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 어둠 속에서(2)
제4던전을 클리어한 후, 태하 일행은 잠시 휴식에 들어갔다.
그동안 쉬지 않고 도합 400층을 클리어하는 동안 정신적으로 많은 피로가 누적되었던 것이다.
태하는 한동안 은퇴 후에 할 것들을 찾으러 다니기로 했다.
그중에 하나는 바로 여행이었다.
그는 오대양 육대주에 걸쳐 무려 400개나 되는 별장을 짓기로 했다.
거기에 들어가는 돈만 무려 24조 원이 넘을 정도였다.
별장 하나에 들어가는 돈이 600억 정도이니, 어지간한 대공사와 맞먹을 정도의 규모라 할 수 있었다.
“말씀하셨던 별장 건설에 대한 견적서가 도착했습니다. 확인해 보시겠습니까?”
“흠, 견적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잘만 짓는다면야.”
전속 비서로서 태하를 보좌하는 유리아의 꼼꼼함은 가히 기계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대단했다.
태하는 그런 그에게 모든 것을 믿고 맡기고 있었던 것이다.
“건설에 들어가는 장비와 자재, 그리고 건설 계획 등을 꼼꼼하게 평가해서 세계 최고의 건설업자들에게 공개 입찰을 붙였습니다. 완공 기한은 4년입니다.”
“4년이면 적당하군. 너무 길지도, 짧지도 않아.”
“4년 동안 별장에 들여놓을 헬스 장비들을 제작할 텐데, 혹시 따로 더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십시오.”
“음, 그래! 헬스 장비가 제일 중요하지!”
태하는 무식하게 무게를 증량하는 만큼 보통의 장비로는 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헬스 장비 하나를 갖추려면 기본 3~4억 이상은 소요된다.
“지금 바벨탑에서 사용하시는 장비들을 다 갖추려면 평균 120억 정도가 소요됩니다. 그래도 갖춰 놓을까요?”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고.”
헬스 장비 하나에 3~4억이나 한다고 하면 돈을 물 쓰듯이 쓴다고 하겠으나, 태하의 재산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정말 검소하기 이를 데 없는 씀씀이였다.
지금 그의 전 재산은 경 단위를 넘어서 거의 천문학적인 수치를 향해 달려 나가고 있었다.
아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헬스장을 이렇게 바꿔 준다고 해도 돈이 남아돌아서 다 쓰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더욱이 그의 재산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증식하기 때문에 아무리 돈을 써도 표시 하나 나지 않을 것이었다.
“다음 안건은 요트 및 경비행기 입찰입니다. 차량은 지금 사용하시는 것들로도 충분하고 요트와 경비행기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흠, 좋아. 그럼 호화 요트 말고 요트에서 헬스와 요리가 가능하도록 만들어 줘. 개인 펍도 하나 놓고 말이야.”
“운동 시설을 갖추자면 호화 요트 규모보다 오히려 커야 할 텐데요?”
“그럼 그렇게 하지 뭐.”
“알겠습니다. 그럼 조선사에 의뢰를 해서 만들기 시작하겠습니다. 경비행기는 따로 원하시는 바가 있으신지요?”
“아무래도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야겠지?”
“잘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발주를 넣겠습니다. 예산은 어떻게 잡을까요?”
“상관없어. 자재는 내가 줄 테니까 알아서 만들어 주기만 하라고 그래.”
“흠, 그럼 군선 제작 업체를 좀 알아볼까요?”
“군선?”
“항공모함을 만드는 업체 말입니다.”
“아하, 그것도 괜찮겠군!”
“알겠습니다. 그럼 3일 후에 뵙겠습니다.”
유리아에게 은퇴 후 즐기게 될 취미 생활을 준비시켜 놓은 후, 태하는 곧바로 조선엽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파앗!
순간이동으로 도착했다.
이제는 평범하게 차를 타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제2던전을 통한다면 어디든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집무를 보고 있던 조선엽은 크게 놀라지도 않고 대수롭지 않게 그를 맞이했다.
“제4바벨탑 정복 소식은 들었습니다. 파이어볼 쪽에서 아주 똥오줌을 찔끔 지렸겠던데요?”
“이걸로 이제 던전은 하나 남은 셈입니다.”
“하하, 그럼 앞으로는 어디를 공략하시는 겁니까? 우주? 심해?”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찾아왔습니다.”
“……네?”
“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미스터리를 풀어낸 다음, 우주로 향할 생각입니다. 그를 위한 회사를 좀 설립하고 싶은데요.”
조선엽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 세상에 있는 미스터리를 모두 풀자면 100~200년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너무 오래 걸리지 않을까요?”
“저는 기본 천 년 계약입니다. 그동안 죽지도 못해요. 그렇다면 차라리 뭔가에 몰두하는 편이 낫지 않겠어요?”
태하가 최대한 크고 튼튼한 요트를 주문한 것도, 그리고 전 세계에 400개나 되는 별장을 지은 것도 모두 이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지구에 불쑥 솟아난 바벨탑과 몬스터들의 출몰, 그리고 화이트홀 현상 등이 괜히 나타난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또한, 누군가 일부러 만들어 냈다고는 하지만 빙하기를 만들어 냈던 냉동원 또한 어느 순간 짠 하고 나타난 것은 아니라고 직감했다.
이 모든 것을 연구하고 지구의 미스터리를 해결한 후에는 도대체 이계에서 어떻게 지구로 생명체들이 넘어올 수 있었는지 연구할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서는 유인우주선이 필요해요.”
“……정말로 우주로 나가시게요?”
“심해는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습니다. 드래곤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우주를 누빈다는 건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겁니다. 잘못하면 드래곤들까지 함께 미아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요.”
“흠……. 현재 미국에서 화성에 보낼 유인탐사선을 개발 중인 것으로 알고 있긴 합니다만, 그래도 아직 먼 거리를 여행할 우주선을 개발하는 건 쉽지 않을 겁니다.”
“코어발전을 이용해도 안 되는 겁니까?”
“그렇게 해서 지금 여기까지 온 겁니다. 화성까지도 간신히 가는 마당에 은하계를 탐사하겠다는 건 솔직히 좀…….”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얼마가 걸리든 상관없어요. 나는 반드시 은하계를 탐사할 겁니다. 회사 설립을 부탁하는 것은 동업자에게 어느 정도 양해를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도와주지 않으셔도 혼자서 하긴 할 겁니다. 저도 재산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허 참.”
태하가 천문학적인 재산을 가지고 있다면, 조선엽 또한 어마어마한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태하만큼 거의 무한대의 재산까지는 아니더라도 수백조 원의 재산을 가진 아시아 최고의 재력가였던 것이다.
자신을 그렇게 만들어 준 태하의 부탁이라면 절대 뿌리칠 수가 없었다.
또한, 태하에게는 그만큼의 재산은 충분히 있었기에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뭐, 그렇게 원하신다면야 못 할 것도 없지요. 지금부터 인재를 영입하고 전도유망한 회사를 인수하는 등의 활동을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도와주시는 겁니까?”
“도와 드리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그리고 저도 그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고요.”
조선엽은 의리가 뭔지 아는 사람이다.
그는 반드시 태하의 염원을 이뤄 줄 것이었다.
***
며칠 후, 태하에게 입찰 결과가 도착했다.
그는 미국에서 항공모함 선체를 제작했던 조선사 ‘라이벨르’가 낙찰되었고 이제부터 견적 2,600억 규모의 건조가 시작될 것이라고 들었다.
“2,600억이라?”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항공기와 마정석 발전 엔진 등이 장착됩니다. 또한, 잠수함, 각종 수상 중장비가 전부 선체에 장착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작은 항공모함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대단하네. 제작 기간이 상당히 오래 걸릴 것 같은데 4년 안에 제작이 가능하겠대?”
“우리 쪽에서 원자재를 조달해 주지 않습니까? 그러니 항공기 제작까지 한 번에 가능해지는 것이죠.”
입찰 한 번에 모든 것을 끝낼 수 있을 듯했다.
“그나저나 잠수함이랑 중장비는 어떻게 알고 준비를 한 거야?”
“탐사에 뜻을 두고 계셨다는 것쯤은 익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인님의 생각을 읽고 그대로 풀어낸 것뿐입니다.”
유리아는 태하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심지어 그의 생각과 심연의 깊은 뜻까지도 말이다.
그녀는 태하에게 우주로 나아갈 때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것들에 대해 일러 주었다.
“몰먼족을 기용하시죠.”
“……아하, 몰먼!”
“몰먼족은 이미 인류의 한계를 뛰어넘는 기술력을 많이 선보였습니다. 만약 개척자로서의 정신까지 평가한다면 그들은 최고 등급의 기술자 아니겠습니까?”
몰먼족에게는 불가능이 없다. 그들은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것이라도 얼마든지 해내는 집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몰먼족과 손을 잡고 기술을 개발한다면 향후 50년 안에 우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었다.
“좋아, 내가 총총과 한번 얘기를 나눠 볼게!”
“제 의견을 수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별말씀을.”
한차례 보고를 받은 후, 태하는 바벨탑 100층 집무용 저택에 딸린 노천탕으로 향했다.
노천탕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청주를 마시는 태하.
“후우, 좋다…….”
“한 잔 더 드릴까요?”
“응, 그래.”
유리아는 태하와 가끔 목욕을 즐기며 술친구가 되어 주기도 한다.
물론, 서로 가운을 입고 있기 때문에 일말의 불편함은 없었다.
그동안 쌓여 있던 피로를 풀어 가는 태하. 그런 그에게 유리아는 인간적인 질문을 해 왔다.
“주인님께서는 2세를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2세?”
“인간들은 보통 2세를 남기기를 원한다고 하던데 말입니다.”
“흠. 2세라?”
지금까지 막연하게 생각해 왔던 결혼. 허나 이제 와서 결혼을 하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었다.
단순히 족적을 남기기 위한 것이라면 결혼을 할 이유는 없다. 그저 아이를 원해서 낳는 것이라면 몰라도.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돈만 벌어 놨다고 해서 아이를 책임질 수 있는 건 아닌 것 같아. 그리고 그 아이는 나보다 분명 세상을 일찍 떠날 텐데, 내가 그 고통을 견딜 수 있을 것 같지도 않고 말이야.”
“수명이 문제라면 굳이 인간과 결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드래곤이라든지, 정령이라든지, 방법은 많으니까요.”
“……드래곤?”
“하프드래곤은 드래곤과 비슷한 수명을 갖습니다.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면모가 강하죠. 한마디로 정의해서 수명이 상당히 긴 인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허어,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나는 몰랐네.”
“만약 원하신다면 2세를 만들어 드릴 수도 있습니다.”
유리아의 제안에 태하는 솔직히 마음이 동하긴 했다.
허나 그는 중심을 잡았다.
“아니야. 자기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영생을 살아가야 한다면, 그보다 더 억울한 게 어디 있겠어? 안 그래?”
“어찌 보면 그렇긴 합니다.”
“그런 이유로 출산은 기각!”
“알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라도 생각이 바뀌신다면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언제든 준비가 다 되어 있습니다.”
이번에는 태하 쪽에서 궁금해진다.
과연 드래곤도 2세를 원하기는 할까?
“유리아도 2세를 원한 적이 있어?”
“지금도 갖고 싶기는 합니다. 신룡은 영원불멸한 존재이지만, 저도 나름대로 저의 가문을 이루고 싶은 마음은 있지요.”
“가문이라.”
“일가를 이룬다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어렴풋이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를 온전히 이해해 줄 존재를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제가 떠받들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존재를 찾을 수도 없었고요.”
태하는 유리아가 얼마나 외로웠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그야말로 억겁과도 같은 시간이잖아? 그 시간 동안 최정상에서 군림하며 지냈다면 정말 많이 외로웠겠어.”
“그런 나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누군가를 모실 수 있다는 것에 기쁨을 느낍니다.”
정말 만약 가정을 꾸리게 된다면, 유리아와 같은 존재와 함께한다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드는 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