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4 추민우의 몰락(2)
길드 한라의 수장 현영태가 등장하자, 법원은 그야말로 난리통이 따로 없었다.
설마하니 ‘던전의 신사’ 현영태가 극악무도한 범죄를 일으킨 주동자 중 하나라는 것에 사람들은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현영태는 법정에서 선서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검사는 의기양양한 미소와 함께 물었다.
“증인은 누구이고 이 사건과는 어떤 관련이 있습니까?”
현영태는 아주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길드 한라의 길드장이고 아수라 길드의 길드장 이용광 씨와는 사형제지간입니다. 이용광 씨와 함께 엠톨의 연구를 후원하였고, 그것이 인간의 능력치를 끌어올리며 몬스터로의 변이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파이어볼과 피고에게 고지하여 서로 커미션을 주고받았습니다.”
“커미션? 그 커미션이라는 게 정확히 뭡니까?”
“피고는 정부의 각종 기관을 동원하여 연구를 지원해 주었고, 우리는 피고의 대통령 당선을 위한 조건을 완성해 주기로 했습니다.”
“조건이라니요?”
“코어 시장의 국유화, 그리고 재벌들의 사망으로 인한 재계의 개편입니다.”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피고 측에서 이의를 제기했다.
쾅!
“재판장님! 지나친 억측입니다! 증인은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억측으로…….”
“증거로 증인이 소유하고 있던 거래 장부를 제출합니다!”
원고는 현영태에게서 장부를 받아서 재판부에 건네주었다.
재판부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제출하세요.”
“……빌어먹을!”
재판부는 장부의 내용을 천천히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재판부의 눈빛이 돌연 달라졌다.
“으음……!”
“이 장부에는 증인이 각 세력을 이어 주던 징검다리라는 증거가 다 나와 있습니다. 어디서 어떻게 만난 것인지, 심지어는 돈을 얼마나 나누었고 어디서 어떻게 도움을 받았는지도 아주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란 말입니까?”
“네, 그렇습니다! 그에 대한 증언은 증인이 해 줄 수 있습니다.”
재판부는 증인에게 물었다.
“증인, 입증할 수 있습니까?”
“장부에 보시면 그들이 접선했던 장소가 나와 있습니다. 그곳 CCTV의 영상도 제게 있습니다.”
“지금 가지고 있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기소가 원한다면 제출하겠습니다.”
“기소?”
검사를 바라보는 재판부, 기소 측은 당연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증인의 호주머니에서 USB가 나왔다.
그것을 노트북에 연결하자, 수많은 파일이 내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중에 하나를 재생시키자, 그 안에선 추민우와 이용광이 대작을 하고 있는 영상이 나왔다.
-이번에야말로 재벌들 버릇 좀 고칠 수 있는 겁니까?
-장사 하루 이틀 하십니까?
-그래요, 우리는 당신만 믿습니다. 아시겠죠?
-걱정도 팔자로군요.
두 사람의 대작 장면이 CCTV에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한 방청객들은 탄식을 쏟아 냈다.
그것은 재판부 역사 마찬가지였다.
“으음……!”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금 보시는 이 증거들로 유죄 입증은 되고도 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수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 간 이 극악무도한 범죄의 주범인 추민우를 극형에 처해 주십시오! 이상입니다.”
***
같은 시각, 재판정을 찾은 태하는 구석에 앉아서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다.
[스킬: 싱크로 멘탈리즘]
[대상 ‘현영태’의 멘탈을 조종합니다]
마계화의 스킬을 흡수한 태하는 자신이 굴복시킨 대상에 대하여 싱크로 멘탈리즘을 시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이 스킬의 조건은 굴복시킨 대상이 던전에 있을 것,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니 조건은 달성되었고 현영태는 극심한 양심의 가책을 느껴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를 법정에 내어놓은 것이었다.
현영태는 아주 후련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태하는 하루에도 열두 번씩 죽은 사람들을 그의 눈앞에 투영시켰는데, 그로 인해 현영태는 지금 신경쇠약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었다.
‘아마 묵었던 체증이 내려간 것처럼 아주 속이 시원해졌겠지.’
현영태는 이제야 두 발 뻗고 잘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언젠가는 자신의 이런 행동을 후회할 날이 올지도 모른다.
허나, 적어도 지금의 현영태는 자신의 양심에 가책을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털어 냈기에 아주 후련한 상태가 되었다.
재판부는 현영태가 제출한 증거를 바탕으로 1차 공판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판결하겠습니다. 피고가 극악무도한 몬스터 사태를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빼앗았으며,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을 파괴해 행정부를 마비시켰다는 사실은 명명백백히 밝혀졌다. 이에 재판부는 추민우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탕탕탕!
재판봉이 세 번 소리를 냄으로써 추민우의 1차 공판은 유죄로 확정되었다.
이제부터 추민우는 몇 번이고 재심을 요청할 테지만 기각될 가능성이 컸다.
증거가 워낙 강력했기 때문이다.
잠시 후, 감옥으로 이동하는 호송 차량에 탑승하려는 추민우의 모습이 보인다.
태하는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이런 개자식아! 내 딸, 내 딸 살려 내!”
“아이고, 영하 아빠! 추민우, 이 나쁜 놈아! 우리 가족은 이제 어떻게 살라고!”
이번 좀비 사태로 수많은 가족이 희생되었다.
그 피해는 금액으로 추정할 수 없을 정도였으며, 돈으로는 그 가치를 환산할 수도 없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사람의 목숨이 산화되지 않았던가.
다소 씁쓸하긴 해도 태하는 재판이 잘 끝나서 관련된 사람들 일부가 처벌을 받게 되었으니 일단은 안심이었다.
허나, 이게 끝은 아니었다.
‘파이어볼……. 네놈들을 잡아서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게 만들겠어.’
그날 오후.
태하는 전경련과의 만남을 가졌다.
전경련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피해를 복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가족을 잃어 슬픔에 잠겼거나 생계가 곤란해진 사람들을 도와주는 재단을 설립했다.
그 돈으로 각각 수조 원이 출자되겠지만, 그들은 흔쾌히 그 돈을 쾌척했다.
“저희는 헌터님께서 시킨 대로 욕 안 먹고 돈을 쓰고 버는 방법을 고안해 냈습니다.”
“욕을 안 먹는 방법인 건 알겠는데 돈은 어떻게 번다는 겁니까?”
“주거 및 상업 지구의 안전성이 확보되고 학교와 동네의 안전까지 확보되니 매출이 급성장했습니다. 또한, 이런 모델을 바탕으로 해외의 아파트 및 주거 단지를 시공해 달라는 요청이 물밀듯이 쇄도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제야 재벌들이 정신을 좀 차렸나 싶은 생각이 든다.
***
백선을 찾아간 태하는 그의 깊은 한숨을 느꼈다.
“……내가 제자 농사를 잘못 지었군. 거리를 떠돌던 늑대들을 거두어 훈련시키면 던전의 균열을 치료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야.”
“그게 어르신의 과오는 아니지요.”
덤덤한 듯 읊조리고 있었지만, 백선의 주억거림 하나에도 그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슬픔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눈을 질끈 감았다.
“수백만의 영혼을 달래 주는 진혼제를 지내야 할 것 같아. 내가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하지 않는다면 죽어도 죽는 게 아닐 거야. 자네가 도와주겠나?”
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슬픔의 깊이는 몰라도 백선이 지금 어떤 심경인지 충분히 알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일세, 내가 부탁이 하나 더 있어.”
“말씀하시지요.”
“……이 사건을 일으킨 파이어볼을 쓸어버려야겠어. 내가 파이어볼과 전쟁을 일으킨다면 자네도 무사할 수는 없을 게야. 그것마저도 감수해 달라고 한다면 들어주겠나?”
물어볼 것도 없이 태하는 결연한 의지를 다졌다.
“물론입니다! 어르신의 뜻에 따르겠습니다!”
“자네의 의지를 확인했으니 됐네. 이제부터 자네는 이 사건에서 물러나고 던전을 오르는 데 주력하시게. 100층, 자네의 눈으로 어떻게 생겼는지 확인해야 할 것 아닌가?”
“예, 어르신!”
그는 태하에게 두툼한 흰색 봉투를 건네주었다.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뭡니까?”
“자네가 생각한 것처럼 정보가 새고 있었어. 사진들은 그 증거들이라고 해 두지.”
“……아아!”
그는 떨리는 마음으로 봉투를 열어 보았다.
휘둥그레지는 태하의 눈동자.
너무나도 뜻밖의 사람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성미연 씨?!”
“자네의 체육관 안에 언젠가부터 첩자가 심겨 있었던 것이지.”
“이, 이럴 수가!”
“더욱더 황당한 건, 이 성미연이라는 친구가 특사의 정보원으로서 이중간첩 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거지.”
봉투 안에는 특사 ‘암’이 성미연과 만나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어 있었다.
태하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개인적으로는 자네의 직감이 틀렸기를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게 이렇게까지 적중하게 될 줄은 몰랐다네.”
“……저 역시 그랬습니다.”
“지금부터는 청룡방 특무관으로서 던전과 관련된 조사를 담당해 주시게. 특사에 대한 내사는 청룡방에서 알아서 하겠네.”
“알겠습니다……. 다만 성미연 씨는 제가 직접 처리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래. 알겠네.”
“감사합니다!”
깊이 고개를 숙이는 태하에게 백선은 어쩐 일로 맞절을 했다.
깜짝 놀란 태하가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허엇! 어, 어르신! 아이고, 왜 이러시는지…….”
“자네가 있었기에 일을 이만큼이나마 처리할 수 있었어. 나와 청룡방은 자네에게 잊을 수 없는 은혜를 입었으니, 이를 어떻게 갚으면 좋겠는가?”
“저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러니…….”
“그래, 자네는 할 일을 했겠지. 하지만 우리 청룡방은 그 은혜를 절대 잊을 수 없다네. 앞으로는 단순히 청룡방의 일원으로 여길 게 아니라 은인으로 생각하겠어.”
두 사람은 한동안 미동도 없이 인사를 한 그 상태로 있었다.
***
오키나와의 료칸 ‘하나비’로 4명의 남녀가 모여들었다.
무덤덤한 표정의 그들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저 술만 홀짝거리던 한 남자가 물었다.
“……정리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깔끔하게 죽여야겠죠.”
“감옥에 들어가면 우리가 미처 손을 쓸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만.”
“사람 죽이는 방법이야 얼마든지 있죠. 살수는 내가 섭외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한 사람씩 계속 죽여서는 답이 없습니다.”
“답이 왜 없습니까? 이제 곧 바벨탑은 무너지게 되어 있어요. 그 헬창 헌터라는 눈엣가시도 결국엔 80층 언저리에서 사망하고 말겠죠. 이제 인간은 80층을 넘어설 수 없잖습니까.”
“흠. 정말 그렇게 될 거라고 생각합니까? 듣자 하니 화이트홀을 먹어 치운다면서요. 그런데 어떻게 처리를 하겠다는 겁니까?”
“그놈이 화이트홀을 먹어 치우며 강해질 때 우리는 가만히 있습니까?”
“……또다시 암살을 시도하시려는 겁니까? 우리가 암살을 시도할 때마다 놈은 강해집니다. 그런데도 재시도라니요, 말도 안 됩니다.”
“아무리 강력해져도 방법은 많습니다. 현영태, 그 빌어먹을 놈의 수준을 뛰어넘는 사람들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현영태는 던전의 최상위 포지션에 있는 인간이다.
그런 그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사실상 인간의 한계를 벗어났다는 뜻 아니겠는가?
헌데 그런 얘기를 아무렇지도 않게 지껄이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어 3명의 남녀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허나, 그런 그들에게 남자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를 냈다.
“하이퍼 엠톨, 개발 완료되었습니다.”
“……하이퍼 엠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