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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 감독의 믿음
사직에서 열린 이글스와의 시리즈 3연전은 결국 자이언츠의 위닝 시리즈로 끝이 난다.
강호의 4타점 활약으로 9대 7, 진땀 승을 얻어낸 28일 경기에 이어 29일 경기 역시 6대4로 박빙의 승부를 벌인다.
시리즈 마지막 경기이자 6월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투혼을 발휘한 이글스 타선의 맹활약으로 5대 7, 석패를 당하고 만다.
그러나 올 시즌 이글스와의 팀 전적에서 9전 8승 1패로 압도적인 상대 전적을 이어나가게 된다.
뿐만 아니라 자이언츠는 이글스와의 시리즈에서 위닝 시리즈를 거두며 시즌 전적 38승 36패로, 베어스에게 위닝을 빼앗긴 히어로즈를 바짝 뒤쫓고 있었다.
39승 36패를 기록하고 있는 히어로즈를 반 경기 차이까지 추격하고 있는 것이다.
자이언츠 팬들의 입장으로서는 상위권을 바라보는 팀 성적에 가슴이 설레었다.
"와아, 이러다 1위까지 올라가는 건 아니겠지? 다음 주에 바로 4등으로 올라탈 것 같은데?"
"야야, 설레발 치지 마. 괜히 설레발치다가 재수 옴 붙을라. 그런 거 예상할 시간에 사직구장에 직관이나 가라. 너는 경기장은 가지도 않으면서 꼭 그러더라."
팬들은 자이언츠가 주간 성적 3승 1패를 거두고 4위 자리를 노린다는 사실에 가슴 설레 한다.
시즌이 중간을 넘어선 시점에서의 상위권 도약은 여러모로 의미하는 바가 컸기 때문이다.
"이 참에 4위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3위 정도까지는 올라서야지. 후반기 되면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승패 마진 벌어놓을 수 있을 때 제대로 벌어놔야 해."
"그건 그래. 여태껏 자이언츠가 후반기에 말아먹은 시즌이 어디 1, 2년이야? 쭉 그래왔잖아. 날 더워지기 전에 부지런히 벌어둬야 후반기에 페이스 떨어져도 가을 야구라도 하지."
팬들은 선수단이 조금 더 분발해주기를 기대하며 자이언츠의 기사마다 댓글을 달며 의견을 개진한다.
그런데 어느새 팬들의 댓글은 다른 주제로 전환되어 있었다.
"지금 백강호, 권대우 올스타 투표는 하고 여기서 이러고들 계시는 겁니까?"
"윗님, 두 명 더 있습니다. 강민수, 유성철, 백강호, 권대우죠. 모두 올스타 투표하러 갑시다!"
"백강호 선수하고 권대우 투수는 올스타 자격이 있어도 강민수하고, 유성철은 좀 약하지 않나? 강민수는 타율이 2할 7푼이고, 유성철은 타율이 3할이라도 다른 게 좀 약하잖아?"
"그래도 투표는 해줘야지. 우리가 투표 안해주면 포수 자리는 베어스 양희지한테 뺏기고, 외야수는 민정현이나 김재성, 바티스타, 이대현 같은 선수들한테 뺏긴다고. 다른 팀 선수 주느니 우리 팀 선수를 챙겨줘야지!"
"댓글 달 시간에 투표하러 갑시다. 7월 1일에 투표 마감입니다!"
팬들은 자이언츠의 인터넷 기사에서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하며 곧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올스타 투표에 우르르 몰려가 강호와 대우, 민수와 성철의 이름을 클릭한다.
여기서 몇몇 양심 있는 팬들은 베어스 포수 양희지나 다른 팀 외야수들에 비해 올 시즌 성적에서 뒤쳐지는 포수 강민수와 외야수 유성철의 이름을 제외하기도 했다.
냉정한 팬들이 보기에는 올 시즌 자이언츠에서 올스타라고 부를만한 선수는 강호와 대우, 두 선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팀 팬들 중에 다소 객관성을 가진 팬들 역시 강호와 대우의 이름을 클릭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은 지나 7월 1일이 되어 올스타 투표는 모두 마감된다.
따로 올스타 선수를 발표하지 않아도, 이미 득표 수에서 올스타로 선정된 선수들을 모두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강호와 대우에게 주변의 칭찬과 찬사, 장난기 어린 질투의 시선이 쏟아진다.
"강호 후배, 이 정도면 진짜 한 턱 쏴야하는 거 아냐? 다른 것도 아니고, 올스타잖아. 그것도 유격수 포지션에서 올스타! 우리 팀에서 유격수 올스타가 몇 년 만에 나온 건줄 알아? 게다가 데뷔 시즌 올스타라니."
문표는 드림 팀 올스타로 선정된 강호에게 축하의 말을 건네 온다.
드림 올스타 팀은 자이언츠를 시작으로 라이온즈, 베어스, 와이번스, 위즈의 다섯 개 팀으로 구성된 팀이었다.
강호는 모든 포지션의 선수들 중에서 가장 많은 표를 얻어 올스타 유격수로 이름을 올리게 된 것이다.
올해가 강호의 데뷔 시즌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상당한 영광이었다.
"뭘요. 저만 된 게 아니라 대우도 올스타로 선정됐지 않습니까? 대우도 데뷔 시즌입니다. 나이는 스무 살이고요. 저보다는 대우가 더 임팩트 있는 올스타 선정 아닙니까?"
강호는 올스타 선정으로 인해 자신에게 쏠리는 시선을 곁에 있는 대우에게로 옮겨 준다.
지금 선수들이 있는 곳은 원정지의 호텔 숙소였고, 장소는 강호의 숙소 방이었다.
이미 원정 버스에서 올스타 투표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 강호와 친한 선수들이 우르르 몰려와 축하의 말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문표는 강호와 대우가 '올스타 빵'을 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강호 후배랑 대우 후배가 반씩 부담하기로 하고, 밖에 나가서 막걸리 한 잔 하자니까. 올스타 되실 분들이 막걸리 정도는 사야하는 거 아냐? 내가 와인 마실려다가 막걸리 정도로 봐주는 거야."
문표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자신의 말이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은 원정 중이었고, 원정 중은커녕 시즌 중에는 강호가 술 한 모금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문표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문표 역시 시즌이 진행 중일 때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러니 강호에게 술을 사라는 요구는 그저 말 뿐이었던 것이다.
그 점을 알고 있는 강호로서는 문표의 요구에 그저 빙긋이 웃어 보인다.
"시즌 끝나면 사지 말라고 해도 사겠습니다. 시즌 끝날 때까지만 참아주십시오."
"별 수 없지. 강호 후배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내가 시즌 끝날 때까지만 참아볼게. 그런데 우리가 가을 야구를 하면 시즌이 더 길어지는 거잖아? 이거 강호 후배한테 술 한 잔 얻어 마시려면 겨울까지 기다려야 하는 거 아냐?"
문표의 되물음에 숙소 방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선수들이 웃음 짓는다.
그의 말을 들으니 가을 야구가 코앞으로 다가온 것만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문표의 말은 항상 장난기가 다분하기는 해도, 그 속에는 특유의 유쾌함이 담겨 있어 듣는 이들을 웃음 짓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런 이유라면 저는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습니다."
한 편에 앉아 있던 안민경 포수가 웃음 기 띤 얼굴로 입을 연다.
다른 선수들의 생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은지 민경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다.
운동선수들 중에서는 시즌이 진행되고 있음에도 술과 담배를 멀리하지 않는 선수들도 있었다.
경기 전날 만취할 정도로 마시고, 경기장에 나타나 술 냄새를 풍기는 고참 선수들도 많았다.
자이언츠 내에도 그런 선배 선수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시즌 중에는 술, 담배를 멀리하는 선수들 역시 존재했고, 그들은 강호와 문표를 중심으로 뭉치며 선수단에 긍정적인 바람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강호는 술, 담배는 물론 탄산음료나 튀김 음식, 여자까지 멀리하며 오직 야구 하나만을 생각하며 시즌을 보내고 있었다.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강호 선배가 데뷔 시즌 임에도 불구하고, 올스타에 선정될 수가 있었던 거지. 나 역시도 그렇고.'
한 편에 앉아 있던 대우는 강호를 향해 존경의 눈빛을 보내며 생각에 잠긴다.
아직 어린 대우로서는 올스타에 오른 사실이 얼떨떨한 상태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잘 알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강호와 같은 방을 사용하는 룸메이트가 되지 않았더라면, 지금의 영광은 없었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노선을 잘 정한 거야. 강호 선배를 따라하려고 애쓰다보니 어느새 올스타 자리까지 오르게 된 거야. 이전에도 그래왔지만 앞으로도 강호 선배의 곁에서 노력하다보면 올 해 한해로만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이름을 떨치는 투수로 커나갈 수 있을 거야.'
대우는 강호를 바라보는 눈빛을 거두며 잠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다.
그가 그리는 미래는 찬란한 빛깔을 담은 미래였고, 지금처럼만 경기를 풀어나가다 보면 고공행진해 나가는 팀 성적과 함께 자신의 미래 역시 보장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생겨난다.
그리고 7월 초부터 시작된 트윈스와의 잠실 경기, 그리고 히어로즈와의 수원 경기를 4승 2패로 마무리하며 팀이 4위로 도약할 때만 해도 대우의 기대는 빠르게 현실이 되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9일부터 이어진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2승을 거둔 후 11일 타이거즈 경기, 대구에서 열린 라이온즈 경기를 시리즈 스윕 당하며 뜨겁게 타오르던 기세가 한풀 꺾이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히어로즈에게 다시 4위 자리를 내어주며 다시 팀 순위 5위로 내려 안게 되었다.
여기서 16일부터 열린 다이노스와의 시리즈 네 번째 맞대결에서 16일, 17일 경기를 모두 패하며 올 시즌 처음으로 6연패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시즌 초반부터 불안했던 불펜진이 날씨가 더워지며 불안감을 내보이더니, 올스타로 선정된 대우마저 흔들리며 모든 불펜들이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이로 인해 괜찮은 활약을 펼치던 자이언츠 선발 투수들도 심리적인 불안을 느끼며 팀 방어율이 눈에 띄게 나빠지고 말았다.
당연히 팬들의 여론이 나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거 뭐야? 누가 자이언츠 아니랄까봐 기대 좀 했기로서니 귀신같이 자기 자리 찾아가려고 하네. 6연패는 그렇다고 치고, 다이노스 하고 전적은 좀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냐? 시즌 전적 2승 9패가 뭐야?"
"윗님, 당신이 뭔데 6연패를 그렇다고 치는 겁니까? 한동현 감독 체제에서도 6연패는 없었어요. 5할 승률에서 +6까지 벌어놨던 승률도 다 까먹고 다시 5할 승률로 복귀한 거라고요. 이제 정확하게 승률 5할이네. 5위 자리 안 뺏긴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자이언츠는 원로 감독으로도 별 수 없는 건가? 나는 자이언츠가 매년 8등하는 게 신인 감독을 임명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프런트 탓도 못하겠네. 손성조 감독이 이번 시즌 말아먹으면 이제 자이언츠 팬 안 해야겠네. 경기 보는 낙이 없어."
"윗님. 그래도 힘을 냅시다. 아직 백강호가 있잖아요. 우리의 4할 타자 백강호 파이팅! 이제 너 밖에 없다!"
"그래, 우리 팀에서 기대할 건 백강호 선수 밖에 없네요. 그런데 백강호 4할 타율도 이제 위험합니다. 타율이 4할 1푼 대까지 떨어졌잖아요. 올스타 브레이크 끝나고 후반기 되면 3할대로 떨어지겠네요.
"재수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 시간에 물 떠놓고 치성이라도 올려! 백강호 4할 유지되게 해달라고."
팬들은 6연패라는 충격적인 주제에 각자의 의견을 내놓으며 갑론을박을 벌인다.
일부 팬들은 손성조 감독에 대한 책임론이나 그를 임명한 프런트의 책임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손 감독 역시 연패가 이어지며 자신에 대해 좋지 못한 여론이 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또한 그것은 자이언츠의 코칭스태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든 코칭스태프들을 대표해서 김민철 수석이 총대를 메고 나섰다.
한 때 감독 대행 자리에 있었던 김 수석은 코칭스태프의 입장과 손 감독의 입장 모두를 이해하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것이다.
"감독님, 선수 엔트리 개편이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어차피 9월달 확장 엔트리에 들어가려면 2군 선수들을 미리 워밍업 시킬 필요도 있고요."
김 수석이 조심스럽게 코치들끼리 의논했던 내용을 전한다.
선수들에 대한 자료를 분류하고 있던 손 감독은 김 수석의 조심스러운 제안에 작게 웃음 짓는다.
"엔트리를 개편하자고? 지금 감을 잡아가고 있는 선수들을 왜 개편하나? 기다려 봐. 잠시 흔들리던 녀석들은 다시 제자리를 되찾을 테니까."
손 감독은 선수들을 믿는다는 말로 김 수석의 제안을 거절한다.
김 수석은 그런 손 감독을 바라보며 복잡한 생각에 잠긴다.
'다시 자리를 찾을 녀석들이면 6연패까지 하지는 않았겠죠. 이대로 다음 경기까지 내어주면 7연패입니다. 이런 분위기로 올스타 브레이크가 지나면 후반기 성적도 장담할 수 없는 겁니다!'
김 수석은 손 감독에게 직접 전하지 못한 말을 속으로 삼키며, 결국 발걸음을 돌린다.
연패가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아직 팀 순위는 중위권인 5위를 유지하고 있었다.
손 감독의 말대로 조금은 더 지켜볼 여유는 있었던 것이다.
'그 여유가 후반기가 되면 사라지게 되는 겁니다. 감독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두신 계획이 있다면 조금 더 빨리 실행에 옮겨야 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올 시즌 가을야구도 물거품이 되 버리는 거니까요.'
김 수석은 손 감독에게 진짜 전하고 싶은 말을 홀로 삼키며, 감독실에서 물러난다.
손 감독은 그런 김 수석의 뒷모습을 힐끗 바라 본 후, 들고 있던 볼펜을 내려놓는다.
책상 한 편에 놓인 기록지에는 4대 9로 패배한 16일의 기록과 3대 14로 대패한 어제의 기록들이 놓여 있었다.
손 감독은 그 기록지에 잠시 시선을 두다 조용히 눈을 감는다.
'이런 시기가 시즌 중에 한 번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막상 그 시기를 지나니 나조차도 의심이 드는구나.'
손 감독은 김 수석이 전해주고 간 심마로 인해 잠시 고민에 빠진다.
그러다가 갑작스럽게 눈을 뜨고는 한 선수의 기록지를 손에 든다.
백강호.
기록지의 시작에는 강호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4월 5푼의 정점을 찍었던 6월 타율에 비해 다소 떨어진 타율이긴 했지만, 4할 1푼 4리로 여전히 4할 대 타율을 유지하고 있었고, 홈런 38개에 65도루, 147타점, 115득점, 134안타를 때려내고 있는 강호의 세부 기록들이 눈에 들어온다.
손 감독은 스스로의 전략에 대한 의문이 들 때마다 강호의 기록지를 눈으로 읽어내며 자꾸만 찾아드는 심마를 이겨내고는 했다.
지금 역시 그러했다.
손 감독은 김 수석이 주고 간 의심이라는 감정을 강호의 기록을 확인하며 떨쳐내고 있는 것이다.
"강호야, 네 녀석이 기록하고 있는 성적들이 선수들을 믿고 시즌을 치러나가는 내 믿음에 대한 확신을 주는구나. 나는 아직 틀리지 않았다. 한 경기에서는 틀릴 수도 있는 것이 감독이라는 자리지만, 한 시즌 전체를 놓고 본다면 나는 아직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거야."
손 감독은 그렇게 홀로 되뇌며 자신의 계획에 대한 의심을 모두 떨쳐낸다.
팀이 연패를 이어나가는 상황에도 손 감독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가늠하고 있었던 것이다.
"연패는 여기까지야! 우리는 내일 경기부터 다시 승리하게 될 게야."
============================ 작품 후기 ============================
이번 추석에는 고향에 내려가지 않고, 집에서 작업을 계속하기로 했습니다.
페스티벌이 진행 중이라 추석 또한 평일과 다를 바 없이 글을 쓰면서 보낼 생각입니다.
독자님들께서는 편안하고, 즐거운 한가위 되시기를 기원하며 많은 응원 부탁드리겠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