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던전 입장》
“믿을 수 없어요!”
헤니가 소리를 질렀다. 그녀의 손은 주먹을 쥐고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나도 못 믿겠어!”
도네이스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것은 엘저를 비롯한 생존자들을 간호해서 깨운 후에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에 있던 딜런을 안고 지상으로 돌아온 티노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티노는 대원들에게는 그렇게 말했지만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는 볼카웜이란 몬스터가 얼마나 무서운 존재인지도 알고, 놈과 싸우면서 흉험했던 순간을 같이 겪었기에 얼마간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것 정도는 불안하게 인정하고 있었다.
볼카웜 토벌대가 거의 전멸을 했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많은 충격을 주었다. 이 분지에서도 실력자로 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무려 이백 명이 들어갔는데 불과 열 명만이 살아온 것이다.
7서클 대마법사인 마스론 추적과 소드 마스터인 알랭 후작을 포함한 소수의 생존자들과 티노 일행이 생존자의 전부였다.
의식을 찾지 못하는 딜런 때문에 시간을 지체한 티노 일행과는 별도의 통로를 통해 볼카웜의 이빨을 가지고 돌아온 마스론 후작 일행이 먼저 사람들에게 하룬의 사람 소식을 전한 것이다.
모든 진영에서 나름 상당한 실력자들을 파견했기에 볼카웜이란 몬스터의 존재에 더욱 놀랐다. 1황녀가 아끼는 기사장인 아인델프가 한쪽 눈을 잃고 엘저에게 업혀 나오자 따로 볼카웜을 잡아 던전에 입장할 수 있는 자격을 얻으려던 사람들은 사색이 되었다.
그렇게 트레저 분지에 모인 사람들이 모두 충격을 받았지만 특히나 용병들의 충격은 컸다. 설마 용병들이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는 돌풍 용병대의 하룬 대장이 볼카웜에게 죽었을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곳 고요의 땅에서 용병들에게 하룬은 굉장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 증거로 용병들의 막사는 분위기가 다른 곳보다 훨씬 더 가라 앉아 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 게 틀림없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다른 볼카웜이 나타나 하룬과 몇 명을 통째로 삼켜 버리고 도망을 쳤다는데 그건 믿을 수가 없어.”
동석한 엘저는 헤니의 말에 단호한 얼굴로 하룬의 생존을 확신했다.
“대장은 마게에서라도 충분히 살아올 거요. 그 능력의 끝을 알 수 없는 분이니까.”
티노는 하룬에 대한 믿음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대장이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자신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방인 이라면 부활이 가능한 존재가 아닌가. 예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다.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가 신경 쓰는 것은 다른 데 있었다.
“다만 내가 걱정하는 것은 제국 정보 길드야. 암중에 노렸다면 대장도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 있으니까.”
“맞아요. 대장의 능력이라면 부상은 입더라도 살아서 나오는 데는 별 무리가 없을 거예요. 하지만 대장과 함께 마지막 일전을 치른 생존자들 중에 제국 정보 길드의 숨은 힘이 있었다면 위험할 수 있어요.”
불안함으로 떨리는 헤니의 말에 티노의 얼굴이 갑자기 창백해졌다.
“그런 건가? 마스론 후작이라는 그치가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이 꼭 뱀처럼 차가웠는데.”
복귀 신고를 하러 1황자의 막사로 갔던 티노는 마스론 후작이 자신들을 향해 노골적인 적의를 보내는 것을 느꼈었다.
“그가요? 그는 마탑의 고위급 인물인데…….”
엘저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제국 정보 길드에는 감추어진 힘이 있다고 했어요. 누구는 그게 어쌔신 조직이라고도 했고, 누구는 알려진 대마법사나 기사들 중에 그들 조직원이 있다고도 했어요.”
헤니의 말을 들은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감이 번졌다.
만약 그들이 제국 정보 길드와 무슨 관계가 있다면 대장이라도 무사하기 어려울 것이란 사실을 익히 아는 것이다. 7서클 대마법사나 소드 마스터가 제국 정보 길드의 숨겨진 수족 이라면 하룬도 무사할 수는 없다.
“설마 아니겠죠?”
자신이 직접 말해 놓고도 헤니는 무서워 목소리가 덜덜 떨렸다. 엘저를 비롯한 돌풍 용병대원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 불안한 짐작이 맞는다면 일은 심각하다. 사사건건 대립한 것도 모자라 얼마 전에는 그들 수족인 제라츠 용병단원들 까지 처치했으니 뭔가 암수를 썼을 가능성이 높았다.
“설마 그 정도의 인물들이 그럴 리가. 아니야! 알랭 후작이나 마스론 후장은 제국 정보 길드완 상관없는 작자들인데…….”
헤니는 의혹 어린 시선으로 불안함이 가득 담긴 혼잣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아니었으면 좋겠지만 그럴 가능성도 있어. 제국 정보 길드의 뿌리와 가지는 어느 속에나 존재하지. 그게 아니더라도 그들의 의뢰를 받았을 순 있지.”
어느 정도 확신이 담겨 있는 엘저의 말에 대원들은 가슴이 서늘해졌고 헤니는 너무나 냉정하게 사태를 판단하는 엘저에게 억하심정까지 들었다.
그런 불안한 상황을 깬 것은 티노였다.
“딜런 경이 위험해.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고. 대장이 살아서 나올 때까지 일단 몸을 숨겨야겠어.”
그렇게 말하는 티노의 얼굴은 단호했다.
“하지만 곧 던전에 들어갈 텐데요.『
도네이스의 말에 티노는 고개를 저었다.
“대장과 딜런 경이 없는 상태에서는 던전에 들어가 봐야 소용없어. 우리 실력으로는 도움도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때문에 제국 정보 길드의 견제를 받거나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티노는 앞으로의 진로에 대해 꽤 깊이 생각을 한 것 같았다. 더구나 타고난 그의 위험 감지 본능은 던전에 들어가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자꾸만 경고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법서도 그렇고…….”
헤니는 여전히 던전에 욕심을 버리지 못했지만 결연한 티노의 눈빛에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일단 대장의 생존 여부를 알아내는 것이 제일 중요해. 우리 용병대의 가장 큰 전력인 딜런 경도 의식을 회복해야 해. 그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행동할지 결정하자고.”
대장이 없는 상황이니 부대장인 티노의 결정을 따르는 것이 옳다. 헤니와 도네이스는 잠깐 고심했지만 그 이상의 방안을 찾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적은 인원수로 나눌 수도 없으니 한쪽을 선택해야 했다.
“딜런 경이 정신을 차리는 대로 우린 지하로 들어간다. 대장의 생사를 확인하자고.”
“네, 좋아요.”
“알았어요.”
헤니와 도네이스는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엘저도 나섰다.
“나도 도울게요, 티노.”
“아니야, 엘저 넌 던전에 들어가야지.”
“난 돌풍과 같이 움직이고 싶어요. 하룬이 어떻게 되었을지도 모르는데 맘 편하게 던전에 들어갈 생각은 없단 말이에요.”
“네 마음은 잘 알아 하지만 네 아버지는 네 힘이 필요할 거야.”
엘저야 하룬이 유일한 친구이니 그런 마음을 먹을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던전을 포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돌풍 대원들은 비록 그 마음은 받아들일 수 없지만 엘저가 하룬에게 가지고 있는 우정이 얼마나 깊은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몇 번의 설득 후에 엘저가 어비스 용병단 막사로 돌아갔다.
“일단 딜런 경이 깨어날 때까지 지하로 들어갈 준비를 완벽하게 해야 해. 볼카웜을 만날 수도 있으니 단단히 준비해야해.”
티노의 말에 헤니와 도네이스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대장의 생사 여부를 알아내는 것이 지금 상황으로썬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그들이 미처 행동을 하기도 전에 반가운 소식이 그들을 찾아왔다. 겨루가 하룬의 전언을 가지고 은밀하게 돌풍 용병대를 찾아온 것은 밤이 이슥한 시간이었다.
“겨루 씨라고요?”
“네, 티노 부대장.”
티노는 그를 본 적이 있어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지만 대화를 해 본 적이 없어 자세한 것은 알지 못했다. 단지 그가 볼카웜 토벌대에 속해 있다는 것과 마지막으로 볼카웜을 상대 할 때 그가 있었다는 것은 기억하고 있었다. 때문에 티노의 심장은 희망으로 강하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마지막 전투에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습니다.”
그에게서 하룬의 생사를 들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때문에 티노의 목소리는 살짝 떨렸다.
“부활한 건가요? 아직 부활할 시간은 아닌데…….”
헤니는 그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말을 하다가 멈추고 눈을 크게 떴다.
“네. 사실 죽은 것이나 다름없지요. 하룬 대장이 구해 주지 않았으면 진작 죽었을 겁니다.”
“우리 대장이요?”
헤니의 목소리가 커서였을까 아니면 하룬이라는 이름이 자극되었던 것일까, 내내 정신을 잃고 있던 딜런의 감겨진 눈꺼풀이 경련을 일으켰다.
“네. 대장과 함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겨루는 하룬이 설명해 주었던 볼카웜과의 마지막 전투에 대해 이야기를 풀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울고 웃었다. 마지막에 하룬의 당부를 들은 대원들은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대장은 뭔가 할 일이 있어 다른 곳으로 향했고, 우리에게는 던전에 들어가지 말고 대기하라는 말을 했다고요?”
“맞습니다, 부대장. 다크 엘프들이 입장 조건으로 내건 볼카웜 토벌이 상상 이상으로 어려운 것으로 보아 던전에 뭔가 수상한 사연이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만약을 위해 던전에 들어가지 말고 몸을 숨긴 상태에서 차후 지시를 기다리라고 했습니다.”
“으음.”
약시 그들의 예측대로 마스론 후작과 알랭 후작이 제국 정보 길드의 숨은 힘이라는 것이 사실로 밝혀졌다. 하룬은 그들의 암수에 죽기 일보 직전까지 몰렸던 것이다. 하지만 대기 명령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헤니는 하룬의 생존 소식에 들떴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던전으로 들어가라는 말 대신 대기하라는 말의 배경에 어떤 사정이 있을지 추측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대장의 뜻이 그렇다면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거야.”
대원들의 등 뒤에서 들린 목소리에 모두들 깜짝 놀랐다.
“어! 딜런 경, 깨어났군요.”
“대장이 살아 있다는 기쁜 소식에 이어 딜런 경까지 깨어났으니 정말 다행이에요.”
모두들 딜런에게 몰려가 기뻐했다.
깨어난 딜런은 아직 힘이 들어가지 않은 목소리로 티노에게 말했다.
“다시 전언을 줄 테니 우린 대장 말대로 대기하면 되는 거야. 아무렴 대장이 아무 생각 없이 그런 말을 전했을까?”
“맞습니다. 대장의 지시에 따르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린 다만 그 사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할 뿐입니다.”
티노의 말에 딜런이 다시 눈을 감았다.
“부탁이 하나 있습니다.”
하룬의 말은 전한 겨루가 자세를 바로하고 티노에게 말했다.
“뭡니까? 대장의 말을 전한 분이니 웬만하면 들어 드리겠습니다.”
하룬의 소식을 애타게 기다리던 돌풍 용병대원들로서는 가장 귀한 소식을 가지고 온 사람이니 그가 설사 하룬에게 구명지은을 입었다고 할지라도 들어줄 수 있는 것이면 그리 할 생각이었다.
“사실 전 길드장인 발트랑과 임시로 계약을 했습니다. 볼카웜을 상대하는 임무만 맡은 거지요. 때문에 이제 계약이 만료되어 자유로운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요?”
“당분간 저도 여러분과 같이 행동하고 싶습니다. 대장의 은혜를 갚을 기회를 주십시오.”
“그건…….”
티노는 예상하지 못한 겨루의 부탁에 잠시 당혹스러워했다. 그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룬이 그를 어찌 생각할지도 모르고 비밀스러운 하룬의 전언으로 볼 때 앞으로는 은밀하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문제에 대해 현재 대원들 중에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은 티노밖에 없었다. 딜런이 부상을 입지 않은 상태라고 해도 이런 일에는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철저하게 자신의 현재 역할을 잘 수행하는 사람이었다.
“좋습니다.”
잠시 고심하던 티노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방인이긴 하지만 뛰어난 실력을 지닌 검사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자신들처럼 용병에 다름ㅇ벗는 처지였던 것이다. 더구나 구명지은을 갚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보이니 승낙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감사합니다.”
헤니는 겨루를 보면서 내심 어쩌면 꽤 강자가 돌풍 용병대에 들어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쩐지 돌풍 용병대로 자꾸 사람들이 모여드는 기분이었다.
1황자를 포함한 삼백 명은 던전으로 들어갈 준비를 마쳤다. 그간 여러 사정이 있었다.
하룬이 볼카웜을 토벌하는 가운데 죽은 것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래도 뒤늦게 도착한 브로스 마탑의 전대 마탑주 마코딘 후작이 서투르게나마 엘프어를 구사할 수 있어 엘프들과 의사소통을 할 수 있어 다행이었다.
강간 사건을 일으켰던 세 기사와 해당 기사들의 상관까지 총 네 명은 약에 취해 의식이 없는 상태로 다크 엘프들에게 넘겨졌다. 행여 고문이라도 하지 않을까 염려해서 취해진 조치였다. 역시 생각대로 엘프들의 적의는 대단했다. 네 기사의 목이 던전 입구에 걸리고 목을 잃은 몸체는 갈기갈기 찢어져 사방에 뿌려졌다.
1황자는 그 모습에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의 휘하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명예로운 기사들이 이런 식으로 이종족에게 처형당하는 것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장인한 놈들이군. 원래 엘프는 평화를 사랑하는 종족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황사?”
“그게…… 엘프들이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아마 저들의 몸에 다소 검은빛이 도는 것으로 보아 호전적이고 전투력이 뛰어다는 다크 엘프들이 아닌가 싶습니다.”
1황자는 황사의 말에 엘프들을 눈여겨보았다.
과연 던전이 위치한 피라미드 근처에는 눈에 띄게 어두운 피부색을 지닌 엘프들이 대다수였다. 그중에는 흰색이나 미색 혹은 황색의 피부색을 지닌 엘프 전사들도 있었지만 상당수가 다크 엘프들이었다.
“하긴 인간들도 그 성정이 모두 다르니 엘프들도 그럴 수 있겠지.”
둘이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주름살로 가득한 노안의 마코딘 후작이 잔뜩 인상을 구긴 채 다크 엘프들의 진영에서 돌아왔다.
“황제의 계단은 앞으로 이틀 동안 개방한답니다.”
“수고했네.”
“아닙니다. 전하에게 도움이 된다니 영광입니다. 이런 중대차한 일을 그동안 한낱 용병에게 맡겨야 했던 전하의 상심이 얼마나 크셨습니까?”
1황자는 심기가 상해 굵은 눈썹을 꿈틀했지만 이내 제 얼굴로 돌아왔다.
“뭐, 상심은 없었네. 이름만 용병이지 실은 어지간한 마법사보다 깊고 넓은 지식을 가진 대단한 이였으니까 말일세.”
“전하! 용병들은 더럽고 추악한 작자들입니다. 어찌 그런…….”
“됐네. 이미 죽은 자까지 욕보이고 싶지는 않네.”
1황자의 강경한 말에 마코딘이 꼬장꼬장한 입을 닫았다. 아무리 용병들을 우습게 아는 그라도 이미 죽은 자까지 모욕할 정도로 비양심적이지는 않았다. 더구나 어떻게 보면 그 때문에 브로스 마탑의 10년 예산을 제국 정보 길드에 받기로 하지 않았던가.
“다른 말은 없었나?”
“약 한 시간 정도의 간격이라면 연속해서 입장해도 상관없답니다, 전하.”
“그래? 그거 잘됐군.”
자신이야 첫 번째로 던전에 들어가게 되었지만 던전 입장에 시간이 많이 걸리면 남은 사람들이 동요하지 않을까 걱정했던 1황자는 얼굴을 풀었다.
“그대는 어떻게 할 텐가?”
“저는 원로원과 함께 들어가겠습니다.”
원로원과 제국 정보 길드가 한 짝이 된 것은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중립을 표방했던 브로스 마탑이 누구와 결탁했는지는 명확했다.
‘재수 없는 늙은이!’
“그러게. 그럼 우린 먼저 들어가네.”
1황자가 던전 안으로 들어섰다. 거침없이 던전 안으로 들어서는 그의 뒤로 이백구십구 명의 수행원이 따르고 있었다. 검술을 익힌 1황자를 포함해 기사 백칠십, 마법사 백삼십으로 구성된 던전 팀이었다. 다른 황자 진영들도 그렇지만 최고의 실력을 가진 이들로 엄선된 팀이다.
당당하고 패도적인 기세를 드러내며 던전 안에 진입한 1황자지만 사람들의 시선이 사라지자 황사의 조언대로 걸음을 멈추었다.
던전 안은 꽤 넓은 통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사 넷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을 수 있는 통로는 매끄러운 재질의 벽돌로 장식되었는데 벽돌에 새겨진 문양은 상당히 기하학적이어서 신비감을 자아내고 있었다.
일정 거리마다 발광석이 벽에 박혀 있어 전혀 어둡지 않았고, 비록 실내지만 공기가 통하는 곳이 있는지 신선한 공기의 유동이 있어 습기나 악취도 느껴지지 않았다.
1황자는 친위 기사 둘을 척후로 삼아 이동했다. 이곳이 고대 라 제국 시대에 황제가 될 이를 시험했던 곳이라는 사실을 알기에 긴장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시험하는 방법은 무엇인지, 시험의 종류와 인증 방법은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밖으로는 어떻게 나가는지 아직 아무것도 모르기에 설렘과 두려움이 사람들을 긴장시켰다.
통로는 그리 길지 않았다. 1황자 일행의 후미가 던전에 완전히 진입했을 때 앞에서 밝은 빛이 보였다.
이백 명의 사람들 앞에 일렁이는 빛의 장막이 보였다. 신기하세도 빛줄기가 모여 뭔가 형상을 보였는데 마법사들이 익히는 룬어인 듯했다.
1황자가 황사를 돌아보았다.
“검증의 1관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흠, 검증이라. 무력을 확인하는 것인가?”
“네, 전하.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선발대를 먼저 들여보내겠습니다.”
1황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로사스 백작과 열두 명의 기사가 앞으로 나섰다 요로사스 백작은 평민 출신으로 라인트 공작의 눈에 띄어 후원을 받아 소드 마스터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일찍이 1황자가 거둔 최고의 기사였다.
선발대는 조심스럽게 빛으로 일렁이는 장막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혹시 신호가 통하지 않을 것을 염려해 마지막 기사는 몸을 반만 장막 안에 진입한 상태였다. 조금 뒤 마지ㄱ막 기사의 손이 안으로 들어오라는 듯 몇 번 움직이자 그의 몸이 빛의 장막 안으로 사라졌다.
들어가는 순간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자신의 능력을 확인하기 위해 이 검증의 관에 든 것을 환영합니다. 본 관은 모두 다섯 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 관문을 통과할 때마다 그 난이도가 올라갑니다. 4관까지 통과한 자들 중 표준 통과 시간보다 빠른 개인 혹은 단체에 그 보상으로 칭호와 함께 통과 시간별로 일정한 수의 마법서와 지혜의 파편의 열람이 주어집니다. 마법서와 지혜의 파편은 외부로 유출할 수 없으며 이곳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최대 닷새입니다. 특별히 마지막 5관은 영웅관으로 영웅적인 공헌도가 있는 자만이 입장할 수 있으며 통과하면 모든 종족의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각 관문을 통과하면 칭호가 주어지며 그 능력을 인증 받게 됩니다. 건투를 빕니다.
1황자는 그 안내음을 들으며 가볍게 얼굴을 찌푸렸다. 뭔가 이상했던 것이다.
“황사! 어째 우리가 들었던 이름과 다른 것 같소만.”
“네, 그렇군요. 하룬 대장도 그렇고 마코딘 후작도 분명 이곳이 황제의 계단이라고 했습니다.”
란트렐은 그렇게 대답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뭔가 불안했다.
‘뭐지? 안내대로라면 엘프들이 말한 것과 내용이 좀 다른 것 같은데.’
이 던전의 이름이 다크 엘프들이 부르는 것과 다르다는 것에 기인한 의혹과 불안감은 내용을 생각하자 더욱 커졌다.
그렇게 불안한 가운데서도 발을 옮긴 1황자는 의연한 태도로 견지하며 사람들을 이끌고 더 안쪽으로 진입했다.
“호오!”
“와아!”
빛으로 만들어진 장막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흘러 나왔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직경 50미터 정도의 원형 홀 안에는 각양각색의 조각상들이 빛에 휩싸여 제 모습을 자랑하고 있었다.
날개 달린 괴수는 전설에서나 나올 법한 마기를 뿌리며 보는 사람의 숨통을 막히게 만드는가 하면 은밀한 부위만 겨우 가린 여인의 조각상은 강렬한 염기를 뿌리며 몸을 덥게 만들었다.
거대란 전투 도끼를 한 손에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방패를 든 거인 전사는 금방이라도 사람들의 머리통에 도끼를 날릴 듯했고, 꼬리가 세 개인 거대한 흑표범은 바닥을 박차려는 자세 그대로 굳어 있었다.
“굉장하군!”
“대단한 예술품들입니다.”
1황자와 라인트 공작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생동감과 아울러 예술미를 드러내는 조각상을 대하곤 눈을 떼지 못했다. 어느 한구석 허투루 조각한 곳을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함을 드러낸 조각상들은 각기 다른 빛줄기에 싸여 아주 특별한 분위기를 뿜어냈다.
“이곳은 아마 본격적인 시험을 보기 전 준비를 하는 곳인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저기가 관문인 것 같네요.”
황사 란트렐이 가리키는 곳은 조각상들을 지나 맞은편에 뚫린 거대한 통로의 입구였다. 빛의 향연 속에 환장적인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홀과 달리 칠흑 같은 어둠으로 채워진 그곳은 마치 마계의 입구라도 되는 듯 섬뜩한 느낌을 주었다.
“전진! 혹시 모르니 네 명씩 홀을 통과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예술품이라 해도 던전에 있는 보물에 대한 욕심을 이길 수는 없었다. 더구나 예술품을 보는 눈은 아무나 가진 것이 아니기에 다소 들떴던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았다.
“이런 조각상은 황실에도 없는데. 아무래도 드워프들의 솜씨인 것 같군.”
홀을 지나며 1황자의 눈길은 조각상들에 한참이나 머물렀다. 라 제국은 이종족들이 힘을 합쳐 만든 제국답게 인간들로서는 도저히 만들어 낼 수 없는 조각상이며 예술품들이 수없이 많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바람에 선두가 홀의 중간을 지날 때 1황자와 측근들은 아직도 후미에 위치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조각상이 만들어 낸 공간으로 진입했을 때 기어코 일이 벌어졌다.
휘리링!
갑자기 멈추어 있던 빛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뭐야?”
누군가의 목소리와 함께 다소 방만하게 풀어졌던 1황자 진영이 긴장에 휩싸였다. 개개인의 높은 실력의 기사가 아니면 고서클 마법사였기에 순식간에 임전 태세를 갖추었다.
크르르.
차마 만지지는 못했지만 바짝 붙어 재질이 어떤 것인지 관찰하던 한 마법사의 호흡이 닿은 순간 그의 앞에 서 있던 흑표범상의 입에서 소름 끼치는 피어가 흘러나왔다.
“블링크!”
마법사는 경악한 가운데서도 마법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사방의 조각상들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했고, 이내 홀 안은 비명과 다급한 주문 소리가 난무했다.
“크아악!”
“조각상이 움직인다!”
으드득!
비록 블링크를 했지만 너무 창졸간에 펼친 마법이라 중간에 해제가 되어 버린 마법사가 공중으로 도양했다가 벼락처럼 도약한 흑표범의 아가리에 들어가 씹혔다. 한입에 단단한 두개골을 부숴 버린 흑표범의 노란 눈에 형언할 수 없는 살기가 번들거렸다.
순식간에 홀은 혼란으로 빠져들었다. 사람들 사이에 위치했던 조각상들이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조각상에 불과했던 존재들은 한순간에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는 살아있는 존재들로 변해 버렸다.
쿠앙!
“끄아아악!”
“살려 줘!”
홀 안은 삽시간에 지옥으로 변해 버리고 말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 전개로 임기응변이나 몸이 재빠르지 못한 자들은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한 조각상들에게 당하고 말았다.
키가 5미터가 넘는 거인이 들고 있던 거대한 도끼가 머리를 내리치는 것을 빅터는 용케 피했다.
꽈앙!
빛으로 일렁이던 홀의 바닥이 굉음과 함께 부르르 떨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피부가 활짝 열려 짜릿한 살기를 감지했다. 너무나 생생했던 조각품이 한순간에 살아서 움직이리라고는, 아니 살육을 저지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기에 빅터는 충격과 놀람에 잘게 떨었다.
“정신 차렷!”
언제 왔는지 오랜 친구인 알도가 자신을 안고 굴렀다. 자신이 방금 전까지 있던 자리는 어느새 방패 크기의 배틀액스에 의해 깊은 구덩이가 파였다.
“진형을 갖추어라!”
기사장 로든 경의 외침에 최초의 습격을 피한 사람들이 익숙한 수비 진형을 갖추었다. 둘이 금방 셋이 되고 넷이 되어 네 방위를 맡았고 마법사들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이젠 오로지 앞만 상대하면 되는 것이다.
“실드!”
“파이어 밤!”
마법사들은 미친 듯 주문을 외우며 자신을 보호하거나 상대를 공격했다. 하지만 워낙 거리가 가까웠고 기사들만큼의 순발력이나 위기 대응력이 없었기에 벌써 이십여 명의 마법사들이 죽어 버렸다.
기이한 일은 그들의 시체가 시간이 흐르자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워낙 경황 중이라 그 점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실드나 블링크로 몸을 피했던 마법사들은 진형을 이룬 기사들에게 붙었다. 부여 마법 계통의 마법사들은 기사들의 신체에 스트렝스 마법을 걸어 주거나 급한 경우는 실드 마법을 펼쳐 방어력을 높였고, 기회가 나면 마법을 날렸다.
1활자를 지근거리에서 호위하던 기사 넷도 피해를 입었다. 황자가 조각상에 너무 가까이 붙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황망한 가운데서도 살아난 조각상들의 무기를 죽음으로 막아 낸 기사들의 보호막 안으로 피할 수 있었다.
“도, 도대체 이게 무슨 조화이더냐?”
“골렘입니다.”
힝기스가 소리쳤다. 그는 홀의 공중에 떠 있었다. 마법 지팡이의 구슬에서 눈부신 빛이 나며 다양한 마법이 펼쳐졌다. 7서클에 맞지 않는 저서클 마법들이 숨 가쁘게 한 골렘에게 펼쳐졌다. 매직 에로우로 수차례 난사당한 기사형 골렘의 옆구리에 매직 스피어를 떄리자 기세등등하게 검을 휘두르던 골렘이 마치 모래성처럼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그 속에 빛을 잃은 작은 구슬이 보였다.
“핵을 찾아라. 오러 소드를 사용해서 핵을 파괴해야 해!”
골렘이라니? 전설로나 들었던 골렘이라니? 하지만 힝기스 대마도사의 말대로 기사들은 이제껏 급소를 노렸던 것과 달리 골렘의 전신을 오러 소드로 공격했다.
“매직 애로우를 써라! 뒷부분과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을 요격해!”
힝기스의 지시에 따라 홀 안은 2서클의 매직 에로우로 가득 찼다. 물론 벌써 마나를 전부 소모한 마법사들도 몇 명 있었지만 대부분은 아직 여유가 좀 있었다. 자신의 서클에 해당하는 마법이 아니라 2서클 마법을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꽈앙!
골렘의 무기에 맞선 기사의 옆구리 사이로 수심줄기의 매직 애로우가 골렘의 전신을 요격했다. 머리와 어깨처럼 드러난 부분은 물론 겨드랑이왕 오금처럼 잘 드러나지 않는 부분도 유도 기능을 가직 매직 애로우가 직격했다.
핵이 있는 부위에 맞으면 골렘의 움직임이 미세하게나마 표시가 났다. 독이 오른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그런 약점을 놓칠 리 없었다.
파악! 퍼억!
“가랏!”
기사들의 오러 소드는 골렘의 핵이 있는 부위를 찌르고, 베고, 갈랐다. 흉험한 살기와 헐떡거림으로 가득 찼던 홀 안에는 어느새 공포스러운 침묵의 공격을 했던 골렘들이 남긴 돌가루 무더기가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최초에 기습을 당한 것을 제외하고 추가 희생자의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최초 희생자가 무려 서른둘이나 나왔다. 나머지 부상자들은 포션으로 치료를 했기에 전력의 누수가 별로 없었지만 막대한 희생을 치른 것이다.
“빌어먹을!”
1황자는 이를 갈았다. 설마 완벽한 예술 작품이었던 조각상이 골렘일 줄은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지옥의 입구처럼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또 다른 통로의 입구로 향하는 1황자 진영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또 어떤 존재가 튀어나올지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기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난장판이 된 홀을 떠나는 그들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다.
홀과 연결된 통로의 크기는 폭 5미터에 높이 6미터 정도였다. 척후를 맡은 두 기사의 바로 뒤에 마법사 둘이 배치되었다.
“마나 스캔!”
마법사들은 마나의 유동을 감지할 수 있는 마법을 펼쳐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하지만 꽤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뭔가 나타날 것 같았지만 통로는 고요하기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곧 이질적인 마나가 유동하는 것을 느끼고 경고를 했다.
“정지! 정지!”
“뭔가 나타났습니다!”
생각하지도 못한 공격을 당했던 터라 긴장한 사람들은 앞을 주시했지만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은 아직 없었다. 통로는 곧 질식할 것 같은 진한 침묵 속에 빠져들었다. 그 침묵은 오래도록 지속되었지만 아무것도 나타나는 것이 없었다.
“선두는 조심스럽게 전진하라!”
란트렐의 명령이 떨어지자 두 기사가 숨을 죽이며 앞으로 나섰고, 두 마법사는 여차하면 메모라이징한 마법을 날리기 위해 준비했다.
척! 척!
기사의 부츠 소리와 함께 몇 발자국을 채 걷지 못했을 때 척후 기사가 소리를 질렀다.
“골렘이닷!”
“윈드 커터!”
바로 뒤에 서 있던 마법사가 주문을 영창했고 이내 바람의 칼날이 맹렬하게 회전하며 전방으로 날아갔다.
까아깡!
앞으로 날아가던 윈드 커터는 이내 중인의 눈에 들어온 4미터 크기의 골렘이 휘두른 거대한 강철검에 의해 박살이 났다. 그 골렘 뒤로 다섯 기의 골렘이 지그재그로 사람들을 향해 육중한 몸을 움직여 오고 있었다.
“마법사들은 애로우 계통의 마법을 써서 핵을 찾아라!”
란트렐의 명령에 마법사들이 윈드 애로우나 매직 애로우를 날렸다. 하지만 좁은 통로 인지라 애로우들은 서로 부딪쳐 소멸되거나 혹은 튕겨 벽이나 바닥에 박혔다.
그사이 골렘들은 빠른 속도로 다가왔다. 어둠 속에서 보이는 골렘들의 모습에 란트렐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처음에 본 다섯 기가 전부가 아니었다. 뒤에는 강철로 제작된 골렘까지 보였던 것이다.
“매직 애로우!”
란트렐의 앞에 열 발의 매직 애로우가 생성되기 무섭게 가장 앞에서 뛰어오는 골렘에게 날아갔다.
팍! 팍! 팍!
매직 애로우는 머리통을 중점적으로 타격했다. 6서클 마법사가 날린 매직 애로우의 위력은 강했지만 골렘들은 돌덩이가 푹푹 떨어져 나갔어도 잠시 주춤했을 뿐 아무렇지도 않아 벌써 선두의 기사 바로 앞까지 도달해 있었다.
주군의 후퇴 명령이 없기에 임전 태세를 갖추고 있던 기사들은 마법사를 보호하기 위해 검에 마나를 주입시켰다. 하지만 그들의 눈동자는 엄청난 크기의 골렘이 달려오는 것을 보며 잘게 흔들렸다.
“이놈들!”
란트렐의 뒤에서 요로사스 백작이 질풍처럼 튀어 나갔다. 그의 검에서는 길게 솟아난 오러 소드가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까앙! 깡!
역시 소드 마스터의 오러 소드 위력은 대단했다. 숙련된 석고의 정이 찾아낸 결대로 망치를 휘둘러 돌을 부수듯 그의 오러 소드는 골렘의 전신을 난자한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오러 블레이드를 날리고 싶었다. 검의 형태를 가진 오러 소드, 즉 오러 블레이드라면 산산조각을 냈겠지만 골렘이 얼마나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소드 마스터 초급이라고 해도 겨우 몇 분밖에 유지할 수 없으니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단숨에 대여섯 번이나 휘두른 오러 소드에 골렘의 사지가 떨어져 나갔고 머리통까지 떨어졌다. 달려오는 힘으로 두 다리와 몸통이 계속 달려오는 것이 정말 그로테스크했다.
“매직 애로우!”
"윈드 애로우!”
기사들의 뒤에 서 있던 두 마법사가 바닥으로 떨어진 동체들과 사지를 향해 마법을 날렸다. 벌써 머리통과 사지가 동체를 향해 살아 있는 것처럼 꿈틀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팍! 파악! 파악!
마법으로 날린 화살이 사지에 집중적으로 박혔다. 다행이었다. 그곳에 핵이 있었는지 달려오던 골렘을 어쩌기도 전에 스스로 모래처럼 스르르 무너져 내렸다.
환호성을 지를 사이도 없었다. 바로 그 뒤로 다른 골렘이 따라와 거대한 검을 휘둘렀던 것이다.
요로사스 백작은 두 마법사를 안고 뒤로 훌쩍 날아갔다. 두 기사가 오러 소드를 준비하는 것을 본 것이다.
까앙! 까앙!
두 기사가 오러 소드를 일으켜 대검을 받아쳤다. 기사들의 동체가 순간 심하게 흔들렸다. 통로가 넓지 않아 마음껏 검을 날리기 힘들었던 까닭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골치 아프군.”
어느새 뒤로 물러난 1황자가 이맛살을 찌푸렸다. 이거야 완전히 힘 대 힘으로 뚫고 나가는 수밖에 없어 보인 것이다.
“기사들이 치고 빠지는 순간 애로우 계통의 마법으로 핵을 찾아 부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것 같습니다.”
마법 병단 힝기스 단장의 조언에 1황자는 빠르게 명령을 내렸다.
“기사와 마법사는 2인 1조를 이루어 골렘을 상대한다!”
그 명령으로도 모두가 골렘을 상대하는 방법을 알아들었다. 곧 2인 1조로 진형을 이룬 기사들과 마법사들이 줄을 지어 도열했다.
앞쪽에서는 새로운 골렘들이 줄지어 나타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눈앞에 드러난 골렘들에게 아까처럼 당할 실력들이 아니다.
문제는 시간이었다. 4관까지의 통과 시간에 따라 마법사가 주어진다니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렇다고 통로를 꽉 채운 골렘을 피해 앞으로 나아갈 도리는 없었다.
“빌어먹을!”
1황자는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