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6 영끌(2)
바벨탑 3층.
쉘터를 구축하고 그곳을 경비하는 방어 병력 ‘팀 레인저’의 수색대가 정찰을 마치고 돌아왔다.
“언데드 웨이브가 또 시작되려는 모양입니다.”
“……빌어먹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웨이브는 끝난 것으로 보고되지 않았던가?”
“그러게 말입니다. 최소 200마리가 넘는 언데드가 던전을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출입 통제를 걸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아직도 1층에는 헌터들이 사냥을 하고 있던가?”
“네, 그렇습니다. 이대로 3층을 봉쇄하고 더 이상의 유입을 통제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지금 10층으로 올라간 사람은 없었지?”
“장부상에는 제사용품을 가지고 29층으로 간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뭘 가지고 갔다고?”
“29층에서 제사를 지낸다고 했답니다.”
팀 레인저의 대장 안석훈은 황당하다는 듯 입까지 떡 벌리고 말았다.
“어떤 미친놈들이 제사를 지낸다고 29층까지 올라가?”
“기록에 의하면 헬스하운드라고…….”
“뭔 하운드?”
“헬스요. 헬스장 할 때 그 헬스요.”
“이름도 헬창스러운데 하는 짓도 황당하기 짝이 없군.”
“어쩔까요? 경고 방송을 할 수도 없는데요.”
안석훈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1층에는 수천 명의 시민이 있다. 자기들도 뭔가 생각이 있으니 올라갔겠지.”
“만약 그게 아니라면요?”
“……별수 없지. 운명이려니 하는 수밖에. 아무튼, 봉쇄해.”
***
던전 29층으로 올라가는 길.
빠각!
-쿠오오오…….
그레이트 오우거의 머리통을 후려갈긴 한나는 짜릿한 쾌감을 느꼈다.
“……세상에나, 온몸에 털이 삐죽삐죽 서는 것 같아요!”
“근딜의 즐거움이라고나 할까요?”
폭력은 죄악의 근원이나, 결국 인간은 폭력을 통해 희열을 느끼는 존재다.
이제 한나도 몬스터를 때려잡는 희열에 빠져든 셈이었다.
한나가 10층의 보스를 쓰러뜨린 후, 세 사람은 상을 펴고 북어포와 막걸리를 꺼내어 제사상을 차렸다.
“자, 절합시다.”
“편히 잠드……실 때까지만 좀 고생해 주세요.”
“두 번 절했죠?”
“네, 했어요.”
“그럼 시작합시다.”
“……못 살아,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람?”
태하의 뒤에는 팀의 짐을 짊어진 스켈레톤 메이지가 서 있었다.
-크헬헬!
무려 29층 전체에 제사를 지낸다고 북어며 막걸리를 준비했기에 그 짐이 만만치 않았다.
허나 메이지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쟤는 뭐가 그리 좋은 걸까요? 매일 웃고 있잖아요.”
“그냥 항상 즐겁대요.”
“왜요?”
“그건 저도 몰라요.”
“……못 살아, 정말. 하지만 한편으로는 부럽네요. 매일이 행복하다는 거잖아요.”
몬스터와 대화가 가능한 태하는 메이지와도 의사소통이 된다.
태하는 메이지처럼 괴상하게 웃으며 지시했다.
“크헬헬헬!”
-크헬?
“크헤헬!”
이윽고 300구 정도 되는 시신이 일어났다.
쿠그그극!
그 모습을 보며 한나는 황당하다는 듯이 웃었다.
“내가 진짜 못 산다……. 언데드와 대화가 가능하다니?”
“그레이트하지 않아요?! 뇌섹남이잖아요! 외국어라니!”
“……외계어가 아니고요?”
10층에서 제사까지 지내 주고 다시 11층으로 올라간 태하는 거두절미하고 키메라의 모가지를 쳐서 놈을 쓰러뜨렸다.
빠각!
-끄웩…….
“남들은 10층 돌파하는 데 목숨을 건다는데, 헌터님은 이제 놀이터보다 편해 보이네요.”
“전술이 완성된 덕분 아니겠어요?”
여기서도 언데드를 만들어 냈다.
헌데 메이지가 이번에는 조금 이상하게 행동한다.
-크헬, 크헬헬!
“녀석, 잔뜩 흥분했는데요?”
“어라……? 여기 수정구가 있다는데요?!”
태하는 곧장 메이지가 방방 뛰며 난리 치는 곳으로 향했다.
태하는 그곳을 파보았다.
퍽퍽퍽!
그러자 그 안에 암흑의 수정구가 자리하고 있었다.
태하는 암흑의 수정구로 새로운 메이지를 만들어 냈다.
-크헤헤!
“한 놈 더 만들어졌네요. 이놈을 언데드 인솔자로 쓰면 되겠습니다.”
“이제 아수라가 물을 먹을 시간인가요?”
“후후, 그런 셈이죠. 자, 그럼 계속 올라갑시다!”
파티는 2마리의 메이지를 끌고 계속해서 상부로 올라갔다.
그동안 만티코어와 가고일이 무더기로 쏟아져 왔으나, 메이지가 만들어 낸 수천의 언데드 군단에 의해 무참히 도륙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도착한 20층.
오늘도 역시 시커먼 바위산과 같은 놈이 던전 중앙에 자리 잡고 있었다.
태하는 와이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이봐, 와이번.”
-……인간이 우리의 말을?
“닥치고. 내가 한 가지만 묻겠다. 드래곤 하트도 뽑힌 마당에, 여기서 나한테 맞아 뒈질래, 아니면 그냥 곱게 길을 비킬래?”
-이런 오만방자한……!
“아, 두들겨 맞아서 뒈지고 싶다고? 그럼 어쩔 수 없지.”
태하가 바벨을 들자, 와이번이 움찔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자, 잠깐!
“시간 없어. 얼른 딱 대. 모가지만 잘 잘라 줄게.”
-……비킨다. 하지만 겁나서 비키는 건 아니다!
순식간에 20층을 통과했다.
29층까지 단숨에 올라가자 언데드를 소환하기 시작했다.
이제 던전은 오로지 언데드가 지배하게 되었다.
“자, 그럼 이벤트 시작 때까지 좀 기다려 볼까?”
“그때까지 우린 뭘 하고 있을까요?”
“사령술사, 잡아야 하지 않겠어요?”
***
같은 시각.
여의도의 코어회사로 마이너스 코어 매각 주문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딩동!
“……이사님! 마이너스 코어를 500개 매각하겠답니다!”
“뭐?! 누가?”
“아수라 길드입니다!”
“드디어 시작인가? 가격은?”
“시장 형성 가격을 따르겠다고 합니다!”
“일단 사들여!”
“네, 알겠습니다!”
그야말로 아수라 길드라는 폭탄이 여의도를 강타한 것이다.
그러곤 계속해서 쏟아지는 매도 주문.
이제 시장에 유입되지 않은 물량은 33% 남짓이었다.
“가격 동결입니다. 약보합세로 장이 마감될 것 같습니다.”
“……아수라 길드에 아주 제대로 휘둘리는군.”
장이 마감될 시간이 다 되었을 때쯤이었다.
갑자기 시장에 폭탄이 떨어져 버렸다.
“어, 어어……?! 선물 시장에 1만 개 매각 주문입니다!”
“뭐, 1만 개?! 매각처가 어디야?”
“아수라 길드입니다!”
“……선물 매도를 하겠다고? 그렇다는 건 조만간 코어 가격이 상승할 거로 예측했다는 거잖아?”
“네, 그렇습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시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렸다.
허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다음 날.
아수라 길드는 엄청난 나비효과를 만들어냈다.
“이사님! 스탠더드 코어의 가격이 폭락합니다!”
“……빌어먹을! 얼마나 떨어졌어?”
“실시간으로 떨어집니다! F급 코어 기준, 5만 원까지 떨어졌습니다!”
전일 대비 6배까지 떨어지는 데 고작 30분이었다.
헌데 그 매각처가 바로 아수라 길드였다.
“이용광이 가진 매물을 다 털어 내고 있습니다!”
“……이 새끼가 돌았나?!”
“마이너스 코어 이슈로 안 그래도 스탠더드 코어의 가격이 하락세인데, 이 정도면 이젠 더 이상 하락세를 막을 수 없을 겁니다!”
불과 하루 만에 지옥으로 떨어진 여의도 코어 시장.
메이저 코어회사들은 일제히 코어를 던지기 시작했다.
“다 털어 내! 현물, 선물 할 것 없이 코어라면 다 던져!”
“……코어 물량의 유입량이 1,200%나 상승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손을 터는 거야. 젠장, 이렇게 물릴 줄 알았으면 진작에 손을 터는 건데!”
“아수라 길드에 꼼짝없이 당했습니다!”
아수라 길드는 오늘 12배의 수익을 올렸다.
한편, 이용광은 아수라의 레이드 공격대 2군을 던전으로 파견했다.
“마이너스 코어를 가져와라.”
“우리가 매각 주문을 넣은 1만 개만 가져오면 되겠습니까?”
“최대한 긁어 온나.”
***
코어 시장의 시황을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고 있는 조선엽은 코어회사 ‘천영’의 수뇌부와 함께 있었다.
“선물 시장에 1만 개가 풀렸으니 이젠 난리가 나겠군.”
“그렇습니다. 일단 가격은 내려가겠지요.”
“으음…….”
“하지만 덕분에 스탠더드 코어의 가격은 그야말로 똥값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 투자자들은 일반 코어에는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이고, 그 엄청난 자본은 이제 마이너스 코어 시장에 몰리겠죠. 판이 뒤집혀 버리는 겁니다.”
아직 물건은 시장에 유입되지 않았다.
하지만 물건은 들어온 것으로 되어 있다.
전산상에는 물건이 들어왔다고 나오기 때문이다.
“아수라 길드가 노리는 게 바로 저겁니다. 시장에 마이너스 코어를 적당히 풀어서 활성화를 시킨 후, 코어회사들이 그걸 꼭 쥐고 안 놓는 동안 수요를 대폭 높이는 거죠. 스탠더드 코어가 빠지니 마이너스 코어에만 투자금이 몰려 가격은 지금보다 족히 몇 배는 더 오를 겁니다.”
“그렇게 수요가 점점 늘어나다 보면 아수라 길드가 현물을 납품할 때쯤에는 가격이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가 되겠군요.”
“바로 그겁니다. 아수라 길드는 지금 4배, 아니 어쩌면 그 이상의 차익을 노리고 이와 같은 짓을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밴딩과 로딩처럼 시장은 엄청난 양의 마이너스 코어를 원하게 될 것이고 아수라 길드는 부족한 양을 마구 채워 넣으며 성장하게 될 것이다.
조선엽은 이런 시장에서 역발상으로 대박을 노릴 것을 제안했다.
바로 스탠더드 코어의 역습이었다.
“이 타이밍에 스탠더드 코어를 매입하는 겁니다.”
“……아니, 지금도 우리 천영 컴퍼니에 쌓인 물량이 얼마인 줄 아세요? 그건 소속 딜러인 당신이 더 잘 알 것 아닙니까?”
“저의 전속 헌터께서는 앞으로 스탠더드 코어의 가격이 훨씬 더 많이 오를 것이라고 확신했습니다.”
“마이너스 코어가 시장을 지배하려고 하는데 그게 가능하겠습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죠.”
“지금으로선 당연히 말이 안 되지요. 하지만 시장에 있는 마이너스 코어가 그대로 증발해 버린다면? 그럼 어떻게 되겠습니까?”
“……증발을 해요?”
***
서울 구로구의 한 허름한 골목길.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가 길을 걷고 있었다.
뚜벅, 뚜벅…….
그의 이름은 남태현.
좁다란 골목에는 남태현의 발걸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허나 어느 시점에서부터인가 발걸음 소리가 묘하게 겹치는 것 같았다.
뚜, 뚜, 벅, 벅…….
“……씨발!”
그는 육두문자를 씹어 뱉곤 이내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나름대로 달리기에는 자신이 있었기에 남태현은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고 볼 생각이었다.
허나 그의 앞에는 어느새 한 인영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
그 인영은 여성이었다.
“여자……?!”
키 차이가 20cm는 날 것이기에 뚫고 도망가면 그만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했다.
콰앙!
“크허억!”
여자의 발길질에 남태현은 그만 길바닥에 널브러지고 말았다.
그는 명치를 부여잡고 연신 캑캑거렸다.
그러자 엄청난 덩치의 남자가 다가와 그의 앞에 섰다.
바로 태하였다.
“쿨럭, 쿨럭!”
“사람은 마음씨를 곱게 써야 하는 법이지. 어디 붙어먹을 곳이 없어서 아수라 길드랑 붙어먹어?”
“……이 새끼들, 너희들 뭐야?!”
“나이도 한참이나 어린 놈의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야, 반말이?!”
태하는 놈의 멱살을 쥐곤 죽빵을 후려쳤다.
빠각!
단순히 따귀 한 대 맞았을 뿐인데 눈앞이 순간 흐릿해졌다.
잠깐이지만 기절한 것이다.
“허, 허억!”
“이런 비리비리한 새끼가 어디서 형님한테 반말을! 혼날래?”
“……죄, 죄송합니다.”
한 대 맞아보니 곧바로 예의가 주입되었다.
이제야 대화할 준비가 되었음을 확인한 태하는 그에게 선택지를 주었다.
“두 가지 길이 있어. 잘 들어라. 하나는 이대로 내 손에 맞아 뒈지는 거. 그리고 다른 하나는 금성탑에서 참교육을 받고 갱생하는 거. 어떤 게 더 좋아?”
“개, 갱생이요?”
“금성탑에서 도 좀 닦고 사람 되는 거야. 어렵지 않지?”
“하지만 금성탑은 사제들이 기거하는 곳이라서…….”
“그럼, 여기서 나 같은 악마들이랑 한번 붙어먹어 볼래?”
남태현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용팔의 몸도 장난이 아니었다.
꿀꺽!
“……죄송합니다. 금성탑으로 갈게요.”
“진즉에 그럴 것이지.”
태하는 남태현의 손과 발을 꽁꽁 잘 묶었다.
그러곤 그를 짊어지고 가며 말했다.
“아 참, 아수라 길드에 잘 연락해 둬라. 납치당했다고 하지 말고 예정대로 행사에 참여하겠다고 말이야.”
“네? 왜 그런…….”
“응. 왜 그래야 하냐면, 그래야 네가 내 손에 뒈지지 않을 수 있거든. 오케이?”
“……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