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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47화 (47/197)

047 데스워리어 기사단(1)

다시 60층을 목표로 한 등반이 시작되었다.

쐐에에엥!

“옵니다!”

“……빠른데?”

중세 시대 기사들이 입었던 풀 플레이트 메일을 입은 악마형 몬스터.

바로 ‘블랙 나이트’다.

41층부터는 이른바 ‘데스워리어 기사단’의 영역이다.

50층 보스인 데스워리어는 순간 점멸을 사용하며 엄청난 완력과 스피드를 자랑하는 그야말로 ‘괴물’이다.

이곳 41층부터 49층의 준보스들도 그와 비슷한 힘과 스피드를 가지고 있는데, 일반인은 그들이 무기를 휘두르는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기도 전에 죽는다.

동행으로 따라온 고상근이 일선의 태하에게 외쳤다.

“막아요! 공격이 들어옵니다!”

“엇!”

까앙!

몬스터의 일격이 거의 광속에 이르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였다.

급한 마음에 방어 수단으로 내놓은 것은 바로 팔.

-크울……?

“아아, 당황했어? 이 세상에서 원래 근육이 제일 단단한 법이야. 몰랐어?”

태하는 곧바로 놈의 안면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콰앙!

권풍이 불어닥쳤고 블랙 나이트는 저만치 날아가 구석에 처박히고 말았다.

무려 한 방에 두꺼운 풀 플레이트가 종이처럼 구겨져 버린 것이었다.

고상근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저 풀 플레이트 메일의 강도는 다이아몬드보다도 한 수 위라고 들었는데. 도대체 저 펀치 한 방이 얼마나 강하다는 거지?”

통상 100명 이상의 인원, 그것도 A급 헌터의 비율이 70% 이상인 공격대만이 이곳을 지나갈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다이아몬드보다 강력한 갑옷을 입고 광속의 검을 휘두르는 괴물들이 즐비해 있기 때문이다.

허나, 태하는 그곳에서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힘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자, 그럼 갑시다!”

“오케이!”

허나,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태하가 전방에서 적진을 휘젓고 다니는 동안, 후방의 원딜들도 그저 노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스킬: 애로우 스톰]

[범위: 직경 30m]

[지속 시간: 30초]

애로우 레인의 상위 스킬인 애로우 스톰은 마치 소용돌이치듯 난사되는 화살이 바람을 타고 적을 찢어 죽이는 스킬이다.

여기에 어떤 속성을 부여하는가에 따라서 그 위력은 가히 재앙급이라 할 수 있었다.

“한나 씨, 중력이요!”

“네, 가요!”

한나는 애로우 스톰에 중력을 더해 주었고, 블랙 나이트의 갑옷의 무게를 20배 이상 무겁게 만들었다.

그러자 수백 마리의 블랙 나이트가 애로우 스톰 안에서 빠르게 죽어 나갔다.

-크헤에에엑!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측면으로 엄청난 숫자의 블랙 나이트가 쏟아져 들어왔다.

고상근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안 돼요! 이렇게 적은 인원으로는 50층까지 갈 수 없어요!”

“아니요, 갈 수 있습니다.”

블랙 나이트 수백 마리가 몰려들다가 이내 발이 묶여 그대로 절름발이가 되어 버렸다.

그러곤 이내 그림자의 수렁에 빠진 듯 발밑이 푹 꺼져 버렸다.

-크헤엑?

이윽고 놈들에게 그림자의 환영이 수백 개로 쪼개지더니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까가가가강!

분명 그림자일 뿐인데도 블랙 나이트들은 그대로 팔다리가 아무렇게나 잘려 나갔다.

“무, 물질계를 뛰어넘는 공격인가?! 세상에, 저런 공격 방식이 있다는 말은 생전 처음 듣는데!”

헬스하운드의 전투 방식을 물질계의 상식선에서 이해하려고 하면 절대 이해할 수 없다.

이들은 모든 것을 초월하는 비상식적인 전투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핑핑핑!

저 멀리에서 원거리 딜러 몬스터인 블랙아처들이 화살을 날리고 있었다.

마치 중세 시대의 발리스타를 보는 것처럼 거대한 화살들이 태하 일행을 꿰뚫기 위해 날아들었다.

[스킬: 홀리 가드]

[방어 가능 대미지: 힘 스텟 X 3,600]

[지속 시간: 360초]

[방어 범위: 직경 5m]

까가가가강!

화살은 허무할 정도로 무력하게 튕겨 나갔다.

고상근은 이젠 아예 입을 쩍 벌린 상태로 다물지도 못하고 있었다.

“……블랙아처의 공격력은 가히 A급 궁딜과 맞먹는다고 알려져 있다. 그걸 가드 스킬 하나로 다 튕겨 낸다고? 이건 너무 사기잖아!!!”

사기는 이게 끝이 아니었다.

홀리 가드의 지속 시간이 끝나면 곧바로 다른 스킬로 적의 공격을 방어할 수 있었다.

[스킬: 순백의 배리어]

[방어 가능 대미지: 힘 스텟 X 3,200]

[지속 시간: 360초]

[방어 가능 인원: 12인]

12명에 한하여 360초 동안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방어력을 갖게 되는 것이 순백의 배리어이다.

희란에게 대천사의 구원자 스태프가 있는 한, 그 어떤 공격도 불허한다는 뜻이었다.

물론, 대미지가 중첩되다 보면 분명 자잘한 상처 정도는 입을 수 있다.

서걱!

“크음!”

“……결국은 뚫리는 것인가?!”

땅바닥에 스태프를 꽂아 넣는 희란.

쿠웅!

그러자 바닥에서부터 순백색의 가루가 올라오더니 파티원들을 감싸기 시작했다.

[스킬: 매스 힐]

[회복 가능 라이프: 힘 스텟 X 2,000]

[지속 가능 시간: 35초]

상처를 입으면 매스 힐이 알아서 체력을 회복시켜 주기 때문에 걱정이 없었다.

물론, 그녀의 능력 범위를 벗어난 공격이 가해진다면 치료가 불가능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은 아니었다.

그렇게 전진하다 보니 저 멀리 41층의 준보스 ‘블랙 나이트 가드’가 보인다.

“준보스입니다!”

“오케이, 다들 뒤를 부탁해요!”

태하는 준보스를 향해 스트랩을 뻗었다.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고상근은 경악하고 말았다.

“……아니, 잠깐! 스트랩은 운동할 때 쓰려고 감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아직 놀라긴 한참 이르다.

태하가 손을 뻗자, 인벤토리에서 바벨 원판이 튀어나와 스트랩에 알아서 감겼다.

“어엉……?! 저건 원판이잖아? 뭐가 이렇게 헬창스럽…….”

원판은 태하의 손에서 새롭게 다시 태어났다.

시계 방향으로 날카롭게 돋아나기 시작한 칼날은 태하의 원판을 그야말로 무기로 만들어 버렸다.

“……허어! 원판이 자유자재로 변하다니!”

블랙 나이트 가드는 지금까지 보았던 일반 블랙 나이트의 2배 속도였다.

파앗!

분명 점멸 마법을 쓸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점멸을 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쐐에에에엥!

파공성이 한 번에 몇 번씩이나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허나, 그래 봤자 태하의 앞에서는 그저 벼룩에 불과했다.

턱!

-크헥!

“잡았다, 요놈!”

“……맨손으로 준보스를 잡았어?! 그것도 블랙 나이트 가드를?!”

상식을 뛰어넘는 태하의 완력에 벌어진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태하는 무려 6t에 이르는 완력을 행사할 수 있는 블랙 나이트 가드를 힘으로 제압한 후, 톱날 원판을 투구 안으로 밀어 넣어 버렸다.

그러자 시작되는 약탈.

[스킬: 약탈]

[스킬 레벨: Lv.8]

[블랙 나이트 가드의 스킬을 흡수합니다]

[블랙 나이트 가드의 패시브를 흡수합니다]

[블랙 나이트 가드의 특성과 특수 능력을 흡수합니다]

[블랙 나이트 가드의 능력치 일부가 흡수됩니다]

[총 스텟 3.5% 증가]

순식간에 끝이 나버린 전투.

고상근은 그저 황당하다는 듯 헬스하운드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이 사람들, 도대체 정체가 뭐지?”

***

41층부터 49층까지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8시간 남짓이었다.

100인 이상의 정규 공격대조차 이 한 층을 돌파하는 데 일주일이 넘게 걸리곤 한다.

그만큼 골칫덩어리가 바로 ‘마의 40층’ 대였던 것이다.

허나, 태하 일행은 그 마의 40층대를 48시간 만에 돌파하고 보스가 기거하고 있는 50층에 도달했다.

휘이이잉……!

을씨년스러운 바람이 부는 50층.

이곳에는 사방에 헌터들의 것으로 보이는 무기들과 몬스터의 병장기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저 멀리 보이는 거대한 성벽과 그 앞을 가로막고 있는 해자와 천연 장벽까지.

“이건 거의 공성전 수준 아닌가요?”

“……6인 파티로는 절대로 불가능한 수준입니다. 정규 공격대를 모아 와야 해요.”

“흠, 그럴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고상근은 이미 50층에 올라와 본 적이 있었다.

비취 석판이 이곳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 역시 공격대를 모아 몇 번이고 공격을 시도했던 것이다.

허나, 최근에 워낙 강력해진 50층의 몬스터를 쓸어버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남자는 때론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하는 법입니다.”

“헬스하운드는 물러나지 않아요. 그런 방법은 애초에 배운 적도 없고요.”

“허 참……!”

50층에서의 전투는 바벨탑에서 가장 치열한 접전으로 알려지곤 한다.

이곳에서는 병력이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길이 1km에 높이 13m의 성벽을 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안 됩니다. A급 헌터 100명으로도 뚫기 힘들어서 포기했어요. 이대로라면…….”

“병력은 많은데요.”

“병력이 많다고요……?”

태하는 바닥에 흰색 공을 던져 놓았다.

그러자 공은 이내 작은 에저드 호른의 모습을 변했다.

-크헬헬!

“에저드 호른?! 저걸 어떻게……?”

“에저드 호른이라니요. 우리 친구인 메이지인데요.”

메이지는 돌아다니면서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나누었다.

짝, 짜자자작!

-크헬헬헬!

“자, 그럼 시작해 보자!”

“아니, 저 먼짓덩어리로 뭘 어쩌시겠다는 겁니까?”

“먼짓덩어리라니요. 저 친구, 조폭이에요.”

“……조폭이요?”

메이지의 머리에는 검은색 보석이 박혀 있었는데, 태하의 손짓에 보석이 반짝거리더니 이내 땅바닥에서 엄청난 숫자의 뼈다귀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우드드드득!

이윽고 완성되는 엄청난 숫자의 언데드 군단.

그야말로 조폭 소환사의 등장이었다.

-크헬헬!

“자, 그럼 바닥에 널린 병장기부터 주워 담자고. 그러는 동안 골렘도 좀 소환하고.”

“……고, 골렘을 소환한다고요?!”

이러다간 고상근이 혈압 상승으로 뒷목을 잡을 판이었다.

메이지는 원소별로 총 50마리의 골렘을 소환했는데, 전부 골렘존의 준보스들이었다.

특히나 중앙에 선 마스터 골렘은 그 위용이 어지간한 보스들을 압도하고도 남을 정도였다.

“자, 골렘들! 일렬로 도열해!”

-크헬!

골렘들은 태하의 명령에 따라 일렬로 도열했고, 열을 맞춰 선 후, 바닥에서 바윗덩이들을 뽑아내기 시작했다.

“우리가 선공이다. 보병들은 준비되었나?”

-크헤엘!

“좋아, 그럼 간다!”

쿠쿠쿠쿠쿠쿠쿠!!

무려 수천 마리의 언데드 군단이 성벽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고상근은 그저 입을 떡 벌린 채 그 광경을 넋 놓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헌터들도 소환이라는 것을 이렇게 황당할 정도로 해 놓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넓은 벌판을 가득 채운 언데드들의 향연에 놀란 것은 데스워리어 기사단 역시 마찬가지였다.

-크, 크헥……?

-크헤헬!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돌진하는 메이지.

그 웃음에는 ‘우리 주인이 짱이다!’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언데드 군단의 선봉에 선 태하가 데스워리어의 성문을 있는 힘껏 후려쳤다.

쿠우웅!

허나, 성문은 굳게 닫혀 열리지 않았다.

“……단단한데?”

지금까지 태하가 주먹으로 쳐서 으스러지지 않았던 물체는 단언컨대 없었다.

허나, 이 철문은 도대체 뭘로 만든 것이기에 아예 흠집 하나 남지 않는 것일까?

그 뒤로 이어지는 골렘들의 원거리 공격.

육중한 바윗덩어리들이 성벽을 두드렸고, 그 파편에 맞은 데스워리어 기사단은 잠시 기절하고 말았다.

-으헥!

스턴 마법이 걸린 바윗덩어리가 데스워리어 기사단을 후려쳤던 것이다.

허나, 데스워리어 기사단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끼이이익!

오히려 먼저 성문을 열고 나오는 데스워리어.

-크오오오오!

족히 천 마리는 될 법한 블랙 나이트들이 검과 창을 들고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보이는 족족 언데드와 부딪쳐 가히 장엄한 격돌을 연출해 냈다.

쿠구구구궁!

병장기가 부딪치고 몬스터의 선혈이 사방으로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그야말로 혈전, 그 이외의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방법이 없을 정도였다.

허나, 그 팽팽한 흐름을 바꾼 존재가 있었다.

바로 뱀파이어 나이트.

-으라이하르 사하러!

“……허어, 저놈이 또 언제 이곳에 나타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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