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1 장 멸천문의 개파대전 (6)
멸천문 안에선 아무리 아버지와 자신의 무공이 강하더라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했고, 혈비도 무랑이란 자가 그
렇게 만만한 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그가 제시한 조건이란 것이 단순히 무공을 익히라는 것에 지나지 않았는지라 그리 정색할 문제는 아니었
다.
하지만 무림에서 한 문파의 무공을 익힌다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가 혈비도 무랑의 무공을 익힌
다면 그가 장천은 대외적으로 자신의 문파의 사람이라 인정한다면 장천은 그것을 거부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이거...무림대살령을 받은 것이 당연한 꼴이 되겠는걸...머리 아프다..'
하지만 자신이 그런 경우에 또 처할지라도 기문숙 태사숙조와 아버지의 생명을 위험하게 할 수는 없는지라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자네가 무공을 연성할 곳은 우리가 마련해 두겠네. 개파대전까지는 오일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기는 하지만, 자네
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 생각하네, 아니 가능하게 만들어 주지."
"음..."
혈비도 무랑의 자신감 있는 말에 침음성을 흘리는 장천이였다.
"더 이상 하실 말씀이 없다면 이만 물러나도록 하지요."
"그러도록 하게 내 나중에 사람을 보낼 터이니 말이야."
"그럼 이만.."
장천은 포권을 하고는 뒤로 돌아서는 방을 나가려고 했는데, 그 때 혈비도 무랑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장천을 보
며 말했다.
"아! 깜빡 잊었군."
"응?"
"들리는 소문에는 자네에게 마교의 전대 교주였던 유문영의 딸 유능예와의 사이에서 아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 순간 장천은 그대로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으니 아직 아들의 소식을 듣지 못한 그로서는 혈비도 무랑이 혹시
소천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혈비도 무랑은 그것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다니 그로서는 장천의 아들인 소천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천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것을 안 혈비도 무랑은 그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있던가?"
"....아닙니다. 그럼 이만.."
장천은 혈비도 무랑 역시 놀란 표정을 보이는 것을 보며 그가 그 일과 상관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언급하지 않
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으며 말하고는 다시 돌아서 방을 나갔다.
'무슨 일이지?'
혈비도 무랑으로선 정색을 하는 장천의 표정이 사라지지 않았으니 한참을 생각에 잠기다가 허공을 보며 입을 열었
다.
"멸천 1호."
그 순간 천장에서 하나의 인형이 떨어지더니 그의 앞에 부복을 하고는 포권을 했다.
"말씀하십시오."
"쌍도문의 문주 장춘삼에게 가 장천의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도록 하거라."
"예."
혈비도 무랑의 명령을 받은 멸천 1 호는 고개를 숙여서는 또 다시 천장으로 사라지니 다른 사람과는 달리 통로가
조금 특이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이색적인 면을 제외하고는 혈비도 무랑이 멸천문에서 가장 신용하는 인물 중 하나였으니 그의 주위에
는 상시 멸천 10호까지의 인물이 머물러 있어 수족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한편 혈비도 무랑의 방을 나와 빠져나오면서 아들 생각에 한 숨 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차라리 그의 손에 소천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막상 그렇게 됐다면 상당한 발광을 하긴 했을 테지만 소식을 모르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낫지 않은 것인가?
이런 저런 생각으로 고심을 하던 장천은 한참을 걷다 문득 다른 생각이 나서는 손바닥을 치고 말았으니 이곳은 멸
천문, 그에게는 어떠한 멸천문의 문도도 같이 있지 않았으니 가장 간단하게 생각한 것은 길을 잃어버렸다는 것이었
다.
"뭐야...아무도 안내해주지 않았던 거야?"
데리고 올 때는 안내해 줬으면서 보낼 때는 그냥 보내면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책임감도 없는 혈비도 무랑이였
으니 장천으로선 한 숨만 나왔다.
멸천문은 과거 쌍도문에 비해서 거의 십 수 배에 이를 정도로 거대했으니 하나의 성과도 같은 곳인지라 장천의 지
능으로 길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휴....이럴 때는 멋진 여자가 나타나서...인연이 이루어지는 것이 보통인데.."
어디서 이상한 것은 많이 봤는지 중얼거리는 장천이였는데, 그의 예감은 어김없이 들어맞고 말았으니 멸천문의 골
목길에서 한 소저를 볼 수 있었다.
"아! 여보세요! 소저! 잠시만 기다려 주시요!"
저 여자를 놓치면 이제 미아가 된다는 생각에 장천은 황급히 뛰어가서는 그녀를 불렀는데, 누군가 자신을 부르자
돌아서는 여인은 장천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잠시 후 미간이 찌푸려지고 말았다.
물론 그런 것은 장천 역시 마찬가지였으니 미간을 찌푸리지는 못했지만,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그가 애타게 찾았던 길 안내 소저의 이름은 은영영, 장천이 이 세상에서 대하기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던 것이다.
"흥!"
상대가 장천이라는 것을 깨달은 은영영은 콧방귀를 뀌고는 뒤돌아서는 걸음을 옮기는데, 그녀를 놓쳤다가는 도저
히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장천은 할 수 없이 그녀의 뒤를 쫄래쫄래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한참을 걸음을 옮기던 은영영은 보기 싫은 남자가 자신을 따라오자 더 이상 참지 못하고는 뒤로 돌아서는 장천을
보며 소리쳤다.
"왜 자꾸 나를 따라오는 거지요?"
"아...그게..."
"제대로 말도 못하나요!"
"그게...휴...길을 잃어 버렸어.."
은영영은 말을 못하고 망설이는 그를 보며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치는데, 장천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진실을 밝
히고 말았으니 그의 대답을 들은 은영영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었다.
무림의 무인이 길을 잃어서 여인의 뒤를 쫓아온다는 것이 어디 말이나 되겠는가? 보통 무인이라면 입에 담지도 못
할 일을 내뱉는 장천이였으니 황당했던 것이다.
"흥!"
말하기도 싫다는 듯이 다시 고개를 돌려서는 길을 걸어가는 은영영이였으니 장천은 시무룩해진 얼굴로 그녀의 뒤
를 따랐는데, 그의 귀로 누군가의 큭큭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어보니 은영영이 입을 막고 웃음을 참고 있
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젠장 할...'
그 모습에 장천으로선 더 창피 할 수밖에 없었는데, 한참을 그렇게 큭큭거리던 은영영은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
조용히 입을 열었다.
"두형...당신은 여전하군요."
"...은영영."
무엇인가 사연이 많은 듯한 목소리인지라 장천은 자신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나직이 읊조렸는데, 그녀는 더 이
상 말을 하지 않고 다시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휴...힘들다...사실...은영영도 좋긴 한데..'
장천은 그녀에게 죽음까지 몰릴 정도로 위험을 당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녀가 싫지는 않았다. 의형제인 은조상의
여동생으로 어떻게 보면 친하게 지냈다고 할 수 있는데다가 사실 유능예 보다는 은영영에게 관심이 있었던 것도 사
실이었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신의 첩자로 들어왔던 탓에 은조상의 가문이 자신으로 인해 피해 입지 않도록 피해 왔었던 것이지 그녀
가 싫어서는 아니었다.
한참을 그렇게 고뇌하던 장천은 길게 한 숨을 내쉬고는 그것에 대해 말을 하려 했지만,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지
금 자신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역시 쓸데없는 미련과 아픔을 가져다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을 은영영의 뒤를 쫓아가던 장천은 잠시 후 사람들이 많은 곳에 도착 할 수 있었으니 그녀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려 했지만, 그가 제대로 감사의 말을 전하기도 전에 사라진 후였다.
"휴..."
다시 한 숨을 쉰 장천은 근처에 있던 멸천문의 무사에게 쌍도문의 문도들이 머무는 곳의 숙소를 물어 간신히 일행
들이 있는 숙소로 도착 할 수 있었다.
숙소에 닿자마자 무진과 데비드가 황급히 뛰어와서는 물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혈비도 무랑은 만난 거야?"
"응. 피곤하니까 이만 들어가서 쉬고 싶어."
은영영의 일도 있는지라 장천은 쉬고 싶다는 말을 하고는 숙소로 들어가서는 아버지에게 향했다. 방문을 열고 들
어가자 장춘삼이 심각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으니 그는 장천이 돌아오자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혈비도 무랑을 만났다 했느냐?"
"예. 아버지."
"그래 어떻게 되었느냐?"
아버지의 물음에 장천은 한 숨을 내쉬고는 그와 있었던 이야기를 하니 모든 이야기를 들은 장춘삼의 미간을 찌푸
릴 수밖에 없었다.
"마교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니..아무래도 혈비도 무랑의 문하가 되는 것은 피하지 못할 일 같구나."
"그렇습니다. 아버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장천의 말에 한참을 생각한 그는 결정을 했는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일단은 그가 요구하는 대로 혈비도 무랑의 무공을 익히도록 하거라."
"하지만 그렇게 되면 쌍도문은 무림의 공적이 될 것인데.."
"어차피 우리가 그의 요청을 거부한다 하더라도 혈비도 무랑은 그것을 군웅들에게 밝힐 것은 자명한 이치이니 차
라리 요청을 수락하고 당분간 시간을 버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음..."
아버지의 말을 틀리지 않는지라 약간의 시간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의 청을 수락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이만 숙소로 돌아갈까 합니다."
"오늘은 힘들어겠구나. 그래 들어가서 쉬도록 해라."
"예. 아버지."
아버지에게 공손히 인사를 올린 그는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장천이 방을 나가자 천장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오
니 장춘삼은 미간을 찌푸리고는 가볍게 오른손을 들어올리자 그 순간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한 인형이 천장에서 떨
구어졌다.
"네가 누구의 명을 받고 온 것이지는 알지만, 쥐새끼처럼 알짱거리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죄송합니다."
천장에서 떨어진 인물은 바로 혈비도 무랑에게 명을 받고 움직이던 멸천 1 호였으니 장춘삼의 말에 고개를 숙여
용서를 비니 장춘삼은 조용히 용건을 물었다.
"그래 무슨 일로 나를 찾아 왔느냐?"
"문주께서는 소주의 아드님의 일에 대해서 궁금해 하셨습니다."
"응? 천이의 아들 소천이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멸천 1호의 말에 장춘삼은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는 말했다.
"이상하군 구궁이 그 일에 대해서 보고하지 않았단 말인가?"
"본문에서는 그 소식에 대해서 아무 것도 입수한 바가 없습니다."
"음...구궁이 왜 그 소식을 알리지 않았단 말인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으나, 일단 혈비도 무랑이 알아야 하는 소식이었기에 멸천 1호에게 장천의 아들인 소천이
광무자에게 있다가 유성신창의 진형에게 당한 후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니 멸천 1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또 다시 천장으로 사라졌다.
"쥐새끼 같은 짓을 하지 말라 하지 않았는가!"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희들은 이런 식으로 이동하는 것만을 교육받았기에..."
"꺼져라."
"예."
장춘삼의 노기 어린 말에 황급히 용서의 말을 하는 그였으니 더 이상 보기도 싫은 지라 미간을 찌푸리며 소리치는
그였다.
하지만 멸천 1호가 사라지자 생각에 잠기는 그였으니 왜 구궁이 혈비도 무랑에게 소천이 사라진 소식을 알리지 않
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혹시 녀석이...'
한 순간 나쁜 생각이 들었던 장춘삼은 구궁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일을 벌이려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간담이 써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장천은 함정이 빠질 것은 분명 할 것이고, 구궁이라면 함정에 빠진 장천을 아주 간단히 처리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이었다.
'구궁...만약 네 녀석이 그 일을 저지른다면 비도문의 대가 끊기는 한이 있어도 네 놈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으드
득...'
과연 장춘삼은 구궁이 무슨 일이 저지르고 있다 생각한 것일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