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2화.습격과 의문에 대한 단서 (133/278)

《습격과 의문에 대한 단서》

 쏘우가 사람들을 이끌고 집을 찾아온 것은 밤이 이슥한 시간이었다.

 “장담을 하더니 정말 능력이 있는 분이군요.”

 주민 칩을 위조하다니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이런 것이 가능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하룬이라 그는 진심으로 쏘우에게 감탄했다.

 “허헛!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네. 앞으로 천천히 내 능력을 보여주지.”

 집으로 들어오는 쏘우는 물론 사람들의 어깨에도 큼지막한 짐들이 들려 있었다. 짐으로 향하는 하룬의 시선을 느꼈는지 쏘우가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사용하는 필수적인 도구들일세. 기계류도 있고 전자 기기들도 있어. 그나저나 저 친구들 정말 힘이 좋더군. 100킬로그램에 가까운 짐을 어깨에 지고 이곳까지 걸어오면서 세 번밖에 안 쉬다니.”

 “이봐, 아저씨. 빨리 내려놓을 곳이나 말씀하시지.”

 땀을 뻘뻘 흘리며 마당으로 들어오는 사용이 빽 소리를 질렀다. 자세히 보니 사람들의 옷은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고 입술이 바짝 말라있었다.

 “일단 마당에다 놓으세요.”

 하룬의 말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표정으로 이제까지 지고 온 짐 꾸러미들을 마당 한쪽에 내려놓았다.

 하룬은 지친 사람들을 집 안으로 안내했다.

 “와아! 끝내준다.”

 제일 먼저 들어온 사용이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이미 벨과 아즈만의 손길을 한번 거친 실내는 잘 정리되어 있었다. 가구도 많이 없어 실내는 훨씬 넓어 보였고, 방도 충분했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느 방을 쓸 것인지 이야기를 하며 집 안을 구경했다. 보련은 누구보다 더 좋아했다. 차가운 인상이지만 이때만은 달아오른 얼굴로 욕실이 붙어 있는 1층 큰 방을 고집했다.

 “자, 일단 음료수를 마시면서 쉬십시오.”

 하룬의 말에 흥분했던 사람들이 거실로 모여들었다. 시간이 늦었지만 식사를 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하룬이 즉석 유동 음식을 데워 내자 시장한 사람들이 달려들었다.

 “우리 형님, 손님 대접이 끝내준다.”

 급한 성격대로 제일 먼저 식사를 끝낸 사용이 엄지를 들었다.

 “정말 맛있게 먹었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이 집을 써도 되는 건가?”

 비록 공장을 개조한 집이지만 자신들이 살던 옥상의 가건물에 비하면 너무 좋은 곳이기에 철웅이 다시 한 번 확인을 했다.

 “네. 아까 말한 대로 관리만 잘하면 됩니다.”

 “정말 고맙네. 럼 때문에 귀한 분을 만났군. 앞으로 살길이 좀 걱정이지만 일단 허리를 펴고 누울 집이 생기니 마음이날아갈 것 같군.”

 과묵한 인상의 철웅이지만 지금은 아주 많이 기분이 업 되어 있었다.

 “앞으로 집 안 관리는 내가 할 거니까 다들 내 말에 절대복종해야 해요. 총사범님도 열외는 없어요. 모두들 알겠어요?”

 깐깐하게 보이는 보련이 나서서 관리를 하겠다고 하니 하룬으로서는 적지 않게 안심이 되었다. 뭐, 이 집에 자주 들를 일은 없을 것 같지만 그래도 자기가 월세를 내는 집인데 집 안 꼴이 엉망이면 기분이 좋을 리는 없었다.

 “난 지하의 넓은 공간을 썼으면 좋겠는데…….”

 이제까지 눈치를 보던 쏘우의 말에 하룬은 다른 이들의 얼굴을 돌아보며 의중을 살폈다. 모두들 별 불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러세요. 다만 실험은 안 됩니다. 그것만 약속하세요.”

 “그러지. 다신 쫓겨나기 싫으니 안심해도 되네. 이제는 한정된 곳에서 실험할 만한 것은 다 해봤으니 말이야.”

 말을 들어 보니 실험 때문에 몇 번이나 곤욕을 치른 듯했다. 거주할 방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사용이 나섰다.

 “나와 럼은 2층을 쓸게. 이의 있는 사람?”

 당연히 없었다. 1층 큰 방을 보련이 나중에 합류할 묘미라는 아가씨와 같이 쓰기로 했고 철웅 총사범은 모린이라는 사범과 함께 1층의 작은 방들에 거주하기로 했다.

 하룬이 먹은 것을 정리하기 위해 주방으로 가자 보련이 같이 거들어 주었다. 나머지는 식탁으로 이용한 거실의 긴 탁자 위를 치우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모두가 이렇게 좋은 집에서 살게 된 것 때문에 기분이 좋아 집 안이 시끌시끌했다.

 그때 대화에서 소외된 터라 시큰둥한 얼굴로 큰 창에 붙어있던 쏘우의 얼굴색이 변했다.

 “가만! 조용히 해 봐!”

 갑자기 쏘우가 나직하게 소리치며 황급히 거실의 불을 껐다. 그의 목소리는 차갑고 강한 기세가 깃들어 있어 철웅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그의 말에 따랐다.

 막 그릇을 자동 세척기에 넣은 하룬은 뭔가 강한 위화감을 느끼며 감각을 끌어올렸다.

 스윽! 스윽!

 발을 끄는 미약한 소리가 들렸다. 마당 쪽에서 먼저 들린 그 소리는 곧 집 주변 여기저기에서 들려왔다.

 “무슨 일이야, 아저씨?”

 사용이 눈을 껌벅거리며 물었지만 쏘우는 대답 대신 검지를 입술에 대었다. 그러고는 허리띠의 버클을 따로 분리해서 손에 쥐고 눈을 고정했다.

 “침입자가 있습니다. 아홉, 아니 열입니다. 일단 대비를 하세요.”

 쏘우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하룬이 아무 소리도 없이 미끄러지듯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

 “맞아. 누군가 집을 향해 은밀하게 접근하고 있어.”

 쏘우의 말까지 들은 사람들은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나 검부터 챙겼다.

 “그 정도 숫자면 도둑이나 강도는 아닐 테고. 이렇게 은밀하게 담을 넘은 것을 보면 좋은 목적으로 온 것 같지는 않군. 방위군일까요?”

 레이스의 말에 사람들은 긴장하기 시작했다. 주민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그들로서는 방위군이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이곳은 치안 상태가 열악한 F나 E구역도 아닌 D구역인 것을 감안하면 범죄자들로 보기에는 무리가 잇으니 예상할 수 있는 것은 방위청 소속의 특수 경찰뿐이었다.

 “제길! 저치가 위조한 칩이 걸린 것이 틀림없어. 우릴 미행했을 거야.”

 검을 챙긴 사용이 굳은 얼굴로 쏘우를 노려보았다. 보련이나 철웅 역시 매서운 눈길을 보냈지만 쏘우의 얼굴은 별 변화가 없었다.

 “웃기지 마. 내가 위조한 칩이 걸릴 리가 없어. 그럼 게이트에서 당장 걸렸을 테니까. 혹시 너희들 방위청 경찰대에 수배된 거 아니야?”

 “무슨 개소리를. 우린 범죄자들이 아니라고.”

 쏘우의 말에 보련이 냉소를 날렸다.

 “확실한 것은 없으니 자중해. 일단 여길 빠져나가는 것이 관건이다.”

 철웅의 말에 달아오르려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잠시 생각을 하던 하룬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을 손으로 가리켰다.

 “밖은 완전히 포위가 된 것 같으니 일단 지하에 가 있어요. 일단 내가 집주인이니 무슨 일인지 이야기는 들어 보지요.”

 “위험해!”

 “아니네. 뚫고 나가지. 방위군 정도라면 그리 어렵지는 않을 걸세.”

 쏘우와 철웅이 하룬을 말렸다.

 “아닙니다. 이 구역은 나도 이사온 지 얼마 안 되어 지리를 잘 모릅니다.”

 “지하로 가면 돼. 언더 시티로 가면 안전할 거야.”

 하룬의 말에 쏘우가 대안을 제시했다.

 ‘언더 시티? 거기가 어디지?’

 그로서는 전혀 알지 못하는 장소지만 쏘우의 태도로 보아 그곳이라면 안전하다고 확신하는 것 같았다.

 “그러세. 언더 시티는 나도 몇 번 들어 본 적이 있는데 우리같이 유니온에서 수배를 받거나 쫓기는 자들이 모여 사는 곳이라고 하더군. 우리 때문인지 아니면 이 친구 때문인지는 몰라도 아무튼 골치가 아프게 됐네. 일단 그리로 가지.”

 철웅이 그렇게까지 말했지만 하룬은 고개를 저었다.

 “갈 때 가더라도 사정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대처를 할 수 있으니까요.”

 사실 하룬도 그들 때문에 무단 침입자가 담 안으로 들어왔을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아무 이유도 알지 못하고 이렇게 도망치는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따.

 “더구나 방위군이라면 무단으로 집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을 겁니다.”

 “좋네. 누구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사태가 생겨 유감이군.”

 철웅은 사람들을 데리고 지하로 내려갔다. 지하실이라고 아전한 것은 아니지만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단은 구조부터 파악해 놔야 했다.

 띵동! 띵동!

 결국 차임벨이 울렸다. 하룬은 홈 컴의 스크린을 주시했다. 그곳에는 전혀 알지 못하는 한 여인의 얼굴이 보였다.

 “정민 씨 댁입니까?”

 레이스와 비슷한 나이로 보이는 여자였다.

 “그런데요? 무슨 일입니까?”

 “주택국에서 나왔습니다. 계약 사항에 이상한 점이 있어 직접 질문을 좀 하고 싶은데요.”

 ‘주택국이라고? 이상한걸.’

 확실히 이상했다. 방위군이나 특수 경찰대라면 모르겠지만 주택국이라면 더욱 이치가 닿질 않는다. 그것도 계약 사항 때문이라니.

 “들어오십시오.”

 피한다고 될 일은 아니다. 대문을 열고 얼마 안 되어 여자가 문을 두드렸다.

 3중 잠금장치가 된 실내 문을 살짝 열자 유니온 제복을 입은 여자와 남자 하나가 보였다. 공무원 특유의 복장은 맞았다.

 “안녕하세요. 주택국 계약과에 근무하는 미트라라고 해요. 이쪽은 설계과의 보인 씨예요.”

 “반갑습니다. 일단 들어오시죠.”

 하룬은 문을 마저 열고 그들을 들였다. 혹시 이미 침입한 자들이 그들의 뒤를 따를까 걱정했지만 그들은 이미 자리를 잡고 대기를 했는지 우려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은밀하게 잠금장치를 채웠다.

 “앉으세요.”

 “감사합니다.”

 미트라와 보인은 얼마 전까지 철웅 일행이 앉았다가 일어난 등받이 없는 소파에 앉았다.

 “차라도 드릴까요?”

 “가능하시다면 부탁해요. 목이 좀 칼칼하군요.”

 늘 먼지바람과 함께 살아야 하는 유니온 주민이라면 당연한 반응이었다. 뭐, 차라고 해 봐야 유니온 실내 농장에서 대규모로 재배되는 씁쓸한 녹차였지만 중산층이라면 그래도 하루 세 번 이상은 꼭 마시는 것이 보통이다.

 하룬은 차를 준비하며 그들을 곁눈질했다.

 두 사람은 별다른 대화 없이 매서운 눈으로 집 안 구석구석을 관찰했다.

 ‘아무래도 주택국 직원이 아닌 것은 확실하군.’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하룬은 사람의 기세를 느낄 수 있었다. 집안을 둘러보는 당연할 수 있는 시선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눈빛은 평범한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정도를 훨씬 넘어서는 강렬한 것이었다.

 “흐음, 밤이 되니 좀 춥군.”

 찻잔을 쟁반 위에 올려놓은 하룬이 흠칫 몸을 떨며 자연스럽게벗어 두었던 외투를 걸쳤다. 속옷과 방어구에 더해 외투까지 걸쳤으니 예기치 않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얼굴을 비롯한 급소만 제대로 피하면 큰 부상은 입지 않을 것이다.

 “그러게요. 에너지 수급 상황 때문에 통합 난방이 늦어지는군요.”

 미트라가 쟁반을 받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유니온 전체 공기를 데우는 방신의 통합 난방이 늦어지고 있었다. 보인은 아무 말 없이 찻물을 조금씩 마시며 맛을 보고 있었다.

 ‘이자 역시 평범한 공무원은 아니다.’

 찻잔의 고리를 잡은 그의 손에는 굳은살이 가득했고 특히 손아귀가 두툼한 것이 상당한 검술 수련을 한 흔적이 보였다.

 하룬은 차 한 모금을 물었다가 천천히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이제 자세한 용건을 듣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는 주택국에서 나온 게 아닙니다.”

 하룬의 재촉에 미트라는 부드러운 표정을 유지한 상태로 용건을 밝혔다.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라 이미 짐작하고 있는 하룬도 어떤 반응을 보일지 고민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럼?”

 “저희는 사실 캡슐 때문에 방문했습니다. 저희는 유니온 직영의 임페리얼 컴퍼니 소속이지요.”

 뜻밖의 용건이라 더욱 그 방문 의도를 짐작하기 힘들었다.

 “전 그곳에서 캡슐을 구입한 적이 없습니다만.”

 “압니다. 하지만 현재 ‘비욘드’를 플레이한 것은 확실하지요?”

 “맞습니다만.”

 “유니온 뱅크의 거래 내역을 조사했더니 캡슐을 구입한 항목은 보이지 않더군요. 그것은 정민 씨가 불법으로 캡슐을 구했다는 말입니다. 유니온 게임 규약에 의하면 불법적인 캡슐 사용자는 1년 이하의 강제 노역 혹은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선고된다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하룬의 눈매가 일그러졌다. 설마 이런 일로 이들이 찾아왔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하룬의 얼굴은 정상으로 돌아왔다.

 ‘이 둘과 숨어든 여덟 명이 이런 일 때문에 침입했다고? 그건 아니지. 이건 정상적인 체포 과정이 아니야. 뭔가 다른 목적이 있어.’

 비록 이런 경험은 없지만 그래도 상식이라는 것이 있다.

 이럴 때는 일단 오리발부터 내밀고 보는 게 상수다.

 “그런가요? 전 몰랐습니다만.”

 하룬의 담담한 태도에 미트라의 눈빛이 좀 이상야릇하게 변했다.

 “유니온 규약을 몰랐다고 처벌받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캡슐을 불법으로 개조하거나 불법 개조 캡슐을 사용한 자는 그런 처벌 규정과 함께 해당 캡슐까지 압수당하게 규정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방문한 목적은 불법으로 제작된 것이 확실한 캡슐을 압수하고 정민 씨를 적법한 규약에 근거해 체포하는 것입니다.”

 미트라의 말이 떨어지자 보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손으로 외투 한쪽을 젖히자 제복 허리에 매달린 전자 팔찌가 보였다. 그는 익숙한 솜씨로 인신을 구속하는 전자 팔찌의 한쪽 고리를 풀었다. 하지만 하룬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 변화가 없었다.

 “임페리얼 컴퍼니 직원이 직접 인신 구속을 할 권한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더구나 불법 캡슐 문제로 체포되거나 처벌을 받은 경우는 최근에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이 그랬다. 캡슐의 불법 개조는 암시장을 중심으로 심심치 않게 이루어지며 유니온 정부터 단속을 포기한 지 오래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호호호! 그런가요? 뭐, 그렇다고 치지요. 하지만 당신이 체포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뭘 믿는지는 몰라도 순순히 체포되면 서로 편하리라고 생각해요. 보인은 전문가이긴 하지만 손이 좀 거칠거든요.”

 미트라의 말이 떨어진 순간 보인의 기세가 바뀌었다. 이제까지 평범한 인상이던 그의 입매가 옆으로 비틀리며 살기와 광기에 젖은 눈빛이 하룬에게 쏘아졌다.

 “진짜 목적을 알고 싶습니다. 그럼 순순히 갈 용의가 있는데.”

 미트라는 평범한 자라면 오줌을 지릴 정도로 강렬한 보인의 기세에도 전혀 흔들리는 기색이 보이지 않는 하룬이 뜻밖인지 잠시 매서운 시선으로 그를 관찰했다. 하지만 이젠 굳이 숨길 것이 없다는 듯 그녀 역시 기세를 드러냈다.

 단지 몸매가 끝내주는 미녀로만 보이던 그녀의 전신으로부터 오금을 저리게 하는 강렬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오랜 수련이나 실전이 없으면 결코 풍길 수 없는 위압감과 강한 살기로 인해 그녀는 마치 마녀처럼 느껴졌다.

 “후후후! 좋아, 그렇게 하는 것이 내 성미에도 맞아. 너라는 놈은 정말 간이 큰 녀석이구나. 인공지능이 탑재된 특수 캡슐 SS10의 도움으로 특이하게 게임을 통해 꽤 육체적인 능력이 올랐다지. 그걸 믿고 그렇게 황당하게 행동하는 건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실험체 주제에 반항할 생각은 하지 마. 순순히 따라가면 멋진 선물을 안겨줄 테니까.”

 본색을 드러낸 미트라의 말에 하룬의 눈빛이 야릇해졌다.

 ‘SS10? 실험체? 확실히 뭔가 있군.’

 하룬의 머릿속에 번개가 쳤다. 이제야 그동안 흐릿하게 자신을 둘러쌌던 비밀의 장막이 걷힐 기회가 온 것이다. 일단 조금이라도 더 정보를 알아내야 했다.

 “내가 순순히 따라가지 않는다면 무력이라도 쓸 셈인가?”

 “크크크! 이 핏덩어리가 아직도 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군. 뭘 믿고 그리 당당한지 모르겠네. 깔깔! 정말 재미있어. 왜 너희들 실험체들은 한결같이 본인의 능력을 과신하는지 모르겠어. 스페셜 캡슐로 인해 게임의 능력을 어느 정도 쓸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러는 모양인데, 그건 우리에게 비하면 어린애 몸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전혀 모르네.”

 “자신은 있고?”

 여전히 다리를 꼬고 앉아 하는 하룬의 도발적인 말에 미트라의 얼굴에는 더욱 화사하고 위험한 미소가 짙어졌다.

 “자신이라. 너 같은 쓰레기 실험체는 내 손가락 하나로도 처리할 수 있어.”

 “그럼 해 보든지.”

 “깔깔깔! 정말 재미있는 녀석이네. 그 귀한 SS급 캡슐까지 소실시켜 놓고 그렇게 싸가지없는 태도로 우릴 대하다니. 그냥 잡아가려고 했는데 생각을 좀 수정해야겠어. 보인, 내가 이 녀석을 가지고 장난을 좀 쳐도 되겠지?”

 미트라는 화가 날수록 더 짙은 미소를 짓는 성격인 것 같았다.

 “머리통만 온전하게 남기면 되지 싶은데.”

 음침한 보인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붉은 혀로 입술을 핥던 미트라의 눈이 하룬을 향했다.

 “들었지? 1급 상황에서는 네 육체에 새겨진 정보는  포기해도 되니까 그렇게 해주지. 이 누나를 도발한 대가를 제대로 치러 줄게. 기대해, 실험체! 그래도 숨을 쉬는 정도까지는 살려둘 테니까?”

 “그게 가능할까?”

 그 말과 함께 하룬의 두 손이 그들을 향해 움직였다. 어느새 외투 속에서 나온 그의 손에는 비수 두 자루가 잡혀 있었던 것이다. 채 3미터도 안 되는 거리인 터라 두 사람은 깜짝 놀랐지만 믿는 것이 있었다.

 “방防!”

 미트라의 외침과 함께 무서운 기세로 날아가던 비수 두 자루가 마치 막에 부딪친 것처럼 세차게 밖으로 튕겨졌다.

 ‘이 여자도 이능력자군.’

 미트라는 실드 마법을 펼친 것과 같은 방어막을 생성하는 능력자였던 것이다. 나인이나 레이스가 보인 것과는 달리 별로 지친 기색도 없거니와 너무나 손쉽게 이능력을 펼치는 것을 보니 제대로 수련을 받은 전문가였다.

 하지만 하룬도 멍청하게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암습의 성공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미 박살을 뽑아 들고 있었던 것이다.

 앉아 있던 하룬의 몸이 일어나는 것 같더니 폭발적인 기세로 박살과 함께 보인에게 쏘아졌다. 하룬의 몸보다 한발 앞서 나가는 박살에는 어느새 푸른 날이 생성되어 있었다.

 채앵!

 “크윽!”

 한차례 충돌음과 함께 비명이 터져 나왔다. 박살의 날을 받아 낸 팔찌는 두 조각이 나 바닥에 떨어졌고 보인의 손은 쩍 갈라져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보인!”

 미트라는 예상하지 못한 사태에 소리를 질렀지만 이미 작정을 한 하룬의 몸이 상처를 입은 보인을 덮쳤다.

 카앙!

 다시 한 번 살 떨리는 금속성을 들은 후 보인을 본 미트라의 눈이 찢어질 듯 커졌다. 언제 꺼내 들었는지 팔뚝 길이의 검을 뽑아 들어 상대의 검을 막아냈던 그의 몸이 비틀거리더니 방금까지 앉아 있던 소파로 힘없이 무너진 것이다. 검을 쥐고 부들거리며 떨고 있는 보인의 심장 어름에는 어느새 박살이 깊숙이 박혔다가 빠져나오고 있었다.

 “어, 어떻게?”

 미트라는 뜻밖의 상황에, 무의식주에 뒤로 튕기듯 물러나며 경호성을 토했다.

 유니온 특수군이 착용하는 메탈 슈트의 방호력을 뛰어넘는 이리디윰 합금 슈트가 이렇게 쉽게 뚫리는 것은 이제까지 본 것은 물론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또한 자신의 조에서 가장 강력한 무위를 지닌 세 조원 중 하나인 보인이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질 못했다.

 “너, 너 누구야?”

 뒷걸음질을 쳐 벽에 등을 댄 미트라는 팔에 찬 시계의 어딘가를 누르며 소리를 질렀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 조원들을 호출한 것이다.

 “나, 네가 말한 그 쓰레기 실험체지.”

 듣고 싶은 말은 많지만 밖에 있는 적들의 숫자를 생각하면 자신도 그 끝이나 활용법을 알 수 없는 이능력의 소유자를 두고 볼 수는 없었다.

 하룬이 마음을 정한 순간 그의 왼손은 비수 두 자루를 빠른 속도로 날렸다.

 챙그랑! 챙그랑!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가 나는 순간 하룬이 던진 비수 두 자루는 거의 간격 없이 미트라의 이마와 심장을 향해 화살처럼 날아가고 있었다. 기를 주입받은 비수의 날이 시퍼렇게 빛났다.

 “방!”

 역시 생각한 대로 비수는 그녀의 이능력에 튕겨 나갔다. 하지만 박살은 이미 튕겨지는 비수를 지나치고 있었다. 가장 짧은 동선을 타고 박살이 하룬의 몸과 함께 그녀의 심장을 노린 것이다.

 “폭爆!”

 파앙!

 전변에서 폭음이 터지는 순간 하룬은 왼 팔뚝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그 순간 강한 압력과 함께 그의 몸이 뒤로 날아갔다.

 ‘새로운 기술이군. 공기를 압축시켰다가 한 번에 폭발시키는 기술이야.’

 놀라운 이능력이지만 하룬은 뒤로 날아갔을 뿐 별다른 피해를 입지는 않았다. 방호복들은 그 정도 충격을 충분히 분산하거나 막아낼 수 있었다.

 “타앗!”

 하룬은 기합과 함께 다시 박살을 겨누고 미트라를 향해 달려들었다. 메신저 스킬을 펼친 그의 몸이 박살과 함께 화살처럼 미트라를 향해 날아갔다.

 “막膜!”

 미트라의 고함과 함께 박살의 끝에 뭔가가 걸렸다. 하지만 이미 기를 머금어 푸르게 빛나는 박살은 그 막을 뚫고 거침없이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촤악!

 박살을 따라 하룬의 몸이 한 번 구멍이 난 곳을 넓히며 천을 찢는 소리가 들렸다.

 ‘공기 막이었군.’

 공기를 응집시켜 만든 일종의 에어 실드였다. 그런 것을 만든 능력도 대단하지만 기를 머금은 날카로운 검을, 그것도 찌르기로 타점이 집중된 박살을 막을 수는 없었다.

 “멈춰!”

 누군가의 고함이 귀에 들어왔을 때는 이미 박살이 재차 입을 벌리고 무언가를 외치려고 하는 미트라의 가슴을 파고들고 있었다. 피하기에는 너무 가까웠기 때문에 그녀는 박살의 푸른 검첨이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는지 공포에 잠식된 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카악!”

 메탈 슈트를 지나 단단한 갈비뼈를 부수고 심장을 꿰뚫은 박살이 빠른 회전과 함께 커진 구멍으로 빠져나왔다. 박살이 빠져나간 구멍이 허전한지 미트라는 본능적으로 손을 뻗어 솟구치는 뜨거운 피를 막으려 했지만 피는 손가락 사이로 빠르게 분출되고 있었다.

 극심한 고통과 허탈감에 빠져 죽어가는 미트라지만 강한 정신력을 가진 그녀가 애써 무너지려는 몸을 붙잡았다. 하룬은 피를 피해 그녀의 옆으로 가까이 갔다.

 “크억! 너, 너는…… 누……구……냐?”

 “너희들이 쓰레기 실험체라고 부르는 휴먼 중 하나야. 잘 가!”

 마지막 가는 길이라 사실대로 자신의 정체를 속삭여 준 하룬은 심상치 않은 공기의 유동을 느끼고는 다급한 마음에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미트라의 몸으로 자신을 가렸다.

 퍼억! 퍽! 퍽!

 뭔가 그녀의 몸을 가격해 하룬에게까지 충격이 전해지고 있었다.

 ‘파동건이다!’

 실내 공기는 파동탄으로 인해 요동을 치고있었다.

 퍽! 퍽!

 파동탄에 미트라의 시체가 엉망으로 변하는 것이 느껴졌다. 몸은 특수 슈트 때문에 외관상 큰 변형은 없었지만 머리 부위는 다 터져나가 피와 살덩이들이 하룬에게까지 튀었다.

 ‘흐윽!’

 결국 소나기처럼 퍼붓는 공세에, 그 시체로도 가려지지 않는 옆구리와 다리 부위에 몇 발의 파동탄을 맞았다. 맞는 순간 송곳으로 찔리는 듯 극통이 느껴졌지만 겹으로 입은 방호복 때문인지 통증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독한 놈들!’

 그래도 자신들의 동료일 텐데 아무리 시체라고 해도 이리 파동탄을 쏴 대는 것을 보니 필시 잔인하고 악독한 무리일 것이다.

 휘익!

 하룬은 미트라의 시체를 전방으로 던지는 것과 함께 소파 쪽으로 몸을 날렸다.

 슈욱! 쓩! 쓩!

 대번에 지나는 길에 놓인 가구들과 바닥이 파동탄에 맞아 부서지거나 푹푹 파였다.

 ‘어디!’

 하룬은 소파 뒤의 공간으로 몸을 던졌다. 비록 그 와중에 몇 발은 맞았지만 처음처럼 큰 고통은 느끼지 않았다.

 슈웅! 슉! 슉!

 퍽! 퍽! 퍽!

 보인의 시체 역시 특수한 슈트를 입고 있었는지 소파와 함께 잠시 동안은 그의 몸을 막아주고 있었다.

 ‘어디지?’

 빗발치는 파동탄 때문에 난입한 적들의 위치는 다 파악할 수 없지만 그래도 몇 명이 몸을 움직이는 동작을 통해 그 장소는 대충 알 수 있었다.

 하룬은 비수를 꺼내 단단히 그러잡았다.

 ‘커브 피치!’

 적과는 전혀 상관없는 방향으로 날아가는 비수들.

 시퍼런 날들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모습에 적들은 황당하겠지만 하룬은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그의 손에서는 끊임없이 비수가 날아갔다. 그 비수들은 푸른빛을 발하고 있었다.

 “커억!”

 “헉! 끄르륵!”

 “조심햇! 비수가 살아서 움직인다!”

 비명이 억눌린 신음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급작스러운 움직임이 당혹스러운 경고성과 함께 들려온 순간, 하룬은 나머지 적들의 위치 역시 알 수 있었다.

 “헬맷을 착용해!”

 하룬은 다수를 상대하는 데 유리하다는 호접표에 커브 피치의 힘을 담아 적들의 방향으로 한꺼번에 던지고는 소파의 옆으로 굴러 밖으로 빠져나왔다.

 ‘쓰러진 자는 셋!’

 하나는 절명한 것 같았고, 둘은 목에 비수를 맞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곧 죽을 것이다.

 나머지 다섯 중 둘은 부엌 쪽에 그리고 나머지 셋은 창문가에 하나, 문가에 하나, 방 옆의 벽에 등을 대고 있었다. 의문의 적들은 부엌 쪽 창문을 깨고 안으로 침입한 모양이었다.

 비록 다섯이나 되는 상대지만 그들 역시 성한 상태는 아니었다. 기를 머금은 비수 몇 자루가 그들의 슈트에 꽂혀 피를 빨아먹고 있었다.

 ‘살을 주고 뼈를 벤다!’

 하룬은 메신저 스킬을 펼치며 문가에 자리를 잡고 파동건을 쏘고 있는 족에게 비수를 던졌다.

 쐐액!

 기가 깃든 비수는 파공성을 내며 막 헬맷을 쓰고 있던 적의 목에 깊숙이 박혔다.

 “끄르륵!”

 적이 제대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지는 순간, 잠시 몸을 멈춘 하룬에게 사방에서 파동탄이 날아와 박혔다. 날아온 파동탄들이 그의 외투 전면을 고루 두드렸다. 하룬은 고글을 쓰지 않은 터라 눈 부위로 날아오는 파동탄만 신경 썼지만 다행하게도 그 부위로 날아오는 탄은 없었다.

 퍽! 퍽!

 ‘견딜 만하다.’

 파동탄은 일반 화약 탄처럼 따로 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체에서 파동탄을 형성시켜 발사하는 것이기에 분당 발사 속도는 그렇게 빠르지 않았다. 충격을 분산시키거나 흡수하는 외투의 방호력 때문인지 맞는 순간에도 충격이 크지 않았다. 어쩌면 고통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르겠다.

 슈욱!

 다시 비수가 날았다. 시퍼런 기광氣光을 드러낸 채 날아간 비수는 훤히 열린 슈트의 심장 어름에 정확하게 꽂혔다.

 “크윽!”

 상대는 믿을 수 없다는 듯 파동건을 떨어뜨리고는 자신의 심장 깊숙이 박힌 비수의 자루를 잡았다. 아마도 비수가 자신의 슈트를 뚫고 박힌 것이 믿기지 않았으리라. 비수를 잡아 뺀 상대의 몸이 더운 피를 뿜으며 그 자리로 허물어졌다.

 ‘이제 셋이다!’

 하룬이 다른 상대를 찾아 비수를 날리려는 순간 부엌 쪽에 있던 상대가 괴성을 질렀다.

 “끼요옷!”

 광선검이었다. 에너지로 만들어진 휘황한 광채의 검을 두 손으로 쥔 상대가 미끄러지듯 하룬을 향해 달려왔다.

 ‘질쏘냐!’

 하룬은 손에 쥔 비수를 경계 삼아 창가로 던지고 빠르게 박살을 뽑아 들어 이미 머리를 베어 오는 광선검을 비스듬히 후려쳤다.

 채앵! 챙!

 하룬은 강력한 충격에 내장이 상해 입 밖으로 울컥 피가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주르르 몸이 밀렸지만 이를 악물고 박살에 기를 주입시켰다.

 쾅! 꽈앙!

 처음에는 기를 주입시키지 못한 탓에 금속성이 났지만 기를 주입해 광선검을 받아치자 금속성이 아니라 강한 폭발음이 터졌다.

 ‘이 정도라면 상대할 만해.’

 하룬은 상대의 광선검을 연방 받아치며 자신감을 가졌다. 비록 그 무엇이든 다 잘라버리고 파괴한다는 광선검이지만 기를 머금은 박살 역시 그 정도 위력을 보여 주었다. 선기를 빼앗긴 탓에 상대의 광선검을 계속해서 받아치고 있지만 밀린다거나 내장이 올라오는 충격은 더 이상 없었다.

 “타앗!”

 메신저 워킹 스킬을 펼쳐 광선검의 전권에서 한순간 물러난 하룬이 기합성과 함께 몸을 날렸다. 광선검을 든 상대 역시 피하거나 물러날 생각이 없는 듯 힘차게 팔을 휘둘렀다.

 꽈앙!

 굉음과 함께 다시 양쪽으로 물러난 두 사람은 이내 다시 서로에게 달려들었다. 상대는 거의 무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 손목만으로도 검을 조종했기에 메신저 워킹 스킬을 펼쳐 빠르게 움직이는 하룬의 검을 제대로 막아내고 있었다.

 하룬은 이를 악물고 상대의 틈을 향해 박살을 휘둘렀다. 속도의 이점을 전혀 가질 수 없는 상황이기에 마음대로 검술을 펼치지 못하고 힘 대 힘으로 우직하게 부딪치는 상황이었지만, 상대의 검이 뿜어내는 광채가 충격 시마다 조금씩 엷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이다.

 쾅! 꽈앙!

 계속되는 굉음 속에서 하룬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던 상대의 발 뒤로 적의 시체가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타앗!”

 발가락만으로 힘을 주어 바닥을 박찬 하룬의 몸이 마치 화살처럼 상대의 복부를 향해 날아갔다.

 “흣!”

 처음 가하는 찌르기 공격에 상대의 헬멧을 통해 다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황급히 뒷걸음질을 치며 광선검으로 박살을 쳐 내리던 상대의 몸이 갑자기 중심을 잃고 뒤쪽으로 쓰러졌따.

 푸욱!

 “끄윽! 개 같은…….”

 동료의 시체에 발이 걸려 넘어가는 바람에 복부 대신 심장에 박살이 박히자 상대는 나직한 욕설을 내뱉었다.

 ‘휴우! 위험했어.’

 하룬은 아직도 벌렁거리는 심장 박동 소리를 들으며 쓰러지려는 상대의 목을 움켜쥐었다. 뒤에서 그에게 파동건을 겨누고 있을 마지막 적을 의식한 것이다.

 막 박살을 천천히 빼내는 순간 상대의 어깨 너머로 쏘우의 파동건에 맞아 쓰러지고 있는 마지막 적의모습을 볼 수 있었다. 쏘우가 들고 있는 건은 보통 파동건과 외양은 다르지만 그 위력만은 무시무시했다. 특수 슈트를 입고 있는 것이 확실한 상대는 몇 발이나 맞았는지 몰라도 온몸이 비틀리고 부러진 상태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사람들은 하나둘씩 지하에서 올라와 죽어 넘어진 적들을 보며 입을 가리거나 하얗게 질린 얼굴로 구토를 했다. 그나마 쏘우와 철웅만이 정상적인 얼굴을 하고 있을 뿐이었다.

 “대단하군!”

 무슨 의미인지 잘 모르겠지만 철웅은 고개를 몇 차례 휘저으며 쓰러져 있는 자들의 상태를 점검했다.

 하룬은 편하게 앉거나 눕고 싶은 생각이 간절할 만큼 지친 상태지만 이를 악물고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처리한 자들의 옷을 뒤지던 쏘우가 뭔가를 유심히 보는 것을 봤던 것이다.

 ‘이놈들의 정체가 뭐야?’

 미트라가 한 말을 통해 대충 짐작하긴 했지만 그로서는 사실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많았다. 혹시 목표를 잘못 안 것은 아닌지도 생각해봤지만 주소와 이름을 정확하게 아는 것으로 보아서는 그럴 가능성이 없었다.

 “정체를 알 수 있는 단서라도 있습니까?”

 “잘은 모르겟지만 방위군은 확실히 아니야.”

 그가 꺼낸 지갑에는 다양한 신분증이 있었고, 그 이름들과 주소 역시 다 달랐다. 더구나 쏘우가 사용한 것과 유사한 주민 칩과 인공 피부까지 나왔다.

 “이래선 어렵겠는걸. 제길! 정체를 알아야 어떻게 대처를 할 텐데.”

 쏘우가 작게 투덜대는 동안 구토를 하던 사용이 가까이 왔다.

 “아저씨, 무슨 죄를 그렇게 많이 졌기에 이렇게 무시무시한 놈들이 쫓아다니는 거요?”

 하룬은 쏘우가 뭐라고 할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 그는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이거 위험해서 같이 다니겠습니까? 아저씨, 이렇게 무시무시한 놈들에게 쫓기는 사연이라도 대충 좀 압시다. 아니 너무 위험해서 안 되겠우. 지금이라도 당장 나가시오.”

 힐난하는 기색이 역력한 사용의 태도에도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분명히 자신 때문에 이들이 온 줄은 알고 있었지만 쏘우의 태도는 정말 이상했다. 그가 손에서 떼지 못하고 있는 신분증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사용의 눈도 마침 그것을 보고 있었다.

 “임페리얼 컴퍼니? 여긴 캡슐 회산데. 혹시 이 회사와 관계가 있는 거유?”

 사용의 말에 쏘우는 신경질적으로 들고 있던 신분증을 바닥에 던져 버렸다.

 “제길!”

 “뭐요? 그 꼴로는 그 대기업을 어떻게 했을 것 같지는 않고, 무기를 개조한 것을 보니…… 설마 불법으로 캡슐을 개조하기라도 한 거요?”

 벌떡!

 사용의 말에 쏘우가 발작처럼 일어났다.

 “그래! 맞다, 맞아! 내가 캡슐 몇 개를 개조했지.”

 “몇 개? 못 믿겠는데, 아저씨. 그 정도 일에 이렇게 미친 척하고 살인자들을 보낼 리가 있나.”

 “그래, 한 백 개는 넘는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으득! 개새끼들!”

 쏘우가 이를 갈며 쓰러져 있는 시체를 발로 걷어찼다. 시체의 옆구리가 그의 발에 안쪽으로 좀 밀리는 것 같더니 이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파동건으로 인해 찌그러지는 등 엉망이 되었던 부분들도 이미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다.

 “호오! 이건 다른 종료의 슈트네.”

 “뭔데?”

 비록 현실에서는 처음 대하는 잔혹한 광경이지만 이미 강한 현실성을 가진 가상현실 게임들을 통해 이런 광경을 수없이 보았던 레이스와 럼이 충격을 극복하고 사용에게 다가왔다. 비록 정신은 차렸지만 거실 쪽에 펼쳐진 잔혹한 광경을 보는 것은 본능적으로 피하고 있었다.

 “재질은 알 수 없는데 충격을 분산시키고 시간이 지나면 제 모습으로 돌아오는 형상기억 기능까지 가지고 있어.”

 “호오! 대단하네. 이런 슈트는 특수군도 못 입을 텐데.”

 어느새 가까이 온 보련과 철웅도 관심을 보였다.

 “이건 이리디윰 합금 소재로 만든 거야.”

 “그게 뭐요, 아저씨?”

 사용은 흥미가 동하는 눈치였다.

 “강철의 열 배에 달하는 강도를 지녔으면서도 충격을 분산하는 분자 구조와 제 형상으로 복원하려는 성질을 가진 특수 합금이야. 나도 듣기만 했지, 눈으로 본 것은 처음이야. 듣던 대로 돈은 무지하게 많은 놈들이군. 이건 같은 무게의 금덩어리와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어. 물론 팔 수는 없겠지만.”

 “히야! 그럼 아저씨의 그 파동건이 끝내주는 물건이구먼. 그런 슈트의 방호력을 뚫고 뼈를 다 부숴 버렸으니.”

 사용은 쏘우의 옆에 놓인 파동건을 탐욕스럽게 쳐다보았다.

 “이놈이 하룬에게 정신을 팔았을 때 제대로 날린 덕분이지. 이건 위력은 강한데 분당 세 발밖에는 못 쏘거든. 그것도 한 번에 스무 발밖에는 못 쏘는 데다 충전 시간도 만 하루는 꼬박 걸려. 그리고 어지간한 팔 힘이 없으면 충격으로 한 발을 쏘고 나면 뒤로 몇 걸음이나 물러나야 해.”

 “그래도 이놈이면 오르그는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은데, 아저씨.”

 “그야 그렇지. 원래 그런 목적으로 개량을 한 거니까. 제대로 맞힐 수 있다면 30미터 안에서는 머리통을 날릴 수 있을 거야.”

 하룬은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태범을 떠올렸다. 명사수에다가 사이보그인 그가 이것을 사용한다면 제대로 쓸 수 있을 것이다.

 “자, 어떻게 할 생각인가?”

 철웅이 개조된 파동건에 쏠려 있는 모두의 관심을 돌렸다. 그의 눈은 하룬을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언제 다시 암살 조직이 올지 모르니 피하는 것이 낫겠군. 아직까지 방위군이 출동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쪽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지만, 그래도 소음이 꽤 컸기 때문에 경계망에 걸렸을 수도 있어.”

 철웅의 말대로 그럴 가능성은 있었다. 행여 구역 방위군이나 주택국에서 문제 확인을 위해 방문하면 곤란한 상황에 빠질 것이다.

 “에이, 이제 제대로 된 집에서 사는가 싶었는데 이 범죄자 아저씨 때문에 망쳤구먼.”

 사용이 투덜댔지만 그리 감정은 없어 보였다. 그들 역시 유니온 입장에서는 범죄자였던 것이다.

 “나중에라도 일이 생기면 곤란하니 차라리 불을 내는 것은 어때요?”

 내내 창백한 얼굴로 말없이 있던 럼의 제안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쏠리는 것에 긴장한 듯 창백한 얼굴에 홍조가 드리운 그가 마저 의견을 제시했다.

 “증거를 인멸해야죠. 이들 역시 방위군은 아니니 조사가 시작되면 꽤나 골치가 아플 거예요. 어쩌면 하룬을 잡으려 할 수도 있으니 저 친구의 주민 칩도 꺼내 던져 버리는 거예요.”

 “흐음.”

 하룬은 좋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이참에 유니온을 벗어나는 것도 나쁘진 않아.’

 럼의 계획대로 된다면 추가적인 공격을 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이들의 힘이 유니온 정부 조직 안까지 뻗쳐 있다면 화재 현장에서 나온 주민 칩으로 그가 사망했다고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일단 사정을 확실히 조사하자면 내가 어둠 속으로 녹아들어 가야 해.’

 어떻게 자신의 거처를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숨고 볼 일이다. 이들이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굳이 밝힐 이유는 없었다. 어쩌면 만에 하나 그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었다. 분명 처음에 임페리얼 컴퍼니에서 나왔다고 했으니 둘 다 노린 것일 수도 있었다.

 “좋아, 럼. 네 말대로 하는 게 좋겠어.”

 럼은 하룬이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 기쁜지 공포로 움츠러들었던 몸을 풀었다.

 “그럼 우리 집으로 가자. 여기서 조금 멀기는 하지만 나름 한적한 곳이라 머물기는 괜찮을 거야. 부모님이 계시기는 하지만 내 거처는 지하라 내려오시는 일은 없거든.”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사람들은 힘을 합해 어쌔신들의 방호복을 벗기고 무기를 모았다. 럼과 레이스는 꺼리는 기색을 드러냈지만 철웅을 비롯한 도장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에 피 칠갑을 하며 작업을 했다. 하지만 그들도 머리통이 날아간 미트라와 보인의 몸은 건드리지 못했다.

 “자, 그들은 그대로 놔둬. 어차피 제대로 남은 흔적은 어느 정도 있어야 하니까.”

 쏘우의 말에 도장 사람들은 잘되었다는 표정으로 물러나 세척을 위해 목욕탕으로 향했다. 이미 쏘우로부터 피 냄새와 그 특유의 흔적을 제거하는 약품을 받았던 것이다.

 “자, 이젠 자네 몸속에 들어있는 주민 칩을 꺼낼 차례야.”

 하룬의 피부 속에 주입되었던 주민 칩을 꺼내기 위해서 쏘우가 시술을했다. 국부 마취와 함께 쏘우의 익숙하고 정확한 솜씨 때문에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따로 가져갈 것은 없어, 하룬?”

 럼은 안타까운 얼굴로 물었지만 피범벅이 된 집에서 가져갈 것이 있을 리가 없다. 더구나 중요한 것들은 모두 기지에 있었고 여긴느 그저 형식적인 것들만 있을 뿐이다.

 “미안하네.”

 쏘우가 정색을 하고 사과를 했지만 하룬은 그저 씁쓸히 엉망이 된 집을 한번 둘러보았다.

 “증거가 남지 않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가능하네. 강력한 휘발 물질이 내게 있어. 더구나 이 집은 전에 공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라 전력 시설이 노후하고 부실하게 지어져 금방 타 버릴 걸세.”

 하룬은 화장실을 바라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저들의 조직에서 정밀 감식을 하면요?”

 특수 슈트를 의식한 것이다. 하룬의 시선을 따라 화장실을 쳐다본 쏘우는 그의 걱정을 금방 알아차렸다.

 “그래도 문제는 별로 없네. 화재 후 정밀 감식을 하면 내화성이 강한 이리디윰이 검출될 테지만 그 양은 알 길이 없지. 문제는 내 흔적이야.”

 하룬은 쏘우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들었다. 그를 대신할 사체가 한 구 필요했다.

 “나를 대신할 시체 한 구만 구해 숫자만 맞추면 날 노리는 녀석들이 나와 함께 같이 죽었다고 생각할 거야. 내가 강력한 폭발 물질을 터트려 동사同死를 했다고 생각하겠지.”

 “구할 방도는 있습니까?”

 “있네. 언더 시티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을 거야. 혹시 집 안에 먹을 것이 좀 있나?”

 구할 수 있다는 말에 안심을 한 하룬은 냉장고를 가리켰다. 일전에 사 놓은 먹을 것들이 냉장고에 가득 남아 있었다. 바란 일행을 대접할 때 준비했던 것과 간간이 들를 경우를 위해 준비해 둔 것들이다.

 “사용, 네가 날 좀 도와줘. 언더 시티에 다녀와야겠어.”

 쏘우의 말에 막 화장실을 나오던 사용이 입을 삐죽거렸지만 순순히 방호 슈트를 내려놓고 쏘우에게 왔다.

 “근처 하수구 맨홀이 어디 있는지 아나?”

 그거라면 본 적이 있었다. 바로 블록의 가장자리에 있는 진수 집 앞에 있었다. 그곳을 가르쳐 주자 쏘우는 사용을 데리고 집을 나섰다.

 처참한 시체들과 엉망이 된 실내를 피해 밖으로 나온 사람들이 그들이 사라진 어둠으로 눈길을 주었다.

 “언더 시티가 어디에요?”

 레이스가 철웅에게 물었다.

 “허헛! 언더 시티라. 말은 그럴듯한데 실은 그냥 하수구야. 도망자들이 숨어 사는 곳이지. 우리도 한동안 머문 적이 있네. 지옥 같은 곳이지. 도둑질에 강간, 강도, 살인까지 심심치 않게 일어나는 곳이야.”

 철웅의 대답을 들은 레이스와 럼이 오만상을 징그렸다. 그런 곳이 존재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F구역만 생각해도 끔찍한데 그런 곳이 있다니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쳤다.

 “절대 가면 안 되는 곳이지만 배리어 밖으로 나갈 수도없는 상황에서 유니온 정부에 쫓기는 사람들에게는 마지막 남은 피신처지. 그래도 그들 중에는 제법 뛰어난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있어 나름대로 최소한의 규율은 있어.”

 하룬 역시 생각만으로도 끔찍했지만 럼과 레이스와는 달리 안타까움을 느꼈다.

 죄를 지은자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으면 한 사회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고 안락한 삶을 살려면 지켜야 하는 것이 바로 법이다. 하지만 유니온의 법은 법이 아니었다.

 ‘가진 자는 죄가 없고, 못 가진 자는 죄가 있다.’

 이것이 현재 유니온의 실상을 드러내는 말이었다. 노블을 비롯한 세력가들은 그 어떤 죄를 지어도 벌을 받지 않는다. 반면 일반 주민들, 특히 그중에서도 무능력자 집단인 F구역 주민들은 무능력자로 판정되는 즉시 죄인이 되어 버린다. 잠재적인 범죄자로 분류되어 상위 구역의 전자 감찰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상위 구역 주민들과 다툼이 벌어지면 대부분 그 죄를 뒤집어쓰는 것이다.

 ‘이 쓰레기 같은 현실을 언젠가 꼭 바꾸고 말겠어!’

 전처럼 아무 능력도 없이 절망적인 삶을 기계적으로 살 때야 원망에 불과한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다르다.

 하룬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만의 새로운 목표를 정해 가고 있었다.

 ‘이럴 때가 아니지. 진수 형에게 대충 상황이라도 알려야지. 걱정하겠다.’

 하룬은 급하게 옆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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