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포스
하룬 일행은 당분간 본부가 될 코엠성으로 출발하기 전에 볼일을 보느라 바쁘게 보냈다. 마츠루트 요새에 온 이유 중 하나는 연합을
결성할지도 모르는 엄청난 숫자의 산악 부족들이 사용할 생필품을 구입하는 것이었다. 식량을 자급자족하려면 적어도 4개월은
더 있어야 했고 옷을 비록한 생필푸도 엄청난 양이 필요했기에 모든 대원들이 나섰다.
하룬도 대원들과 별도로 움직였다.
'최대한 많이 구입해야 해.'
바툰이 말한 대로 산악 부족 연합이 이루어진다면 하룬이 한동안 그들이 사용할 생필품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었다. 고스트로 인해
상거래가 극도로 위축이 된 상태라 그 정도 물량을 구하는 것은 어려웠다. 벌써 요새의 물가도 상당히 올라간 상황이었다.
당장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상점의 숫자도 줄어들었고 이 기회를 이용해서 매점 매석으로 큰 돈을 벌고자 하는 상인들이 많아
가격은 고사하고 원하는 야을 구할 수도 없었다. 유통로가 막히자 하룬이 지니고 있던 마수 가죽과 마정석 그리고 약초도 제대로
판매할 수가 없었다.
이런 상황이니 저렴한 생활 약품의 공급과 활성화된 상행위로 인해 높아지고 있던 평민들의 삶의 질도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이래저래 고스트를 처리할 이유만 절실해지고 있었다.
세류에게 최대한 많은 생필푸을 구해 달라고 부탁은 해 놓았지만 그래도 얼마나 부족할지 모르니 최대한 구해야 했는데 요새의
사종더 고스트의 영향으로 극도로 좋지 않았던 것이다.
하룬은 오후 늦게 가즈 로드 본부를 찾아갔다. 아그레시아총사를 비롯한 가즈 로드 수뇌부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던 것이다.
하룬은 그 자리에서 물품 구입의 어려움을 슬쩍 꺼냈고 가즈 로드의 수뇌부들은 의뢰 때문인지는 몰라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결국 아그레시아 총사의 배려로 가즈 로드의 군수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었다. 세 제국에서 당분간 지원군을 보낼 수 없는 상황에서
그간 본 희생자 분량의 물품이 남아돌았던 것이다.
군수품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엄청난 양이 한층 더 넓어진 펠의 아공간으로 들어갔다. 한 번 더 각성을 한 펠의 아공간은 이제 그 많은
양의 군수품을 넣고도 한참이나 여유가 있었다.
하룬은 거기에 더해 신전 연합과 마탑 연합에서 수많은 아이템들을 구입했다. 다크 프린스가 거느린 강화 언데드들을 처리하려면
큰 효과는 볼 수 없다고 해도 신성 마법이 담긴 물품이 필요했고, 부족한 마법 전력을 보충하기 위해서는 마법 아이템은 필수였다.
이런저런 이유로 구입한 물품 대금이 천만 골드가 넘어갔지만 상단 연합으로부터 받은 선수금은 그것을 초과했다. 일부는 선수금을
대신해서 받은 것도 있어 자금에서는 거의 문제가 없었다.
요새를 떠나기 전날, 뫼비우스와 헤르쉬를 은밀하게 숙소로 불러들인 하룬은 꽤 오랫동안 시간을 들여 자신의 생각과 몇 가지 물품을 전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대장님."
"나 역시 최선을 다할게. 성공만 한다면 다크니스는 더 이상 가즈 로드를 막을 수 없을 거야. 거기에 이방인은 이방인이 상대한다는 것도
너무 마음에 들어."
두 사람은 세밀한 내용까지 검토하고서야 돌아갔다. 두 사람을 배웅한 하룬은 대원들과 함께 새벽에 요새를 나와 미노와 수니를 타고 코엠성으로 향했다.
세류는 비록 현실의 일 때문에 자리를 비웠지만 이미 성안에 스페셜 포스를 포함한 동풀 용병대가 묵을 큰 건물을 마련해 두었다. 파괴된 지구라트만큼은
아니지만 3층 건물로 모든 시설이 완비되어 있어 대원들은 크게 만족했다. 여장을 푼 하룬은 티노 부대장 부부와 함께 한곳으로 향했다. 그곳은 코엠성을
찾은 용병들이 머무는 곳이었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은 내성의 벽과 접해 있는 구역으로 근처의 나무를 벌목해서 제법 그럴듯한 목책과 건물 들을 세워놓은
상태였다. 하룬 일행은 어비스 용병대의 본부를 찾아갔다.
"이곳은 어비스와 다카린 그리고 드래곤테일즈 용병단이 머무는 곳이오. 손님은 무슨 일로 오셨소?"
하룬은 문을 지키고 있덩 용병의 말에 깜짝 놀랐다.
"어? 왜 세 용병단이 한곳에 모여 있지?"
막상 어비스 용병대를 찾고 보니 일전에 인연을 맺었던 다카린 용병단과 드래곤테일즈 용병단도 함께하고 있었다.
"돌풍 용병대의 하룬 대장입니다."
경계 용병에게 이름을 말하자 그 용병은 깜짝 놀라며 하룬일행을 일자형의 긴 통나무 건물로 안내했다.
"이곳이 우리 세 용병단의 통합 사무실입니다."
"안내해 주어서 고맙습니다."
"아, 아닙니다. 하룬 대장을 뵙게 되어 일생의 영광이었습니다."
얼굴을 붉히는 용병의 순진함이 다소 무거웠던 마음을 가볍게 만들어 주었다. 사실 어려운 부탁을 하러 온 길이었던 것이다.
똑! 똑!
"들어와요."
"엘저?"
노크에 응답하는 소리는 분명 엘저의 그것이었다.
"하룬? 하룬이야?
하룬의 말을 들었던 걸까 아니면 그만큼 그를 기다렸던 것일까? 엘저는 하룬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와락 문을 열어 젖혔다.
"정말 하룬이었어!"
"하하하! 엘저!"
두 사람은 흔한 용병식 인사 대신 서로를 꽉 끌어안았다. 둘 다 처음으로 사귄 친구이기에 오랜만의 만남이 너무나 반가웠던 것이다.
"뭔가 달라진 것 같은데."
"그건 내가 할 말인데."
엘저는 얼굴을 다 드러낸 하룬의 변화를 느낀 것이고 하룬은 엘저의 기도가 소드 마스터에 근접한 것을 알아본 것이다.
"어서 오게, 하룬 대장!"
"친구라더니 사실은 애인어었던 거 아니야. 우리 같은 늙은이들이 보기에는 너무 뜨거운데."
안에서 들려오는 말에 깜짝 놀라 하룬은 포옹을 풀었지만 엘저는 쉽게 나주지 않았다.
"신경 쓰지 마. 갈 날만 기다리는 늙다리들의 말은 무시하라고. 얼마 만에 만나는데 이렇게 방해를 하는거야?"
"하지만 인사는 해야지."
"칫!"
엘저가 품에서 벗어나자 하룬은 푸근한 미소를 짓고 있는 세 사람을 볼 수 있었다. 어비스의 피엘과 다카린의 프레스단장 그리고 드래곤테일즈의 나바스론이었다.
"아빠!"
"장인어른!"
"하하하! 자네들도 왔군."
세 사람과 반갑게 인사를 주고받은 하룬 일행은 그들이 같이 머무르고 있는 이유를 듣게 되었다.
"다른 용병단들은 대부분 이방인들과 계약을 했지만 우리는 하룬 대장과 만나 함께 움직이려고 아직 계약을 하지 않고 있었네."
뜻하지 않게 강자들이 몰려들어 대원 영입에 시간이 걸려 만남을 지체했던 어비스의 피엘이 사람들을 대신해서 사연을 말해 주었다.
"대장이라면 제대로 된 의뢰를 가지고 올 테니 기다리고 있었지. 전에 벌어 둔 것도 두둑하니 이참에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네."
"우리 역시 마찬가지였네."
세 사람은 이곳 데빌 산맥에서 제대로 된 큰 건이 터질 줄 알고 자중하며 하룬을 기다린 것이다. 안 그래도 작전 구상을 하면 할수록 스페셜 포스 두 팀으로는 전력이
부족하다고 느꼈던 하룬인지라 그들의 마음씀씀이가 고마웠다. 막강한 돈을 들여 영입한 소속 용병들을 수련이라고는 하지만 그냥 두는 결정은 수장으로서 쉽게
내릴 수있는 것이 아니다.
"하하하. 제대로 판단하셨습니다. 큰 건을 물고 왔거든요."
하룬의 말에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하룬은 일단 세 용병단의 전력을 확인했다. 세 용병단은 데빌 산맥과 마수들의 흉험함을 알기에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용병들만 데리고 온 상태였다. 전사의 경우는 소드 마스터 6명에 익스퍼트는 최상급이 무려 42명이었고 상급은 106명, 중급은 314명에 달했다.
마법사의 경우에도 6서클이 6명에 5서클이 44명이었고 4서클은 105명이었다. 용병의 특성상 마법사들의 공격력은 한 서클 이상이라고 보면 되기에 실로 엄청난 전력이었다.
특별한 것은 엘저가 소드 마스터에 막 입문했다는 점이었다. 아직은 최상급 익스퍼트로 분류되지만 곧 확실한 초급이 될 것이다. 용병 출신에 여자로 그 정도 경지에 이르는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그녀의 자질이 워낙 뛰어나기도 했지만 부단한 노력에 힘 입은 큰 성과였다. 그녀로 인해 어비스의 이름은 더울 널리 퍼지게 될 것이다. 하룬은 세 용병단의 전력으로 세 개의 팀을 구성했다.
"그러니까 상단을 호위하다가 고스트를 처리하는 것이 우리의 새로운 임무라 이거지?"
"네. 고스트 한 팀을 처리하면 100만 골드를 지급하겠습니다."
세 사람은 하룬의 말에 입이 떡 벌어졌다. 전에도 내뱉는 숫자마다 엄청나더니 이번에도 그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것이다.
"후후후! 과연 자네를 기다린 보람이 있군. 고스트 열 팀만 잡으면 천만 골드라 이거지."
"껄껄껄! 이번에는 보유하고 있는 스크롤이며 포션을 아낌없이 써야겠군."
상단을 처음부터 끝까지 호위하기에 열 팀이나 처리할 수는 없겠지만 꿈만은 컸다.
"쳇! 이번에 만나면 좀 느긋하게 같이 지내려고 했더니."
"이번 건이 마무리되면 같이 대련도 하면서 시간을 가지자."
엘저만이 좀 실망한 모습이었지만 처음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은 어비스였고 하룬으로부터 새로운 약속을 받았기에 금세 누그러졌다. 이제 세 용병단의 실력자들은 코엠성의
워프 마법진을 통해 미노 제국과 신테론 제국으로 건너갈 것이다.
-그럼 저희도 한 팀을 꾸리겠습니다.
펄세크란은 하룬의 제의를 선선히 받아들였다.
"다행입니다. 우리와 보조를 맞춘다면 큰 효곽가 있을 겁니다. 상단 연합 소속의 팀이 고스트를 처리하면 팀당 100만 골드를 지급하겠습니다."
-하하하. 그거야 우리 일이라 어차피 할 일인데 그렇게까지 말슴 하신다니 고맙게 접수하겠습니다.
상인 연합의 대표인 펄세크란은 상인답게 하룬의 제안을 바로 받아들였다. 상인 연합은 하룬의 의견을 받아들여 스페셜 포스와 버금가는 팀을 구성해서 상단 호위를 맡기기로 했다.
그 정도의 고급 전력을 그렇게 호라용하는 것에 대해선 말이 많겠지만 지금은 비상시였고 하룬의 돌풍 용병대와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는 필수적이었다.
-그런 팀이 얼마나 되는 겁니까?
"일단 열 팀이 움직이고 추후 더 만들어질 겁니다."
-후욱! 저, 정말입니까?
"네."
사실은 상단 연합을 제외한 스페셜 포스는 모두 여섯 팀이다. 나머지 1팀은 피노세 호아제에게 받은 완드의 권위로 황도 방위를 전담하는 황도수비군 산하 기사단을 움직여 구성한 것이고
그들은 황실 식재료 운송을 전담하는 코엠 상단을 호위하기로 했다.
때문에 열 팀이라는 건 과장한 것이지만 기동성이 몇 개 팀의 역할을 할 1팀을 생각하면 거짓은 아니었다. 하지만 펄세크란은 팀당 기본 소드 마스터가 둘에 6서클 마법사가 둘이 포함되었다는
것을 생각하고 기겁을 하는 것이다.
그 팀들이 모두 돌풍 용병대의 전력은 아니지만 단순 계산으로도 소드 마서트와 6서클 마도사들이 각각 20명 이상이니 펄세크랑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이 상인 연합의 대표이긴 하지만 그 정도의 강자들을 한데로 모을 수 있는 힘은 없다. 그런 엄청난 전력을 일개 용병대의 대장이 만든 것이다.
'역시 우리의 선택이 최선이었어!'
펄세크란은 결과를 더나 하룬의 능력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가 생각하는 진정한 강자는 막대한 재산을 가지고 있거나 본인이 엄청난 실력을 가진 검사가 아니었다.
'인맥이 가장 큰 힘이다!'
어떤 상황이건 도와줄 수 있는 친구가 많은 것이 세상에서 가장 큰 힘이라는 점을 펄세크란은 잘 알고 있었다.
"그럼 건투를 빌겠습니다."
-대장님도 수고해 주십시오. 그리고 말씀하신 대로 돌풍 상단을 제일 먼저 출발시키겠습니다.
펄세크란과 통신을 끊은 하룬은 총 일곱 개 팀으로 고스트를 제대로 상대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지만 그래도 현재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전력이라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곳으로 오기 전 하룬은 수탕가 봉 인근의 성에 머물고 있는 고문들로 하여금 세 부족의 지도자들을 수행하는 한편 툴람 호수 근방에서 활동하고 있는 골든 로드의 포획단을 상대하도록 명령 내려놓았다.
각 부족의 지도자들도 현자 바툰의 소집령에 따라 산악 부족이 툴람 호수로 움직이기에 포획단들도 따라서 움직일 거라고 판단한 것이다.
그 일이 아니라면 돌풍 용병대만으로 최소한 4팀 정도는 구성할 수 있었지만 할 수 없이 전력을 분산시킨 것이다.
'일단 초반에 최대한 피해를 입히고 빨리 본거지를 찾아야 한다.'
하룬이 움직일 준비를 끝내자 파코추 마탑에서 특별히 제작한 신호 발생기가 은밀하게 상단 연합으로 넘겨졌다. 그리고 미리 약속된 차레대로 상단들의 원거리 상행이 출발하기 시작했다.
"자, 서두르자고."
오랜만에 상행을 나온 연우는 그렇게 이야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을 버리지 못한 듯 주변을 살피느라 지체되는 상인들과 일꾼들을 재촉했다.
짐마차 열 대와 4명의 상인 그리고 마부를 포함한 20명의 일꾼에 20명의 호위대로 이루어진 이번 상행은 고스트의 습격으로 모든 원거리 상행이 완전히 정지된 현실을 생각하면 정말
상단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황담함을 넘어선 짓이기는 했다.
'휴우. 하긴 나도 아직 불안하니까.'
이미 두 번에 걸친 고스트의 습격을 받았던 연우는 악몽과도 같았던 순간들이 떠오르자 몸을 부르르 떨었지만 숨을 크게 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번에는 대장님이 직접 움직이기로 했으니 괜찮을 거야.'
돌풍 상단원들에게 있어 돌풍 용병대의 대장 하룬은 신이나 마찬가지의 존재였다. 자신이 살고 있는 돌풍 기지의 주인인 현실의 하룬 대장보다 훨씬 더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하룬 대장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물론 믿을 수 있다는 근거는 마치 전설처럼 전해지는 그의 무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에 비견되는 엄청난 실력에 비도를 귀신처럼 쓰고 정령까지 부린다고 했다. 거기에 병마에
신음하는 헐벗은 이 비욘드의 주민들을 위해 최저 이윤으로 약품을 생산하고 판매하는 자비심까지 더하면 그야말로 영웅이 따로 없었다.
두번에 걸친 습격으로 인해 받은 피해는 개진적으로는 레벨의 대폭적인 하락이었지만 상단의 입장에서는 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났다. 없어진 물품의 가격은 물론이고 거래 상대방과의
위약금으로도 족히 10만 골드가 넘어갈 것이다.
'그것도 여기까지다. 이젠 더 이상 당하지 않아. 나와 우리의 상행이 그 시발점이 될 거야.'
연우는 손에 쥐고 있난 작은 신호기를 만지작거리며 강하게 눈을 빛낸다. 루베인 시에서 나가는 상행은 지난 열을간 전혀 없었다. 상단들이 약속이나 한 듯 상행을 중지한 후 자신들의 상행이
처음으로 나서는 것이다.
놈들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연우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조금만 더 가면 사비린 협곡이다. 호위대는 정찰을 보내고 모두들 경계를 철저히 하라."
이번 상행의 책임자인 연우의 명령에 호위대 중 일부는 지체 없이 정찰을 나갔고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상단원들과 일꾼들은 더욱 긴장한 얼굴이 되었다.
틀림없이 고스트는 협곡에서 나타날 것이다. 협곡의 입구나 ㅊ루구 안쪽에서 놈들에게 당한 상단이 열 개가 넘어간다. 놈들은 제대로 도망칠 수 없는 지형에서 나타나 모든 이를 다 죽이고 물건까지 모조리 가져가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정찰 결과는 언제나 같았다. 사방에 드러나는 습격의 징후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찰의 결과를 바탕으로 상행은 천천히 움직였고 결국 협곡의 입구에 들어섰다.
'자, 어디 나와 봐!'
연우는 불안을 억누르고 이를 악문 상태로 상행을 안쪽으로 이끌었다.
거의 10분 정도 움직였을까? 갑자기 이상한 징후가 느껴졌다.
'왔다!'
두 번이나 당했으니 이젠 모를 수가 없다. 고위급 마법이 사용되는 마나의 유동이 느껴졌던 것이다. 비록 레벨은 형편없이 추락했지만 육감은 더욱 민감해졌다. 연우는 고스트 특유의 이동 마법진이 발동했음을 확인하고 신호 발생기를 작동시켰다.
파앗!
갑자기 좀 떨어진 전방의 협곡 위에서 강한 빛무리가 생겼다가 사라졌다.
"아악!"
"조…… 헉!"
연우의 짐작이 맞았다. 30미터 전방까지 앞서 가며 정찰을 하던 호위대 2명이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그들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은 방금 전 나타났다가 사라진 빛무리가 있던 자리였다.
언제 나타났는지 검은색 인영 열 개가 보였다. 후드를 깊게 눌러써 얼굴을 확인할 수 없는 것도, 앞장선 자들의 검에서 오러가 솟구친 것도 지난 두 번의 경험과 동일했다.
"헛! 고……스트."
"고스트가 나타났다!"
사람들이 놀라 소리를 질렀다.
"당황하지 말고 미리 말한 대로 각자 할 일을 행하라!"
이런 사태에 대비해서 미리 내렸던 지시를 언급한 연우가 굳은 표정으로 앞으로 나가는 호위대를 바라보았다.
호위대가 적들과 응전할 태세를 취하는 사이 마부들이 말머리를 한곳으로 모으고 고삐를 한데 묶자 마차들은 자연스럽게 둥글게 모였다. 마부들과 상인들은 미리 준비한 석궁을 장전하고 마차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
'대장님,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
몇 번에 걸쳐 고스트에게 척살을 당한 호위대의 실력은 떨어진 레벨만큼 믿을 수가 없었다. 아니, 고용 될 당시 레벨이라고 해도 고스트를 당할 수는 없었다. 아무리 목숨을 여벌로 가지고 있는 이방인이라고 해도 죽음 당할 때의
심적 고통과 마음의 상처는 어쩔 수가 없는 법이니 적을 기다리는 호위들의 몸은 무겁게 느껴졌다.
"형, 형, 심심해!"
펠은 무작정 대기를 하는 것이 힘든 모양인지 같이 놀아 달라고 성화를 부린다.
하긴 아직 어린아이이니 그럴 만도 했다. 그 나이대는 한 가지에 몰두하기 힘들 것이다. 거기에 진종일 방 안에 갇혀 있다시피 하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일 수도 있다. 비로소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는데 한곳에 갇혀 있으려디
답답하지 않으면 거짓말일 것이다.
스페셜 포스 1팀은 신호가 오면 바로 이동해야 하기 때문에 어디 나가지도 못하고 방 안에 대기하며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었다.
두 눈을 감고 가벼운 명상에 빠졌던 하룬이 엄한 얼굴로 펠을 보았다.
"정신 사남게 굴지 말고 그냥 앉아 있어. 몇 시간 전부터 1시간 단위로 상행이 출발할 테니 곧 신호가 들어올 거야."
"쳇! 쳇! 쳇!"
펠이 심통이 난 얼굴로 풀썩 소리를 내며 바닥에 엉덩이를 붙였다.
"펠아, 심심하면 이 할아버지와 톡탁 놀이나 할까?"
타니엘라의 말에 펠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헤헤! 타니 할아버지가 최고야!"
펠은 타니엘라에게 달려가 그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의논하던 건 정했나?"
언제 명상에서 깨어난 것인지 딜런이 물었다.
스페셜 포스가 코엠성에 자리를 잡은 후 잠시 여유가 생기자 타니엘라는 공명 마법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내내 연구와 토론을 하고 있었다.
주술로 마법의 공격력을 몇 배로 증강시키는 것이 돌풍 마탑이 개발한 마법의 핵심인데 문제는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꽤 오래 걸리다는 것이다.
아직 공명 마법의 이론과 체계가 잡힌 것이 아니어서 일단은 마법 발현에 걸리는 시간을 줄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엇지만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많은 연구가 필요했다.
어쨋든 타니엘라가 펠에게 신경을 쓰는 것을 보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나 보다. 당장이라도 신호만 들어오면 출동을 해야 하는 상황이니 정말 다행이었다.
"마법의 위력을 세 배까지만 올리기로 했네. 마침 상성이 맞는 주술을 찾을 수 있어서 본래보다 한 배 반의 시간에 그 정도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지."
"호오! 시간은 한 배 반인데 위력은 세 배라. 굉장하군."
하룬도 두 사람의 대화를 들으며 많이 놀라고 있었다. 주술고 마법도 상성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다. 거기에 그 정도의 효율이라면 가히 마법의 혁명이라고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우리 펠이 혼자 심심했을 테니 잠시 놀아 줘야지."
마법 주머니에서 도구를 꺼낸 타니엘라는 펠이 게임의 룰을 모르자 예를 들어가면서 상세하게 알려 주었다. 톡탁은 다섯 개의 작은 돌멩이를 위로 던지고 잡는 놀이였다.
'신기하군.'
곁에서 설명을 듣던 하룬은 많이 놀랐다. 지구에서도 어렸을 때 톡탁 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있다. 종말 시대까지 올라갈 정도로 그 역사가 오래된 게임인 공기놀이를 해 본 적은
없어도 대충 들어서 알고 있는 하룬이다. 그런데 전혀 다른 세계인 비욘드의 세상에 거의 같은 게임이 있다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니 이방인들이 이곳을 가상현실이라고 여기지.'
생각해 보면 차이도 크지만 반면에 여러 모로 유사한 점이 많다. 지구의 역사에서 중세 시대에 해당하는 세계관도 그렇고 이 세계도 지구의 그것처럼 전승되지 않는 선사 문면들이
존재한다는 점 그리고 공룡들이 살았던 시대까지 존재했다.
'그러고 보니 도대체 이곳은 어지지?'
처음에는 다른 행성이 나닐까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아리에게 물어보고서야 종말 시대에 주창되었던 평행 우주론에 입각해서 동시간대에 존재하는 다른 차원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었다.
하룬은 갑자기 평행 우주론을 화두로 명상에 빠져들었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던 이론들의 진실성을 확인하고 이해도를 높이는 것돠 동시에 여러 가지 반론가지 떠올리는
하룬의 사고는 급격하게 확장되고 있었다.
사실 명상이라고 해 봐야 마음을 가라앉히는 정도에 그쳤던 하룬은 우연하게 톡탁 놀이로 인해 진짜 명상에 빠진 것이다.
처음으로 접한 명상의 세계는 지적인 부분과 거리가 멀다고 스스로 내렸던 한계를 벗어나 빠르고 깊게 사고의 영역을 확장시켰다. 제대로 교육받지 못해서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던 뇌의 신경 회로들은 하룬에게는 멈췄다고 볼 수 있는 짧은 시간 동안 일시에 활성화되고 있었다.
사실 이미 상단전이 활성화된 하룬이기에 언제라도 계기만 주어지면 뇌 기능이 활동할 준비가 되어 있기는 했었지만 그 속도나 확정 범위는 범인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할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다.
종말 시대에 진행되었던 한 연구에 의하면 인간의 뇌가 가진 정보처리 능력은 슈퍼컴퓨터에 비견할 정도로 엄청나다고 했다. 20세기에 가장 뚜이ㅓ난 과학자로 알려진
아인슈타인 조차 그 능력의 10%도 쓰지 못했다고 알려졌을 정도다.
이대로 가면 하룬은 지적 능력은 아즈만에 버금갈 정도로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우연히 다가온 행운은 역시 우연한 일로 방해받기 마련인가 보다.
삐익! 삐익!
갑자기 신호음이 귀에 들어왔다. 그와 동시에 아득한 곳까지 확장했던 그의 사고는 현실로 돌아오고 말았다.
"아!"
아쉬웠다. 아리와 입맞춤을 하려는데 벨이 들어온 격이랄까. 하지만 안타까움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니다.
"펠아!"
"난 언데라도 준비되어 있다고, 형."
펠은 타니엘라와 놀이에 빠져 있다가 신호음이 들리자 발딱 일어섰다. 그와 동시에 다른 이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하룬 주위로 몰려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시려는지?"
하룬이 걱정하지 말라고 호언장담을 했기에 별로 걱정하지 않고 있었던 고문들까지 궁금한 얼굴이었다.
"신호를 보낸 곳으로 우릴 보내 줄 존재는 우리 펠입니다."
하룬이 자신의 옆으로 온 펠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네에?"
"무슨?"
조원들은 눈을 크게 뜨고 의아한 표정으로 펠과 하룬을 번갈아 가며 보았다.
"헤헤! 다들 제 주위로 모여 주세요. 그리고 제 몸 일부를 손으로 잡으세요."
"………"
사람들은 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이해하지 못해 멀뚱히 서 있었다.
"일단 펠이 말하는 대로 해 주세요."
하룬이 펠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하자 한 사람씩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펠의 팔이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럼, 갑니다!"
하룬 일행의 눈앞이 갑자기 부옇게 변하더니 사물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러곤 다음 순간 사람들은 자신 주변에 빛입자가 가득 차는 것을 보며
수만 미터 상공에서 사정없이 떨어지는 것과 같은 강렬한 압박감과 속도감을 느꼇다.
조원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고 내장과 피고 오공(五孔)으로 빠져나가는 것과 같은 아찔하고 긴박함에 몸을 굳혔다.
"헤헤! 다 왔어요!"
펠의 말이 들리는 순간 멍하니 있던 조원들은 다시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크으윽!"
"으윽!"
미노와 수니를 탄 경험이 있던 사람들은 그래도 머리를 몇 번 흔드는 것으로 제정신을 차렸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신음과 함께
얼굴을 일그러드리며 메슥거리는 속과 뒤엉킨 정신을 달랬다.
"오랜만의 먹이로군."
깊이 눌러쓴 후드로 인해 마치 사마귀의 그것처럼 보이는 위험하게 생긴 턱이 움직였다.
놈의 말대로 오랜만에 목표라 이번에는 말을 섞을 틈이라도 주는 걸까?
연우는 두려움을 억누르고 주먹을 꽉 쥐며 입을 벌렸다.
"네놈들은 도대체 누구냐?"
"크크! 너희들은 고스트라고 부른다지? 우리도 그렇게 바꾸었지."
20대 아니, 30대의 젊은 목소리였다.
'이방인이다!'
연우는 놈의 턱과 입 주변을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입 모양이 내는 소리는 이곳 공용어와 달랐던 것이었다. 역시 소문이 맞는 모양이다.
"진정한 목적이 뭐냐?"
만약 놈들이 다른 상단을 공격할 때처럼 물건을 모두 강탈해 갔다면 그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고스트는 유독 돌풍 상단을 공격할 때는
약품들을 모조리 태워 버렸던 것이다. 아무리 원가라 해도 그 정도 양이면 엄청난 가치가 있는데 말이다.
"흐흐흐. 밤이 길면 꿈도 긴 법. 이제 시작해 볼까?"
사마귀 턱이 잠시 거두어 들였던 오러를 길게 뺐다.
'익스퍼트 상급 아니, 최상급이군. 그와 비견되는 자가 셋, 그보다 조금 아래가 넨, 저 뒤는 마법사들이군. 다행히 가세하지 않을 모양이네.
아니, 1명이 더 있군.'
연우 역시 익스퍼트 중급 이상의 실력을 가지고 있기에 상대의 실력을 어느 정도는 알아볼 수 있었다.
저들 전부가 이방인이라면 정말 두려운 일이다. 이런 팀들이 최소 10개에서 최대 100개까지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정보가 공개된 하이랭커들 중 최상급 익스퍼트는 아직 1,000명이 채 안된다. 페인 중에서도 지독한 유저만이 그 영광을 누릴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정체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한 조직이 최소 100명에서 최대 1,000명 이상의 익스퍼트를 거느리고 있다는 사실에 연우는 잠시 말을 잊었다.
'엄청난 조직이 개입했다.'
연우의 놀라는 표정을 보았는지 사마귀 턱이 입을 열었다.
"뭘 믿고 사지로 뛰어들었는지 궁금해서 그나마 여유를 부렸는데 아무것도 아니군. 도대체 무슨 깡으로 나온 건지. 쯔쯧!"
그 순간이었다.
스르릉.
연우의 옆쪽 대기가 갑자기 심하게 일렁인다 싶더니 투명한 막에 후비싸인 한 무리의 사람이 나타났다.
너무 뜻밖이어서 연우 측이나 고스트 측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했다. 그저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사이에 투명한 막이 스르르 사라지더니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이 드러났다.
연우는 바싹 마른 입술에 침을 적시며 눈을 부릅떳다. 미리 이야기가 된 걸 생각하면 자신들 편이 왔어야만 했다. 그래서 혹시나 안느 얼굴이 있을까
싶어 나타난 이들을 살펴 보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나타난 이들 중 아는 얼굴은 없었다. 연우가 비록 상행주이긴 하지만 지단주도 아닌 터라 아직 하룬은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타난 이들 중 몇 명은 워프 마법의 후유증으로 이상한 소리를 내며 비틀거리거나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얼음처럼 서 있었다.
그런데 그가 상대편을 알아보기도 전에 그중 한 남자가 그를 향해 걸어왔다.
"고스트가 이렇게 생겼군. 꽤 어린 나이들 같은데 제법 레벨은 높은가 보네."
말을 한 것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큰 키에 후리후리한 몸매를 가진 그 사내의 얼굴은 평범했지만 눈빛은 아주 차갑고 강렬해서 마치 냉수를
마신 것처럼 절로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넌 누구냐?"
어떻게 한 것인지 후드를 깊이 눌러쓴 자들의 얼굴을 알아본 눈치이자 사마귀 턱이 아까 연우가 한 것처럼 반사적으로 물었다.
"돌풍!"
"돌……풍이라고? 어떻게?"
사마귀 턱은 자신이 말하면서도 멍청한 질문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자신들이 했다면 상대들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제까지 그렇게 당했으니
상단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돌풍 용병대와 그 수장인 하룬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 보았다. 소문이란 것이 왕왕 과장되기는 하지만 사마귀 턱은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이젠 멈추자고 했더니만.'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간다면 이제까지 당한 자들이 어떻게든 자신들을 상대할 수를 낼 거란 예상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조직에서는
재미가 들렸는지 고집을 하다가 결국 강자들을 불러들인 것이다.
'그나마 용병들이 나선 것이 다행인가?'
제아무리 위명을 떨친다고 해도 용병은 용병일 뿐이다. 소드 마스터만 없다면 문제 될 것은 없다. 소드 마스터라면 극악한 위인이 아닌 이상 어느 나라에서도
귀족이나 영주를 시켜 주는 이 세계의 관례이기 때문에 용병이 소드 마스터인 경우는 거의 없다.
"우리도 너희들이 한 짓을 해 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꽤 재미있어 보였거든. 의뢰비도 빵빵한 데다가 너희들은 머더러인 이방인이니 건질 게 꽤 많을 것 같더라고."
"이……미친!"
상대가 발작하듯 화를 내며 검기를 1미터가 넘게 뽑아낸 검을 휘두르려는 찰나 뒤에서 딜런이 하룬을 스치며 날아왔다.
그러자 하룬이 비수 세 자루를 아무것도 없는 하늘로 던지며 메신저 점핑과 패스트 스킬을 극성으로 펼쳐 뒤에 남아있는 마법사들을 향해 쏘아 갔다. 막 오러 소드를
일으키던 자들이 어떻게 반응할 틈도 없이 그들을 넘어 날아간 것이다.
"다크 핸드!"
"다크 에로우!"
"다크 스피어!"
하룬의 전면으로 검은 화살과 창 들이 날아오고 그 뒤로는 거대한 검은 손이 그를 향해 손아귀를 펼치고 날아왔다.
하룬은 적들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대응을 하자 탄환처럼 쏘아 가던 몸을 멈추그 급하게 박살을 빼 들었다. 다른 마법들은 어찌 피한다고 하더라도 흑마법사의
영혼과 연결이 되어 있는 다크 핸드는 반드시 상대해야만 했다.
"차앗!"
속전속결이니 실력을 숨길 필요도 없다.
박살의 검첨에서 오러 블레이드가 쑥 솟아 나왔다.
꽈앙! 꽈앙!
현란하게 움직인 오러 블레이드는 다크 애로우와 다크 스피어를 날려 버리고 거대한 검은 손아귀를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헉! 소드 마스터!"
"소드 마스터다!"
그 소리는 하룬의 앞뒤에서 들여왔다. 딜런과 일룸을 포함해 무려 넷이 소드마스터인 까닭이다.
"크아악!"
벌써 1명을 처리한 모양이다.
그 순간 마법사들의 곁에 있던 자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후퇴하라!"
그 소리와 함께 오러 블레이드가 솟아로른 검을 들고 하룬을 향해 달려들었다. 진짜 고수가 뒤어 숨어 있었던 것이다.
꽈앙! 과꽈꽝!
로러 블레이드가 부딪히며 굉음과 함께 엄청난 먼지가 일어났다.
"크윽! 퉤! 어디서 이런 자들이?"
전력이 담긴 격돌에 크게 충격을 받았는지 핏덩이를 토하는 자의 후드는 걸레처럼 찢겨 그 모습이 온전히 다 드러났다.
'역시 휴먼 가드로군'
황금색 풀 플레이트를 보는 순간 하룬은 이자들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포러스의 기억을 통해 이자들이 휴먼 가드의 골든 나이트이란 걸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뒤쪽에서 마법사 셋이 황급히 바닥에 넓은 가죽을 까는 것이 보였다.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마법진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마법진이 그려진 큰 가죽을 펼치고
깨알처럼 작은 극세 마나석을 요소요소에 집어넣는 장면이었다.
'놈들의 신속한 워프의 비밀이 바로 저 가죽 마법진이었군. 그런데 아무리 이동 마법진이라도 워프를 하면 저 가죽 마법진은 남아야 정상인데……"
마법진을 설치하는 것은 극히 까다로운 일이다. 6서클 마법사라고 할지라도 한참을 작업해야 하는 일인데 저들은 마법 처리를 한 가죽 위에 마법진을 그려
그 동력원인 마나석을 필요할 때 미리 지정된 곳에 장착함으로써 워프 마법을 구현하는 것이다.
얼마나 정교하게 작업을 했기에 가죽 위에 그린 마법진이 제대로 구동한다든 것도 대단하지만 어떻게 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했는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가죽으로 된 워프 마법진이 워프를 한 후에 사라진다는 점이다.
'혹시 일회용인가?'
그럴 가능성이 높았다. 마치 귀환 텔레포트 스크롤처럼 찢음으로써 발현되는 종류라면 가죽으로 만든 워프 마법진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아주 작은 조각들만 남긴 채 사라질 수 있었다.
"헛! 매직 미사일 아니, 매직 스피어인가?"
"다크 실드!"
"블링크!"
"다크 실드!"
마법사들은 갑자기 날아온 수십 발의 매직 미사일에 당황해서 블링크와 실드 마법을 펼쳣다. 하지만 그들이 본 매직 미사일은 보통 것보다 세 배 이상 컸고
그 위력은 그들이 본능적으로 펼친 다크 실드나 블링크 따위로 막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꽈앙! 꽝! 꽈앙! 꽝!
"크아악!"
"아아아악!"
열 발 이상의 괴물과 같은 매직 미사일에 강타당한 흑마법사들의 다크 실드는 종잇장처럼 찢겨 나갔고 또 다른 주문을 영창하다가 피격되었다.
블링크로 피한 흑마법사도 마찬가지였다. 매직 미사일은 열 기 이상이어서 블링크로는 도저히 피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헙!"
하룬의 오러 블레이드를 향해 강력한 일격을 날린 후 그 충격으로 뒤로 날아가던 상대는 자신이 받은 충격보다 눈으로 본 충격에 놀라 경악한 얼굴이 되었지만
그 순간 생각하지도 않았던 공격을 받았다.
하룬이 하늘을 향해 날렸던 비수 세 자루가 그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들었던 것이다. 그는 날아가던 그 자세에서 전력을 다해 검을 휘돌렀다.
꽈아앙!
폭음은 한 번에 그쳤다. 그가 쳐 낼 수 있었던 비수는 한 자루에 불과했던 것이다.
쿵!
"크으윽!"
바닥에 떨어진 상대는 신음을 지르며 자신의 눈을 위로 치켜떳다. 이마에 박힌 비수자루가 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연이어 심장에 화끈한 통증을 느끼며 아래로 시선을 돌렸다.
'이건 뭐지?'
제대로 마나도 끌어 올리지 못한 상태에서 비수에 담긴 엄청난 힘을 감당하지 못해 큰 충격을 받은 그의 몸에서는 미칠 듯이 폭주하는 마나와 전신의 피가 빠르게
머리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믿을 수 없게도 자신의 마나와 피가 비수를 향해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악……마……… 커억!"
그는 순식간에 미라가 되어 갔고 끝내 먼지처럼 부서져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어둠의 비수가 하룬에게 돌아가자 바닥에는 그가 남긴 걸레와 같은 로브와
풀 프레이트 갑옷 그리고 몇 가지 물건들만 남아 있었다.
그 과정은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벌어져 전장을 지켜 보던 연우를 비롯한 상단원들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한편 에몬은 기력을 탈진한 펠을 지키고 있었다.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에는 전사단의 고문들이 잇었다.
딜런과 일룸, 보벳과 바윗은 10명의 적을 상대했다. 소드 마스터 초급인 바윗을 제와한 세 사람은 중급에 이르는 실력자들인지라 소드 마스터 초급 하나에
익스퍼트 최상급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중상급이 고작인 적들은 그리 어려운 상대가 아니었다.
꽈아앙! 꽈앙!
오러 블레이드끼리 부딪히는 굉음은 몇 번 들리는가 싶더니 사마귀 턱은 검과 함께 전신이 사선으로 잘려 버렸다. 놈들이 도망칠 것을 우려해서 전력을 기울인 딜언의
오러 블레이드를, 급조한 그들의 오러 블레이드가 감당하지 못하고 깨져 버렸던 것이다.
"크악!"
곳곳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대낮임에도 불구하고 산악 부족 출신 고문들의 신형은 나타낫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했는데 그때마다 고스트 요원들은 목을 잡으며
쓰러졌다. 쩍 벌어진 목에서는 피가 분수처럼 솟구쳤는데 고문들의 몸은 깨끗하기만 했다.
전투가 벌어진 지 겨우 몇 분이 흘렀을까? 전장은 고요해 졌다.
뭉클뭉클!
뜨거운 선혈이 아직도 경련을 일으키는 육체 밖으로 흘러 나오는 소리만이 들릴 뿐 고스트들은 모두 처참한 몰골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스르르릇.
잠시 후 이방인 고스트들의 몸과 선혈이 빛 가루로 변하기 시작했다. 빛 가루가 대기 속으로 사라지자 그 자리에는 온갖 아이템들이 쌓여 있었다.
"앗싸! 아이템이다!"
공간 이동을 위해 과도한 힘을 쓰는 바람에 에몬의 호위를 받으며 쉬고 있던 펠이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아이템들을 향해 달려갔다.
"펠아, 몇 개만 챙겨라. 고생을 한 상당 식구들도 뭔가 보상이 있어야 하잖아."
"헤헤! 알았어, 형."
펠은 하룬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에나 아이템이 많이 필요했지, 각성을 했고 순수석의 파편을 가지고 있는 직므은 아이템에 욕심을 내지 않아도 되는 펠이다.
"괜찮소?"
워프 마법진이 새겨진 가죽을 회수한 하룬이 멍청하게 서 있는 연우에게 말을 건넸다.
"아……네! 네! 물론 괜찮습니다."
"이름이?"
"연우라고 합니다. 대장님!"
연우는 바짝 얼어서 부동자세를 취하며 큰 소리로 대답했다. 연우는 이제야 선배들이 말했던 하룬의 인상착의를 기억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황은 종료가 되었지만 놀랐을 테니 이곳에서 잠시 쉬다가 다시 상행을 계속하시오."
"네. 그러겠습니다."
"신호만 보내면 언제든 바로 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움직이시오."
"감, 감사합니다, 대장님."
아직도 놀라 마차 사이에서 나오지 못하는 상단원들과 일꾼들을 한번 바라본 하룬은 펠이 아이템을 모두 수거하자 다시 이동할 준비를 했다.
"에고! 아직 어지러운데……"
"난 아직도 머리가 빙빙 돌고 내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아."
몇 명이 죽는 소리를 하며 인상을 찌푸렸지만 곧 펠 주위로 모여들었다.
휘리링!
사람들을 둘러싸고 투명한 막이 생기고 곧 막 전체가 빛으로 일렁이는가 싶더니 거짓말처럼 하룬 일행은 사라졌다.
"……."
연우는 인사를 하던 그 자세로 몸이 굳었다. 그런 연우를 향해 단원들과 호위대가 슬금슬금 다가왔다. 호위대장을 맡고 있던
사성이 연우의 눈치를 보며 입을 열었다.
"누구였습니까?"
"우리 돌풍 용병대 대장님이야. 나머지는 나도 모르겠고."
"방어구를 보니 돌풍 용병대원들인 것 같은데 굉장하네요. 소문이란 게 과장되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돌풍 용병대의
경우는 정반대인가 봐요."
"그러게. 나도 이 정도의 실력을 가진 줄은 몰랐어. 소드 마스터 둘과 익스퍼트 급 검사 아홉 그리고 마법사 셋을 숨 한 번 쉬는 동안 해치울 줄이야."
입 밖으로 생각을 꺼내자 더욱 대단하게 여겨졌다. 소드 마스터가 어디서 찍어 내는 것도 아닌데 그런 강자들을 눈 깜짝할 사이에 도륙을 해 버린
돌풍 대원들의 무위를 생각하니 그야말로 무인지경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이제야 제대로 놈들에게 복수를 할 수 있겠군요."
"그래, 맞아! 그동안은 그저 당하기만 했지만 대장님이 이런 수를 내셨으니 이제부터는 제대로 맛을 보여 줘야지."
잊 충격에서 조금 벗어난 연우 일행의 얼굴에는 강한 안도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자, 아이템부터 챙기자고."
연우의 시선이 사방에 널려 있는 아이템으로 향했다. 펠은 아이템 중에서 아주 희귀하고 가치 있는 것 몇 개만을 가져갔을 뿐이었다.
나머지는 하룬의 말대로 마음고생을 했던 자신들의 전리품이 되어 그간 깎였던 레벨과 떨어뜨린 아이템에 대한 보상이 되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