. A+ 한우는 굽는 소리도 다른 것 같다.

오늘 일과는 무탈했다.

집중해서 업무를 처리하니 오히려 시간이 남았다.

그 시간에 애들 리얼리티 여행 기획서도 그럴듯하게 만들어서 이진성 실장 메일로 전송까지 끝내 놓고 회식하러 고깃집으로 왔다.

시간이 빡빡할 것 같았는데 점심시간을 짧게 가지고 업무를 본 게 주효한 것 같았다.

“마블링이 장난 아니네.”

“나도 이런 곳은 처음 와본다.”

“접대하러 다니시면서 많이 드시잖아요.”

이진성 실장의 말에 남진수가 의아하다는 듯 말했다.

“대부분 술집이잖아. 횟집이나. 고기는 냄새 밴다고 싫어해. 너도 대부분 그렇게 잡잖아?”

“그렇긴 하죠. 그래도 고기만 한 게 없는데….”

“우리야 그렇지.”

딱히 끼어들 주제는 아니다 싶어 열심히 고기 구우면서 대화를 경청했다.

자신들끼리만 대화한 것 같은지 이진성 실장이 내게 말을 걸었다.

“현진이 덕에 이런 곳도 또 와보네.”

“아니에요. 모두의 덕분이죠.”

“그래도 우리 입김이 제일 셌으니까 성과급도 인당 기준으로 우리가 제일 많이 받은 거 아냐.”

“나나 실장님은 끽해야 월급에다가 좀 더 받은 건데 넌 몇 배야?”

“하하….”

이진성 실장과 남진수의 말에 어색한 웃음밖에 흘릴 수가 없었다.

내게 성과급이 많이 들어오긴 했다.

천만 원.

확실히 많이 들어왔다.

“실패했으면 몇 배가 아니라 회사도 잘리고 그대로 훅 갈 수도 있는 도박이었는데. 넌 무슨 깡이 그렇게 좋냐?”

“끙, 잘 풀려서 다행이지. 또 신입 교육한답시고 시간 낭비할 걸 생각하면….”

이진성 실장이 말하면서 구워진 고기를 날름 집어먹었다.

“그러고 보니 너 1년 차지? 하는 꼴 보면 팀장이나 실장이야. 완전.”

“능력 따라가는 거지, 뭘. 너도 1년 차에 쟤만큼 했어 봐라.”

푸념하는 남진수에게 이진성 실장이 타박했다.

“실장님. 실장님도 다를 건 없잖아요.”

“야, 이 바닥이 언제 그런 거 따졌어?”

“박탈감은 있잖아요.”

“나도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 근데 어쩌겠냐. 운도 능력이고 기회 잘 터트리는 것도 능력인데. 너라면 쟤처럼 막무가내로 들이박을 수 있어?”

“없죠.”

왠지 회식 자리가 아니라 김현진 청문회 같았다.

조심스럽게 눈을 굴리다 불판에 구워진 고기를 먹으며 남진수와 이진성 실장의 열띤 토론을 보고 있었다.

소주잔에 있던 술을 단숨에 비운 이진성 실장이 나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남진수에게 말했다.

“쟤 이번에도 한다는 소리가 뭔지 아냐? 애들 여행 보내재. 콘텐츠로 만들어서 해보는 게 어떠냐고.”

“그런 건 전략팀에서 짜서 줄 텐데 굳이….”

남진수가 괜한 짓을 한다며 내게 눈치를 줬다.

“뭐 애들한테 애정이 있나 보지.”

“하하….”

이진성 실장의 말과 눈짓에 다시 한번 어색한 웃음만 흘렸다.

내 웃음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남진수가 피식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인마. 애들 얼마 남지도 않았잖아. 살살해.”

“첫 담당은 원래 눈에 뵈는 게 없다.”

이진성 실장이 남진수의 말에 혀를 찼다.

이건 항상 듣는 말인 것 같다.

“그래도 성과가 좋으니까 쭉 밀어 봐. 리턴은 크겠지만 삐끗하지만 않으면 전지적인 업적 세울 수도 있을걸. 지금 대표님도 밀어주는 거 보면.”

“네?”

이진성 실장이 정 대표 이야기를 꺼내자 깜짝 놀랐다.

정인수 대표가 말한 팀장이니 실장이니 하는 이야기를 회사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건가 싶어서.

“너 말이야. 지금, 이 바닥에서 꽤 유명해.”

“제가요?”

“일단 손대는 것도, 프로그램 물어 오는 것도, 담당한테 잘 맞추는 것도, 연차 빼고 능력만 놓고 보면 어지간한 베테랑 매니저 뺨 후려갈기니까.”

“그저 운이 좋았죠.”

“운도 반복되면 실력이다.”

이진성 실장이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연차로 딴지 거는 거 말고는 걸 게 없죠.”

“한번 사는 거 뭐 있냐? 그냥 지금대로 질러봐. 난 응원한다.”

“그런 분이 뒤에서 얘 욕을 그렇게….”

“이 새끼야. 응원하는 거랑 일 많아지는 거랑은 다른 거야. 감당 못 할 일이 터지면 누군가 수습은 해야 할 거 아냐. 그건 내가 될 가능성이 크고.”

남진수의 말에 이진성 실장이 입에서 열불을 토했다.

둘의 믿음에 왠지 조금 쑥스러웠다.

“항상 죄송하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알면 나중에 술이나 사. 돈도 많이 받았잖아.”

“넵!”

“술이나 먹자.”

남진수나 이진성 실장이나 연예인에 대하는 걸 빼면 참 좋은 사람이다.

이진성 실장이 잔을 들자 나와 남진수도 잔을 들어 짠하고 맞춘 뒤 식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일단 먹자.

* * *

1차 고깃집에서 적당히 먹고 마시고 술집에서 2차를 보낸 뒤 헤어졌다.

일 이야기, 사적인 이야기, 업계 이야기 꽤 많은 대화를 한 것 같다.

회식도 회식이었지만, 지금은 침대에 누워 핸드폰으로 확인한 통장에 찍혀 있는 천만 원이 얼떨떨하기만 했다.

물론 이 성과급이 온전히 내 업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묘한 기분이 들었지만 어쨌든 기분은 좋았다.

예전에는 사회적 시선과 위치 때문에 모든 걸 망설이고 한발 물러섰었다. 그러나 지금은 내가 알고 있는 미래에 대한 확신과 더불어 나아갈 방향에 대한 목표를 확실히 정하니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예전 생각이 났다. 예전에도 우직하게 밀고 나갈 걸 하는 생각.

고개를 털며 생각을 털어냈다. 술기운과 새벽이 만나니 또 감성에 젖은 것 같다.

문득 이대로 누워 자기에는 아쉬워 대화하고 싶었다. 그래서 핸드폰을 들고 전화를 걸었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안 받으려나.

- 왜. 바빠.

“야, 너만 바쁘냐?”

- 그럼 끊는다.

이진철은 그렇게 말하고는 진짜 끊었다. 어이가 없어서 다시 전화했다.

- 뭔데.

“정 없는 새끼.”

- 끊는다.

“편집하느라 예민한 건 알겠는데 숨 좀 돌려라.”

지치고 날이 서 있는 목소리에 한마디 했다. 그러자 퉁명스러운 대답이 들려왔다.

- 아는 놈이 왜 전화하고 지랄이야.

“자랑할 거 있어서 전화했다.”

- 뭔데?

“나 성과급 받았다.”

- 축하한다.

“그게 끝?”

- 그럼 뭐? 내가 뭘 더 해줘야 해?

이진철이 어이없어 했다.

“피도 눈물도 없는 새끼.”

- 술 마셨냐?

내 말에 이진철이 잠시간 웃더니 내게 술을 마셨냐고 물었다.

“당연히 마셨지. 오늘 회식했거든. 성과급 기념으로.”

- 그럼 자라.

“얼마 받았는진 안 궁금하고?”

- 얼마 받았는데? 끽해야 월급 정도 받은 거 아냐?

“천만 원.”

- …….

통화기 너머에서 이진철의 숨소리만 들렸다.

나도 금액 확인했을 때는 뇌 정지가 왔다.

- 그걸 일시금으로? 뭔데 그렇게 많이 주냐?

“응. 스타즈 노래 터진 성과에 내가 발을 좀 크게 걸쳐놨었거든.”

- 그럼 나중에 술이나 사.

“그래.”

뭔가 배 아파 죽을 것 같다는 반응을 원했는데, 얘는 장난치는 맛이 없었다.

사실 전화한 목적은 성과급을 자랑할 목적도 있었지만, 제일 궁금한 게 있었다.

“편집은 잘 돼 가냐?”

- 다 짜 맞추긴 했고 보면서 디테일잡고 걷어내야지.

“그래? 궁금하네.”

- 한번 와서 볼래?

은근슬쩍 흘렸는데 물고기가 떡밥을 물어줬다.

“그래도 되냐?”

- 시간 되면.

“내일은 어때? 나 내일 쉬는데.”

- 와. 주소 보내줄 테니까.

“그래. 알았다.”

- 그래, 그럼 내일 보자. 더 할 말 없지?

“어. 그렇긴 한데.”

내 말이 끝나자마자 이진철이 바로 끊어 버렸다. 그리고 핸드폰에서 진동이 바로 울렸다.

[서울시 강남구 강남대로 A길 9]

간결한 문자를 보니 이진철답다는 생각을 했다.

내일을 위해 얼른 자자.

긴장이 풀려 슬슬 취기가 확 몰려오는 시점이었다.

핸드폰을 옆에 던져두고 눈을 감자 다시 또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려 확인했다.

그리고 핸드폰에 적힌 내용을 보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올 때 메로나]

종잡을 수가 없다니까.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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