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7 아수라, 나락으로 가다(1)
아수라 길드의 2군은 전부 A급 헌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급 헌터군 1위에서 50위 안에 드는 헌터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었다.
그들은 1층부터 10층까지 올라가는 데 불과 30분도 채 걸리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저력을 자랑했다.
허나 그들이 던전에 도착했을 때는 몬스터의 씨가 말라 있었다.
“……뭐야, 몬스터가 하나도 없는데?”
“아닙니다. 저길 좀 보십시오.”
3층을 지나 통제구역 안으로 들어간 공격대장 장진혁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수천 마리의 언데드가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던 것이다.
“사령술사는 지금 어디에 있나?”
“이제 올 때가 다 된 것 같습니다만……. 아직입니다.”
“……그런데 저건 다 뭐야?”
“그, 그게…….”
“뭐, 어쨌든 간에 언데드를 쓸어버리면 마이너스 코어가 나온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죽이면 나옵니다.”
“흠, 그럼 잘됐지, 뭐.”
3층부터 통제되어 언데드가 물밀듯이 내려온다는 것이 원래의 계획이었다.
그 와중에서 1층에서 대량의 사상자가 만들어져 꾸준히 언데드를 생산한다는 것이 ‘리바이블 프로젝트’의 핵심이었으나, 중간에 쉘터가 건설되고 귀영이 투입되어 약간의 차질이 생겼었다.
허나 이 숫자라면 약간의 실패는 충분히 용서가 될 정도였다.
“자, 가자!”
우르르 몰려가기 시작하는 장진혁과 아수라의 공격대.
바로 그때였다.
푸하아아악!
“……뭐, 뭐야!”
언데드가 그들의 눈앞에서 공중분해가 되고 말았다.
장진혁과 공격대는 허무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코, 코어는……?”
“없습니다!”
“젠장!”
장진혁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큰일이다. 1만 개 주문을 넣어 놨는데……!”
“대장님! 일단 서판부터 찾아보시지요!”
“그래, 가자!”
언데드가 사라졌어도 서판만 있다면 다시 만들어 내는 건 불가능하지 않았다.
장진혁은 미친 듯이 땅을 파서 서판 조각을 찾아보았다.
허나 잡히는 것은 흙더미뿐이었다.
“……아무리 파도 없습니다. 스마트워치에서도 반응이 없습니다.”
“이런 제기랄! 29층으로 간다!”
29층에 있는 물건이라면 분명 방도를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허나 벌써 10층부터 문제가 컸다.
-쿠오오오오!
“……아 참, 오우거가 있었지.”
“저놈은 어찌어찌 잡는다고 해도 키메라, 와이번, 심지어는 마계화까지 뚫어야 합니다. 우리끼리만 간다면 최소 못해도 2개월은 걸릴 겁니다.”
“망했네…….”
“이만 돌아갈까요?”
장진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돌아가면 죽는다. 도망을 치든 던전을 뚫든 해야 해.”
“그럼 도망을 치시죠.”
“도망치면 다 죽는다는 거 몰라?”
“그럴 리는 없을 겁니다. 우리가 도망치면 길드는 파산할 테니까요.”
“……파산?”
***
쾅!
이용광의 분노가 폭발한다.
“……퍼뜩 사령술사를 잡아 와.”
“예, 알겠습니다. 하지만 1만 개 주문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주요 매입사에 1천 개씩 돌리. 그카고 사령술사 새끼를 잡아다가 마이너스 코어 생산해 내라 해.”
코어 선물은 현물이 먼저 움직이는 시장은 아니다.
일단 일종의 증권이 넘어가면 며칠 후에 코어 현물을 넘기는 형식으로 시장이 돌아간다.
“우쨌든 간에 전산상에는 일단 1만 개가 있는 거 아이가?”
“네, 그렇습니다. 만약 그것으로 돌려막기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어떻게든 마무리는 될 겁니다.”
“……빌어먹을.”
전산과 현물의 괴리가 만들어낸 시간 동안 코어를 마련하기만 하면 일은 어떻게든 일단락이 될 것이다.
허나 마이너스 코어를 만드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C급 코어의 가격이 너무 올라가 있었던 것이다.
“길드장님, 큰일입니다! 원자재의 가격이 4배 이상 올랐습니다.”
“……뭐야, 우리가 가격을 내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얼마 전에 시장에서 1만 개 이상의 물량이 쑥 빠졌는데, 그 이후로도 어떤 미친놈이 시장에서 C급 코어를 싹쓸이하고 있답니다.”
“도대체 어떤 미친놈이……?”
“소문에는 제네시스가 개입했다는 말도 있습니다만.”
“제네시스?! 그 미친놈들이 왜?”
“어쩌죠? 이제는 C급 코어 1만 개를 매입하기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이미 건물까지 죄다 담보로 잡아서 아수라 길드에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이제는 코인까지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할 지경이었다.
“……코인을 팔면 우리가 얼마만큼의 매각손을 입지?”
“당장은 15%입니다. 샌드타워에서 생산량을 줄이긴 했는데, 던전 통제 이슈로 인해서 가격이 극단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그레이트 오우거와 와이번 등이 줄줄이 각성 헌터들을 죽여 버리는 바람에 코인 가격은 서서히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코인을 팔면 아수라 길드는 그나마 남은 재산마저도 손실을 보게 될 것이었다.
“……제네시스까지 사람을 괴롭힐 줄은 몰랐다.”
“이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일단 매각한다. 그리고 그 돈으로 C급 코어를 수급하는 쪽으로 하자.”
C급 코어의 매입을 시작함과 동시에 코인을 시장에 매각하는 아수라 길드.
이제 아수라 길드는 마이너스 코어의 통제권을 가지고 오지 않는 이상에야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이었다.
허나 사령술사의 소재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사령술사가 작정하고 잠수를 탄 모양입니다.”
“뭐야?! 이런 씨발 놈을 보았나?! 물건은? 물건은 제대로 있다 카드나?”
“그, 그게…….”
“설마하니 서판 조각까지 잃어버린 거가?!”
“……네, 그렇습니다. 29층까지 올라갔는데 몬스터는 하나도 없고 서판 조각도 없었답니다. 사실상 사령술사를 잡아들여도 언데드는 만들 수 없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던전 장악이 이제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허나,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이제 1만 개의 선물은 과연 어떻게 청산한단 말인가?
“코어 선물 위약금은 얼마나 된다고 하드나?”
“선물 가격의 10%입니다.”
“지금 마이너스 코어의 시세가 얼마나 되나?”
“개당 120억입니다.”
“……더 올랐드나.”
위약금만 12조 원이다.
마이너스 코어 3천 개의 초도 물량을 구매하느라 30조 원, 거기에 위약금까지 합친다면 42조 원이다.
코어를 판 돈에 코인까지 판 돈까지 합친다고 해도 레버리지로 끌어온 돈을 갚을 수는 없을 것이다.
“마스터, 파산입니다. 우리, 망했어요.”
“……이래 허무하게 파산을 하나?!”
“이젠 어쩝니까?”
이용광은 실소를 머금었다.
“파산? 흥, 이제부터가 시작인 기라! 한번 두고 보재이. 서울 시내를 아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릴 끼라!”
이용광은 살기 가득한 눈빛을 번들거렸다.
허나 이용광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은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쾅!
이용광의 집무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이용광 씨. 당신을 사기 및 배임, 주가조작 등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 위반으로 체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고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하시는 말은 향후 법정에서 불리하게 적용될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서로 같이 갑시다.”
“……체포?”
“영장 보여 드려요?”
이용광은 실소를 흘렸다.
“후후, 그라입시더. 어차피 갈 끼면 퍼뜩 가입시더.”
***
마이너스 코어의 유입이 취소되고 이용광이 체포되자, 마이너스 코어의 가격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상용화가 가능한 수준의 물량을 확보할 수 없다면 자원으로서의 활용 가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태하가 코어 시장을 찾았다.
그는 마이너스 코어의 매입 요청을 넣었다.
“그럼 입금부터 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 주세요.”
“입금이 끝나면 곧바로 마이너스 코어의 매입이 시작될 겁니다. 매입 가격은 개당 25억 8천, 전액 현금으로 결제할까요?”
“네, 그래 주세요.”
현금으로 7조 740억을 한 방에 결제하는 태하.
딩동!
-마이너스 코어 매입 주문 성사: 수량 3,000개
이로써 시장에 유입되었던 마이너스 코어는 씨가 말랐다.
조선엽은 매우 아깝다는 듯 쓰게 웃었다.
“크흐……! 앞으로 마이너스 코어 시장을 싹 쓸어버릴 수도 있었는데. 정말 아깝게 되었습니다.”
“아까울 것 뭐 있습니까. 다 사람이 먹고살자고 하는 짓인데, 남 죽이는 짓을 하면 쓰나요.”
마이너스 코어는 태하 본인만이 생산할 수 있었다.
그렇다는 것은 앞으로 에너지 시장을 태하가 완벽하게 지배할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태하는 자신이 부를 축적하는 것보다는 모두가 함께 공생하는 길을 택했다.
그게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마이너스 코어라는 것에는 엄청난 이권이 개입되어 있을 겁니다. 저는 그놈들의 배를 불려줄 생각도 없거니와, 새로운 기득권층의 탄생도 원치 않습니다.”
“허어……. 그릇이 크시네요.”
“개구리가 올챙이 적 시절을 떠올린다고나 할까요.”
이로써 마이너스 코어 사태는 일단락되었다.
허나 이제 코어 시장의 새로운 스타는 이미 탄생되어 있었다.
그는 바로 조선엽과 태하.
두 사람은 자산의 1/3을 스탠더드 코어에 투자했고 마이너스 코어의 증발로 인해 이제 그 가격은 가파르게 오르고 있었다.
“코어 시장 시가총액 15%를 우리가 먹어 치웠습니다. 코어 가격이 아주 휴짓조각이 되었을 때 매입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죠.”
“15%라니, 타이밍이 좋긴 했네요.”
“자, 정태하 고객님. 이제 이 코어로 뭘 하실 생각이십니까?”
“싸워야지요.”
“싸워요? 누구랑 말입니까?”
“적폐요.”
10층 돌파를 목표로 살아왔던 비각성자 태하는 이제 코어 시장을 좌지우지할 힘을 갖게 되었다.
그는 이제 이걸로 그동안 코어 시장에 붙어 기생하고 있던 모든 적폐 세력을 싹 쓸어버릴 생각이었다.
“제가요, 열다섯 살 때부터 던전에서 굴러먹었습니다. 던전은 참 위험해요. 죽을 뻔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죠. 하지만 그보다 더 지랄 같은 게 뭔 줄 아세요? 이놈의 빌어먹을 던전에서 사람을 희망고문하며 등쳐 먹는 새끼들이 너무 많다는 겁니다.”
“……희망고문이라.”
“누구나 자기들처럼 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어요. 사실, 그건 타고난 재능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하지만 다들 그렇게 포장해요. 호화로운 생활에 연예인 뺨치는 인기를 누리고 살면서 헌터 지망생들을 끌어모으죠. 그리고 던전으로 끌고 가서 아까운 목숨 산화하게 만드는 겁니다.”
“그럼 이제 정태하 씨는 그런 흑막들과 싸우겠다는 겁니까?”
“그런 셈이죠.”
조선엽은 태하의 얘기를 가만히 들어 주기만 했다.
그러다가 가장 현실적인 얘기를 해 주었다.
“하지만 돈만으로는 그 사람들을 못 이깁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죠. 지금 당신에게는 돈 말곤 아무것도 없잖습니까.”
“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한다는 건데요?”
“명예, 힘, 권력, 이 세 가지요.”
“……그럼 나 같은 흙수저는 돈이 몇조 원 있어도 저놈들에게 또 당하고 살아야 한다는 겁니까?”
“진짜 부자들에게 몇조 원이 과연 돈으로 느껴지긴 할까요?”
“크윽!”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또 당하고 살기 싫다면, 한 가지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그게 뭔데요?”
“100층으로 가세요. 그럼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100층!”
모든 헌터들의 꿈이다.
심지어 각성자 집단에게도 100층 달성은 이룰 수 없는 꿈과도 같은 것이 아니던가.
“제 생각에는 당신이 금수저는 못 되어도 근수저는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엄청난 근육으로 100층 돌파를 해 버리세요. 그럼 명예, 힘, 권력은 알아서 따라올 겁니다.”
“근수저라!”
“근육으로 전설을 만드세요. 그럼 모두가 당신을 찬양해 마지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