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27화 (127/197)

127 가끔은 참교육도 필요한 법(1)

늦은 오후의 고립관.

“……스콰아아앗!”

“허벅지가 불에 타는 것 같아!”

“태워 버려! 찢어 버리라고!”

일반적인 헬스장과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의 고립관은 하루 24시간 언제나 스테로이드가 폭발하는 것 같다.

그런 고립관을 방문한 이가 있었으니, 바로 유시연이었다.

그녀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린 채 카운터로 걸어왔다.

또각, 또각……!

도도하고 당찬 발걸음. 아마 성공한 커리어우먼의 표상이라 한다면 바로 유시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카운터를 보고 있던 태하가 그녀를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여긴 하루 온종일 땀으로 팍팍 절여져 있나 보네요. 어째 오후 늦은 시간에도 사람이 이렇게 많아요?”

“이 세상에 헬창은 넘치니까요.”

헬창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 순간에도 태하의 얼굴에는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걸 보는 유시연은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후후, 매력 있어. 헬창들은 단순해서 호감이 생긴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호감형입니까?”

“온순한 몬스터, 그런 느낌이라고 해 두죠.”

“……아하, 몬스터.”

그녀는 태하의 앞에 두툼한 서류 뭉치를 툭 하고 내려놓았다.

서류 뭉치 앞면에는 ‘대규모 레이드 기획안’이라는 글씨가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기획안이요. 이대로 진행할 겁니다.”

“우리 제안을 받아 주시는 겁니까?”

“그럼 별수 있어요? 대한민국 최초, 최대 규모의 레이드인데. 제가 빠지면 섭섭하죠.”

유시연은 진취적인 성향이고 절대 남에게 뒤지곤 못 배기는 성격이다.

그걸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태하는 그녀에게 대규모 레이드의 브레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해서 관심을 끌었던 것이다.

‘유일한, 최고의, 뭐 이런 수식어가 붙기만 하면 아주 난리가 나지. 아무튼 이걸로 레이드 조직은 끝난 것이로군!’

기획안은 상당히 촘촘하고 꼼꼼한 것이 특징이었는데,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준비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이라는 점이었다.

최고급 방어구와 포션, 심지어는 주문서까지 사들이겠다는 것이 그녀의 계획이었다.

“방어구나 주문서까지는 이해가 가는데 포션은 뭡니까?”

“뭐냐니요? 그럼 던전에서 물약 하나 없이 버티자는 거예요? 던전에서 링거 맞으면서 버틸 수는 없을 텐데?”

태하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러곤 테이블에 뭔가 묵직한 물통 하나를 툭 올려놓았다.

쿵!

“……이게 뭔데요?”

“들어는 보셨습니까? 무려 FDA 승인을 받은 헬창포션이라는 겁니다.”

“뭐, 뭔 포션이요?”

“헬창포션이요!”

“어머나…….”

“라이프스톤으로 만든 특제 포션이라 이겁니다!”

헬창포션의 뒷면에는 원산지가 적혀 있었는데, LS라는 이름의 원료가 한국에서 생산되었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그 밖에 비타민, 미네랄, 아미노산 등 신체 회복에 관여하는 물질이 무려 51개나 들어 있었다.

“……이걸 먹어서 뭘 어쩐다는 건데요?”

“먹으면 회복이 됩니다. 씻은 듯이 말이죠.”

“으음.”

“지난번 레이드 보고서를 좀 보시겠습니까?”

태하는 그동안 헬창스의 레이드를 바탕으로 작성된 데이터를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헬창포션은 원래 근 성장, 회복, 그리고 운동 중 근 손실 방지, 부스터 효과 등을 위해 먹는 약이지만 던전에서는 포션처럼 사용이 가능했다.

그런 실질적인 데이터를 켜켜이 쌓아서 만든 데이터는 그야말로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혀를 내두르게 만들 정도로 신박했다.

“……라이프수치 자체를 회복시켜 준다고요? 이게 정말이에요?”

“스마트워치의 통계자료를 실시간으로 분석한 겁니다. 못 믿으시겠다면 직접 시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허어!”

“아아, 단 하나 조건이 있긴 해요.”

“조건이 뭔데요?”

“우리 계파의 일원이 되어야 한다는 거죠.”

“계파요……?”

“보현파, 흔히 헬창파라고 하죠!”

유시연은 도무지 기가 막혀서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라이프수치를 회복시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이를테면 인간의 바이탈미터를 100으로 환산했을 때, 단 10%만 수치가 떨어져도 인간은 사망에 이를 수 있다.

라이프수치는 전체적인 혈액의 양, 신체의 기능, 신경의 손상 등을 총망라한 수치이기 때문에 헌터업계에서는 생명 포인트라고도 부른다.

헌데 이 라이프수치를 실시간으로 회복시켜 준다고 한다면, 사실상 던전에서 탱커의 역할은 거의 필요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한 병당 라이프수치 200포인트를 회복시켜 준다고? 헌터의 평균 라이프수치가 300, 근딜은 500~600이고 탱커는 1,000 정도 되니까 다섯 병이면 죽어 가는 사람도 살릴 정도가 되는 것인가? 그것도 탱커를 말이야.’

헬창포션은 한 병에 100ml 남짓이고 그것을 열 병 마셔 봐야 1리터밖에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500ml 한 병이면 탑티어의 탱커가 던전에서 하루 종일 버티고도 남을 정도라는 소리였다.

“이것 참, 뭐라 할 말이 없는데, 이거.”

“하하! 헬창포션, 이것이야말로 헬창을 위한, 헬창에 의한 포션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무슨 조건이 있다면서요.”

“아까도 말씀드렸습니다. 헬창, 그러니까 평소에 운동을 죽을 똥 싸면서 해야 한다는 거죠.”

유시연은 가만히 포션을 바라보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어쨌든 이걸 먹고 효험을 보려면 헬창이 되어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으니, 자신도 오늘부터는 운동을 좀 해야 하나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물건을 만든 태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인가 싶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후후, 매력적인 사람이야, 정말. 언제 데이트 한번 안 해 줘요?”

“데이트요? 지금도 하고 있잖습니까. 헬스장 데이트! 얼마나 좋아요?”

“당신 매력 때문에 아주 어질어질하네요.”

“아무튼 그럼 이 헬창포션으로 포션 조달을 하는 것으로 하자고요. 다들 여기에 맞춰서 운동 스케줄도 짜 보고요! 어때요?”

어쩐지 신이 나 보이는 태하에게 그녀는 ‘도대체 쇠질이 왜 그렇게 좋은 건가요?’라고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 모습이 워낙 천진난만했으니 말이다.

***

앞으로 한 달 후, 레이드는 시작될 것이다.

그동안 청룡방과 파워드 피스는 고립관에서 거의 살다시피 하며 근육을 키워 나갈 예정이었다.

“컴온 브로!”

“……컬, 셧 업 앤 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헬창은 고대에서부터 존재해 왔다.

그 단련에 대한 욕구와 겸허한 정신은 언제나, 어느 시대에서나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 주는 아주 좋은 연결 고리가 되어 주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던 파워드 피스와 청룡방은 이제 헬창 정신으로 대통합을 이뤄 냈다.

이 모든 것이 바로 고대 헬창들에게서부터 전해진 DNA 덕분이 아닌가, 태하는 그리 생각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가! 서로 하나라도 더 하라고 윽박을 지르고 등짝을 후려쳐 주고, 이게 바로 진정한 헬창들의 세계 아니야?!”

고대 헬창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는 태하.

그는 그들을 기리는 의미로 하루에 한 컵씩 보충제를 퍼서 거리에 뿌려 주는 고수레를 하기도 한다.

오늘도 습관처럼 고수레를 하러 나가는 태하.

그런데 오늘은 어디선가 너구리 잡는 냄새가 진동을 해 왔다.

“……담배?”

헬스장에서 담배를 피우는 무식한 사람이 있다면 고립관에서는 쌍욕을 처먹고 두개골이 쪼개질 것이다.

담배 자체도 몸에 나쁘지만 이걸 피우면서 운동했을 때에는 아주 치명타가 될 수도 있다.

일산화탄소가 몸에 가득 차 있는 상태에서 폭발적인 근력 운동을 해 준다는 건 기관지 및 각종 신체 기관에 무리를 주는 일일 것이다.

게다가 각종 발암물질이 식도를 타고 넘어가 위 점막에 달라붙게 되는데, 이것은 암을 유발하기에 딱 좋은 행동이었다.

고로, 담배는 헬창에게 있어선 절대 금기시해야 할 물건인 것이다.

“피워도, 최소한 헬스장 주변에선 피우면 안 되지.”

절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에 분노한 태하는 담배 냄새를 쫓아서 헬스장 뒤편 주차장으로 향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욕을 한 바가지 쏟아 주려 내려간 태하는 황당함에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찍, 찍……!”

“캬아아악, 퉤!”

사방이 온통 침 범벅이었다.

요즘 아침이면 누가 바닥에 잔뜩 침을 뱉어 놓나 했더니 저 빌어먹을 놈들인 모양이었다.

게다가 황당한 건 저것들이 하나같이 교복을 입고 있다는 점이다.

“……야, 이 좆밥아. 내가 빵이랑 담배 사 오면서 5만 원 남겨 오라고 했지? 내 말이 개 좆으로 들리디?”

“미, 미안……. 내가 정말 돈이 없어서 그래.”

“어이, 뒤지고 싶냐? 내 말이 졸로 들리던?”

무슨 무슨 각이라느니, 어쩔 티비라느니, 하는 그 흔한 급식체조차 사용하지 않는 저 장엄한 포스.

자신이 무슨 건달이라도 되는 듯한 묵직함이었다.

‘……흠, 심각한 상황이로구나.’

바로 그때였다.

[긴급 퀘스트!]

[성좌가 분노하고 있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세요]

[탑의 수호자가 기뻐하면 할수록 보너스를 받습니다]

역시나 불같은 성미를 가진 마이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 가만히 있을 양반은 절대로 아니지.’

태하는 싱크로멘탈리즘을 사용했다.

스스스스……!

그는 성좌가 아주 만족하도록, 그리고 저 어린양들에게 각자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주기로 굳게 마음먹었다.

***

한창 담배를 피우고 있던 소년들.

거구의 태하는 녀석들에게 훈계를 하며 나섰다.

“애들아! 너희들 여기서 뭐 하는 거니?”

“……뭐야, 저 덩어리는? 저리 안 꺼져?”

“급식이면 급식답게 급식체를 써야 하는 부분 아님? 응, ㅇㅈ?”

“뭐래는 거야, 저 미친 꼰대 새끼가. 우리가 무슨 초딩인 줄 아세요? 그딴 급식체는 초딩들한테나 가서 쓰시든가요.”

“……급식체는 원래 평소에는 잘 안 쓰는 거야?”

“큭큭큭! 아오, 저 미친 꼰대 정말. 내가 못 산다, 진짜로!”

늙다리가 신세대를 따라간다고 설치다간 태하처럼 망신을 당하기 딱 좋다.

허나, 망신을 당해도 최소한 한 가지는 깨닫게 되었다.

“음, 급식이라고 해서 급식체를 실제로 쓰지는 않는구나!”

“그딴 말 일일이 다 써 가면서 어떻게 대화가 되겠냐? 미친 꼰대야!”

“그렇구나! 고맙다, 아무튼.”

“……이제 주접은 그만 떠시고 갈 길 가세요. 뒈지게 처맞기 싫으면.”

태하에게 뜻깊은 교육을 해 준 건 고마운데, 이대로 그냥 지나가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을 듯싶었다.

그는 세상이 발칵 뒤집어져도 열정의 불길 하나만큼은 결코 꺼지지 않을 열혈남아였으니 말이다.

태하는 손가락 5개를 쫙 펼쳤다.

“자, 다섯을 세겠다. 지금부터 너희들이 뱉은 침, 다 닦고 청소해 놓는다. 그리고 그 괴롭힘을 당하는 소년은 얼른 집으로 귀가한다. 이상!”

“야, 저 미친 아재가 지금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큭큭! 어제 급식이라도 처먹고 잤나 보지. 꼰대가 급식을 처먹으면 저리되지 않겠어?”

심판이 내려질 것임을 아직 모르는 어린양들은 그저 낄낄거리며 자기들 욕구를 채우겠다고 으스대고 있었다.

태하는 손가락 하나를 접었다.

“자, 손가락 하나 접었다. 이거 하나 접는 건 말이야, 단순히 숫자를 세는 게 아니야. 손가락 하나당 한 대씩, 알겠니?”

“아이, 씨발! 이 꼰대 새끼가 진짜!”

퍼억!

양아치 중에서도 덩치가 제법 큰 녀석이 태하의 얼굴에 주먹을 내리꽂아 버렸다.

그러자 양아치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휘유우우!”

“그렇지! 대장, 잘 친다!”

태하는 조용히 손가락을 하나 더 접었다.

2개째 접는 손가락.

“……어른을 때리면 쓰냐?”

이로써 소년은 매를 벌게 된 셈이었다.

허나, 근육 덩어리 괴물을 한 방 후려쳤으니 기세가 아주 등등해졌다.

“저거, 다 약물로 만든 풍선 근육이야! 큭큭, 저딴 근육을 만들면 뭐하냐? 병신처럼 처맞기만 하는데.”

“대장, 더 조져 버려!”

퍼어억!

주변의 기대에 부응이라도 하듯, 정말로 녀석은 태하의 안면을 한 대 더 쳐 주었다.

백주 대낮에, 그것도 사람들이 드나드는 대로변이 떡하니 바로 옆에 있는 이곳에서 사람을 두들겨 패다니.

요즘 양아치들은 인생 자체가 막장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세 대.”

태하는 손가락을 하나 더 접었다.

아무리 전력을 다해서 쳐도 흠집 하나 남지 않는 남자. 만약 생각이 있었다면 이쯤에서 깨달았어야 했다.

퍼억!

“한 대 더!”

“……네 대.”

“그래, 맞는 김에 한 대 더 맞자!”

빠각!

이번에는 아예 발로 태하의 복부를 걷어차는 소년.

그 발차기가 생각보다 매섭다.

허나…….

“다섯 대!”

태하는 손을 뻗어서 소년의 발목을 잡아챘다.

턱!

“……엇?”

“뭐, 뭐야! 하성이는 태권도 청소년 대표 출신이잖아! 저 발을 손으로 잡는다고?”

“자, 그럼 지금부터 정산에 들어가겠습니다.”

[성좌가 웃습니다]

[확실한 정산 시, 가산점이 부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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