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성인이 되는 날 (2/278)

《성인이 되는 날》

 휘이잉.

 F-4 구역의 남서쪽 주거지역은 언제나처럼 뿌연 먼지바람으로 자욱해 앞을 제대로 보기 힘들 정도였다.

 "오늘은 더 지독하구나."

 정민은 발치까지 내려오는 긴 외투와 낡은 두건으로 겨우 눈만 드러낸 상태로 길을 나섰다.

 이미 출근 시간이 지난 터라 먼지바람이 부는 거리에는 인적이 끊겼지만 단골인 잡화점 주인아저씨는 용케도 그를 알아보고 소리쳤다.

 "정민! 오늘부터 성인이구나! 인증받으러 가는 길이냐?"

 "네!"

 "하하! 제발 거주 지역이라도 F1이나 F2 같은 코어 구역으로 정해지면 좋으련만……."

 "에이, 설마요. 저 같은 무직에 저학력자에게 그런 특혜를 줄 리가 없잖아요. 더구나 아무런 능력이 없어서 직업도 배정받지 못할 것이 분명한데요."

 정민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오늘 아침 기상할 때부터 뭔가 큰 변화가 자신에게 일어나기를 소원했다.

 성인식을 계기로 아주 가끔 보더러Borderer(변경인)를 벗어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나곤 했기 때문이다.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이 생기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휴우, 정말 거주 구역이라도 바뀌었으면…….'

 그가 거주하는 건물은 쓰러지기 일보 직전일뿐더러 벽에 큰 균열까지 생겨서 아무리 청소해도 하루만 지나면 먼지로 뿌옇게 변하기 일쑤였다. 더구나 그 지역은 오염된 환경을 방어하는 배리어의 가장 외곽이어서 심심치않게 아우터Outer나 하르크의 습격을 받곤 했다.

 아우터는 배리어 밖에 거주하는 휴먼들을 가리킨다. 유니온에서 추방된 반체제 인사들이나 중범죄자들 그리고 원래 배리어가 생성될 때부터 밖에서 살아오던 사람들이다.

 그들도 같은 인간이지만 그중에는 떼 지어 도적질이나 강도질을 하는 질 나쁜 인간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들은 문제도 안 되는 존재들이 배리어 밖에는 횡행했다.

 '그 끔찍한 녀석들이라도 보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르크는 이전 인류가 일으킨 세계 3차 대전 후에 나타났다. 전 세계를 뒤덮은 낙진과 방사능에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새로이 출현한 변종 동물이다.

 총과 대포 같은 화약무기는 물론 에너지 빔 건Energy Beam Gun도 제대로 뚫지 못할 정도의 강력하고 질긴 가죽을 가진 하르크의 크고 날카로운 송곳니는 생각만 해도 몸이 벌벌 떨리고 오금이 저렸다.

 화장장에서 한동안 일했던 정민은 온갖 사유로 시체들을 봤었다. 하도 험한 시체들을 많이 봐서 무서운 것이 거의 없는 정민이지만 유일하게 두려워하는 존재가 바로 하르크였다.

 놈들은 심심치 않게 인간들을 공격해왔고, 워낙 재빠르고 영악해서 각종 장비와 무기를 가진 수비군을 피해 배리어 안으로 들어오곤 했다.

 그것은 방사능 같은 오염 물질을 막기 위해 도시 전체에 펼쳐진 에너지 배리어라도 밀집도가 약한 외곽 지역은 방어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었다.

 하르크만이 인간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약하지만 오르그라는 변종생물 역시 강력한 힘과 야성을 가졌고, 이들의 숫자는 하르크보다 훨씬 더 많았다. 이놈들은 번신력이 좋아 돼지처럼 한 번에 열 마리 이상 출산한다.

 그런 존재가 이 세상에 나타난 지 겨우 백 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녀석들은 이미 강력한 사회집단을 형성, 발전하고 있어 나중에는 하르크보다 더 위협적인 존재로 부상하리라고 예견되었다.

 그 외에도 유전자 변이를 일으켜 엄청난 힘과 야성 그리고 교활한 지능까지 갖춘 맹수들도 배리어 밖에서는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존재들이 윤리와 도덕이 완전히 사라진 서기 21세기 말에 유전자 조작을 통해 복제를 연구하던 기업들의 연구소에서 이미 실험을 통해 태어났다고 하는데, 그 진위까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끔찍한 전쟁이 끝나고 벌써 이백 년이 훨씬 넘게 지나서 방사능이 약해졌다고는 해도 아직 함부로 몸을 노출하기에는 너무나 위험하기에 인간들은 에너지로 만든 배리어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다.

 에인션트 컴퓨터로 알려진 슈퍼 인공지능 컴퓨터를 통해 이런 배리어는 휴먼력 원년에 전 세계에 수백 개가 건설되었다.

 이 배리어가 없었다면 아마 인류는 멸망하고 이 세상은 하르크와 오르그 같은 변종 동물들이 지배했을 것이다.

 배리어 안에 건설된 유니온은 이전의 국가와 갈음하는 사회체제로,도시 단위로 형성되었다.

 배리어의 가장 중앙 부분인 S구역부터 시작해서 동심원을 그리며 외부로 나가면서 A, B, C, D, E, F 구역으로 나뉜다.

 외곽으로 갈수록 배리어를 형성하는 에너지가 약해지기 때문에 유니온이라고 칭해지는 배리어 내의 사회는 자연스럽게 신분제로 구성되었다.

 최소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사는 유니온 단위는 극히 정체된 사회였다. 변종 생물의 위협이 날로 가중되며 태어나서 배리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이들은 군인, 고위 관료, 기업과 연관된 사람들로 한정되어 버렸다.

 S구역은 유니온을 지배하는 최고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거주한다. 그들은 S클래스라고 불리며 유니온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힘과 권력을 행사한다.

 A와 B구역은 과학자, 고급 기술자 집단을 포함해 소위 '능력자'로 분류된 유니온의 고급 관료들과 잘 나가는 기업가들이 거주한다.

 C와 D구역은 일반 과학자나 기술자 집단, 군인들을 포함한 중간 관료들이 사는 구역이다.

 E와 F구역은 배리어의 반 이상을 차지할 정도로 넓은 구역이다. 하지만 유니온 인구의 70~80%가 이곳에 거주하기에 인구밀도도 높고 당연히 생활환경도 열악한 편이다.

 특히 F구역은 유니온 사회의 최하층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중범죄자들이야 배리어 밖으로 추방되지만 경범죄를 저지른 자들이나 무능력으로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 그리고 가난을 대물림받은 사람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비참한 생활을 하며 희망 없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 중에서도 가장 끝에 위치한 구역인 F-4구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은 F-3이나 F-2로 가는 것이 소원이었다.

 배리어 안쪽으로 갈수록 더 안전해지고 생활 환경이 쾌적해진다는 것을 알기에 늘 이주하고 싶어 하지만 그들의 능력으로는 평생 F구역을 벗어날 수 없다.

 생성 초기와 달리 변종 생물들의 위협으로 다른 유니온과의 교류가 줄어드는 가운데 이백 년 이상이 흐르자 신분 상승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 정체된 사회로 변해버렸다. 그래서 이들은 다만 같은 구역 안에서라도 조금 더 안전한 코어 쪽으로 가고 싶을 뿐이었다.

 좋은 직업을 얻어 유니온으로부터 좋은 거주 지역과 급여를 받든지 아니면 돈을 많이 벌어야 거주 지역을 옮길 텐데 직업 자체가 많지 않아 그럴 기회가 별로 없다 보니 자연스럽게 신분 사회르 변하는 것이다.

 정민은 자신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퇴했을 뿐 아니라 마지막 부양 가정에서도 가출한 전력을 이유로 국가에서도 더 이상의 부양을 포기했다.

 다만 그에게 성년이 될 때까지 지낼 거처와 화장장이나 유니온 직영 농장 아니면 거리 청소를 하는 공공근로를 제공할 뿐이었다.

 정민의 경우 돌보아 줄 부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아마 평생 먹고사는 것을 걱정하고 살아야 하는 최하층의 삶을 살다가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이에 아주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그래도……!'

 정민은 주먹을 굳게 쥐었다. 마치 소원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기라도 하듯이.

 이따금 소용돌이치며 먼지를 빨아올리는 돌개바람 때문에 잠시 모퉁이에 숨기를 몇 번 반복한 후에 정민은 오피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벌집처럼 작은 방으로 채워진 낡고 허름한 고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었다고 해서 자조적인 표현으로 '비 하우스Bee House'로 불리는 이 F구역에서의 유일한 저층 건물이 먼지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워낙 고층 건물들이 많다 보니 저층 건물들이 오히려 더 비싸고 쾌적해 보였다. 물론 실제로도 그렇지만.

 '저 오피스에서 일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민은 잠시 12층짜리 오피스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

 오피스 내부는 그가 사는 건물과는 너무나 다르게 깨끗하고 쾌적했다. 먼지 한 점 없는 바닥에 먼지로 지저분해진 신발을 내디딘다는 것이 미안해서 자꾸 눈치를 보게 될 정도였다.

 다행히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주민국은 입구에서 제일 가까이 있었다. 이전까지 그가 몇 번 이곳을 찾았을 때 방문한 곳은 복지과였다. 미성년으로 직업도 후원자도 없는 그는 약간의 복지수당과 공공근로로 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복지과는 1층의 가장 안쪽에 있어 거기까지 가려면 추례한 자신을 바라보는 사무원들의 묘한 눈길에 주눅이 들곤 했다. 오늘은 시간이 그래서인지 사람이 없어서 다행이었다.

 정민은 마치 걸레를 연상시키는 긴 외투의 깃을 안쪽으로 끌어당겨 볼품없이 앙상한 몸을 숨겼다.

 "어서 오세요! 무엇을 어떻게 도와 드릴까요?"

 상냥한 말씨를 가진 여직원이었다. 이 구역에서는 선망의 대상으로 회자되는 그녀의 미모는 과연 이런 F구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대단한 것이었다. 성형이라도 한 것일까. 그녀를 대하자 보잘것없는 자신이 더욱 위축되었다.

 하지만 정작 그녀의 눈길은 무미건조하게 잠시 그를 훑어보고는 이내 스크린으로 돌아갔다. 이 막장 인생들이 사는 동네에서는 흔한, 특별할 것 없는 외양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무관심이 오히려 안심되는 정민이었다.

 "저, 오늘 성인이 되는데요……."

 "아! 그 때문이라면 3층 데스크에서 물어보세요."

 여직원의 무미건조했던 눈에 잠시 이채가 흘렀다. 지금처럼 월중에 성인식을 치르는 사람들은 이 구역에서는 좀체 찾아보기 힘드니 말이다. 보통 A나 B구역이 월중에 성인식을 치르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 전, 3차 대전이 끝나고 인간들이 그 후유증으로 멸종 직전까지 내몰렸을 때였다.

 수십억 년 동안 변함없는 질서를 유지하던 태양계에 작지만 새로운 변화가 하나 생겼다. 지구의 달이 두 개가 된 것이다.

 거대한 유성 하나가 지구의 인력 속으로 빨려 들어와 달이 두 개가 된 후로는 이상하게 생명의 출산이 월초나 그믐 무렵에 집중되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흠! 이 사람도 혹시 인공수정체인가?'

 지금은 금지되었지만 한때 임신율이 저조해서 지구 단위로 대규모의 인공수정을 실시한 해가 있었다. 그녀로서는 알 수 없는 일로, 단 한 차례 실시되었다가 금지된 그 인공수정체들이 성인이 되는 해가 바로 올해였다.

 다른 구역에는 그래도 심심치 않게 이 인공수정체들이 성인 인증을 받으러 오피스로 온다는 말은 교육을 통해 들었지만 그녀가 맡은 이 구역에서는 처음 보았다. 그들의 상당수는 능력자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었다.

 '혹시 탈락자Dropout인가?'

 하긴 그들이 아니더라도 성장 과정에서 능력의 장애를 보여 도채되거나 탈락한 사람들이 이 구역으로 오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대부분은 이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선망하는, 코어에 가까운 지역에서 태어나고 살아온 존재들이었다.

 하지만 추레한 옷차림과 먼지로 더러워진 얼굴을 보는 순간 그녀의 얼굴은 무표정하게 변했다. 그녀는 낙오자에게 신경을 쓸 정도로 한가하지 않은 것이다.

 3층에서 안내를 받아 만난 사람은 오른쪽 가슴에 은색 날개 훈장을 단 아저씨였다. 배리어 수비군으로 복무했다는 증거인 훈장을 그는 자랑스럽게 달고 아주 위압적인 자세로 정민을 쳐다보았다.

 정민의 태도에서 그를 그다지 존경하는 티가 나지 않자 그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익숙하게 정민의 프로필을 검색했다. 스크린을 바라보던 그의 눈매가 잠시 한 곳에 머물렀지만 이내 다시 무심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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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정민

 출생:휴먼력 104년 7월 15일생

 이력:New Human 프로젝트 대상자로, 장기 주의 관찰 대상임. 1차 무능력, 2차 무능력, 3차 무능력 판정. 17세인 고등학교 1학년 재학 중에 자퇴. 17세 4개월에 부양 가정에서 가출

 현재주소:F-SW4구역 124-27-024

 관리사항:미성년 복지 대상으로 관리중

 특기사항:성인이 되는 것과 함께 주의 관찰 대상에서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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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인이 되는 것이 맞는군. 잠시 기다리게."

 오십 대로 보이는 중급 관리자의 목소리는 아까 1층 그 아가씨의 눈처럼 무감정했다. F구역은 시민이 되지 못한 보더러들이 사는 곳이기에 낙오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정민 정도의 이력은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그의 흥미를 끌지는 못한 모양이다.

 뭔가를 가지러 보안 구역으로 향하는 배불뚝이 아저씨의 뒷모습을 보며 정민은 쓴웃음을 지었다. 한때 수비군으로 하르크를 상대해봤다는 것을 떠들며 거들먹거리던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 중학교 때 선생님들 중에 비슷한 사람을 경험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 유니온의 근간이 되는 순수하고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저런 부모라도 있었으면…….'

 혼자 살아보니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이제야 잘 알게 되었다. 능력이 없으면 아무런 대접도 받을 수 없다는 것과 혼자 힘으로 살아가기에는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존재인지 가출 전에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그저 자신이 능력자가 아니라는 판정과 보육에 무관심한 부양 가정들에 대한 반발로 학교를 자퇴하고 집을 나온 것이 후회될 뿐이었다. 만약 그때 자신을 받아들였다면 어쩌면 직업 걱정은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그는 B구역에서 출생했고, 그곳에서 자랐던 것이다.

 잠시 과거를 떠올리며 후회를 느끼던 정민은 들려오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호안 구역을 빠져나오는 관리자의 시선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음을 그는 인지할 수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눈썰미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관찰력이라고 해야 할지, 사물의 미세한 변화를 그는 유독 잘 캐치했다. 하지만 그것은 능력자로 인정되기에는 너무나 하잘것없었다.

 "흐음. 성인 축하 선물이 있구먼. 용도를 알 수 없는 상자라……. 그런데 제공자가 기재되어 있지 않구먼. 자네, 혹시 친생부모라도 찾은 건가? 그럴 리가 없을 텐데."

 말을 하면서도 그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유니온을 떠들썩하게 할 만큼 대형 비리가 드러난 그 일은 이미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New Human 프로젝트 대상자라면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인간을 말한다. 배리어의 생성과 더불어 더 이상 오염 환경과 변종 생물들의 위협에 떨지 않아도 될 뿐 아니라 전자 기계 문명의 발달로 수명이 획기적으로 연장되었다.

 이런 현상은 자연스럽게 출산 기피로 이어졌고, 그 현상이 지속되자 날로 줄어가는 인구에 고심하던 전지구위원회에서는 인구를 늘리기 위해 할 수 없이 인공수정을 선택했다.

 하지만 그 프로젝트는 불과 일 년만에 폐지되었다. 당시 전지구위원회의 위원들 중 몇 명과 그 프로젝트에 참여한 몇 개의 거대 기업들 간의 비리가 폭로되었던 것이다.

 결국 그들은 친부모의 관심 밖에 놓인 일종의 고아로 부모의 합의 없이 피동적으로 탄생했기에 도덕적으로 큰 지탄을 받았을 뿐더러 더욱 중요한 다른 문제들이 있었다.

 전지구위원회는 프로젝트 시행 초기에 정자와 난자의 주인들에 관한 자료를 이미 파기했다. 즉, 본인들의 의사도 확인하지 않고 인공수정을 감행한 것이다.

 그래서 인공수정으로 태어난 정민 같은 이들은 물론 그 친생부모들까지 자신이 부모인 줄도 모르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더구나 한꺼번에 수십만 명이 출산됨에 따라 그들을 부양하고 키우는 데 너무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는 점도 각 배리어를 장악한 세력 중 진보 그룹이 제기한 큰 문제였다.

 진보 그룹들은 엄청난 자금이 투입되는 부도덕한 프로젝트를 문제 삼아 몇 건의 비리까지 파헤쳐 기존 보수 그룹들을 공격했고, 그 시도는 결국 성공했다.

 그렇게 기존 위원들을 밀어내고 새로 권력을 잡은 이들이 그 프로젝트를 중지시킨 것은 결과적으로 옳았다는 것이 시간이 지나며 증명되었다.

 일단 프로젝트가 가동되어 30만 명의 생명이 탄생했기에 어쩔 수 없이 지속적으로 자금과 인원이 투입되었지만 해가 갈수록 그 결과가 실망스러웠던 것이다.

 그들을 키울 부양 가정을 선정하고 막대한 양육비를 지급했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몇몇 인류학자들이 예견한 대로 제대로 된 사랑을 받고 자라지 못해서 그런지 그들 상당수는 무능력자로 판정받아 사회의 하층부를 전전했다.

 정민은 영문을 알 수 없어 눈만 껌뻑거렸다.

 친생부모라니? 가끔 자신도 모르게 New Human 프로젝트에 정자와 난자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게된 사람들이 핏줄을 찾는 일이 일어나곤 하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희귀했다. 대부분은 자신이 부모라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겠지?"

 하긴 용도를 알 수 없는 상자에는 식료품으로 짐작되는 가루들로 가득할 뿐이었다. 정민의 해골 같은 몸을 바라보던 그는 누군가 먹기라도 잘하라고 먹을 것을 챙겨주었다고 생각했다.

 관리자는 멍하니 자신을 쳐다보는 정미느이 모습에서 최소한의 호기심마저 잃어버리고 말았다.

 "자네의 향후 거처는 현재 살고 있는 주소로 배정되었네. 특별한 죄를 짓지 않았고 잘 적응하고는 있지만 아무런 능력도 없고 부양 가정에서 가출한 전력 때문에 더 이상의 지원은 할 수 없다고 유니온은 판단했네. 그나마 다행히도 전지구위원회에서 자네와 같은 인공수정체들에게 지급하는 성인 축하금 500만 원이 있으니 잘 활용해서 열심히 살게."

 정민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이렇게 큰돈이 생긴 것이 어디냐는 생각에 기분이 좀 좋아졌고, 덩달아 이 배불뚝이 관리자의 말도 조금은 고마웠다.

 "그리고 선물로 받은 상자는 무게가 상당해서 오후에 직접 배달해주겠네. 500만 원은 지금 가면서 회계국에 들르면 자네 개인 계좌로 입금해 줄 거야. 참, 회계국은 2층 중앙에 있네."

 "감사합니다!"

 "일단 보건국에 들러서 몸에 바이오 성인 주민 칩을 삽입해야 하니 따라오게."

 "네!"

 정민은 비록 자신의 신상에 조그마해도 새로운 변화가 있기를 간절히 소망했지만 이렇게 용도를 알 수 없는 상자와 500만 원이라는 큰돈을 받자 얼떨떨할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누가 준 거지?'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다. 배불뚝이 관리자는 벌써 보안 구역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민은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지만 기분은 붕 뜬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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