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0화.복수 (221/278)

복수

지하 도로는 아즈만의 추측대로 유니온의 지하와 연결되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다른 곳으로 갈라지는 통로가 여러개 있는 것으로 보아 유니온 밖에 있는 기지들과도 연결이 된 것 같았다.

하룬은 유니온 밖에서 만난 첫 번째 연결 통로에서 멈추었다. 다른 곳으로 향하는 통로가 양쪽으로 크게 입을 벌리고 있었다. 아마도 GG의 무력 조직의 거점으로 향하는 길일 것이다.

"대산 조장이 15명을 데리고 이쪽을 맡아!"

"맡겨만 주십시오. 말끔히 날려 버리겠습니다."

대산은 대원들과 함께 폭약을 가지고 무궤도 차량에 탑승했다. 앞으로 직진하자 통로가 더욱 넓어졌다.

천장과 벽은 단단하게 잘 다져져 있었고 일정 거리마다 희미한 전등이 켜져있었다. 그리고 바닥에는 사용했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이 통로는 뭐지?"

"제가 보기에는 유니온 정부에서 사용하는 서브 로드 중 하나 같아요. 더 깊은 지하에는 다른 유니온과 연결되는 서브 레일이 있지만 이 도로는 유니온 수뇌부나 군부가 은밀하게 사용하는 도로 같아요."

'서브 로드를 세 조직에서 암묵적으로 공유하는 걸까?'

확실한 것은 모르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서브 로드를 따라 움직이던 하룬 일행은 유니온 F구역의 중심부로 향하는 수직갱을 볼 수있었다.

하룬은 사람을 나누었다. 원래의 목표는 F구역에 있는 글로리 가이아의 본부 한 곳이었지만 이제 목표는 확장된 상태다.

"태력이 8명의 대원을 데리고 이 위를 정리해! 시간은 새벽 2시로 맞춰."

유니온 중심부로 향하는 연결 도로들이 속속 나타났던 것이다. 하룬은 계속 전진하여 C구역에 있는 목표에 태범을 수장으로 한 10명의 대원을 올려 보냈다.

그곳은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다. 하룬은 그곳에 끌고 온 궤도차를 모두 남겨 두었다. 오면서 아리가 알려 준 바에 따르면 이곳은 GG가 은밀하게 운영하는 물류 시설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GG의 무력 조직에 제공할 무기류와 각종 보급품 등이 보관되어 있었다. 가능하면 그 물건들을 모두 가져올 생각이었다.

남은 사람들이 공격할 장소는 유니온의 코어에 위치한 임페리얼 컴패니 공장이었다. 양부의 다이어리에 의하면 임페리얼 컴패니는 세 세력의 가장 큰 지원금이 되는 곳이면서 그들의 전력이 가장 많이 포진한 곳이다.

아리가 가진 좌표를 토대로 도착한 곳에는 약 500미터 간격으로 세 개의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그것을 본 아리는 대번에 각 공장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들이라는 걸 알았다.

"오빠, 3공장만 처리하면 되나요?"

하룬은 고개를 저었다.

"이왕 온 김에 1, 2공장도 날려 버리자. 보급형 캡슐을 생산하는 4공장만 놔두고 나머지를 모두 폭발시키는 거야."

"그래도 괜찮을까요?"

이곳이 사라지면 캡슐 공급이 한동안 중지된다. 물론 보급형 캡슐을 그런대로 생산될 테지만 유니온 정부와 세 세력은 물론이고 넥컴월도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게이머들도 놀랄 것이다.

"난 가상현실에 빠져 현실을 도피하려는 사람들에게 현실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 주려고 해. 가상현실 게임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치열한 삶을 살아야 할 사람들이 점점 가상현실에 빠져 현실에 등을 돌리는 바람에 세상을 좀먹는 무리가 생겼다고 생각하니까."

세상을 암중에 지배하는 세 세력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피폐해져서 가상현실 게임에 빠져들었는지, 가상현실 게임을 통해 현실에 관심을 잃어버린 탓에 폐쇄된 사회를 받아들이게 된 것인지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지만 이대로 둘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경우 놀라운 사양의 캡슐과 게임을 통해 새로운 휴먼으로 재탄생했지만 하룬은 게임은 게임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힘겨운 일을 마치고 서너 시간 정도 게임을 통해 스트레스를 푸는 것은 정신건강상으로도 유익하지만 그 이상이 되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하게 된다.

보급형 캡슐을 통해 게임을 즐기는 것은 중독 현상을 일으키지 않지만 동화율이 높아지고 플레이 시간을 늘려 주는 중급 이상의 캡슐은 중독될 위험이 매우 높다.

게임의 중독성은 종말 시대에도 화두가 되었을 정도로 큰 사회문제다. 게임에 중독된 그들의 뇌는 마약중독자의 뇌보다 더 큰 손상을 입으며 그 피해는 당댕에 그치지 않고 후대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종말 시대의 보고서들이 다수 존재했다.

게임도 술이나 담배처럼 적당하게 즐기면 삶에 활력소가 되지만 과하면 삶의 기반이 통째로 흔들리고 세상의 가치가 무너지는 엄청난 폐해를 주게 되는 것이다.

지금처럼 유니온 이나 암중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들이 가상현실 게임을 부추기고 보다 높은 사양의 캡슐 판매에 열을 올리는 것은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 자신들의 세계가 고착화되고 그들이 대대손손 권력을 유지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 가상현실 게임을 통한 우민화(愚民化)인 것이다.

게임을 하다가 죽을 정도로 강한 현실성을 가진 캡슐들이 계속해서 개발된다면 사람들은 힘겨운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보다는 도피하려고 할 것이다.

일반적인 기준이 아니라도 더 이상 고사양의 캡슐이 나타나면 안 되는 이유가 있다.

비욘드의 경우 일반인들은 게임으로 인식하고 있지만 하룬과 같이 높은 사양의 캡슐을 소지한 자들은 비욘드의 세상이 인공지능 컴퓨터가 만든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있다.

그러다 보면 15사도회처럼 아예 비욘드로 이용하고자 하는 자들도 나올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오염된 지구는 더 이상 휴먼들에게 매력적인 세상이 아닌 것이다.

서로 얽혀 협력을 하든 아니면 서로 죽고 죽이든 그 무대는 현실이 되어야 한다. 비록 종말 시대를 살았던 선조들은 무능하게도 세상을 망쳐 버리고 말았지만 새로이 출현한 휴먼 세대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하든 극복을 하든 새로운 삶을 살아야만 한다.

'기왕에 이런 사실을 아는 자들은 할 수 없는 일이지만 더이상은 안 돼!'

가상이라고 생각했던 세상이 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 유저들은 비욘드에 더욱 열중하게 되고 현실은 멀리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현실에서 관심이 멀어지게 되면 신분사회는 더욱더 단단하게 고착될 것이며 불완전했던 문명도 결국 무너지고 말 것이다.

'누가 뭐래도 양아버지가 내게 벨을보내 준 것은 능력을 발견하고 올려 새로운 세상을 열라는 것이야!'

하룬은 몇 가지 일을 통해 자신이 특별한 존재라는 자각을 했지만 그것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만 이제까지는 단지 강해지기 위해 몸부림을 쳤던 것을 벗어나 좀 더 구체적으로 소명을 느끼고 있었다.

'하늘이 있건 없건, 신이 존재하든 그렇지 않든 휴먼으로 태어나 스스로 세운 꿈이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치열하게 사는 것이 내가 살기를 원하는 삶이다!'

그것이 하룬이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깨달은 것이었다. 벨이나 아리와 함께 안온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는 것이 소극적인 꿈이라면 적극적인 꿈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었다.

그것이 결국은 자신과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가고! 공장 규모가 커서 할 일이 많을 거예요."

하룬의 상념은 아리의 말에 의해 깨졌다. 아리는 위로 향하는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

하룬은 코원 유니원의 휴먼들만 생각해서 이 일을 결정했지만 그 파장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났다.

공장 내부는 조용했다. 수많은 기기들이 공장 안으로 침투하려는 가상의 적들을 맞이하려고 설치되어 있었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았다.

삐요! 삐요!

정말 기기들 사이에 자리를 잡은 작고 붉은 경광들이 단속적인 빛을 발하며 소리를 내자 오늘의 당번들의 시선은 모니터로 향했다.

"뭐야? 카메라가 나갔나?"

엘리베이터로 연결된 지하에 설치된 카메라가 먹통이 되었는지 모니터는 아무 영상도 보내지 않았다.

"누구지? 이 시간에 이곳을 방문할 간부가 있나?"

"모르지. 데드 벙커로 간 히스테리 소 팀장이 우리가 조는지 확인하려고 왔는지도."

"하하하! 그거 말 된다."

실내에서 하릴없이(할일아닌가?) 시간을 죽이던 5명이 일제히 웃었다.

"조용히 해. 진짜 팀장이면 곤란하다고. 일단 해치 잠금장치부터 풀어."

"알았어."

그중 1명이 수많은 기기 중 하나의 단추를 누르자 5명의 근무자들은 긴장한 태도로 해치가 위치한 실내 한쪽 바닥을 응시했다.

끼익!

해치가 옆으로 이동하며 이미 위로 올라가는 계단에 올라섰던 하룬은 재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주위를 둘러본 하룬은 그곳이 주조종실 겸 종합경비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누구냐?"

퓨융! 퓨융!(골드런:아 여기 있는놈들 말투로봐선 착한거 같은데 아쉽네ㅠㅠ)

해치를 응시하던 5명의 근무자들은 갑자기 나타난 하룬을 보고 놀라 일어나며 무기를 꺼냈지만 미처 자세를 잡기도 전에 하룬이 난사한 입자건에 의해 쓰러지고 말았다.

뒤이어 올라온 다른 대원들은 치명상을 피한 자들에게 확인 사살을 했다.

"3공장이군!"

하룬은 수많은 계기판 가운데 표시된 숫자를 읽을 수 있었다. 아리가 빠르게 실내를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계기들 말고도 수많은 모니터가 한쪽 벽면을 빼곡하게 채우고 있었는데 그곳의 영상은 3공장의 내부와 외부를 모두 보여 주고 있었다.

"아리는 이곳에서 대기하면서 모니터를 보며 경비 상황을 체크해서 내게 알려 줘."

"알았어요."

모니터를 꼼꼼하게 체크하는 아리를 남겨 둔 하룬은 대원들과 함께 공장 내부로 진입했다. 얼마 가지 않아 아리의 말이 전해져 왔다.

-오빠 오른쪽 위에 전력 배전관 컨트롤 박스가 있어요.

-오케이!

하룬이 대원 중 1명에게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자 그는 재빠르게 폭약을 꺼내 시한장치에 연결하고 폭약을 장착했다.

-3미터 앞에 로봇 팔 컨트롤 박스가 있어요.

아리가 모니터와 계기판을 확인하면서 폭약을 설치할 장소를 알려 주면 하룬과 대원들이 빠르게 폭약을 설치했다.

쏘우가 개발한 C16의 경우 1그램으로도 반경 3미터를 산산조각 낼 수 있으니 많이도 필요 없었다. 순찰을 도는 경비원들을 상대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오른쪽 문 밖에 순찰을 도는 경비원 2명이 있어요.

퓨웅! 퓨웅!

어차피 GG의 무력 조직원일 것이 분명한 경비원들을 처리하는 것도 양심에 꺼릴 것이 없었다. 공장 내부를 순찰하는 적들을 해치우고 정밀 기기들과 생산라인 곳곳에 시한폭탄을 설치한 하룬은 연구실을 찾아냈다.

시건 장치가 삼중으로 설치도어 있었지만 주조종실에 있는 아리가 기기를 조작하여 어려움 없이 문을 열 수 있었다.

아능로 들어간 하룬은 수십 개로 나뉜 작은 실험실들과 넓은 연구실 그리고 회의실 들을 볼 수 있었다.

그중 한 컴퓨터들(를아닌가?) 작동시켜 그 내용을 확인한 하룬의 눈이 빛났다.

"이거 제대로 들어왔군."

컴퓨터의 안에는 캡슐 제작에 대한 연구 자료들과 각종 실험의 과정과 그 결과가 들어 있었다. 제목들만 확인해도 이곳에서 최상급 캡슐을 뛰어넘는 캡슐에 대해 연구하던 자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들이 날아가면 놈들은 캡슐 생산 라인이 파괴되는 것 이상으로 피해를 입을 것이다. 한동안은 캡슐 연구는 엄두도 내지 못할 것이다.

-아리, 어딘가에 백업용 컴퓨터가 있을 거야. 좀 찾아봐 줘.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는 자료야 어쩔 수 없지만 놈들이 가지고 있는 자료들은 할 수 있는 한 모두 없애야만 한다.

-잠시만 기다려요, 오빠.

아리의 응답을 기다리는 동안 하룬은 대원들과 함께 컴퓨터의 메모리칩을 수거해서 한 곳에 모아 놓고 폭약을 설치했다.

-백업용 컴퓨터는 따로 없어요. 대신 캡슐에 내장된 컴퓨터 수십만 대에 각종 정보가 담긴 파일들을 잘게 쪼개서 분산시켜 저장해 놨어요. 이곳에서 파일을 열면 자동으로 모아서 그 내용을 보여 주는 방식이에요.

-그럼 분산된 파일의 씨드에 바이러스를 퍼트려.

-좋은 생각이네요. 특정 분야의 씨드에만 반응해서 그 정보만 선택적으로 파괴하는 바이러스를 퍼트릴게요.

하룬과 대원들은 아리가 그 작업을 처리하는 시간 동안 3공장 내부의 중요 시설과 캡슐 제작에 있어 중요한 기기와 생산 라인에 모두 시한장치가 달린 폭약을 장착했다.

-이제 2공장으로 건너가자!

-알았어요. 이쪽으로 오세요, 오빠. 다시 내려가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요.

좋은 생각이었다. 각각의 공장을 장악한 세력이 다르다 보니 공장 사이의 외부 경비 상황은 위험했던 것이다.

지하로 내려갔다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2공장으로 이동한 하룬 일행은 3공장에서처럼 빠르게 경비 인력을 제거하고 폭약을 설치했다.

외곽을 지키는 경비 인력과 무기 등이 워낙 강력하다 보니 내부의 경비는 상대적으로 허술했다.

마지막으로 1공장까지 완벽하게 폭약을 설치하고 나니 1시 28분이었다.

"32분 후에는 이곳이 폐허로 변하겠네요."

"후후후! 아마 살 떨릴 거야. 이 정도의 위협은 한동안 경험하지 못했을 테니까."

이제 세상 무서운 줄 모르는 세 세력은 망연자실해할 것이다. 자신들을 직접 공격한GG는 물론이고 HG와 GPC도 식겁할 것이다.

유니온 사회가 고착된 후로 그들을 상대할 수있는 적대 세력은 그들 자신들밖에는 없었다.

'작전은 성공적인데 좀 찜찜하네.'

임페리얼 컴패니의 보안 상황이 좀 허술하다고 여겨졌다. GPC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GG와 HG의 경우에도 공장에서 팀장급 이상은 1명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혹시 데드 벙커?'

GG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이번에는 HG가 걸린다.

'아무튼 다행이지, 뭐.'

이유야 모르겠지만 자신들에게 유리한 상황이니 그걸로 만족하기로 했다. 하룬 일행은 시간에 맞추어 철수를 했다.

귀환하는 길에 C구역을 맡은 대원들을 만났는데 통로 양편에 엄청난 물품이 쌓여 있었다.

"그쪽 상황은 어땠어?"

"웬일인지 경비 인력이 적었습니다. 외곽 쪽은 모르겠지만 큰 창고의 내부에는 순찰 인력이 30명밖에 없었습니다. 통로가 경비실과 붙어 있는 공장장 사무실과 연결되어 있었던 터라 빠르게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벼리의 정보가 맞는다면 GG의 무장 조직들은 대거 데드벙커로 향했다. 그곳에 어떤 일이 있는지 몰라도 하룬 일행에게는 다행이다.

"이것들은 뭐야?"

"그곳에 있던 정밀 기기들과 무기들 그리고 각종 재료들입니다. 무기들 중에는 펄스건처럼 개발 중인 것들도 있고 완성된 것들도 있는데 모조로 폭발시키는 것이 아까워 가지고 왔습니다. 연구실에 들러 연구 자료들까지 챙겨 왔습니다.

이번에 기지를 폭파시키려고 가져온 C4 폭약도 있어 모두 가져왔습니다. 식량은 아깝지만 부피가 커서 포기했습니다."

아리와 함께 타이탄 워커 복원에 참가한 주도면밀한 성격의 태범이 제대로 한 건 했다. 강화 육체를 가지고 있는 사이보그 대원들이라 옮겨 온 양이 엄청났다.

"잘했어."

쏘우가 보면 엄청나게 좋아할 것이다. 하룬과 대원들은 무궤도 차량과 드릴리언과 연결된 화물칸에 짐을 실었다.

F구역 지하에 들러 대원들을 태워 첫 번째 연결 통로에 도착하자 지하 통로가 심하게 진동하며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휘청거렸다.

'드디어 터졌군!'

연쇄적으로 폭발하는 충격에 어느새 자신들이 방금 지나쳐 온 지하 도로가 무너지고 있었다. HG가 보유한 드릴리언 으로 뚫은 지하 통로는 이 정도 충격에도 견디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 것이다.

그렇게 폭발이 일어나고 한참이 지난 후에 대산이 대원들과 함께 돌아왔다. 부상을 입은 대원들도 있었지만 모두 귀환했다.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것을 보니 그들이 지나쳐 온 통로들 역시 무사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대장님, 돌아왔습니다."

"수고했어. 결과는?"

"통로와 이어진 놈들의 기지는 모두 다섯 곳이었습니다. 그중 두 곳은 비어 있었고 세 곳은 30명 안팎이 주둔하고 있었습니다. 모두 깔끔하게 처리했습니다."

만족스러웠다. 상세한 보고 내용을 듣지 않더라도 대산이 어떻게 처리했을지 알 수 있었다.

"이제 기지로 귀환한다!"

하룬이 힘차게 외쳤다.

새벽에 일어난 연쇄 폭발 사고는 코원 유니원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배리어로 인해 그 폭발음과 충격이 몇 배나 더 강력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전 주민이 잠에서 깨어 비상구를 찾거나 피난을 하는 등 혼비백산했고 유니온 정부도 비상이 걸렸다. 아침이 될 때까지 소방차와 방위청 차량 들이 사이렌을 울리며 유니온을 긴장시켰다.

폭발 사건은 즉각 비상 라인을 통해 해마루에게도 알려졌다. 유니온 행정청 수석인 해마루는 같은 GPC 소속인 사가(史家)와 유가(伽家)의 수뇌부에게 연락해 비상 회의를 소집했다.

다른 조직의 이목을 고려해서 각자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홀로그램을 통해서 하는 원격 회의였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해마루는 방위청의 수장 유시류가 화면에 뜨는 순간 그에게 물었다. 해마루의 옆에는 그의 딸인 해수련과 동생인 해부루가 자리하고 있었다.

40대 초반으로 급사한 부친으로부터원로직을 물려받은지 몇 년 되지 않은 터라 GPC 코원 지부에서 가장 활동적으로 일하는 유시류는, 뭘 하다가 온 것인지는 몰라도 땀에 푹젖은 차림을 하고 있었고 평소 늘 동행하던 아들도 없이 혼자였다.

그는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화면을 보며 입을 열었다.

"세 곳에서 동일한 시간, 즉 새벽 2시 정각에 강력한 폭발사고가 일어났습니다."

"왜 난데없는 폭발 사고가 일어난 겁니까? 그곳들이 어디요? 아니, 어떻게 유니온 안에서 폭발 사고가 날 수 있는 겁니까?"

강력하게 통제되는 유니온 사회에서 이런 대규모 사건이 발생한 것은 아득한 예전 일이다. 세 조직이 알게 모르게 서로를 견제하며 조화를 추구하는 터라 이런 일은 거의 없었던것이다.

유시류는 해마루의 물음에 답하기 보다는 마치 서류를 읽듯이 짧게 보고의 나머지 내용을 나열했다.

"금일 새벽 2시 정각에 F구역과 C구역 그리고 A구역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F구역의 경우 각종 환락시설이 모여 있는 플레저 타운 건물이 그 대상이었고 C구역의 경우는 대형 물류 창고였습니다."

그 말에 군부를 장악한 사 원로가 굵고 하얀 긴 눈썹을 찡그렸다.

"글로리 가이아의 것들이군."

"맞습니다. 플레저 타운은 현재 마약 거래를 중단한 그들의 자금원 중 가장 중요한 곳이자 하부 무력 조직의 근거지입니다.

그리고 C구역의 물류 창고는 해 원로가 최근 알아낸 정보에 의하면 놈들의 군수 기지이자 본거지나 다름없는 곳입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인물들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안그래도 날을 정해 어떻게든 없애려고 하던 참인데 누군가 먼저 선수를 친 것이다.

"하하하! 그럼 이제 코원 유니원의 중요한 거점들이 파괴되었으니 GG 놈들이 설치지 못하겠군."

"맞는 말이오. 그런데 누가 이런 일을 했을까? 우리가 아니라면 휴먼 가드밖에 없는데."

해마루와 사 원로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머금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유시류의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게 굳어 있었다.

"세 번째 장소는 어디죠?"

해수련이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고 물었다. 그녀의 말에 유시류의 얼굴에 진땀이 흘렀다.

".....세 번째 장소는 A구역이네."

"A구역이요? 그 구역에는 GG의 시설이 없는데."

"아니, 있네."

착 가라앉은 목소리와 굳은 얼굴을 본 해수련의 눈이 뭘 떠올렸는지 순간적으로 커졌다.

"그, 그럼?"

"맞아! 임페리얼 컴패니의 1, 2, 3공장이 동시에 폭발했네, 행정 비서관."

유시류의 말에 해마루와 사이노의 얼굴이 미소를 머금은 상태로 딱딱하게 굳었다.

"이, 임페리얼 컴패니 공장이 말이오?"

"우리의 1공장까지 폭발했단 말이오?"

"그렇습니다, 두 분 원로. 4공장을 제외한 나머지 공장들의 생산 시설은 물론이고 내부에 있던 연구실도 모두 날아가 버렸습니다."

"......"

유시류의 보고로 인해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한동안 말을 잃어버렸다. 임페리얼 컴패니는 합법적으로 최고의 이익을 그들에게 안겨 준 화수분이었던 것이다. 더구나 코원 유니온의 임페리얼 컴패니는 전 세계에서 모인 최고의 연구 인력과 최고의시설 그리고 오랫동안 누적된 연구 결과를 가지고 있어 각조직에서 최상급 이상의 캡슐을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곳 이었다.

비록 새벽 시간에 일어난 폭발 사고로 인해 연구 인력들은 손상이 없다지만 그간의 연구 일지나 그 결과들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보낸 최고의 연구, 생산 기기들이 모두 날아갔다.

그것들은 일반 생산 시설과는 달리 이제 더 이상 복구를 할 수 없는 세계 유일의 것들이다.

"하필이면 이런 때!"

해수련이 분한 듯 주먹을 쥐고 흔들었다.

"작전 때문에 전력을 배리어 밖으로 이동하느라 보안 요원들이 삼분의 이나 빠진 상황인데...... 설마 누가 이 사실을 알기라도 한 걸까요?"

"그럴수도."

해마루의 이마에는 굵은 주름이 파였다.

'분명히 우리 세 세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놈들이다.'

하지만 그들을 제외하고 이런 일을 벌일 수 있는 세력을 짐작할 수가 없다. 무거운 침묵을 깨뜨린 것은 사 원로였다.

"피해 정도는 파악하셨는가?"

"네. 한창 피해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데..... 방위청 산하폭발물 처리반의 1차 소견으로는 완벽하게 파괴되었답니다. 단순한 테러범이 아니라 이런 시설물에 대해 정통한 놈들이 테러를 한 걸로 보입니다."

"흔적은?"

"없습니다. 임페리얼 컴패니 외곽을 대상으로 깔아 놓은 무인 카메라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른 두 곳 역시 폭발 건물 근처에서 아무런 정보도 건질 수가 없었습니다."

"실험 자료와 연구 자료 들의 백업은 가능하겠지요?"

"그, 그게....."

유시류의 얼굴이 시퍼렇게 변했다. 그 모습에 다른 사람들의 얼굴은 더욱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연구실이 폭발했다는 말을 듣고 바로 확인해 봤는데 캡슐에 내장된 수많은 컴퓨터에 분산 저장해 놓은 자료들이 바이러스로 인해 모두 파괴되었습니다."

"허어, 참!"

사 원로가 눈을 지그시 감고 힘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도대체 어떤 놈들이 그런 짓을 한 거요?"

죽을 날을 받아 놓았다고 알려진 사 원로의 얼굴은 검버섯이 가득했지만 가는 눈매에서 흘러나오는 눈빛은 강렬하기만 했다.

"놈들은 서브 로드를 통해 폭발 장소로 곧바로 올라온 것으로 추정됩니다. 즉각 방위군을 출동시켰지만 붕괴된 구간들이 많아 복구에 애를 먹고 있습니다."

유시류의 의견에 해마루와 사 원로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휴먼 가드인가?"

서브 로드를 건설할 수 있는 것은 타이탄 워커 중 하나인 드릴리언밖에 없다. 그것들을 보유한 것은 휴먼 가드밖에 없으니 당장 그들에게 혐의를 둔 것이다.

사 원로는 그렇게 말을 했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들 역시 임페리얼 컴패니로 막대한 피해를 보았으니 그럴리가 없다.

임페리얼 컴패니의 운영은 암중에 코원 유니온을 지배하는 세 거대 세력의 협력 관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안이다.

"일단 총력을 기울여 조사를 하고 있으니 세 곳의 조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시 자리를 소집하여 보고하겠습니다."

사 원로와 해마루는 유시류에게 할 말이 많았지만 애써 눌러 참았다.

임페리얼 컴패니에 포진된 세 세력의 인원이나 무장 정도 그리고 그 실력을 생각하면 불가항력이라는 생각과 함께,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인지 그를 질책하고 싶은 마음도 일어나질 않았다. 어쨌거나 그는 GPC 소속이었다.

"후우! 그러세."

사 원로는 그답지 않게 긴 한숨을 쉬더니 화면에서 사라졌다. 아마 특수군을 동원해서 따로 조사하라고 지시할 요량으로 보였다.

"그럼 수고하시게."

해마루 역시 평상시와는 달리 차갑게 통신을 끊었다. 어쨌거나 이번 일은 대대로 방위청을 장악해 온 유가가 책임을져야만 했다.

"누굴까요? 설마 휴먼 가드는 아니겠지요?"

행정청 부수석을 맡아 해마루를 훌륭하게 보필하고 있는 동생의 말에 해마루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 대신 해수련이 말을 받았다.

"휴먼 가드는 아닐 거예요. 그러기에는 그들이 입은 피해가 너무 커요"

"그렇겠지."

이번 GG의 데드 벙커 공격 작전에 힘을 합치기로 한 HG가 뒤통수를 친 것으로 생각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그나저나 앞으로가 큰일이군."

"그러게요. 우리 코원 유니온의 임페리얼 컴패니는 다른 유니온의 그곳과는 달리 전 세계에서 모인 연구 인력들이 비욘드 급 이상의 캡슐에 필요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를 복원하기 위해 모인 곳인데."

해부루의 말에 해마루와 해수련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말대로 컴퓨터와 캡슐 분야에서는 코원 유니온의 기술력이 전 세계에서 가장 수준이 높은 상태라 오래전부터 연구 인력은 물론 각종 기자재 그리고 재료 들을 모아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GG와 HG 그리고 GPC에 소속된 터라 공장별로 나뉘어 개별적으로 연구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폭발로 인해 그 모든 것이 날아가 버린 것이다.

"제기랄! 그러기에 다 쓰지 말라고 유니온에 필요한 슈퍼컴퓨터들은 좀 여유 있게 남겨 두자고 했는데."

해부루의 말에 해마루의 이마에 깊은 고랑이 파였다. 슈퍼컴퓨터를 만들 수 있는 기술력을 보유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세 세력이 경쟁적으로 비욘드 급 캡슐을 출시하느라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를 모두 소진해 버린 것이다.

"작은아버지, 그러지 마세요. 그때는 어쩔 수 없었잖아요."

"휴우! 그래, 그랬지! 하지만 배리어를 지탱하는 태양광발전소의 기능이 현격하게 떨어지고 있는데 보조를 할 수 있는 자원이 없어졌으니 정말 큰일이구나.

캡슐에 결합한 인공지능 컴퓨터들은 분리해서 다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없는데 말이야. 우리가 보유한 연구 자료와 재료 들이 다 거기 있었는데....."

세 사람은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다.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닌 것이다. 하룬은 이런 사정을 모르고 단지 복수와 자신의 소신 때문에 한 일이지만 그 파장은 너무나 컸다.

"그래도 연구 인력은 그대로 있으니 기대를 해 볼 수밖에."

해마루의 말에 해부루는 기운이 빠진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소용없습니다. 지금까지도 휴먼력 초기의 과학자들이 남긴 연구 일지를 보며 힘겹게 복원 작업을 해 왔는데 일지들까지 사라졌습니다.

더구나 변종 생물들의 급격한 발호로 인해서 광산을 소유하고 있는 휴먼 가드 쪽은 연일 엄청난 피해를 입고 있어 재료 반입량도 현격하게 줄었습니다. 세 곳이 힘을 합치지 않는 한 슈퍼컴퓨터의 복원은 불가능합니다."

"휴우! 그건 지금 시점에서 고민할 일이 아니다. 이번 사건으로 조직의 강경파들이 힘을 얻을 것이 더 걱정이다."

"하지만 누가 이런 일을 저질렀는지도 모르는데 뭘 어쩌겠습니까? 그럴 만한 힘을 가진 세력은 모두가 심각한 피해를 본 상황이고 동기조차 없지 않습니까?"

"혹시?"

그녀의 반응에 해마루와 해부루의 시선이 그녀에게 고정되었다.

"돌풍, 돌풍 용병대가 아닐까요?"

".....설마."

해마루는 딸의 의견을 듣는 순간 그 말이 귀에 확 들어왔다.

"돌풍 용병대라니? 그게 누군데?"

해부루의 물음에도 불구하고 두 부녀의 머릿속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들에게 그럴 만한 힘이 있는지 여부도 모르는 상황이다. 아니, 힘이 있다고 해도 그럴 만한 동기가 있을까?"

"굳이 찾자면 있어요. 우리가 그들에 대한 정보를 글로리 가이아 측에 은밀하게 흘렸잖아요. 필시  GG가 그들을 상대로 어떤 작업을 했을 거예요."

"그거야 그렇지만......"

GG는 틀림없이 돌풍 용병대의 거점을 공격했을 것이다. 애초에 돌풍 용병대에 대한 정보를 흘린 것은 그들의 힘을 가늠하고 싶어서였다. 과연 GG를 상대할 힘이 있는지 남의 손을 빌려 시험해 보고 그 힘이 충분하다면 손을 잡으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돌풍 용병대가 GG의 무력 도발을 받았고 피해를 봤지만 힘의 여유가 있었다면 필시 복수를 하려고 했을 거예요."

"흐음."

해마루의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딸의 추측에 신빙성이 컸던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번 폭발 사고가 일어난 곳은 모두 그들이 준 정보에 있던 곳이에요. 또 다른 비밀 거점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GG에게는 중요도가 무척 높은 곳들이죠. 그들은 분명 GG에 적대하고 있다고 했어요."

"네 말이 맞는다면 왜 돌풍 용병대가 우리와 휴먼 가드측의 공장까지 폭발시킨 거지?"

"그건......"

그 부분에서는 해수련도 쉽게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동기를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진 세력이라고 해도 세 세력을 동시에 상대할 정도는 아닐것이다. 그런 세력이라면 진즉에 드러났을 테니까.

"어쩌면....."

해마루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입을 열었다.

"뭐예요, 아빠?"

"우리가 자신들에 대한 정보를 GG 측에 흘린 것에 대한 보복일지도 모른다. HG는 재소 없이 끼인 걸 테고."

"설마요, 그걸 어떻게 알....."

해수련이 말을 흐렸다. 자신들도 알지 못하는 특급 정보를 꿰고 있는 자들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때 받았던 주파수로 통신을 시도해 봐라."

"그럴까요?"

"어차피 데드 벙커 문제로 접촉을 해야 했으니 그걸 핑계로 삼고 분위기를 살펴보자."

"알겠어요."

해부루는 영문을 알 수 없는 터라 눈만 껌벅이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고만 있었다. 무사히 기지로 귀환한 하룬은 돌풍 기지에 머물며 피해 복구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이제 한 단체의 수장이 된 터라 자기가 직접 움직이는 것 보다는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게 인력과 시설 활용 문제로 정신없이 움직였다.

기지 식구들이 한마음이 되어 부지런히 움직인 결과 벌써 상당한 폭까지 복구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것은 또 다른 침략에 대비한 방어 시설의 보강 그리고 피해자와 그 가족에 대한 정서적인 안정 문제였다.

기지 상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아즈만의 도움을 받아 어느 정도 일이 마무리되어 갈 때 벨을 보러 잠시 치료실로 갔던 아리가 급하게 돌아왔다.

"오빠, GPC에서 통신이 들어왔어요. 해수련이라는 여자인 거 같은데요."

"연결해!"

하룬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홀로그램 화면에 하룬 앞에 생성되었다.

"역시 그 여자네요."

화면에 뜬 해수련은 비욘드에서와 똑같은 얼굴이었다. 자신의 미모에 자신이 있었는지 보정을 전혀 하지 않은 상태라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해수련 양인가요?"

"네. 하룬 대장이시죠?"

"맞습니다. 일전에는 자리를 비워 만나지 못했습니다."

"비욘드에 계신 형님과 정말 많이 닮았군요. 목소리도 그렇고 진짜 형제분 같아요. 금방 알아보겠어요."

해수련은 처음 대하는 하룬에게 친근하게 접근했다.

"이 시간에 웬일이십니까?"

"아! 저 때문에 방해받았다면 사과드릴게요. 확인할 일이 있어서 급하게 연락을 드렸어요."

"마침 깨어 있으니 사과는 됐습니다. 그런데 확인할 일이란 게 뭡니까?"

딱딱한 하룬의 대응에 해수련의 아미가 잠시 위로 치켜 올라갔다가 이내 다시 제자리로 내려왔다.

"새벽 2시 경에 유니온에서 대규모 폭발 사고가 일어났어요."

"그렇습니까?"

해수련은 처음부터 변함이 없는 하룬의 무표정한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입매를 찌그렸다.

"혹시 아시나 싶어서요?"

"모습니다. 우리 기지는 어제 글로리 가이아의 특수 조직에 의해 공격을 받아 지금 그 피해를 복구하느라고 정신이 없는 상태입니다."

"헙! 그런 일이 있었나요?"

해수련의 연기력은 아주 뛰어났다. GPC에서 돌풍 용병대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 하룬마저 순간적으로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던 것이다.

"괜찮으신 거예요? 피해는요?"

무척이나 친한 사이처럼 물어보는 해수련의 눈빛을 보던 하룬의 눈매가 스산해졌다. 그녀의 눈은 얼굴이나 행동과는 달리 전혀 놀란 빛이 없었다.

"그건 알 필요 없소. 침략해 온 놈들은 모두 죽였고 끝까지 추격해서 도망치는 놈들과 놈들의 유니온 밖 거점들도 다작살냈으니 댁이 신경 쓸 일은 없습니다."

표정은 전혀 변함이 없지만 차가워진 하룬의 어조에 해수련의 얼굴이 살짝 변했다.

"걱정이 되어서 드린 말이에요. 글로리 가이아는 무자비하고 경우가 없는 조직이거든요. 좋은 거래로 시작한 인연이고 앞으로 친한 사이가 되고 싶은 돌풍 용병대에 그런 나쁜일이 생겼다니 걱정이 되네요."

"우리는 아직 친구가 아닙니다. 난 상대의 능력을 알기 위해 뒤통수를 치는 자들과는 우정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없으니까."

"그, 그게 무슨 말씀인지?"

직설적인 하룬의 말에 해수련이 낭패한 표정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들이 은밀하게 한 공작을 하룬이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뭐, 못 알아들으면 됐습니다. 아무튼 그렇다는 이야기요. 조건만 맞으면 어떤 의뢰든지 해결하는 용병대이니 우리와 연결되고 싶다면 굳이 친한 척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겁니다.

험하게 살아서 그런지 내가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으로 맺어진 인간관계는 쉽게 배신해도 돈으로 맺어진 관계는 쉽개 배신하지 않더군요."

"......"

직설적인 하룬의 말이 너무 차갑고 살벌하게 느껴져 해수련은 마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해수련은 내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이 사람은 모든 것을 다 알고 있구나!'

해수련은 이번 일을 누가 벌였는지 충분히 확신할 수 있었다. 저들은 절대 인정하지 않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자신들에게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긴 했으나 돌풍 용병대가 어느 정도의 힘을 가졌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적어도 대등하게 대해야만 하는 자들이야!'

"친구가 아니라도 같은 길을 갈 수 있는 방법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설마 이런 이야기를 하자고 연락을 한 건 아닐테고 용건이 뭡니까?"

"다른 게 아니고.... 우리 GPC가 얼마 후에 데드 벙커를 공격할 생각인데 우리에게 힘을 빌려 줄 생각이 있나 해서 연락을 드렸어요."

결국 해수련은 용건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조건만 맞으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돌풍 용병대가 동원할 수 있는 무력을 알고 싶어요."

"얼마나 필요합니까?"

하룬의 말에 해수련이 눈을 치켜떴다. 너무 오만하게 느껴진 것이다. 욱하는마음에 인원이나 신병기에 대한 것을 물어보려던 해수련은 더 큰 문제를 꺼냈다.

"돌풍 용병대가 데드 벙커의 외곽 방어막을 깨뜨릴 수 있나요?"

이번 일을 같이하기로 한 휴먼 가드와 자신들이 파악한 정보에 의하면 데드 벙커의 방어 전력은 엄청나다. 대형 입자포는 물론이고 중형과 소형 입자포가 무려 백 문에 가까울 정도다.

방어 전력 역시 거의 1천명에 이르며 그들은 휴먼력 초기에 제작된 첨단 전자 기기들을 이용해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상황까지 파악할 수 있다고 한다.

지상과 지하에 걸쳐 조밀하게 깔린 각종 트랩들은 물론 각종 탐지 시설들 때문에 은밀한 침투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 것이다.

"소리 없이 말끔히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단지 방어를 무력하게 만들어 귀하들이 안으로 진입할 시간을 벌어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저, 정말인가요?"

해수련의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높아졌다.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번 작적을 기안하면서 시뮬레이션한 결과에 의하면 외곽 방어막을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는 다수의 방위군들은 물론이고 특수군 500명과 입자포들 그리고 휴먼 가드에서 제공하는 신무기들이 대량으로 요구되었던 것이다.

"가격만 맞는다면 가능합니다."

"그, 그럼 얼마나?"

언제나 당당했던 해수련의 목소리가 절로 떨렸다.

"의뢰 대금은 의뢰자가 먼저 제시하는 법입니다. 일의 어려움을 떠나 그 중요도는 의뢰자가 가장 잘 알 테니 말입니다."

"알겠어요. 그럼 충분한 의논을 거쳐 며칠 안에 다시 연락을 드릴게요."

"그렇게 하십시오. 의뢰 건에 대해서는 앞으로 우리 아리참모와 의논하십시오. 임무를 수행하는 것이야 각 조장이나 내가 총괄하고 있지만 그 분야는 아리 참모가 책임지고 있으니 말입니다."

해수련은 하룬의 말에 허둥거리며 통신을 끊었다.

"후후후! 얼마나 부르는지 한 번 지켜볼까?"

"걱정마요, 오빠. 내가 제대로 뜯어낼 테니까요."

타이탄 워커를 복원한 이상 아무리 삼엄한 경계를 하고 있다고  해도 데드 벙커의 방어막을 무력화시키는 건 문제가 없다.

빠르고 안전한 이동 수단을 가진 것에 더해 쏘우가 개발한 신무기들과 도검류가 아닌 화기를 이용한 전투에 특화된 사이보그 대원들의 능력이라면 안심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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