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1/133)

우리 식구를 건드리면 (3)

「<법무법인 해결>, 대표 변호사 사무실.

“충아고등학교, 서운대 법대 출신으로 사법연수원 32기입니다. 10년간 검사 생활을 하다가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사퇴했습니다.”

“불미스러운 사건?”

“예. 주가 조작 사건을 눈감아주는 대가로 피의자의 변호사로부터 고가의 시계와 향응을 받은 정황이 드러나, 지방으로 발령 났다가 이듬해 곧바로 사직하고 변호사 개업했습니다. 사퇴 전까지는 그래도 엘리트 코스를 밟고 있는 중이었고, 현 인천지검 차장검사와 꽤 친한 걸로 알려져 있습니다.”

“사건들은요?”

“형사 사건들을 주로 하는데,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주로 아는 인맥 로비를 통해서 사건을 종결하고, 그나마 그것도 이제 약발이 다 되었는지. 사무장을 통해서 경찰서 형사들한테 뇌물을 주고 사건을 따내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번 사건하고 같은 거는요?”

“김인경 하고는 작년에 비슷한 사건으로 상대방 남자를 성폭행으로 고소한 뒤, 5천만 원 합의금을 받고 고소 취하했고. 그 외에도 지난 3년간 제가 발견한 비슷한 유형만 다섯 건이 됩니다.”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들하고 이야기해보셨나요?”

“네. 전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했고, 제게 보여준 문자 메시지 등을 확인한 결과, 무고임이 충분히 의심될만한 것들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방금 언급한 사건들 자료들입니다.”

서지우의 부탁으로 지난 몇 주간 성만희와 김인경의 뒷조사를 한 최성태는 보고를 마친 뒤 해당 증거들을 책상 위에 놓고 나갔다.

역시 최성태 사무장이다.

조사 능력에 있어서는 대한민국 최고라 할 수 있다.

파일의 내용을 꼼꼼하게 읽은 서지우는 곧바로 성만희의 사무실로 향했다.」

---*---

“누구냐니까?”

소파에 앉은 서지우는 강아지를 대하듯이 성만희를 불렀다.

“앉아봐. 할 말이 좀 있으니까.”

자기보다 열댓 살은 어려 보이는 놈이 다짜고짜 반말을 지껄이자, 성만희의 얼굴은 똥 씹은 얼굴처럼 찌그러진다.

“뭐야, 이건 또. 아! 잠깐, 너 낯이 익은데. 너···그 새끼 로펌 대표지? 맞지?”

성만희가 눈을 부라리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서지우는 꿈적도 안 하고 오히려 들고 있던 서류철을 탁자 위에 ‘툭’ 던지며 명령했다.

“성만희 씨, 이리와 앉으시죠. 당신 미래에 관한 이야기니까.”

찔리는 게 많은 자라서 그런가, 그가 가져온 것이 무언인지 궁금한 성만희는 씩씩거리면서도 시키는 대로 소파에 앉았다.

“당신 뭐야?”

“내가 누군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들고 온 게 무엇인지가 중요하지.”

안 그래도 그게 제일 궁금하다.

“이게 뭔데?”

“당신 명줄.”

“뭐?”

애써 아닌 척, 여유로운 척 위선을 떨어보지만, 철 안에 들어있는 서류가 무언인지 당장 알고 싶다. 다리를 떨던 성만희는 탁자 위의 서류철을 휙 낚아채서는 서둘러 그 안의 내용을 물을 확인했다.

그의 낯빛이 서서히 달아오른다.

“너 이 새끼, 이게 다 뭐야? 뭐 하자는 거야? 내 뒷조사하고 다닌 거야!”

“고작 삼 주 만에 찾아낸 것들만 그 정도이니, 제대로 파면 얼마나 될까?”

“너 지금 내가 니네 로펌 변호사 상대로 고소 진행이라고 이러는 거야? 이 새끼들도 이거 양아치들이구먼. 엔터테인먼트 전문 로펌이네 뭐네 하길래 젊은 놈들이 뭉쳐서 일 좀 하는 줄 알았더니. 밑에 있는 놈은 술집 여자 꽁무니나 따라다니는 놈이고, 대표라는 놈은 그 새끼가 싼 똥 치우느라 이런 깡패짓이나 하고 다니고. 조사했으니까, 네가 더 잘 알겠네, 내가 누구랑 연줄이 있는지.”

“성만희 씨.”

“하- 나이도 어린 새끼가 아까부터 반말을 찍찍해대지 않나. 어디 까마득한 선배 이름을 막 부르고 있어. 야, 너 몇 기야?”

“연배에 걸맞은 품위를 보여야 존대를 해주는 성격이라서.”

“야!”

“김인경 고소, 취하해.”

“뭐? 하하하. 내가 미쳤어? 그리고 부탁은 그렇게 하는 게 아니야. 무릎을 꿇고 하는 거지. 어디 배운 것 없는 새끼처럼 선배한테 건방지게 이래라저래라야.”

씩씩거리는 성만희를 잠시 바라본 서지우는 더 말하지 않고 그를 물끄러미 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소송 가면, 이 사건들 다시 다 재조사하게 될 거야.”

“흥. 이깟 것 가지고 날 어쩔 수 있을 것 같아.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나대기는···.”

“고작 삼 주 만에 찾아낸 게 이 정도라고. 자신 있으면 해 봐. 내 사람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줄 테니까.”

그렇게 짧은 경고를 남기고는 사무실을 떠났다.

그가 나가자, 참고 있던 성만희는 서류철을 바닥에 집어 던졌다. 서지우 앞에서는 아닌 척 여유를 부렸지만, 그가 가지고 온 자료들은 그를 충분히 옥죌 수 있는 증거들이었다.

“아이 씨발!”

---*---

2019년식 BMW M5의 중고시세를 확인하던 정도는 동기로부터 전화를 받고 ‘막내’ 파트너 변호사의 사무실로 달려갔다.

“김 변, 고소 취하됐대!”

“네?”

“걔가 성폭행 고소 취했다고.”

“진짜요? 잘됐네요!”

금세라도 눈물을 뚝뚝 흘러내릴 것 같다. 지난 몇 주간 마음고생이 심했다. 아리는 얼른 다가가 그의 어깨를 다독여준다.

“고마워, 김 변. 다 김 변 덕분이야.”

“제가 뭘요.”

“아니야, 동기한테 다 들었어. 김 변이 설득한 거라며. 정말 고마워.”

“아니에요. 정말 다행이에요.”

“내가 진짜 이 은혜는 평생 안 잊을게.”

“아- 진짜, 진짜 아니에요.”

아리의 손이 따뜻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동안 뭉쳐있던 가슴의 덩어리가 한순간에 풀려서였을까, 정도는 순간 자신의 비밀을 지켜주고 남모르게 도와준 후배에게 자신이 얼마나 고마워하고 있는지 표시하고 싶었다.

왜 그런 기분 있지 않나?

정말 어려운 사건이 해결되었는데, 그 사건이 해결되기까지 옆에서 함께 걸어주고 응원해준 사람을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

그래서 다른 의도 없이 단지 자신의 진심을 표하고자 그랬을 뿐인데···.

“고마워! 진심 고마···악!”

예고 없는 허그(hug) 시도에 당황한 아리는 본능적으로 달려드는 남자의 가슴을 확 밀쳐버렸다.

쿵!

갑작스러운 상황에 둘 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정도와 아리는 반쯤 입을 벌린 채 몇 초간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정도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은 상태로, 아리는 그를 향해 엉거주춤 두 팔을 내밀고 있는 상태로.

1초, 2초, 3초···.

아무래도 계속 가만히 있었다가는 자신의 행동이 의심을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든 아리는 정색을 하고 말했다. (그래야, 진심이 통할 것 같아서.)

“선배님, 저 남자끼리 허그 하는 거 존나 싫어해요. 극혐.”

“아···그랬구나···미안해. 난 그것도 모르고···.”

---*---

형사 소송 전문,

성만희 변호사 사무실.

쿵!

화가 난 인경은 노크도 하지 않은 채, 사무실로 들어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오빠!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취하라니? 1억 2천만 원짜리라며? 저쪽에서 합의하자고 했다며?!”

성만희 역시 그녀를 보는 시선이 사납다.

“됐어. 물 건너갔어.”

“그게 무슨 개떡 같은 소리야. 나 차 뽑았다고. 그 돈 필요해.”

“조용히 해. 어디서 소리를 질러.”

“오빠!”

“물 건너갔다고! 차는 영업소에 돌려주고 환불받던지, 아니면 중고로 팔아.”

“이 오빠, 지금 뭐래. 됐어. 하기 싫으면 다른 변호사 쓸 테니까, 오빠는 손 떼, 그럼.”

“야!”

“왜!”

“다 끝났어, 이 년아. 그쪽에서 이미 눈치깠어.”

“끝나기는 뭐가 끝나. 피해자인 내가 안 끝내겠다는데.”

“피해자는 무슨···사기 친 주제에.”

“오빠! 진짜 이러기야!”

“야, 내가 네 동생인가 하는 애 입단속 시키라고 했지. 걔가 증인진술서 냈어. 네가 무고하는 거라고.”

“뭐?”

“걔가 제 발로 경찰서 찾아가서 니가 구라까는 거라고 다 까발렸다고, 이 년아.”

“이디, 이 쌍년이.”

---*---

법무법인 해결,

대표 변호사 사무실.

최성태 사무장이 팔로우업 보고를 하고 있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정윤하라는 여성이 경찰서에 자진 출두에 김인경과 나눴던 대화에 대해 진술했고 카톡 기록도 제출했습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전개였다.

만약 성만희가 경고대로 소송을 취하하지 않는다면, 성만희와 김인경을 상대로 전면전을 준비하고 있던 서지우는 잠시 벙찐 느낌을 받았다.

“김 변호사가 만나 설득했다는 그 여성이죠?”

“예.”

‘설득이 통한 걸까? 그런 어설픈 설득이.’

“김인경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성만희를 만나고 나온 이후에 윤하라는 여성을 찾아갔는데, 이미 가게 그만두고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간 이후라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흠···.

“알겠어요.”

“그럼 그건 성만희와 김인경을 조사한 것들은 어떻게 할까요?”

자기 식구를 그렇게 괴롭혔는데, 거기서 그만둘 서지우가 아니다.

“성만희 비리 사건들은 증거와 함께 변호사협회에 익명으로 제보해주세요. 그리고 김인경 이전 무고 사건 증거 자료는 당시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한테 전해주시고요.”

“예, 알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사무장님.”

“아닙니다. 제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최성태 사무장이 나가고, 서지우는 ‘막내’를 떠올렸다.

피식-

정공법이 통하지 않는 세상이라고 생각했는데···.

신기한 놈이 들어왔다.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김아인 변호사 좀 내 방으로 오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딸깍.

가진 게 완전기억능력 말고도 또 있을 것 같다.

---*---

“이모님, 수고하셨어요. 이제 퇴근하셔도 돼요.”

“아니야. 돈 받고 하는 일인데 뭐. 그럼 쉬어.”

퇴근한 아리는 양복을 벗고 샤워실로 향했다.

피곤했지만, 늘 하던 대로 팔굽혀펴기 20회와 스쿼트 100회를 하고 나서야 욕조에 들어간다.

누가 보기에는 고작 20회와 100회이지만, 처음에는 10개도 못했던 것들이다.

이제 마른 그녀의 몸에도 근육이 붙어간다.

샤워를 마치고 나온 아리는 우유 한 잔과 토스트를 만들어 먹었다.

너무 맛이 좋다.

몇 달 전만 해도 계란 한 알조차도 사치였는데, 이제는 냉장고가 신선한 과일, 우유 등 먹을 걸로 가득 차 있다.

허기를 채운 아리는 핸드폰에서 윤하의 문자를 찾았다.

몇 개월 전, 그녀가 일하는 술집에 일자리를 알아봐 주겠다는 문자를 주고받은 이후, 연락이 뜸해졌다.

아리가 관심이 없다고 답하자, 무안해진 윤하가 더는 연락하지 않은 것이었다.

까톡.

[아리: 윤하야.]

메시지를 옆에 숫자가 사라졌지만, 대꾸는 없다.

[아리: 그때 고마웠어.]

[아리: 같이 밥 먹자고 해줘서.]

메시지를 읽었지만, 여전히 없는 답장.

[아리: 언제 또 밥 한번 같이 먹자.]

아리는 그녀가 진실을 말해줘서 고마웠다.

어려운 선택이었음을 그녀도 알았다.

옳은 일이라고 언제나 쉬운 거는 아니니까.

마음은 당장 달려가 손을 잡고 인사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아리는 그녀에게 문자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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