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장 무림에 감추어진 비밀 혈비도 무랑 (3)
벽면에 쓰여 있는 글귀는 다음과 같았다.
[축하한다. 이것으로 자네는 본문의 제자가 되었다. 하나 작금의 무림인들의 실
태가 다 그렇듯이 기연을 얻어 명문의 제자가 되어 강한 무공을 얻게되면 무공
만을 알 뿐 그 명문의 역사는 모르는 것이 태반이니 슬픈 일이 아닐 수 있겠는
가? 무공의 원류에 해당하는 사문의 역사를 모르고 그 득실만을 챙기는 행위를
본 좌는 싫어하는 바이니 자네가 이곳을 빠져나가기 위해선 아래 비밀석고에
마련되어 있는 본문의 역사서를 읽어 기관장치에 해당하는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다.]
"젠장할!"
장천은 치사할 정도로 집요한 글귀를 보며 욕설을 내뱉었다.
하지만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하는 그로선 시키는데로 할 수 밖에
없었다.
글귀가 쓰여 있는 벽면을 두드려보며 살피니 한 군데 비어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장천은 천천히 벽면의 뚜껑을 찾아 열어 보았는데, 그곳에는 오랜
시간 동안 있었던지 한 권의 책자가 쓰려 있었다.
또 그와 함께 벼루와 먹, 붓이 있었으니 조금 이상하게 생각 될 수 밖에 없었
다.
"음냐..비도문의 역사라..."
비도문의 시조는 매번 보았던 초상화의 주인이였다.
이름하여 나찰귀(羅刹鬼) 천인살(千人殺) 물론 천인살이란 이름은 후에 자신이
지은 이름으로 그가 20세에서 30세 까지 한 일은 진나라 고문담당관(拷問擔當
官)이였다.
진나라가 15년만에 멸망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못한 그는 처음에는 진에
반항하는 무리들을 후에는 불로장생의 영약을 찾기 위해 수천명의 사람들을 고
문하여 죽이니 그의 악명을 천하에 모르는 이가 없었다.
물론 이것은 진의 영광을 위해서였지만, 진이 멸망 한 후 그는 천하인의 공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그 당시 무공이라곤 전혀 모르던 그는 도망을 다니다 항우의 무리에게 잡히니
그의 목숨은 풍전등화였지만 다행히 항우가 한나라의 태조인 유방에게 패하여
물러나니 그는 그 전에 죄를 사해 받고는 목숨을 구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잠깐의 시간이 그에게는 모든 것을 뒤 돌아보게 하니 그가 자신의
호와 이름을 나찰귀 천인살이라 한 것은 바로 유방에 의해 목숨을 구해 받은
후였다.
그가 가지고 있었던 지식은 진시황제이 명을 받아 고문을 하여 얻어낸 수많은
명의, 은거인들의 영약 제조법이였으니 그는 이 기술을 바탕으로 강호를 돌아다
니며 환단을 통해 병을 제압하니 건국 초 어지러웠던 한나라를 돌아다니며 많
은 사람들을 치료한 그는 일환구명진인(一環求命眞人)이란 이름으로도 명성을
얻었다.
전국을 돌아다니던 천인살은 나의 60에 지금 장천이 있는 곳으로 은거를 하였
으니 현재의 주민들은 모두 그의 자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쳇 힘도 좋아.'
잠시 헛소리를 해본 장천이였다.
뭐 역사라고 해봤자 처음의 시조를 제외하고는 순탄하기 그지 없었다.
현재의 무공이 만들어 진 것은 삼대 연환비도(連環飛刀) 주문(周聞)과 육대 쾌
비도(快飛刀) 천경(天警)때 였고, 그것을 더욱 강하게 발전시킨 사람은 13대 만
통자(萬通子) 우길(牛吉)이였다.
그 후로 계속 발전해 가는 비도문이였으나 애석하게도 이십칠대문주인 혈비도
무랑의 때에 와서는 이렇듯 문도 하나 없는 외로운 문파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역사서는 그 당시 문주가 한 일에 따라 적혀 있는 글자가 다 다른 것으로 보아
이 곳 물품들은 후대에 선택되어 이곳에 온 제자가 전재 문주의 일을 적어 역
사서를 만들어 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천은 이십칠대문주인 혈비도 무랑이 한 일을 적어야 하는 처지가 되었으나.
무랑 역시 이십육대 문주 때의 일을 적지 않은데다가 그에 대해서 아는 것이
전무한 상태였기에 어쩔 수 었이 빈 공간으로 남겨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빠져나갈수 있는 방법은 어디에 적혀 있는거야?"
통로를 여는 기관장치가 있는 곳이 역사서 어디에 있다고 생각한 장천은 계속
책을 넘기며 찾아보았는데, 맨 뒤에 외부로 나가는 통로로 가는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약도를 암기하려 다시 비밀 책장에 넣어 둔 장천은 길을 따라 출구를 향해 움
직였는데, 한 참 후 하나의 벽이 다시 가로막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곳 역시 또 만나게 된 노인의 초상과 함께 하나의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그대는 몇 대의 제자인가.]
그 글귀고 함께 벽 주변주변에는 조금 위로 튀어나와 있는 벽면으로 숫자가 적
혀 있었다.
"음..혈비도 무랑이 이십칠대이니 난 이십팔대겠군."
자신을 이십팔대라고 생각한 장천은 벽면의 숫자를 눌렀는데, 이십팔을 누르자
벽면의 기관장치가 움직이면서 사방의 벽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그 기관장치의
정교함에 장천으로선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서에 써 있는대로라면 이 통로의 기초를 만든 이는 시조였고, 확실하게 지
금의 모습을 만든 이는 13대 만통자 우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두 사람의
얼마나 뛰어난 인물인가를 새삼 느끼게 하고 있었다.
새로 드러난 벽면에는 먹으로 휘갈겨 쓴 글귀와 함께 하나의 글귀가 적힌 문제
가 드러났으니 그 것을 읽은 장천은 허무함에 크게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
다.
[비도문 시조이신 천인살 시조님의 명호를 고르시오.]
그런 글귀와 함께 먹으로 쓰여진 글귀가 적힌 벽면이 튀어나와 있었던 것이다.
한 숨을 쉰 장천은 읽었던대로 답안을 누르니 기관장치가 해제되며 다음번 문
제가 나왔고, 계속 그런 식으로 기관장치는 이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장천은 얼마 지나지 않아 크게 놀라지 않을 수 밖에 없었는데, 문제의
진행은 각 대에 하나씩이였고, 그 문항 또한 그 대에 해당하는 것만 나왔던 것
이다.
또 만통자를 지나서는 그 글자가 틀린 것으로 보아 다음대에 문주들이 문항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 드디어 이십칠대째의 문주가 나오자 장천은
조금 당황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무림의 존재하는 정파의 인간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
이런 글귀와 함께 다른 돌에는 아무 것도 쓰여있지 않으면 단 한군데의 돌에만
필(必)이란 글자가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
이 글귀로 혈비도 무랑이 얼마나 정파의 인간들을 증오했는지 알 수 있었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장천이였다.
'정파인 내가 이곳에 들어왔다는 것을 혈비도 무랑이 안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렵겠군.'
하지만 일단은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에 필이 쓰여 있는 벽면을 누르니 서서
히 기관장치가움직이며 이번에는 완전히 비어있는 장치와 함께 하나의 글귀가
쓰여 있었다.
[전대의 일에 관한 것을 문제로 남겨 후대의 문도들을 맞으라.]
"휴."
역시나 자신 역시 문제를 써야 한다는 생각에 주위를 살펴보니 기관장치와 함
께 먹과 뭇, 벼루등이 나왔다.
물은 근처에서 떨어지고 있는 하얀색의 액체를 사용했는데, 목이 마른 김에 한
모금 취했더니 온 몸의 힘이 샘솟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는지라 천연암반수 중
에 꽤 질이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는 허리에 차 있던 가죽 주머니에 가득 담고
는 벼루에 떨어 뜨려 놓고는 먹을 갈았다.
검은 색으로 색깔도 좋게 간 장천은 드디어 문제를 쓸 시기가 왔으니 도저히
혈비도에 관한 문제로 생각이 나지 않았기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좋다!"
마음을 결정한 그는 벽면에 글을 써가기 시작했다.
[비도문의 후예여 그대의 손으로 선대의 피를 자비로 씻어 주시오.]
물론 밑에의 답이 적혀야 할 곳에만 가(可)라는 글자를 적으니 다음에 올 사람
들 어쩔 수 없이 가라는 단어를 누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전대 혈비도 무랑의 악업이 씻길수 있을 터이니 장천으로선 정
말 머리를 엄청 굴린 문장이라 할 수 있었다.
모든 것을 마치고 기관장치를 누르니 서서히 문이 열리며 하늘의 빛이 장천에
게로 비추어지기 시작했다.
"아!"
저녁무렵 이곳에 들어선 장천은 하룻밤이 지나 낮이 되서야 밖으로 나올 수 있
었던 것이다.
장천이 밖으로 나가자 서서히 벽이 닫혀지니 그의 품에는 그곳에서 얻은 아홉
개의 비도와 백색의 물만이 남아 있었다.
"아!"
일행들의 안위가 궁금한 장천은 급히 무랑촌을 향해 달려가려고 했는데, 그 때
그의 주위로 수십명의 사람들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젠장!"
그들이 마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안 장천은 급히 자세를 휘하여 그들과 싸울 준
비를 했는데, 놀랍게도 처음 일행들을 맞이한 촌장은 감격한 얼굴로 나와서는
장천을 향해 절을 하며 말했다.
"드디어 비도문의 이십팔대문주님을 뵙게 되니 비도문의 제자들은 기쁘기 그지
없습니다."
"응?"
갑작스런 사태에 장천으로선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는데, 텅 비어버린 비도문
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마을 사람들 전원이 비도문의 제자였던 것이다.
어쨋든 싸울 일이 없다는 생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장천은 촌장의 안내에 따
라 마을로 들어 설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안위가 걱정된 장천은 비도문의 전각으로 가려고 해는데, 그것을
눈치 챈 촌장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문주님의 일행분들은 편히 쉬고 계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렇습니까?"
촌장의 얼굴을 보니 거짓을 말하는 것 같지는 않았기에 장천은 사람들을 따라
마을 밖의 동굴에 들어 설 수 있었다.
동굴 안에는 횃불로 환하게 밝혀져 있었는데, 그곳에서 보기 싫은 할아버지의
초상화를 다시 보게 된 장천이였다.
또 다시 그 얼굴을 보니 경기마저 들고 있는 장천이였지만, 이 마을에선 거의
신급에 가까운 인물인지라 티는 내지 못하고 있었다.
촌장은 동굴을 가리키며 조용히 말했다.
"이곳은 비도문의 시조께서 백년간 면벽을 하신 곳으로 백년의 면벽 끝에 시조
께선 신선이 되시어 하늘로 오르실 수 있으셨습니다."
"음.."
"대대로 비도문의 문주님들은 시조님의 얼을 받아 이곳에서 일년의 면벽수행을
하셨으니 이번에는 문주님께서 그 얼을 이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자..자자자 잠깐!! 이..일년!!"
"예. 그렇습니다."
그 말을 들은 장천은 뒤로 넘어가고 싶은 심정이 가득했는데, 촌장은 그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 면벽굴에서의 면벽 일년은 탈체동(奪體洞)에서 얻은 순수한 몸을 확립시키
는 절차이니 반드시 거쳐야 할 일입니다."
"음...."
하지만 이런 면벽굴에서 일년을 썩고 싶은 생각이 없는지라 장천으로선 쉽게
빠져나갈 수 있는 방법을 물을 수 밖에 없었다.
"혹시...한시진 정도에 끝내는 방법은 없습니까?"
"애석하게도 그런 면벽이 있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 말에 면벽은 면벽이니 한시진 정도라면 어찌 면벽이라 할 수 있겠는가라는
생각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 장천이였다.
"이 면벽 수행을 넘어가시려면 한가지 절차가 필요하긴 합니다."
"응? 절차?"
"환골탈태를 하신다면 면벽의 수행이 필요없는 것이지요."
그 말에 장천은 한 숨 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환골탈태가 어찌 쉬운 일이겠는
가?
어쩔 수 없이 노인의 말을 들으며 면벽동을 빠져나갈 계획을 짤 수 밖에 없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