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81화 (81/197)

081 인간이 제일 무서워(1)

혹자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던전 안의 몬스터보다 인간이 더 무섭다는 걸 알아야 한다.’

태하는 그 말을 지금 너무나도 절감하고 있었다.

쉬이이이익……!

표창 비스무리하게 생긴 암기가 사방팔방에서 쏟아져 나왔다.

까앙!

대부분은 피해 냈지만 몇 가지는 피하지 못하고 그냥 몸으로 튕겨 내야만 했다.

헌데 그것마저도 엄청난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독?”

“살무사 천 마리의 독을 응축시켜서 만든 독이다. 그걸 맞고도 버티는 놈이 있다니.”

어쩐지 살에 닿으면 너무나도 따갑다 했더니 암기에 독이 발라져 있었던 것이다.

만약 태하가 슈퍼 백신 버프를 받지 않았다면 지금쯤 피를 토하며 죽어 가고 있을지도 몰랐다.

극한의 고통을 선사하는 독공은 그만큼 잔인한 짓이기도 했다.

50명의 살수들은 헬창스를 가운데 놓고 별 모양의 포지션을 잡아 교차 공격을 했다.

대각선상의 파트너들이 협공을 펼치면서 가운데에 있는 적을 치고 빠지는 식의 공격인데, 이는 다수가 1명의 적을 효과적으로 저지할 때에 사용하는 진법이었다.

윤정은 이 진법에 대해서 익히 잘 알고 있었다.

“……택티션들의 진법 제21번인 포위 공격진이에요. 이 사람들, 보통의 살수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녀의 말에 유신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보통의 살수가 아니에요. 암기를 날릴 때를 잘 보면 손에서 약하게 빛이 납니다. 이거, 마력으로 던지는 암기예요.”

암살자형 헌터들은 무리형 몬스터 중에서도 버프, 혹은 디버프를 주는 주술사, 마법사 몬스터를 뒤에서 처단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한 포지션은 PVP에서도 통용되기 때문에 암살자들은 파티에서 상당히 환영받는 클래스이기도 하다.

헌데 이 암살자형 헌터들에게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어지간해서는 마력에 기반한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주로 마법사를 상대하는 데 마력을 사용한다? 그건 사실 말이 안 되는 일이죠. 마법사들은 주로 물리 공격 계열에 약하고 마법에 대한 내성이 있잖습니까? 그런데 마력을 사용한다는 건 암살자로서는 실격이나 마찬가지인 일이겠지요.”

“그럼 저 사람들은…….”

“원래는 암살자가 아니겠죠.”

윤정은 유신성의 말에 100% 공감했다.

쉭쉭쉭……!

잔상이 남을 정도의 날렵한 움직임.

그걸 보며 귀수는 과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때요? 귀수 씨가 보기엔?”

영수는 잔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암살에 특화된 움직임은 아니네요. 암살자는 탱커만큼이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직업인데, 저들은 뭔가 약간 굼뜬 느낌이 나요. 자신의 동작 하나 때문에 파티가 몰살할 수 있다는 압박감 같은 것도 느껴지지 않고요. 게다가 결정적으로 독이나 자체 디버프를 사용할 수 있는 능력자가 없어요.”

“아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암살자라고 말하기는 쉽다.

허나, 과연 그 사람이 막상 필드에 나가서 사냥을 할 때 살아남을 수 있을까?

지금 저 사람들이 딱 그런 형상이었다.

태하는 이제 적을 파악했으므로 본격적인 공격을 펼쳐 보기로 했다.

“암살자는 아니니 생각보다 쉽게 돌파가 가능하겠죠. 닥터, 디버프 준비해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브라더!”

“자, 그럼 우리는 정면공격, 정글과 암살자가 저들의 뒤통수를 치는 방식으로 합시다.”

“오케이!”

때론 정형화된 이론에 맞춰 공격하는 것보다는 공격대장의 판단에 따라 주먹구구식으로 짜 맞춘 공격이 더 잘 먹힐 때가 있다.

특히나 지금처럼 이론에 근거한 공격대가 기습을 했을 때는 더더욱 그러했다.

휘이이익……!

태하의 스트랩이 뻗어나가면서 대각선상의 교차 공격을 차단했다.

“허엇!”

“빈틈입니다! 갈겨요!”

용팔은 당황하는 살수들에게 가이드샷을 선물해 주었다.

핑핑핑……!

활시위를 한 번 당기면 6개의 화살이 날아간다.

그런 활질을 초당 네 번 이상 할 수 있으니 살수들은 24발 이상의 유도미사일을 상대해야 하는 셈이다.

“……피해라!”

“안 됩니다! 제기랄, 너무 빨라요!”

거의 광속으로 따라붙는 가이드샷을 완전히 피해 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살수들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 영수와 신성은 각자 맡은 살수들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유신성의 강타 스킬이 들어가자, 살수 2명이 마치 포탄을 맞은 군인처럼 쭉 날아가 뻗어 버렸다.

“쿨럭, 쿨럭……!”

“……이 팀의 정글, 만만치 않은 놈인데?”

암살자들에게 강력한 정글러는 상당히 골치가 아픈 존재다.

정글러는 보통 탱커만큼이나 방어력이 좋은 데다 주로 근접 공격을 하기 때문에 중단거리 공격을 하는 암살자에겐 치명적인 존재일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허나, 그런 암살자들에게 있어서 더욱 까다로운 존재는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근딜 특화형 암살자.

스스스스……!

원딜을 피해서 도망치던 암살자들은 영수의 그림자 공격에 걸려 목숨을 잃었다.

그림자 6개가 대검을 휘두르자, 암살자 여섯의 목이 그림처럼 잘려 나갔던 것이다.

촤라락!

“……뭐야, 저게?”

“제기랄, 듣던 것보다 훨씬 강력한데?”

살수들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잘못하면 오늘 이곳이 그들의 무덤이 될 수도 있었다.

허나, 그들은 생각보다는 덤덤한 표정이었다.

“진형을 유지해라!”

“넵!”

이렇게까지 이들이 의연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군의 존재였다.

끼이이잉……!

또다시 공간의 일그러짐이 보였다.

“화이트홀?!”

“이 새끼들은 도대체 화이트홀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거지?”

마치 화이트홀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는 인간이 있는 것처럼 손바닥 뒤집듯 화이트홀이 만들어졌다.

이런 식이라면 던전으로 과연 몇 명의 원군이 들어올지 알 수가 없었다.

태하는 아무래도 특단의 조치가 필요할 것 같다고 판단했다.

“화이트홀을 만들어 내는 뭔가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곳에서 꼼짝없이 죽을 겁니다.”

“그걸 찾아내려면 일단 이 전투에서 이겨야 할 텐데요?”

아이러니하게도 화이트홀을 막으려면 저들부터 없애야 한다.

모든 것이 역설적인 지금의 이 상황.

태하는 머리를 굴렸다.

‘화이트홀을 제어하는 놈이 있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책은?’

그는 더 이상의 생각은 멈추고 본능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했다.

휘리리릭!

스트랩을 뻗어 화이트홀로 던지는 태하.

그러자 화이트홀이 빨려 들어오면서 그의 능력치가 순식간에 상승했다.

“화이트홀을 만들면, 만드는 족족 먹어 치우면 되지!”

“아하, 맞다! 공간 조율 버프!”

결국, 저들이 원군을 구하기 위해 만드는 화이트홀이 저들을 죽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졌다.

태하는 공간 조율 버프를 통해 얻은 힘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제가 몸빵 칩니다! 다들 제 버프 받고 힘내서 이놈들 묻어 버리자고요!”

“오케이!”

스트랩을 따라서 주입된 공간 조율 버프는 파티원들의 능력치를 1.5배 이상 올려 두었다.

안 그래도 전력에서 큰 차이가 났던 살수들은 당황하며 한 발짝씩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핑핑핑!

퍼억!

“크허억!”

“제기랄, 원군이 도착해도 뾰족한 수가 없군!”

“어쩌면 좋습니까?”

상대방은 크게 당황한 것 같았다.

태하는 이제야 비로소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허나, 그것은 너무나도 큰 오산이었다.

“앗! 나리, 뒤에서 누군가 빠르게 달려오고 있다요!”

“……뭐?”

무심결에 뒤를 돌아본 태하는 입을 떡 벌릴 수밖에는 없었다.

그곳에는 금색 세스터스를 손에 낀 현영태가 서 있었던 것이다.

“저놈의 목을 따서 이곳에 묻어야 한다!”

“네, 길드장님!”

길드 한라의 현영태.

태하는 이 상황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

같은 시각.

아수라 컴퍼니로 한 무리의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뭡니까?”

“서울지방 국세청 조사국 조사 1과에서 나왔습니다. 지금부터 세무조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모두들 협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뭐요, 세무조사?!”

기업에 세무조사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타격이 될 수도 있었다.

때에 따라선 기업의 수뇌부들까지 끌려가서 법적인 처벌을 받게 될 수도 있는 일이기에 세무조사는 여러모로 기업에는 극형이나 다름이 없었다.

새롭게 아수라 컴퍼니의 비서실장이 된 하영준은 재빨리 청룡방에 전화를 걸었다.

아수라 컴퍼니는 이제 청룡방에서 기업 경영을 주도하는 쪽으로 기업 구조가 쇄신되었기에 대주주가 무슨 방책을 내놓아야 할 때였다.

허나, 청룡방의 담당자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나중에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

“뭐야, 대주주 측에서 연락 두절이라니?”

마침 경영총괄 대표이사 회장이 선임되기 전이라서 세무조사에 대한 책임을 질 사람이 없었다.

만약 책임을 지게 된다면 공동 주주인 태하와 청룡방이 직접적인 타격을 받게 될 것이었다.

하영준은 일단 국세청을 몸으로 막아섰다.

“잠깐, 영장은 있습니까?”

“……뭡니까? 그렇게 자신이 있어요? 공무집행방해로 콩밥을 먹여 줘야 정신을 차리겠습니까?”

“세무조사를 위한 압수수색을 실시한다면 그에 응당한 영장이 발급되었어야 정상입니다. 그게 없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 아닙니까?”

“지금 이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질 자신이 있다는 건가요?”

영장이라는 말에 잠시 멈춰 서는 국세청.

하영준은 미묘하게 이맛살을 구겼다.

‘이 새끼들 뭐야, 설마하니 국세청장 인가도 없이 달려든 건가?’

제아무리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서울지청 조사국이라고 해도 청장의 인가도 없이 움직인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다.

허나, 이 말이 안 되는 일이 가끔 벌어질 때가 있다.

바로 국세청장 교체 시기.

‘지금은 국세청장 자리가 공석인 상태다. 그것도 단 며칠이겠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취임하기 전이지. 지금이 조사국장이 단독으로 수사를 밀어붙이기에 최적의 시기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하영준은 조사과장이라는 남자의 가슴팍을 손으로 툭 밀었다.

“국세청은 죄다 깡패들만 있나? 감히 여기가 어디인 줄 알고 들어오나?!”

“……이 새끼가 진짜 돌았나? 이봐, 내가 누구인 줄 알고 이러는 거지?”

“조사과장이면 뭐, 내가 대가리라도 박아야 한다는 건가?”

“비키지 않으면 당장 공무집행방해로 고소할 줄 알아.”

“그럼 나도 맞고소하지 뭐. 최고 결정권자의 승인 없이 세무조사를 빙자한 사적 수색을 실시한 죄, 이 사실이 알려지면 과연 서울지검에서 어떻게 생각할까?”

조사 1과는 크게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하영준의 생각이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좀비 사태로 국세청장이 공석이니 이젠 별 미친놈들이 다 설치는군! 이봐, 차 대리!”

“넵!”

“당장 서울지검에 전화해. 여기 지금 어떤 미친놈들이 승인도 안 떨어진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달려든다고 말이야!”

“네, 실장님!”

그제야 찔끔찔끔 물러서는 국세청 조사과.

아마도 더 이상 무대뽀로 밀어붙였다간 오히려 자기들이 역풍을 맞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너, 잘 들어. 우리가 다시 인가를 받아서 온다면, 아수라 컴퍼니를 아주 가루로 만들어 주겠어. 그 자리, 보전하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인 줄 알아.”

“그쪽이야말로 조심하시지. 조만간 국세청에 피바람이 불 테니까 말이야.”

서로 사나운 눈빛만 주고받고 끝난 세무조사.

하영준은 이제 이 모든 것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우선 양측 대주주에게 모두 연락해서 상황을 파악해 보자고.”

“지금 정태하 회장님께서는 던전에 계십니다만.”

“흠, 그럼 청룡방부터 알아보도록 하지.”

“안 그래도 아까부터 계속 연락을 시도하고 있는데, 도통 연락이 닿지를 않습니다.”

“……젠장.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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