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48화.마츠루트 요새 (249/278)

 마츠루트 요새

수상 가옥에서 하룻밤을 지낸 하룬 일행은 새벽에 출발해서 근처에 있던 미노와 수니를 타고 툴람 호수를 떠났다.

마츠루트 요새 근처에 도착한 것은 정오가 되기 얼마 전이었다.

미노와 수니를 근처에 있게 한 하룬은 대원들과 함께 요새로 입성했다.

"요새 내의 사람들 숫자도 많아지고 분위기도 전보다 훨씬 더 활발해졌군요."

타니엘라의 말에 하룬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에 비해 상점들도 더 늘었고 사람들의 숫자도 많아졌따.가즈 로드 특유의 표식을 방어구에 새긴 이들은 물론 이방인들과 용병들의 숫자도 엄청났다.하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예전과는 달리 불안감이 가득했다.

'아마도 다크 프린스의 출현과 이벨린의 실종 때문이겠지.'

"대장님!"

창고를 정리하다가 하룬을 알아본 점원의 보고를 들은 지단주 굴탄이 놀란 얼굴로 허겁지겁 달려왔따.

"하하하! 잘 있었나?"

"네 대장님 이 요새야 안전하니까요.다른 지부들의 피해가 많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상단이 도산할 판이니 지단주의 얼굴이 편할리가 없다.

"그래 물건의 유통은 어떤가?"

"초반에 워낙 물건을 많이 들여와서 아직은 재고가 있어 괜찮습니다.하지만 보름 정도가 지나면 우리 상점도 문을 당아야 할 것 같습니다.유통이 막히자 매점 매석까지 하려는 자들이 나타나 무기류를 비롯한 물건들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는 상황입니다.이미 다른 상단 지부들의 경우 상당수가 문을 닫고 있습니다."

지단주의 짧은 보고를 들은 하룬의 얼굴이 심각해졌다.세류의 도움을 받아 엄청난 물품을 축적했던 돌풍 상단이 그 정도라면 다른 중소 상단의 경우 도산하기 일보 직전일 것이다.

'생각보다 더 심각하군.'

"조금만 더 애써 주게 곧 다시 상황이 좋아질 테니."

"그렇습니까?하하!그럼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군요."

'이런!'

자신이 별 뜻 없이 한 소리에 굴탄이 반색을 하자 하룬은 내심 혀를 찼다 아랫사람들의 믿음을 받는 것은 좋은데 그게 너무 과한 것 같다.

"피곤하실 텐데 숙소로 안내하겠습니다."

"고맙네"

"아닙니다.언제 들르셔도 편안하게 사용하실 수 있도록 매일 청소하고 있습니다."

하룬 일행은 직접 안내를 자청한 지단주의 뒤를 따라 상점 뒤쪽의 숙소로 향했다.

몸을 씻고 잠시 휴식을 취한 대원들은 점심 식사를 마치자 전사단과 마법단으로 갈려 요새 구경을 나갔다.

"부대장 돈 좀 주시게."

고문들은 그냥 나가지 않았다.모두 티노 부부에게 손을 벌린 것이다."

"이거 왜 이러나?지난번에 이곳에 온 친구들은 모두 쓸만한 아이템을 이곳에서 구했다던데."

"그,그건....."

"돈이야 좀 들겠지만 우리의 전력이 강화되는 문제일세."

그건 맞는 소리다.

티노 부부의 눈이 하룬이 있는 방으로 향했다.

"그렇게 하세요."

방문을 열고 나오는 하룬의 소리에 고문들의 얼굴이 환해졌다.

"부대장님 넉넉하게 드리세요."

하룬은 고문들이 욕심내는 것이 쓸데없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가 되었든 모두 구입해 줄 생각을 가지고 있다.그게 고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그들의 말대로 개인적인 전력을 강화해 주기 때문이다.

"아,알겠습니다."

덕분에 용병대의 재정을 관리하고 있던 티노 부부는 고문들의 등쌀에 피 같은 운영자금을 토해 내야만 했다

"아!부대장님이 직접 다녀오십시오.지금은 턱 없이 비싸게 부를 수도 있으니까요."

티노 부부라면 믿을 수 있다.더구나 이름값이 높은 돌풍 용병대가 구입한다면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지는 않을 것이다.

대원들이 모두 나갔지만 딜런은 언제나와 같이 하룬과 함께였다.

"심심하지 않으십니까?"

"허허!괜찮습니다.전 명상이나 하렵니다."

딜런은 언젠가부터 명상과 심상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때 목에 건 통신기가 진동했다.

-대장님 보라에요 굴탄으로부터 대장님이 요새에 들어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연락했어요

"아!보라 그래 직므은 어딘가?"

-지금은 신테론 제국의 황도에 와 있어요.

"거긴 왜?"

-부족한 물건을 구하려고요 코엠 상단에서 워프진을 사용하게 해 주어서 겨우 올 수 있었어요.

"수고가 많군."

명색이 부단주가 물건을 구매하기 위해 직접 돌아다니다니 정말 상황이 심각했다.그나마 돌풍 상단의 경우 마탑 연합으로부터 구입한 마법 배낭들이 많아 이런 식으로나마 물건을 유통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 상황에 뭔가 변화가 있나?"

-아니요 점점 더 심해지고 있어요 유통로가 막히는 바람에 각 지역의 특산물들 가격은 폭락하고 상인들은 너도나도 죽는다고 아우성이에요 영주들이나 행정관들도 세금이 큰 폭으로 감소해서 재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고요 이 상황이 조금 더 오래간다면 제국들도 어려워질 것 같아요 요즈은 공물이나 세금을 운송하는 행렬도 습격을 받고 있으니까요

"우리 상단은 어때?"

-지난번에 보고 드린 것에서 별반 변화는 없어요

여전히 어렵다는 말이다 당장이라도 상행을 개시하고 싶지만 고스트라고 불리는 자들은 돌풍 상단을 노리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돌풍 상단의 사정을 안다면 가장 큰 수익원인 이종족 제조 아이템을 문제를 살펴볼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 코엠성 인근의 던전을 모험한다고 하더니 지금은 뭘 하고 있으려나?'

생각해 보면 진수는 정말 제대로 된 게임을 즐기고 있다.

자신에게는 현실이나 마찬가지인 비욘드이지만 진수와 그 친구들에게는 현실성이 높은 가상현실 게임일 뿐이다.

'이럴 때는 부럽네 아무튼 이대로 당할 수는 없지.'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잠시 멈춘 것일 뿐 걸어오는 싸움을 피할 생각은 애초에 없는 하룬이다.이제 그간의 수련이 헛되지 ㅇ낳아 이곳에서도 통할 정도의 실력을 양성한 무력대원들이 준비되어 있다.

필요한 것은 실전 경험이니 안 그래도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잘됐다는 생각이 들었따.

"곧 조치를 취할 테니 조금만 참아."

-호호! 그럼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아무튼 이번 기회에 되도록 많은 생필품들과 무기를 구해 놔상황이 호전되면 다시 가격이 올라갈 테니까"

어쩌면 잘된 것일 수도 있따.

바툰의 말대로 전 산악 부족들의 연합이 출범한다면 엄청난 양의 물품이 필요하게 될 텐데 이렇게 쌀 때 구입하면 큰 이익인 것이다.

-그럴 자금은요?

"며칠 안으로 줄 테니 보라나 미드레가 직접 이곳으로 오도록 해"

-알았어요 그럼 곧 뵙지요.

통신을 끝내는 보라의 목소리는 많이 밝아져 있었다.

하룬은 곧바로 벨과의 뇌파통신을 통해 결정된 사항을 알려 주었다.

-알았어 오빠 마법조와 사이키스트조는 현재 특별히 할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처리할게 그런데 전투조는 지금 다들 바빠서 한 조 밖에 못 뺄 것 같은데.

-왜 무슨 일이라도 있는 거야?

-아니 그게 아니라 오빠가 지난번에 구해 온 암무가 아주 의욕적으로 교역을 추진하고 있어 어떤 부족이 어떤 물품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이 풍족한지를 다 알고 있어서 우르슘 부족을 통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교역을 해 보기로 했거든

-그거 잘됐네.

비욘드에 접속하기 전 아즈만에게 보고를 받았는데 오르그들이 재배한 식품에서는 극미량의 방사능만이 검출되었다.하룬은 그들이 생산한 농산품들을 신뢰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숨을 돌렸다.

-언더 시티 측에선 많은 식량이 필요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교역을 할 수 있을 거 같아서 모두들 이번 건에 많이 기대하고 있어.

자신이 없는데도 모두들 돌풍 기지의 미래를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다

남들은 기지 안에서 안전하게 할 일을 하는데 아리는 자신때문에 만날 밖으로 돌고 있으니 미안하기만 한 하룬이다.

-미앙이는 잘 지내니?

-헤헤!아주 잘 지내 교육 시간 외에는 나랑 거의 붙어 다니고 있어 요즘은 잘 먹어서 한결 보기도 좋아졌어

미앙의 이야기가 나오자 할 말이 많아진 벨이다 미앙의 하루 일과며 같이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벨의 목소리가 밝아서 정말 다행이다.미앙 덕분에 미안한 마음이 한결 가셨다.

-그런데 아리는 아직이야?

-응 바다에 도착했다는 연락은 받았는데 해초들의 성분 분석과 그 수거 작업이 조금 어려운가 봐 하지만 추가로 잠수정까지 가지고 갔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래 알았다 기지에 도착하면 바로 내게 연락하라고 해.

-칫! 이젠 아예 대놓고 챙기네 귀엽고 예븐 동생은 이제 뒷전이란 말이지

투덜거리는 벨이지만 하룬은 이전처럼 당황해서 달래는 대신 속으로 웃기만 했다.벨에게 있어 자신과 아리가 어떤 의미인지 지난번 일을 통해 잘 알고 있기에 그저 고맙고 사랑스럽기만 했다.

-그럼 고생해라.

-오빠도

할 일이 많은지 오늘은 순순히 연락을 끊는 벨이다

'후후!예쁜 녀석!'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동생 벨을 생각하면 마음이 따듯해진다.나중에 다른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하면 정말 싫을 것 같다.언제까지라도 함께 살면 안 될까?

하룬이 벨을 생가하며 생각에 잠겨 있을때 딜런이 찻주전자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생각을 하기에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짓고 있습니까?"

"아! 딜런 경"

하룬은 얼굴을 붉혔따.이런 모습을 보여 주는 건 처음인것 같았다.물론 아버지와 같은 존재이니 만큼 창피할 것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부끄럽다.

"애인이라도 생각하고 있었습니까? 몇 번 노크를 했는데 아무 소리도 없어 걱정했습니다."

하룬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자 딜런도 평소와는 달리 짖궃은 미소와 함께 가늘게 눈을 뜨고 그를 보았다.

"하하.부끄럽네요 애인이 아니라 여동생을 생각했습니다."

"아!그랬군요 그런데 여동생 이야기는 처음 듣네요."

그러고 보니 벨 이야기는 한 번도 한 적이 없다.그뿐 아니라 아리 이야기도 한 적이 없지만.

"그러게요"

하룬이 낭패한 얼굴로 헛웃음을 짓자 딜런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푸근한 얼굴로 그를 보았따.

"동생을 떠올리는 대장님의 얼굴이 무척 행복해 보였습니다."

딜런의 말에 하룬은 입꼬리가 올라갈 정도로 크게 미소를 지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중 1명이다.하룬에게 새로운 삶을 살게 해 준 캡슐의 자아체인 벨이 아니었으면 자신에게 이런 미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궁금하네요 어떤 동생인가요?"

"말씀드리지요 사실 일부러 이야기를 안 한 것은 아닙니다."

하룬의 변명에 딜런은 부드러운 얼굴로 고개를 작게 끄덕였따.

하룬이나 자신은 물론 타니엘라나 미루스 역시 가족이야기를 제대로 한 적이 없다.이상하게도 그럴 만한 자리나 여유가 없었따.

어쩌면 다들 자신처럼 스스로 추구하는 목표에 매진하다보니 가족에 대해서 미안한 감정을 깊이 가지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제 동생 벨은 말이죠....."

하룬은 벨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늘어놓은 후에 펠이 각성하기를 바라면서 녀석의 이야기도 했다.녀석이 각성하게 되면 바라는 대로 데리고 다닐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하룬은 딜런은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한 번도 본적 없는 표정이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딜런은 그 표정만으로도 많은 것을 알수있었다.

'벨은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이겠구나 애교도 많고 귀여울 테지 무척 영민하고 가슴도 따듯할 거야 펠이란 남동생은 장난꾸러기에다가 가끔 삐치고 못된 짓도 하는 그런 소년이겠구나.'

처음 듣는 하룬의 가족 이야기에 딜런은 문득 가슴이 아렸다.본능적으로 하룬이 자신의 가족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 안 것이다.

딜런이 아는 하룬은 나이는 한참 어리지만 평생을 검의 수련에 매진해 왔기에 감정이 메마른 자신과 비견되는 차가운 성품을 가지고 있따.감정의 변화가 거의 없으며 늘 진지하고 냉정하다.

그렇기에 나이를 떠나 모두들 자신의 상관으로 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가슴에 무슨 상처가 있는 걸까?'

아무리 검 하나에 평생을 매진해 왔따지만 귀족으로 태어나 평탄하지 못한 인생을 살아온 딜런은 하룬의 본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가슴 깊숙한 곳에 뜨거운 사랑을 품고 있지만 밖으로는 차갑고 무표정한 모습으로 자신을 감추는 대장은 사랑 대신 많은 상처를 받아 온 것 같다.

자신을 포함해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대장의 정체

흑자는 산속 깊은 곳에서 기사 출신의 약초꾼 할아버지와 살다가 세상에 나왔다고도 하고 누구는 이방인이라고도 한다.

'그런 건 중요한 것이 아니지.'

딜런이 평생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 사람은 가슴으로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가슴이 통하는 사람을 1명이라도 만날수 있따면 추구하는 삶의 목표와 함께 살아온 보람이 있다는것이 그의 지론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딜런 자신은 누구보다 행복하다 하룬은 물론이고 진솔한 티노나 두 마법사 친구에 이르기까지 눈짓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이 있다.출신이나 살아온 인생이 어떻든 중요한 것은 가슴을 열고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며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동료들이 현재는 가족보다 더 중요하다.

"경의 가족은 어떻습니까?"

하룬의 이야기를 한 귀로 들으며 생각에 빠져 있던 딜런은 깜짝 놀랐다.

"아! 저 말입니까?"

"네 일전에 흘러가듯이 들은 적이 있긴 하지만 자세하게 들은 적이 없네요."

"허헛!"

한동안 잊고 살았던 가족을 떠올린 딜런은 미안함과 쑥스러움에 어색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오랜만에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가족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따.그런 두 사람의 얼굴에는 푸근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은 오랜만이었지만 그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지지지징!

통신기가 울린 것이다.

-하룬 어디야?

통신기를 통해 헤르쉬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렸다.

"마츠루트 요새야,헤르쉬는 어디야?"

-호호호!나도 며칠 전에 요새에 도착했지 상단 숙소에 있는 거야?

"응."

-그럼 바로 갈게 피곤하지는 않지?

"괜찮아"

-헤헤!피곤해도 예쁜 친구가 찾아가는 거니까 티 내면 안돼!

"후후!알았어 바로 와!"

하룬은 갈수록 유치해지는 헤르쉬의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친구라는 이름이 가지는 이 따뜻하고 편안함을 누리게 되었으니 기분은 마냥 좋았따.

헤르쉬는 곧바로 돌풍 상단으로 넘어왔다.그런 그녀의 곁에는 타혼이 함께하고 있었다.

"하룬!"

"어서 와!"

헤르쉬는 소녀처럼 팔랑거리며 하룬의 폼으로 뛰어들었다.진한 체향과 뭉클한 감각이 전해졌지만 아리와의 단단한 사랑을 확인한 후라서 그런지 이전에 느꼈던 이상한 감정은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 골치 아픈 일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헤르쉬의 얼굴은 여전하군"

"호호!그거 칭찬이지?그거야 내가 피부 관리를 위해 공을 들이고 있어서 그렇지 왠일로 그런 말까지 해주는걸까? 뭔가 바뀐 건가?그러고 보니 이제는 얼굴을 완전히 드러냈네 뭐 당당하게 세상을 마주 보기로 한건가?"

"응 그러기로 했어."

역시 눈치가 보통이 아닌 헤르쉬가 하룬의 바뀐 마음가짐을 금방 알아보았다.

"호호!보기 좋아 나와 같은 미녀를 찰 정도로 잘생긴 건 아니지만 충분히 매력적이야."

"또 쓸데없는 소리 한다 일단 들어와!아!타혼 경 그간 잘 지냈습니까?"

오랜만에 본 타혼의 기도는 예전에 비해 한층 더 깊어지고 장중해진 것이 큰 진전이 있어 보였다.

"전 잘 지냈습니다 대장님"

타혼 역시 반가운 듯 밝게 웃으며 인사를 했다.

"이렇게 위험한 시기에 이 철부지를 지키느라 수고가 많습니다."

"허헛!역시 절 알아주는건 대장님밖에 없군요."

"뭐에욧!"

흥겨운 농담과 짐짓 화난 척을 하는 헤르쉬로 인해 재회의 자리는 무척 편안했다.

하룬과 헤르쉬가 방 안으로 들어가자 딜런은 타혼에게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잘 지낸 것 같군"

"오랜만입니다.딜런 경!"

"꽤 강해진 것 같네"

딜런의 칭찬에 타혼은 미소 한 자락을 물었지만 짐짓 울상을 지었다.

"딜런 경은 도대체 무슨 수련을 어떻게 하기에 그렇게 빠르게 느는 겁니까?"

"무슨 소리인가?"

"지난번만 해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아예 상대도 안 될 것 같아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런가?"

하긴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막 소드 마스터에 올랐을 때 였다.하지만 지금은 몇 번의 기연과 실전을 통해 중급에 확실히 올랐으니 발전 속도로 따지면 다른 이들이 기함을 할 정도이다.

"비법 좀 알려 주십시오."

"비법이랄 게 뭐 있나?나야 하룬 대장님에게 마나 운용에 대해 지도를 받은 것 말고는 다크니스와 마수들을 상대로 실전을 치른 것밖에는 없네."

"네에?대장님에게 마나 운용에 대해 지도를 받았다고요?"

타혼은 많이 놀란 얼굴이었다.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지 않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네 비록 검숙에 있어서는 내 경지가 대장님보다 위지만 마나의 세심한 운용에 있어서는 대장님의 지식이나 기술을 따라갈 수 없지."

"아!그렇군요 아무튼 대련 한 번만 부탁드릴 수 있을까요?"

"그러세 나 역시 자네와 다시 검을 맞대 보고 싶었네."

두 사람은 주군들의 대화를 방해하지 않으려고 후원 구석으로 향했다

헤르쉬는 하룬에게 그간 일어난 굵직한 일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하룬이 이미 알고 있는 일들도 있었지만 알지 못했던 일들도 많았다.특히 각 제국의 황실과 귀족들의 이야기는 들어도 도무지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가즈 로드는 어때?"

"애초에 하나가 될 수 없는 단체이고 그나마 구심점이 되었던 수장이 실종되었으니 완전 엉망이지 뭐."

"엉망이라고?"

"응 아주 엉망이야 마탑 연합은 그런대로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제대로 지원을 하는 것 같은데 신전 연합 쪽은 완전히 분열이 되어 버렸어."

하룬은 신전 연합에는 크게 관심이 없어 더 이상은 묻지않았다.

"전황은 어떤데?"

"엄청나게 밀리고 있는 중이야 다크 프린스라는 녀석이 출현한 이후 다크니스의 전력이 크게 강화되어 상대가 안돼 더구나 죽인 상대를 강화 언데드로 만들어 세력을 불리고 있으니 구심점을 잃은 가즈 로드는 막을 수가 없지"

헤르쉬는 전략 지도를 꺼내 상황을 말해 주었는데 다크니스는 정말 무서운 기세로 전 방위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 상태라면 짧으면 네 달 길어 봐야 여석 달 정도면 데빌 산맥은 완전히 다크니스의 손아귀에 들어가고 말 거야 아! 하룬 대장과 관련이 있는 성들은 빼고"

"아니,그런 상황이라면 산악 부족들도 견디지 못할 거야."

하룬은 헤르쉬와의 대화를 통해 상황의 심각성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이런 상태가 지속되어 예상대로 가즈 로드와 이방인 길드 연합이 산맥에서 쫒겨나고 나면 그다음은 산악 부족 차례다.

'그때가 되면 가즈 로드의 병력은 더 엄청나겠지.'

죽은 자들과 마수들이 병력의 근간이니 다크니스의 피해는 그리 크지 않다.아무리 산악 부족이 극적으로 대연합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그런 다크니스를 상대로 온전한 승리를 거두기는 힘들었다.

다크니스가 데빌 산맥을 장악하면 그들의 진군이 멈출까?

그건 절대 아니다 그들은 강화된 마수와 언데드 들을 몰고 세상 밖으로 진군할 것이다.그렇게 되면 이 비욘드의 세상은 그 옛날 몇 번이나 그랬던 것처럼 지옥으로 변하고 말것이다.

수많은 선량한 사람들이 학살될 것이고 정의와 도덕이 사라진 세상이 되고 말것이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깨야만 한다!'

욱일승천하는 다크니스의 기세를 깰 비책이 필요했다.

장차 자신이 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돌풍 용병대의 기반이 되어 줄 산악 부족이다.

"상계는 어때?"

"알고 묻는 거지?"

헤르쉬는 하룬이 고개를 끄덕이자 간략하게 고스트의 존재와 그들이 벌인 무도한 짓들을 열거하며 상계의 위기를 말해 주었다.그 정도에 차이가 있을 뿐이지 하룬이 생각했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혹시 고스트의 정체를 알아?"

헤르쉬의 물음에 하룬은 무심코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뭐?"

이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하룬이지만 그의 어색한 행동에서 진실을 알아차린 헤르쉬는 집요하게 그를 추궁했다.

하룬은 결국 추측이라는 전제를 깔고 고스트의 정체를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고스트는 골든 로드라는 세력의 주력인 무력 부대일 가능성이 높다는 거네.골든 로드 산하의 골든딜이라는 조직은 어둠의 상당인 헤로파까지 암중에 장악한 것 같고."

"맞아 그리고 골든 로드는 다크니스와 모종의 거래를 통해 언데드의 재료를 제공했어."

"세상에!정말 무서운 자들이네 어떻게 이런 거대한 세력이 우리 정보망에 걸리지 않았던 거지?'

"그게 그놈들의 무서운 점이지 이방인들이 사는 세상까지 암중에서 조종하는 놈들이라니까"

"에이 씨!그때 그 일로 길드가 축소되는 혼란을 겪지 않았더라면 벌써 고리를 잡았을 텐데."

헤르쉬는 자신도 알지 못하는 암중의 거대 세력이 존재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무척이나 분캐한 얼굴이 되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제국 정보 길드의 자존심에 상처 낸 자들에 대해서 알아봐야 할 것 같아.헤로파 상단 쪽부터 정보를 모아야겠어.그자들을 이대로 두었다가는 이 세상이 완전히 끝장날 거 같아."

찾아왔던 기세로는 밤이라도 새울 것 같았던 헤르쉬는 골든 로드에 대해 듣더니 마음이 바뀌었는지 자리에서 일어났다.그 정도로 강력한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 때문에 오랜만에 대련을 통해 서로에게 지도를 하고 있던 딜런과 타혼도 아쉽게 헤어져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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