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혈비도무랑-251화 (252/355)

제 46 장 정무맹의 혈성 (3)

“그나저나 구궁이 배신을 했다는 것은 어찌된 일인가?”

하노인의 말에 혈비도 무랑은 무표정한 모습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그 아이가 천이를 노리는 듯 합니다.”

“이런...쯧쯧쯧..그 아이 심정도 이해가 가네, 자네에 대한 반발심이겠지..”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계획을 세우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아마 천이 곁에서 맴돌고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만 자세한 정보는 알아낼 수가 없더군요.”

“그럴테지. 신검진인 덕에 구파일방에 잠입한 문도들의 정체가 거의 대부분 드러난 상태니까 말이야.”

그 동안 혈비도 무랑은 무림의 각지에 멸천문의 첩자들을 심어 놓았지만, 개파대전 이후 정무맹은 자신들 사이에 있는 첩자색출에 상당한 노력을 가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동생이 보내 온 서신에 의하면 정무맹 내에서도 구궁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있다고하니 조심하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죽일 생각인가..”

“필요하다면요.”

“휴...다시 생각해보게 그 아이가 무슨 짓을 했다 하더라도 자네의 아들이 아닌가..”

하노인으로선 자신의 친아들을 죽인다는 말에 한 숨을 내쉬며 말하니 구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파의 일이 더 중요합니다.”

“그 아이는....아니네. 지금 자네에겐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들을 생각을 하지 않겠지. 하지만 이것은 알아두게...난 그 아이가 죽는 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만은 않을 것일세..”

“하노!”

“이건 자네와 그 아이를 위한 일일 뿐 아니라. 비도문을 위해서이기도 하네, 잘 쓴다면 큰 일을 할 아이인데, 왜 그렇게 그 아이를 박대하는가.”

하노인의 말에 혈비도 무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돌릴 뿐이였다. 하노인으로선 어쩌다가 두 사람의 사이가 이리 되었는지 안타까울 뿐이였다.

“그럼 난 이만 가보겠네.”

“조심히 가십시요.”

가겠다는 말에 무랑은 정중히 인사를 하니 하노인은 잠시 그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하노인이 나가자 무랑은 잠시간 침묵 속에 있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멸천십군을 불러라.”

[예.]

그의 말에 천장에선 전음이 들려오더니 잠시 후 그 흔적마저 사라졌다.

반각 정도의 시간이 지났을까 혈비도 무랑이 있는 방으로 열명의 무인이 들어서니 그들 모두는 붉은 가면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그 중 가면의 이마 부분에 일(一)자라 적혀 있는 무인이 앞으로 와서는 정중하게 포권을 하며 말했다.

“부르셨습니까.”

“정무맹이 너무 날뛰고 있구나...그들의 위세를 조금 꺽어 주도록 하거라.”

“예.”

“이 일에서 필요하다면 본문의 후계자와의 싸움도 허락한다만 너희들의 재량에서 필요한 경우에 한할 뿐이다.”

“예.”

“마지막으로 본 문의 배신자 구궁을 발견하면 죽여라.”

무랑의 입에서 구궁을 죽이라는 말이 나온 순간 멸천십군의 몸은 흠찟하는 모습을 보이니 그들 역시 구궁이 무랑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물러가라..”

한참을 망설인 그가 대답을 하자 무랑은 손을 저어 물러가라하니 멸천십군은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는 방에서 물러갔다.

밖으로 나오자 삼(三)자가 쓰여져 있는 복면인이 일자의 복면인을 보며 말했다.

“오빠. 정말 화영오빠를 죽일 생각인가요?”

삼자의 복면인은 놀랍게도 여자였으니 그 목소리가 예띈 것이 약관의 나이 정도로 느껴지고 있었다.

그녀가 말한 화영이란 이름은 구궁의 비도문 내에서의 이름이였으니 가문의 적에 올라있는 이름이 바로 장화영이였다. 멸천십군 모두가 방계에 속한 인물이였기에 그의 진명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주께서 명하신 일이니 어쩔 수 없지 않느냐..”

“하지만...”

“민아야. 네가 화영과 친했다는 것은 알지만, 문파를 재건하는 것이 우선이다. 문일이 본문의 일을 방해한다면 어쩔 수 없이 죽일 수 밖에 없단다..”

“....알겠어요.”

그의 말에 민아라 불리는 복면여인은 한참을 침묵하고 있다가 말을 이으니 그녀 역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야기가 끝나자 그는 구(九)와 십(十)이 쓰여저 있는 복면인을 보며 말했다.

“너희 두 사람은 소문주님의 곁에 있어라. 필요하면 소문주와 겨루어도 된다 했지만, 될 수 있는 한 가문의 사람들끼리의 싸움은 없는 것이 좋을테니 위치를 파악해두는 것이 좋을 듯 하구나.”

“알겠습니다.”

“잠깐요.”

두 사람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 때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던 민아가 그의 앞에 서며 말했다.

“무슨 일이냐?”

“그 분께는 제가 가고 싶어요.”

“민아 네가?”

“예. 저는 그 분이 정녕 본문의 후계자로서의 자격이 있는지 알고 싶다고요.”

“민아야.”

“알아요.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된다는 것을요. 하지만 화영 오빠마저 희생시킬 정도로 문주님이 그를 위하는지 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고요.”

“....휴..알았다. 그럼 두 사람과 함께 소문주님에게 접근하도록 해라.”

“고마워요. 오빠.”

그로서는 여동생의 고집을 꺽을 수 없었으니 지금 그녀의 부탁을 거부한다해도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소문주에게 갈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무맹의 싸움에서 큰 공을 세운 장천은 청의단(淸義團)에 단주의 직위에 올라 있었으니 정무맹 십이단의 단주가 모두 삼, 사십대 이상의 사람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장천이 단주에 올랐다고 하는 것은 상당한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장천이 맡은 청의단은 정무맹의 있는 문파들의 후지기수가 모인 곳이라 할 수 있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많은 만큼 불화도 상당히 심했다.

그 중 무림 명문과 정무맹의 가입한 중소문파들 간에 생기는 불화가 가장 심하다고 할 수 있었으니 청의단은 사실상 세개로 분리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먼저 화산파의 매화검(梅花劍) 악의명(岳擬明)을 중심으로 한 명문정파의 무리들로 그 숫자는 천의단의 오분의 일 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하나하나의 무공이 상당했다.

두번째는 하남 영하문(潁下門)의 소주 백의협객(白衣俠客) 이백(李白)을 중심으로 한 중소문파의 무리들이였니, 의협으로 이름이 난 이백의 아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만들어진 문파였다. 천의단의 오분의 삼이상의 무인들이 이들에 해당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무리가 바로 청의단의 단주인 장천을 중심으로 한 무리들이였니, 쌍도문의 곽무진과 그의 의형제인 동방명언, 데비드가 있었고, 공동의 고도리와 과거 냉혈살마의 싸움에서 만났던 항산파의 속가제자 유향과 소림의 정운, 정필이 그들과 같이 하고 있었다.

장천이 속한 무리가 그 숫자가 가장 적다고는 하지만, 이들의 무공은 명문정파의 후지기수가 따르지 못할 정도로 뛰어나고 있었으니 무공으로만 본다면 서열 십위의 인물 대부분이 이들이라 할 수 있었다.

멸천문과 싸우기 전에 청의단은 효율적인 싸움을 위하여 진법을 익히고 있었는데, 이들 무리들에게는 서로에 대한 반발심이 강했기 때문에 진법의 수련은 그리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다.

천의단의 단주의 천막에서는 장천들이 지금의 사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소림의 정운스님께서 악의명과 곽소협께서 이백소협과 친분이 있어 어떻게 끌어 갈 수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두 무리들의 다툼은 더욱 심해지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동방명언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어젯밤에는 장천 일행들이 모르는 사이에 두 무리들이 서로 충돌을 하여 청성의 후지기수 한명과 중소문파의 여덟명의 무사들은 중상을 입었다.

이런 일로 이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으니 어느 누구도 쉽게 이것을 해결한 방도를 생각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멸천과 정무맹의 작은 축소판 같군.”

외팔이가 된 공동의 고도리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이니 이러한 분란은 현재의 무림의 상황과 틀린 것이 없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러한 것을 알면서도 서로간의 자존심 때문에 손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 눈앞에 자신들의 모습이 보임에도 그것을 고치려하지 않다니....휴...”

“이럴 때 요사형이라도 있다면 어떻게든 처리해 줄 수 있을텐데 말입니다.”

현재 쌍도문의 요운은 임아란, 유능예등과 함께 실종된 상태였다. 하오문의 정보망으로 무림 전체를 살피고 있었지만, 소식조차 알 수 없었으니 장천의 답답함은 이런 것에도 있었다.

지금은 나이가 어느정도 들어 무림의 뛰어난 후지기수들을 모아 이름을 붙이는 강호오룡의 이름이 사라지긴 했지만, 그 덕에 명문정파와 중소문파들 사이에 상당한 친분을 가지고 있는 요운이 있었다면 지금의 분란은 어느정도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그 만큼 발이 넓고 상황대처에 뛰어난 인물이 요운이였으니 그러한 인물이 행방불명이라 하는 것은 정무맹으로선 상당한 손실이라 할 수 있었다.

“요즘에는 악소협 역시 저희들과 멀리하려 하는 모습이 보이니 시간이 지나면 이 일은 더욱 처리하기 힘드리라 생각합니다.”

“예.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모두들 하루빨리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된다는 것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차라리 청의단을 두 무리로 나누는 것이 어떻습니까?”

“두 무리로 나눈다면?”

“단시일 내로 악소협의 무리와 이소협의 무리가 서로 협력을 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이들을 나누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입니다. 저희들이 나누어 이들 무리들로 들어간다면 어느정도 가능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소림의 정필의 말에 몇몇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는데, 고도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것은 안됩니다. 물론 두 무리로 나눈다면 당분간은 청의단을 효율적으로 움직일 수는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는 없겠지요. 제 이의 멸천문을 만들 생각입니까?”

“.....”

고도리의 말에 다른 이들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으니 이대로 멸천을 몰아내고 정무맹이 다시 무리의 평화를 되찾는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 후지기수들이 각 문파를 이끌었을 때 또 다시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될 것은 뻔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은 모든 것이 끝난 후의 일이 아닙니까?”

정필은 시간을 두고 해결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의 말에 고도리는 고개를 저었다.

“눈앞에 있는 것을 해결하는데 급급하다면 더 큰 것을 볼 수 없습니다. 지금이야 어느정도 해결 할 수 있다하더라도 나중에 이들 사이가 훨씬 더 벌어진다면 지금 그것을 처리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고도리의 말이 틀린 것이 아닌지라 정필도 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을 뿐이였다. 하지만 이렇게 시간을 지나게 된다면 이것도, 저것도 되지 않는다는 것은 알고 있었기에 정필이나 고도리 역시 한 숨만 내쉴 뿐이였다.

그 때 천막의 밖에서 한 청년이 들어와서는 장천의 앞에 포권을 하며 말했다.

“단주 맹에서 사람이 오셨습니다.”

“들어오시라하게.”

“예.”

장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청년은 포권을 하며 밖으로 나가니 잠시 후 열명 정도의 무리가 천막 안으로 들어왔다.

이들의 선두에는 익히 얼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으니 무당의 청운선인이였다. 운학선인은 과거 정무맹이 무당산에 갇혀 있을 때 뛰어난 경공술로 개방의 사람들과 함께 외부에 소식을 전달하던 사람이였으니 현재 정무맹 비천단(飛天團)의 단주의 직을 맡고 있었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장천은 자리에서 일어나서는 청운선인에게 포권을 하며 인사를 했다.

“비천단의 단주님께 인사드립니다.”

“청의단의 단주님은 그간 별고 없으셨습니까.”

“아직 본격적으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 아닌지라 몸이 뻐근할 뿐이지요.”

“하하하! 젊은 나이이시니까요.”

“자 이쪽으로...”

장천은 청운선인에게 상좌를 권했는데, 그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같은 단주에 불과할 뿐인데, 제가 어찌 상좌에 앉을 수 있겠습니까? 상좌의 자리가 무거워 마음 역시 편안하지 않을 듯 하니 이 자리에 앉도록 하지요.”

상좌를 거절한 청운선인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 앉으니 장천으로선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상좌에 앉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런데 비천단의 단주께서 어인 일로 청의단에 찾아 주셨는지 모르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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