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거 없는 소송
「의 새로운 OTT ‘티빅스’ 출범도 하기 전에 난항···200억 프로젝트 ‘원나잇 인 라스베가스’ 표절 시비. 법원 가처분 명령에 제작 전면 중단.」
민태이가 다녀간 후 며칠 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와 <영화사 청아>를 상대로 제작 중지 가처분 명령을 내렸다.
송달도 되기 전에 가처분 명령에 관한 뉴스가 유명 포털의 머리기사로 떠올랐다.
“이건 뉴스를 띄우려고 명령을 신청한 거 같은데요.”
<법무법인 해결>에서는 대책 회의가 벌어졌다.
“작품은 구했어?”
“아니요. 11년 전에 국내 출판사를 통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고는 하는데, 출판사는 망해서 없어졌고 책도 별로 인기를 끌지 못해서 시중 서점에서는 없습니다.”
“헌책방은?”
“안 그래도 지금 박 대리랑 창현이가 구하러 다니고 있습니다.”
가처분 명령을 신청한 사람은 미국의 한 이름없는 작가였다.
십여 년 전, 라스베가스에서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지는 연인에 관한 소설을 썼는데, 그게 나름 현지에서 반응이 좋아 국내에서도 출간이 됐었다.
그러나, 번역도 엉망이었고 출판사가 워낙 영세한 곳이라 몇백 부 팔지도 못하고 사라졌다.
“<법무법인 율지>에서 신청서랑 함께 제출한 부분은?”
“몇 장 안 됩니다. 제출한 부분을 읽어봤는데, 비슷한 거라고는 솔직히 라스베가스에서 우연히 만나 남녀가 사랑에 빠진다는 거랑 여자가 남자의 도박판에 자신의 약혼반지를 건다는 것밖에 없습니다. 솔직히 그런 설정은 다른 작품들에서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뻔한 설정이고, 고작 제출한 열 몇 장 가지고 법원이 가처분을 내렸다는 게 이해가 잘 안 갑니다.”
“같은 문장 있었어?”
“아니요.”
“확실해?”
“김 변이 확인했습니다.”
그럼 믿을만하다.
“김 변은 뭐래?”
“방금 말씀드린 거 이외에 비슷한 점을 찾지 못했습니다.”
문학 작품에서 표절 시비는 왕왕 있는 사건이다.
특히 드라마 표절 시비는 더 많다.
법적으로 저작권 보호 대상은 창작성인 인정되는 표현이다. 아이디어나 이론일 때는 설사 독창성이 있다고 해도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문장을 베꼈으면 표절이고 그렇지 않으면 아니라는 아니라는 주장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부 옳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면 문장을 그대로 베끼지 않았지만, 설정, 캐릭터, 배경, 줄거리 및 전개 과장까지 전부 차용했다면, 그건 표절이 아닐까?
그걸 표절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판단할 수 있는 변호사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검증 방법이 ‘실질적인 유사성’ 테스트다.
두 저작물 사이에 “실질적인 유사성”이 있는지 판단하여 표절 시비를 가리는 것. 그리고 이때 고려해야 할 것은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해 보아야 한다.” 「대법원 2013. 8. 22. 선고 2011도3599」
자, 그러면 또 똑같은 문제로 돌아간다. 어디까지가 표현이고 어디까지가 아이디어인가?
그리고 기존에 존재하는 창작물에 얼마만큼 더 독창적인 인풋을 넣었을 때 그것을 별개의 창작물로 인정해줄 수 있는 것인가?
어려운 문제다.
저작권 전문 변호사도 쉽게 법원의 판단을 예측할 수 없다.
그렇다고 한들, 고작 몇 장 제출한 것을 바탕으로 이미 촬영이 시작된 작품의 제작을 전면 정시하는 가처분 명령을 내린다? 냄새가 난다.
증거로 제출한 부분에 똑같은 표현이 있었다면 그나마 이해해볼 수도 있겠는데, 그렇지도 않다.
그렇다면···.
“상대방 변호사가 <율지> IP팀의 이세문 변호사라고 했지?”
“네.”
“가처분 내린 판사는?”
“양순길 판사입니다.”
“둘 사이에 접점이 있는지 알아봐. 필요하면 사무장님한테 부탁하고.”
“네, 알겠습니다.”
로펌 변호사와 판사 사이의 유착비리.
쉬쉬하지만 암암리에 일어나는 일.
누구는 고작 가처분 명령 따위에 그런 일이 일어나겠냐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비리는 그런 데에 주로 일어난다.
무죄를 유죄로 바꾸는 건 리스크가 커도 4년 형 때릴 걸 2년 형만 때리면 리스크가 적다.
판사의 재량 안에서 충분히 바뀔 수 있는 것이니까.
게다가 오고 가는 것이 현금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면 잡아내기가 거의 불가능이다.
“어르신은 어떻게 하고 계셔?”
“말도 마십시오.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죽어버리겠다고 하시고는 전화도 안 받으십니다. 일단 김 변이 내려갔습니다.”
---*---
춘천, 암자.
아리가 도착했을 때, 술을 한잔 자신 이중기는 지붕 위에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근처 절에서 나온 젊은 스님이 그를 설득했지만, 아리를 본 이중기는 더 길길이 날뛰었다.
“기자들 불러! 나 여기서 뛰어내릴 거야. 죽어서 증명할게, 그럼 됐지?”
“작가님, 내려오세요. 위험해요. 저기 얼마나 올라가 계셨어요?”
“삼십 분 정도요.”
아리의 질문에 젊은 스님이 답했다.
“내가 글 쓰겠다고 펜 잡은 지가 벌써 30년이야. 근데 뭐? 내가 표절을 해? 그것도 보도듣도 못한 양키 작가의 소설을? 아론 소킨이나 코맥 매카시라면 또 몰라. 근데 누구? 조지 뭐? 그놈 이름이 뭐라고?”
“작가님, 알았어요. 그러니까 내려오셔서 말씀하세요.”
“그놈 이름이 뭐냐니까?”
“조지 왱커요.”
“뭐?”
“조지 왱커래요.”
“이름도 똥 같네. 아···내 30년 작가 인생에 이런 수치스러운 일이···에드가나 찰스도 아니고 조지 왕커 같은 개똥 같은 이름을 쓰는 놈의 글을 표절했다고? 내가? 아아아— 기자 불러와! 내가 죽음으로 결백을 증명할 테니까!”
“작가님, 알았으니까. 일단 내려와서 저랑 한잔하면서 얘기하시죠. 서 변호사님이 해결하신다고 하셨어요.”
“이건 해결해서 끝날 문제가 아니야! 내 명예가 걸린 일이라고!”
“그러니까요. 서 변호사님이 작가님 명예를 지켜기 위해 지금 열심히 노력 중이세요.”
“글렀어. 이미 명예가 추락했어. 그 새끼는 뭐 하는 놈이야! 변호사라는 놈이 이딴 것도 미리 막지 못하고!”
안 되겠다.
다른 수를 써야겠다.
“아, 근데 저기는 어떻게 올라가셨어요?”
“저도 그걸 모르겠어요.”
“스님, 죄송한데 절에 사다리 있나요?”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차장님, 차장님은 가서 술이랑 그때 사다 주신 편육하고 안줏거리 좀 사다 주시겠어요.”
“알겠습니다, 변호사님.”
아리는 스님에게 사다리를 부탁했고, 서울에서부터 같이 내려간 기사님에게는 술과 안주를 부탁했다.
이제 둘만 남게 된 아리와 이중기.
“할아버니, 좀 내려오세요.”
“다 끝났어. 이런 거지 같은 세상. 나는 이제 표절 작가로 기억될 거야. 아- 진정 이게 나의 결말인가···.”
“표절을 안 하셨는데, 왜 표절 작가로 기억이 돼요?”
“이놈의 세상은 원래 그런 거야. 거짓 뉴스가 판을 치고 있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은 자기 원하는 대로 믿을 거야. 흑흑흑.”
유리멘탈.
모든 게 잘될 때는 좋은데, 작은 시련도 버텨내지 못한다. 특히나 자기 작품에 관한 사건에는 더욱 민감한 그였다.
그래도 아리를 보니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다.
악을 쓰던 좀 전과는 달리 목소리가 차분해졌다.
“거짓 뉴스 따위 뭐가 겁나요. 어차피 그런 거 믿는 사람들은 작가님 작품 보지도 않는 사람들인데.”
“그러니까 더 무서운 거지. 내 작품을 읽어보지도 않았으면서 표절했다고 그러고. 그렇게 몰아가는 거야.”
“그게 뭐가 무서워요.”
“무서워···.”
“안 무서워요. 작가님 작품을 사랑해주는, 작가님을 사랑해주는 사람들이 등을 돌리는 게 무섭지, 보지도 않고 제멋대로 지껄이는 사람들이 뭐가 무서워요. 할아버니는 할아버니 팬들 생각은 안 하세요?”
“······.”
아리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무언가를 찾았다.
“이거 봐요. 벌써 작가님 커뮤니티에 ‘이중기 작가가 그럴 분이 아니다’ ‘무명 작가가 유명해지려고 쇼하는 거다.’ ‘나 표절이라는 원작 읽어봤다. 드라마 대본을 보지 못했지만, 제작사에 발표한 시놉시스랑 완전 다른 이야기다.’ 이런 글들이 올라오고 있다고요.”
“그게 무슨 소리야?”
“인터넷에 작가님 팬들이 만들어 놓은 커뮤니티, 그러니까 온라인 공간이 있는데, 거기에는 이미 작가님 옹호하는 글들이 엄청나게 올라오고 있다니까요.”
“······그런 게 있어?”
“네. 여기 봐보세요. 전화기 가지고 올라가셨어요?”
“아니.”
“아, 그럼 내려오셔서 보셔야겠네. ‘이중기 작가는 여태까지 한 번도 표절 시비가 없었던 작가다. 절대 그러지 않았다는 데 내 왼손을 건데.’ ‘우리나라 최고 드라마 작가. 절대 그럴 리 없음. 듣보가 돈 보고 하는 거임.’ 여기 와서 좀 보시라니까요? 진짜 계속 올라와, 계속.”
“······.”
“더 읽어드려요?”
“그게 다 내 팬들이 쓰는 거라고?”
“네! 할아버니 팬! 할아버니가 지금 거기서 뛰어내리면 오히려 진짜 표절한 거로 오해할 거라니까요. 죄책감에 죽은 거라고.”
이중기의 표정이 바뀌었다.
사실 진짜로 뛰어내릴 맘은 처음부터 없었다.
뛰어내린다고 죽을 높이도 아니었고.
그저 억울한 유리멘탈 노작가의 앙탈 같은 행위였다.
그래도 발이라도 미끄러져서 굴러떨어지면 큰일이다. 게다가 육필로 모든 원고를 쓰는 분이니, 상황이 좀 우스워도 죽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순간인 거는 맞다.
“그런 거야?”
“아, 그렇다니까요! 그러니까 얼른 빨리 내려와요.”
“알았어.”
“남 차장님한테 술하고 안주 부탁한 거 들이셨죠? 그러니까 내려와서 저랑 한잔하면서 제가 이 커뮤니티 어떻게 들어가는지 다 알려드릴게요. 빨랑 내려오세요.”
“알았어. 내려갈게.”
이중기는 자리에서 일어나 암자 코너로 갔다.
좀 전까지 뛰어내리겠다고 호기를 부렸지만, 이제 내려가려고 하니 무섭다.
“아리야.”
“왜요?”
“나 어떻게 내려가야 할지 모르겠는데?”
“네에? 어떻게 올라가셨는데요?”
“이 기둥을 타고 어찌어찌 올라왔는데, 내려가려니까···무서버서 ···.”
“알았어요. 잠깐 기다리세요. 스님께서 사다리 가지러 가셨으니까.”
“알았어. 고마워.”
이중기는 부들부들 떨며 암자 지붕 위쪽에 앉았다.
“근데, 저기···.”
“왜요?”
“사다리 오는 동안 내 팬들이 그 커뮤니티인지 하는 데 썼다는 글들 좀 더 읽어주면 안 될까?”
“네에! 알았어요. 읽어드릴게요.”
물론 다른 커뮤니티에는 비방성 글이 올라오기도 하고 추측성 기사들 밑에는 악성 댓글들도 달렸다. 하지만, 아리는 지금 할아버지에게 가장 필요한 말들만 골라 읊었다. 그중에는 자기가 하고 싶은 말도 포함되어 있었다.
“작가님 짱!‘
---*---
늦은 시각.
<법무법인 해결>, 서지우 사무실.
똑똑똑.
“어떻게 됐어?”
“작가님은 진정하고 이제 잠드셨다고 합니다. 많이 진정하셔서 혼자 둬도 괜찮을 것 같아서, 김 변은 사무실로 올라오고 있다고 합니다.”
“수고했어.”
“제가 수고한 거는 없죠. 김 변이 수고했지. 아, 그리고 이거.”
정도는 조지 왱커의 책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공교롭게도, 제목이 같다.
‘원나잇 인 라스베가스’.
“박 대리가 신촌 한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 아직 읽어보지는 못했습니다만···.”
“김한테 줘. 다 읽어보고 다섯 단어 이상 일치하는 표현이나 비슷한 캐릭터, 전개 있으면 보고하라고 해.”
“네, 알겠습니다.”
정도는 내려놓았던 책을 다시 집어 들며 대답했다.
“그리고, <율지> 이세문 변호사랑 서울중앙 양순길 판사 사이 관련점을 찾아봤는데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근데···.”
“근데 뭐?”
“양순길 판사랑 <김앤강> 황재수 변호사랑 같은 고향 출신에 학교 같은 학교 나왔고, 개인적으로 엄청 친하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왜 찾아봤지?”
“그게, 제가 조사하다가 보니까, 원래 처음에 <데이비스 앤 마이어>가 가처분 신청을 <김앤강>에 의뢰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가 <김앤강> 클라이언트이니까······.”
사건을 <율지>에 소개하며 뒤로 수작을 부린 거다.
서지우에게 한 방 먹은 적이 있는 황재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