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 가장 강력한 갑옷, 갑빠(1)
11층으로 올라가는 길.
한나가 태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그 붕대 같은 건 뭐예요?”
“이거요? 글쎄요. 내 촉수라고나 할까요?”
“무기가 참 신기하게도 생겼네요.”
“네, 뭐…….”
어딘가 모르게 어색함이 감돌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한나는 갑자기 파티에 끼어든 입장이 아니던가.
“그나저나 한나 씨는 언제 이곳까지 왔어요? 우리가 왔을 땐 분명 던전에 아무도 없었는데 말이죠.”
“제가 꼽사리 낀 게 좀 그런가요?”
“한나 씨를 못 믿는 건 아닌데, 여긴 던전 아닙니까? PK가 밥 먹듯이 일어난다고요.”
바벨탑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살인이 일어난다.
확연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경찰이 수사를 위해 바벨탑으로 조사를 들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기에 어지간한 경우는 미제사건이나 몬스터에 의한 사망으로 취급된다.
그런 살벌한 바벨탑에서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한나도 그걸 인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미안해요. 전후 사정을 말 못 했네요.”
“무슨 사정이 있습니까?”
“저는 얼마 전부터 두 사람을 쭉 지켜보고 있었어요.”
“우리를요?”
“스토킹으로 생각하셨다고 해도 어쩔 수 없어요. 나름대로 그만한 이유가 있었거든요.”
“흠.”
“태하 씨는 제가 어디서 왔다고 생각하세요?”
“글쎄요.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어서 말입니다.”
한나는 스스로의 비밀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다.
그녀는 일단 금성탑에 대해 설명했다.
“금성탑이라고, 혹시 알아요?”
“전투사제? 그런 사람들을 양성한다고 하던데. 솔직히 알려진 게 별로 없어서 잘은 몰라요.”
“영롱한 빛을 다룬다고 해서 ‘신성’이라는 수식어가 붙곤 하죠. 저도 금성탑 소속 전투사제예요. 일종의 서포터이자 수색 정찰에 특화된 ‘골드아이’의 일원이죠.”
“유명하잖아요. 전투사제들의 일화가 매일 회자되고 있고요.”
“우리 엄마는 유능한 전투사제였어요. 나도 엄마를 따라서 금성탑에 들어갔고요. 지금은 염탐꾼 노릇이나 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위로 올라가서 엄마의 복수를 할 거예요.”
강력한 빛의 카르마를 사용하는 금성탑의 전투사제는 헌터협회와 쌍벽을 이루는 전투 집단이기도 하다.
한나는 그곳의 수색대원이었고 나름의 사연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엄마는 비밀 임무를 수행 중이셨는데, 2년 전에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죠. 지금은 그 임무가 어떤 것인지 자세히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는 그 범인을 찾아서 복수하고 말겠어요.”
“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역시 이 세상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은 없다.
한나 역시 그러했다.
“최근에 언데드 사태가 벌어졌고 그 사태의 주범인 ‘네크로맨서’에 대해 조사하고 추적하라는 명령을 받았어요.”
“아하, 그래서 홀로 탑을 오르고 있었던 것이로군요.”
“맞아요. 빛의 성녀님께서 직접 명령을 내렸었죠. 만약 이번에 임무 완수를 하게 된다면 저를 정식 전투과에 넣어 주신다고 하셨고요.”
세계 헌터 랭킹 5위에 빛나는 금성탑 최고의 힐러이자 전투 카르마 능력자인 빛의 성녀는 영롱한 카르마 때문에 황금성녀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나는 그녀의 명령에 따른 성과를 솔직히 털어놓았다.
“아무튼, 저는 네크로맨서에 대한 정보를 우연히 얻었고, 놈을 추적하던 끝에 흑마석의 존재에 대해 알게 되었죠.”
“흑마석?”
“암흑의 수정구라고, 사령술사들이 쓰는 일종의 소환 매개체라고 보시면 돼요.”
“아아, 맞아! 저번에 얻은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태하의 인벤토리에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아이템 중 하나가 바로 암흑의 수정구였다.
허나 이는 단순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마이너스 코어를 생성하는 ‘사악한 조각’이라는 물건과 연동되는 아이템으로 추정되는데, 일종의 화이트홀처럼 전이 마법을 쓸 수 있도록 해 주죠.”
“……코어를 생성한다고요?”
“정확히 말하자면 플러스 에너지의 코어를 마이너스 에너지로 전환시켜 주는 특별한 아이템이죠.”
“허어!”
“그 암흑의 수정구는 마이너스 코어를 바탕으로 소환을 가능하게 해 줘요. 태하 씨가 그걸 회수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던전은 언데드에 의해 완벽히 통제되고 있겠죠.”
때론 믿기 힘들어서 사실인지 아닌지 분간이 되지 않는 일이 일어나곤 한다.
그게 세상인 것이다.
태하는 이 황당한 짓을 도대체 누가 한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그 사령술사는 지금 어디에 있어요?”
“모르죠.”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건가요?”
“일단 용의선상은 만들어놓았어요.”
“용의선상?”
“제가 조사한 바에 따르자면 아수라 길드가 가장 강력한 용의자로 생각되네요.”
“……!”
태하와 용팔은 동시에 서로의 눈을 쳐다보았다.
뭔가 퍼즐이 맞춰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럼 아수라 길드가 뭔가 음모를 꾸미기 위해 사령술사를 고용해서 언데드를 만들어 냈을 수도 있다는 거네요?”
“그런 셈이죠.”
“이런 썩을…….”
“혹시라도 언데드 웨이브에 대해 알고 싶으시다면 내가 도와줄 수 있어요.”
“어떻게 말입니까?”
“언데드를 만드는 방법을 알고 있거든요.”
***
10층이 지옥이었다면 11층은 어떤 느낌일까.
“좌측이요!”
“오케이!”
끝도 없이 날아드는 만티코어, 그리고 그들을 쳐 내는 태하 일행의 손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만티코어는 사자의 몸통에 날개가 달려 있는 데다 꼬리는 뱀으로 되어 있어서 마치 온몸이 무기와 같은 느낌이었다.
-크아아아앙!
“이런 잡종 고양이 새끼가!”
퍼억!
좌측에서 달려드는 만티코어의 골통을 주먹으로 후려갈기자, 놈은 그 즉시 혀를 쭉 내밀며 혼절해 버렸다.
놀라운 것은 태하의 펀치가 그렇게나 강력해졌는데도 불구하고 이놈들이 좀처럼 한 방에 죽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뭔 놈의 맷집이 이렇게나 좋지?”
“헌터님, 만티코어의 두개골이 원래 두꺼운 편인가요?”
“음, 글쎄요. 저도 사실 처음 보는 놈이라서요.”
10층까지는 태하에게도 익숙한 곳이었지만 11층은 달랐다.
처음 보는 공간에 처음 보는 몬스터.
한마디로 이곳은 태하에게 있어선 미지의 땅이라는 소리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하는 조금씩 전진해 나가고 있었다.
그래야 할 이유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C급 이상 코어면 정말로 마이너스 코어를 만들 수 있는 거죠?”
“물론이죠. 확실해요!”
한나는 화이트홀과 언데드의 상관관계를 추적하다가 우연히 마이너스 코어를 생성하는 방법에 대해 알게 되었다.
원래는 화이트홀이 언데드를 생성해 내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던 그녀는 바벨탑의 이상 현상을 만들어 내는 화이트홀과 언데드를 생성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아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알아낸 정보로 어쩌면 마이너스 코어를 직접 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를 위해서는 C급 코어가 필요하다는 것이 한나의 주장이다.
태하는 그 말을 믿고 C급 코어를 수급한 뒤, 던전을 잠시 내려갔다가 오기로 했다.
허나 그 길이 쉽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태하는 거침없이 전진했다.
심지어 만티코어가 물어뜯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크아아악!
“아야, 고양이 새끼가 사람을 무네?”
빠각!
사자의 치악력보다 무려 10배는 강력한 만티코어가 물었지만, 태하는 마치 동네 고양이가 앙 깨물었다는 듯이 놈의 정수리에 해머링을 찍어 버렸다.
이제는 몬스터의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태하의 신체는 강력해졌다.
“치악력 좀 더 키우고 와라! 아니면 웨이트를 더 하든지!”
아마 예전이었다면 태하는 지금쯤 만티코어의 따뜻한 한 끼 식사가 되었을 것이다.
허나 이제는 달랐다.
심지어 보스의 앞에서도 말이다.
-쿠오오오오!
“……키메라?”
거대한 사자의 몸통에 박쥐의 날개, 그리고 드래곤의 머리가 달린 키메라는 그레이트 오우거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같은 거대 보스임에도 불구하고 상대하기가 몇 배는 더 까다로웠다.
“저놈을 어떻게 처리한담?”
“원래 짠 전술대로 갑니다!”
“그럼 제가 한나 씨랑 같이 잔몹을 처리할게요!”
“오케이!”
용팔이 상대하기에는 오우거보다는 차라리 만티코어가 나았다.
닥치고 돌격해오는 오우거에 비해 주변을 맴돌다 덮치는 패턴의 만티코어가 원거리에서 공격하기에는 더 수월했다.
이제 남은 것은 태하가 키메라를 일대일로 상대하는 것.
“흠, 이것들을 어떻게 요리한담?”
태하가 저벅저벅 걸어가자, 키메라의 머리 셋은 즉시 토사물을 뿜어 대기 시작했다.
-크아아앙!
“……미니 브레스?”
탑의 100층에 산다는 드래곤의 브레스를 작게 압축시켜 놓은 미니 브레스는 닿는 즉시 모든 것을 녹여 버린다.
태하는 그것을 피하고자 동굴의 천장으로 스트랩을 뻗었다.
촤라라락!
마치 와이어처럼 그것을 잡고 하늘로 비상했다.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서걱!
“……어라?”
천장에 뭔가 있었다.
스트랩이 잘린 태하가 수직 하강을 했다.
그 순간 스트랩을 뻗어 다시 천장에 고정한 뒤 유명 영화의 거미 인간처럼 웹슬링을 하듯 허공을 활강했다.
그러면서 천장을 살피니 거꾸로 매달린 만티코어 몇 마리가 보였다.
“사람을 정말 애먹이는 놈들이로군.”
태하는 다시 스트랩을 뻗었다.
대신 이번에는 스트랩의 끝을 딱딱하고 뾰족하게 만들었다.
아예 만티코어를 스트랩으로 꿰뚫어버릴 생각이었다.
“이거나 먹어라!”
쐐에에엥!
퍼억!
만티코어의 옆구리에 태하의 스트랩이 촉수처럼 박혀버렸다.
그때, 태하의 스킬이 발동했다.
[스킬: 포식]
[먹이를 섭취합니다]
“섭취……라고?”
놀랍게도 스트랩은 태하와 직접 연결되어 만티코어의 에너지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츱츱츱!
마치 무협의 흡성대법을 연상케 할 정도로 만티코어는 태하에게 쪽쪽 빨려 껍데기만 남고 말았다.
[C등급 코어 1개를 섭취하셨습니다]
[스킬 - ‘포식’에 대한 숙련도가 상승하였습니다]
[스킬 숙련도 도합 100 달성으로 특성 스킬이 해금됩니다]
“아니, 잠깐만. 내가 지금 C등급 코어를 먹어 치운 거라고……? 젠장, 그게 얼마짜리인데!”
[특성 스킬: 채집]
[피식자의 생체 정보를 저장합니다]
C급 코어 하나면 최소 30~40만 원은 나올 것이다.
요즘 코어값이 오른 데다 품귀 현상까지 빚고 있으니 그 이상 갈 수도 있었다.
태하는 입맛을 다셨다.
“쩝! 어쩔 수 없지.”
헝그리 헌터 태하에게는 한 달 치 생활비가 될 수도 있었다.
허나 코어의 성능은 확실했다.
[스킬: 포식 - 흡수]
[피식자를 흡수합니다]
[C급 코어의 흡수로 인해 근육이 성장합니다]
이윽고 시작되는 엄청난 펌핑과 근육의 팽창.
마치 온몸이 터질 듯이 부풀어 올라 수증기가 백회혈을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으읏!”
눈은 또렷해졌고, 귀는 열렸으며, 촉감과 후각이 매우 예민하고 민첩해졌다.
신체 능력이 상승, 그 단단함이 종전의 1.5배는 되는 것 같았다.
“……어후, 그나저나 돈이 돈값 하는군. 비싼 게 역시 좋아!”
어쩌면 이것으로 모자란 체력 수치를 채울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허나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코어를 먹어 치운 후, 태하에게는 또 다른 세상이 열렸다.
사사사삭…….
바닥을 기어 다니는 개미의 발소리까지 들리는 청각과 그 발바닥 냄새까지 맡을 수 있는 후각.
휘이이잉……!
던전을 날아다니는 날벌레의 날갯짓까지 볼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시력까지.
그야말로 오감이 극도로 발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열리는 제6의 감각.
스스스스…….
“……저거 뭐지?”
던전 바닥을 자욱하게 메운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보였다.
아주 잠깐이지만 그것이 태하의 발에 닿았을 때, 어디선가 새까만 기억의 파편 같은 것이 쏟아져 들어왔다.
-끄아아악!
“허억!”
망자의 기억, 그것이 태하의 뇌리를 스치듯이 지나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