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고인물 뉴비(1)
헬스장에 뉴비가 찾아온다면 과연 고인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우선은 그 사람의 운동방식부터 자세, 심지어는 식단과 루틴까지 알아서 다 짜주고 싶어 할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냐고?
그건 이 세상 모든 헬창들에게 물어봐도 답을 찾을 수 없다.
그냥 헬스를 오래하면 자기보다 경력이 낮은 사람의 운동에 참견을 하고 싶은 본능이 꿈틀댄다고 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다.
“우와, 전율의 마녀!”
몸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입은 빅토리아가 헬스장에 들어서자, 뭇 남자들의 입에 침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녀를 뭐 어떻게 해보겠다는 게 아니었다.
그냥 여신이 지나가니 휴먼들은 그저 넋을 놓고 쳐다볼 뿐인 것이었다.
그런 그녀를 못 마땅하게 쳐다보면서도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는 여자들에게서는 당연히 좋은 말은 나오지 않는다.
“흥! 저 코, 분명 수술했을 거야! 눈도 찢었을 거고!”
“그나저나 얼굴이 정말 엄청 작네. 피부도 눈꽃빙수처럼 뽀얗고…. 쩝, 빙수 먹고 싶다!”
“…하여간 있는 것들이 더해요! 독한년! 더 이뻐지고 싶어서 발악을 하는 것 좀 봐!”
“독하고 뭐고 빙수 먹고 싶다….”
“쯧, 그러니 살이 안 빠지지! 저걸 좀 봐! 빙수가 목구멍으로 넘어가?”
뉴비 한 명에 헬스장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잠시 후, 차트를 든 태하와 보현관장이 등장했다.
“요, 베이비! 오늘의 뉴비는 과연 어떤 재능을 가지고 있을까?!”
“잘 부탁드립니다.”
“후후, 그럼! 잘 해 줄 거야! 다만, 내가 운동을 좀 빡세게 시키는 건 알고 있어야해. 그 정도는 감내할 수 있지? 내 제자들 중에 토 한 번 안 한 녀석이 없고 똥 한 번 안 지린 친구가 없거든.”
“저는 보디빌더가 목표는 아니에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뭐? 보디빌더가 목표가 아니라고?”
“저는 그냥 조금 더 근육량을 늘리고 싶을 뿐이에요. 우락부락한 몸은 제 취향이 아니라서요.”
“흠, 그럼 피규어나 피지크 쪽은 피해야 할 것이고. 당연히 보디빌딩도….”
보현관장은 심각한 표정이 되어버렸다.
그는 헬창을 양성하는 흔하디흔한 트레이너가 아닌, 진정한 근육의 길로 제자를 안내하는 대조사이다.
그런 그에게 선수의 길을 걷지 않는 제자라니.
혼란이 올 수밖에는 없었다.
“흐음.”
“굳이 관장님께 배움을 받지 않아도 될 것….”
“아니! 우락부락한 근육을 원하지 않는 자, 그런 자에게도 길은 있어!”
“그런 길이 있어요?”
“당연히 있지! 태하, 그런 종목에는 뭐가 있을까?”
차트를 들고 있던 태하는 싱긋 웃으며 답했다.
“비키니. 비키니가 있죠.”
“그래! 해변에서 가장 눈에 띄는 몸매, 그 어떤 여자들도 워너비로 손꼽는 몸매! 그게 바로 비키니라는 종목이야!”
보디빌딩은 그냥 뭉뚱그려 한 가지 종목이 아닌가 싶었던 빅토리아는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이것은 빅토리아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흔히 갖게 마련인 일반화의 오류이다.
농구면 농구, 축구면 축구, 이렇게 나뉘는 것이 아니라 수영의 평영, 자유형처럼 헬스도 세분화 된 종목이 존재했던 것이다.
물론, 일반인이 이에 대해서 알기란 쉽지가 않다. 스키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알파인과 활강이 뭔지 알기 힘든 것처럼 말이다.
“태하, 비키니라면 충분히 선수로 키워도 될 만한 재목이지? 사실, 비키니는 외모도 따지니까.”
“뭐, 그렇지요. 타고난 미색, 비율, 그런 것이 중요한 종목이니까요.”
“후후, 어때! 그래도 기왕지사 몸을 만드는 김에 대회 한 번 나가면 좋잖아!”
빅토리아는 비키니라는 말을 듣고도 별다른 감흥은 느끼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여전히 시큰둥한 그녀의 표정.
“저는 그닥.”
“…흠, 쉽지 않은 친구로군.”
못내 아쉬운 표정의 보현관장. 그런 관장을 위해서 태하는 차선책을 강구해냈다.
“뭐, 그렇다면 이렇게 해봅시다.”
“……?”
“우리 체육관에서 운동을 배우고 싶다면, 적어도 광고 한 편은 찍을 수 있게 해줘요.”
“광고라니요?”
“바디프로필이라고 들어봤어요?”
“몸 사진이요?”
“뭐, 비슷해요. 굳이 대회를 안 나가는 사람들이라도 자신의 젊음을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서 바디프로필을 찍곤 하죠. 예전에야 보디빌더나 트레이너들, 혹은 연예인들 아니고서야 바디프로필을 찍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들었다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일반인도 많이 찍어요. 개인소장용으로 말이죠.”
“으음.”
“솔직히 빅토리아 씨에게 비포&에프터 사진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니, 그냥 당신이 우리 헬스장 모델로 사진 한 번만 찍어준다고 생각합시다. 어때요?”
프로필 사진이야 얼마든지 찍어줄 수 있다. 그냥 사진 한 번 찍는 것이 뭐 어렵겠는가.
빅토리아는 그런 생각으로 수락했다.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하죠.”
“후후, 좋아요. 관장님, 바디프로필 50일의 약속!”
보현관장은 그제야 얼굴이 웃음꽃이 피었다.
그는 사람을 키울 때에 항상 목표를 정해놓기 때문에 오히려 목표가 없으면 참을 수 없어하는 경향이 있었던 것이다.
“오케이! 50일의 약속! 한 번 해보자고!”
드디어 보현관장의 눈빛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았다.
그는 빅토리아에게 계약서를 건넸다.
“우리 헬스장은 말이야, 50일의 약속이라는 상품이 있어. 관비만 6만원 내고 50동안 꾸준히 PT를 받는 거야. 무료로 말이야. 그렇게 해서 몸을 만들면 우리 헬스장 광고용 사진으로 쓰는 거지. 일종의 포트폴리오라고나 할까?”
“음! 그런 상품이 있었군요.”
“다만, 이 상품에 조건이 있어. 환불규정 없고, 딱히 돈 받는 것도 없지만, 절대 포기할 수 없다는 조항이 있지.”
“포기할 수 없는 조항이라니. 만약 내가 중간에 하기 싫다면요?”
“음, 그렇게 중도하차 할 수 없어. 만약 자네가 싫다고 버틴다면 우리가 보쌈을 해서라도 운동을 시켜. 칼같은 식단을 위해서 냉장고까지 관리해주지!”
“…그런 상품이 대체 어디 있어요?”
“어디 있긴! 여기 있지! 아무튼 포기만 하지 않으면 50일간 아무런 간섭도 없을 거야. 그냥 운동이랑 식단 코칭만 받는 거지.”
“뭐, 그 정도라면.”
슥슥슥슥!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 말이다.
***
아침부터 시작되는 유산소운동.
3km를 천천히 뛰는 그녀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졌다.
“…이 꼭두새벽부터 꼭 달리기를 해야 하나요?”
“비키니는 근메스에 집착해야하는 종목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서 데피니션에 집착해야하느냐? 그것도 아니죠. 적당한 볼륨, 적당한 메스, 그러면서 군살 하나 없는 잘 빠진 몸매. 어찌 보면 피규어나 피지크보다 어려운 종목인지도 모릅니다. 만약 당신이 보디빌더였다? 저는 절대로 달리기는 시키지 않았을 겁니다. 근손실이 날 수도 있거든요.”
“그럼 비키니 종목의 선수는 달려도 되는 건가요? 적당한 크기의 근육이 필요하다면서요.”
“그래요, 그렇죠. 다만, 달리기는 하체의 틀을 다지는데 좋아요. 비키니라는 종목에서 하체는 그야말로 꽃 중에 꽃입니다. 특히나 둥글고 탄탄한 둔근은 기본소양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죠. 이 루틴은 그것을 위한 루틴이라고 해두겠습니다.”
보디빌딩, 헬스, 피트니스, 종목에서 여성의 아름답고 풍만한 가슴을 제외하고 흔들리는 것은 지방으로 친다. 이렇게 흔들리는 지방이 존재한다면, 대회에서 절대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없다.
이것은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부분이기 때문에 태하는 일부러 달리기라는 유산소 종목을 루틴에 넣은 것이었다.
“3km를 뛰고 10분 정도 걸어줄 겁니다. 지방연소 효과를 극대화 시키는 거죠.”
“…근손실 온다면서요?”
“괜찮아요. 그 정도로는 근손실 안 옵니다.”
유산소는 잘못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장작처럼 마른 사람에게 하루 3km를 쉬지 않고 매일 달리라고 한다면, 그건 상당히 비효율적일 것이다.
허나 운동을 이제 처음 시작하는 빅토리아와 같은 경우에는 다르다.
적당히 달려주고 50분을 넘기지 않는 유산소를 해줌으로서 지방연소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그리고 덤으로 체내 노폐물을 제거하고 기본적인 심폐지구력을 기를 수 있을 것이다.
“무산소 운동이라고 해서 심폐지구력이 안 필요한 게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많은 호흡을 필요로 하죠. 그래서 헬스를 하는데 심폐기능이 좋아야 하는 거고요.”
“…그렇군요.”
“자, 그럼 유산소만 채우고 밥 먹으러 갑시다.”
이곳에 오기 전, 태하는 그녀에게 포도쥬스를 적당량 먹였다.
체내에 있는 글리코겐이 자는 동안 소모되어 텅텅 빈 상태에서 유산소를 해주면 그야말로 극독이기 때문이다.
“아마 글리코겐이 채워졌던 것이 날아갔을 겁니다. 적당히 탄수화물을 공급해주고 좋은 지방과 단백질을 먹을 필요가 있어요.”
“탄수화물?”
“뭐, 밥이라든지 감자라든지. 그런 것들이요.”
“헬스는 매일 닭가슴살만 먹어야 하는 거 아니었어요?”
“그런 원푸드 다이어트는 신장을 망가뜨리고 간에 무리를 줍니다. 특히나 극단적인 단백질섭취는 신장에 무리를 줍니다. 단백질은 자신의 운동스타일에 따라서 천천히 늘려주는 게 좋지, 그렇게 급격하게 매일 닭가슴살만 먹으면 탈 나요. 금방 질리기도 할 거고요.”
“오호, 그렇다면야….”
그녀는 태하를 따라서 유산소를 끝낸 후, 헬스장 지하에 있는 휴게실로 향했다.
이곳에는 헬친컴퍼니에서 만든 헬스전용 식단이 아주 잘 구성되어 있었다.
“야채는 물론이고 탄단지, 염분, 심지어는 당분까지 아주 세밀하게 조율되어 있는 식단입니다. 이걸 먹어주면 굳이 운동을 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건강을 관리할 수 있게 되죠.”
“당분이랑 염분도 먹어줘야 해요?”
“설탕을 들입다 붓는다거나 염분을 때려 넣는다면 당연히 문제가 되겠죠. 하지만 적당한 염분과 당분은 우리 몸에 꼭 필요해요. 그리고 당분의 경우, 그 성분에 따라서 몸에 필수적으로 필요하기도 하죠.”
“하긴, 그렇죠. 인체에 결핍이라는 건 극단적인 경우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니. 그러고보면 헬스라는 게 생각보다 심오하네요.”
“심오하죠. 사람의 몸을 만드는 건데요.”
사람들은 때론 인간의 몸을 만드는 작업이 얼마나 정밀해야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인지 인지하지 못하곤 한다.
자기의 몸을 다듬는 일인데, 당연히 그에 동반되는 지식이 많아야 하지 않겠는가?
“앞으로 몸에 대해서 더 잘 이해하게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당신의 능력도 한층 업그레이드가 되겠죠?”
“하긴. 확실히 그건 그렇겠네요.”
사실, 빅토리아 정도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태하가 제시하는 모든 것들에 요목조목 반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단순 지식으로만 친다면 태하보다 그녀가 훨씬 월등한 게 당연한 일이니까.
허나 그녀는 한 번도 반박하거나 자신의 지식을 뽐내지 않았다.
“확실히 가능성이 보여요.”
“무슨 가능성이요?”
“겸손한 선수가 될 가능성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