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화 (79/133)

블랙아웃 (2)

띠리링- 띠리링-

“네.”

-변호사님, <영화사 청아> 공 대표님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대표님 안 계신다고 하니까, 변호사님 바꿔 달라고 하셔서요.

“네, 바꿔주세요.”

MJ 엔터테인먼트의 런칭 파티가 개최된 후 며칠 뒤, 공국현 대표로부터 전화가 왔다.

이중기 작가님과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날 파티에서 저희 직원이 춘천까지 모셔다드렸는데, 그 이후로 연락이 되지 않네요.

“원래 집필 중에는 전화를 잘 안 받으세요.”

-그건 저희도 알고 있는데, 그때 MJ 런칭 행사에서는 마치 앞으로 저희랑 직접 통화하실 것처럼 이야기하시고 가셨거든요. 그런데, 연락이 안 돼서요. 혹시 <해결>하고는 연락이 되나 해서 연락드려 봤습니다.

그날 이후로 연락을 주고받은 적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연락드려 보고 닿으면 대표님께 전화 드리겠습니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 그런데, 서 변호사님은 어디 가셨나요? 해외 출장 중이라고 하시던데.

“네, 미국 가셨어요.”

-아이고, 바쁘시네요. 그럼, 작가님이랑 연락 닿으시면 전화 주세요.

“네.”

딸깍.

공국현 대표와 통화를 마친 아리는 이중기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연결이 되지 않아 삐 소리 후···.」

꺼져있다. 아리는 곧바로 문자를 남겼다.

그러고는 다시 하던 일로 돌아가려는데, 느낌이 살짝 이상하다.

이중기는 최근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고 계속 푸념을 늘어놓았다. 단순히 아리가 연락했을 때만 그런 것도 아니고, 답답한지 먼저 술 사서 내려오라는 식의 전화를 걸어올 때도 많았다.

그때마다 거절한 것이 미안해서 저녁 퇴근길에 전화를 드리면 곧바로 받으시는 분이었다.

최근 몇 주 동안 그랬다는 말이다.

‘런칭 파티 때는 괜찮아 보이셨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리는 정도의 방을 노크했다.

“변호사님.”

“왜?”

“예전에 작가님께서 글이 잘 안 써지면 어디로 숨어버리신다고 하셨잖아요.”

“응.”

“보통 숨으면 연락이 안 되나요?”

“그게 숨는다는 의미지.”

“흠.”

“왜?”

“작가님이 숨으시면 어디로 숨으시나요?”

“그걸 알면 숨는다고도 표현도 안 하지. 한번은 아예 외국으로 날라버리셨어.”

“네에?”

“뭐야? 어르신 또 숨으셨어?”

아직 호들갑 떨기는 이르지만 느낌이 싸하다.

“저 춘천에 잠깐 내려갔다 올게요.”

---*---

시애틀, 노스 벨뷰.

스쿠터 그레이를 통해 그녀가 여기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 뒤, 서지우는 시애틀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리고는 무작정 찾아왔다.

먼저 전화를 걸어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랬다가는 또 숨어버릴 것 같았다.

얼마나 있었을까?

‘레인 시티’라는 별명답게 오전부터 내린 비는 밤이 되도 멈출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추적추적.

렌터카 안에 있는 서지우는 몇 시간 째 한 집 앞을 바라보고 있다.

성에가 끼면 창문을 조금 내려 환기를 시키는 게 고작이다.

*

「6년 반 전, 라스베가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한 며칠 더 놀다 갈까?”

“어디?”

“몰라. 너 늘 포틀랜들 가보고 싶어 했잖아.”

“그건 더 놀다가는 게 아닌데.”

“뭐 나는 여기도 좋은데. 여기가 지루하면 샌프란시스코든, 포틀랜드든 좋다고.”

“흠. 그럴까? 한국 들어가기 전에 101 하이웨이를 달려보고 싶기는 했는데. 아예 시애틀로 날아가서 포틀랜드랑 샌프란시스코를 경위 해서 101 하이웨이 타고 내려올까?”

“시애틀은 패스.”

“왜? 가봤어?”

“응.”

“난 안 가봤어. 그냥 들렀다 내려오자.”

“싫어.”

“왜?”

“누가 거기 살아.”

“누구?”

“꼴도 보기 싫은 사람.”

“그게 누군데.”

“우리 언니.”

“너 언니 있었어?”

“응. 시애틀만 빼고 다 좋아.”

“아니다. 됐다. 이 상황에 무슨 여행이냐. 그냥 가자. 매도 빨리 맞는 게 낫다고, 이 기분에 여행이 즐거울 것 같지 않아.”」

*

까맣게 잊고 있었다.

태이에게 언니가 있었다는 사실을.

어쩜 그때 딱 한 번 언급한 일이었기에 기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한 것일 수도.

가족.

때론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가도 아무도 없는 세상의 외톨이가 되면 찾아가게 된다. 설령 그게 죽은 뒤라 하더라도.

낯선 도시, 낯선 동네에서 여섯 시간쯤 그렇게 기다렸다.

드디어 그녀가 나왔다.

---*---

춘천에 내려온 아리는 이중기가 지내고 있던 암자를 살폈다. 최근 며칠간 사람이 산 흔적이 없다.

산 중턱이라 하루 이틀만 지나도 바닥과 가구 위에 먼지가 쌓이는 곳이다. 작은 탁자 위에 올려진 팬과 원고지에 먼지가 앉아있다.

“변호사님, 큰일 났어요.”

-왜? 안 계셔? 절에 가신 거 아니야? 아니면 산책하러 가신 거거나?

“절에 안 계세요. 스님께 여쭈어봤는데, 며칠째 식사하시러 오지 않으셨대요.”

글이 안 써진다고 계속 칭얼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할아버니가 사라졌다.

“이제 어쩌죠?”

-진짜 이머전시는 아니잖아? 시즌 1 대본은 있고, 시즌 2도 1회차, 2회차분은 있는 거잖아?

“그렇기는 한데···.”

사라지면 언제 나타나실지 모르는 양반이니.

“외국으로 가셨으면 어떡하죠?”

-아, 그러면 큰일인데. 그건 내가 알아볼게.

“외국이 아니면 국내에 어디 가실 때가 있나요?”

-서울에도 집이 있고, 부산에도 있고, 통영에도 있고. 가실 때는 많지. 전국에 있는 웬만한 절하고는 연줄이 닿아있는 분이시니까. 주지 스님한테 여쭤봤어? 혹시 어디 가신다고 말 안 하셨대?

“못 물어봤어요.”

-물어봐. 애 같은 분이셔서, 가끔은 그냥 자기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에 사라지기도 하니까.

“알겠어요.”

-아, 그리고 김 변.

“네.”

-당분간 <청아>나 에는 알리지 마. 괜히 당황한다.

“네, 알겠습니다.”

-서 변호사님한테는 내가 연락할게. 선배님이 알고 계실만한 데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네. 그런데요, 변호사님.”

-응.

“지난번에 사라지셨을 때는 어떻게 찾으셨어요?”

그때는···.

-못 찾았어.

“네? 그래서요?”

-계약 파기되고 손해배상 청구 걸렸었지.

“네에?”

-선배님이 패소한 몇 안 되는 케이스야. 사실 이길 수도 있었는데, 어르신이 죽어도 못 쓰시겠다고 하는 바람에···.

서지우가 진 몇 안 되는 사건.

아리는 느낌이 좋지 않았다.

---*---

시애틀, 벨뷰.

시트콤 <프렌즈>에 나오는 커피숍처럼 미국 정취가 물씬 느껴지는 카페 안, 가까운 곳을 골랐을 뿐인데, 의도치 않게 많은 손님이 들어차 있다.

“어떻게 찾았어?”

민태이의 첫마디는 차가웠다.

반가워할 것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냉정할 줄도 예상하지 못했다.

“아니다. 궁금하지도 않다.”

“스쿠터 그레이한테 들었어, 시애틀에 있다고.”

“내가 어디 스테이한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6년 반 전, 라스베가스 호텔 방에서 나눴던 기억이 떠올랐고, 민태이가 누군지 알고 있는 이상, 그녀의 언니가 사는 곳을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서지우는 그녀와 그녀 언니의 사연도 궁금했으나 지금 그걸 물어볼 처지가 아니었다.

“혹시 아직도 날 사랑하니?”

서지우의 질문에 민태이는 한동안 대답 없이 물끄러미 그를 바라봤다.

“그게 왜 중요한데?”

중요하지 않다. 서지우는 민태이를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

“고작 그런 질문을 하려고 나를 여기까지 추적한 거야?”

“사과가 하고 싶었어.”

“뭐가? 나를 사랑해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한데. ‘원나잇 인 라스베가스’를 그만두게 할 수는 없어. 이제 그건 내 이야기가 아니야.”

피식.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가더니 숨소리 같은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걸 사과하러 온 거야?”

“···.”

“너 아직도 모르는구나?”

뭘 모르는 걸까?

“사과할 필요 없어.”

“정말 이렇게 끝낼 거야?”

“아니, 진작에 끝냈어야 했어. 아니 애초에 시작도 하지 말아야 했다고.”

“너는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그날 라스베가스에서 나는 정말 행복했어.”

“나도 그랬어. 그 드라마가 나온다는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어. 네가 평생 나를 좋아하지 않아도, 네가 평생 나를 친구로 여겨도 그날만 기억하고 살 수 있었어. 근데 네가 망쳐놓은 거야.”

“그래서 사과하러 왔잖아. 진심이야. 미안해.”

“너는 그날의 추억만을 망가트린 게 아니야. 내 지난 6년간의 감정을 우습게 만들어버린 거지.”

그렇게까지 나를 생각하고 있었던 줄 몰랐다고 답하려 했다.

그만둔다.

그게 그녀를 더 비참하게 만들 것이었다.

“정말 그 작품을 막아야 나를 용서하겠니?”

“그래서 네가 아직 모른다는 거야. 우리의 이야기를 남의 오락거리가 되게 내버려 둔 순간, 모든 게 돌이킬 수 없게 된 거야. 서지우, 왜 찾아왔니? 여기까지 찾아와서 네가 진심으로 용서를 빌면 받아줄 줄 알았어? 받아주면? 어쩌려고? 다시 친구로 돌아가게? 하하하. 분명하게 말해줄까? 난 단 한 번도 널 친구로 생각한 적 없어.”

“···.”

“돌아가. 이렇게 모르는 사람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야. 그런 사람들 많아.”

“민태이.”

“정말이지 그날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 지워버리고 싶다. 그럼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고치러 왔는데, 오히려 더 망가진 느낌이다.

그녀는 그 아련한 눈빛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서지우는 그녀가 그렇게 된 것이 본인 때문인 것 같았다.

---*---

시애틀 타코마 국제공항.

이러려고 찾아온 것은 아니었다.

단번에 해결될 거라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더 나빠질 거라고도 생각하지 못했다.

‘진심으로 사과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녀의 말대로 이렇게 헤어져도 그만이었다.

사실 어쩌면 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렇게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끝낼 수 없었다.

그녀의 말대로 내가 망쳐놓은 것이니까.

그녀의 감정을 받아주지 못한 것이 미안한 게 아니라, 그녀의 기억을 망가뜨린 것이 미안했다.

친구라면서 그 정도 배려도 해주지 못한 것이었으니까.

「정말이지 그날로 되돌아갈 수만 있다면, 다 지워버리고 싶다. 그럼 이렇게까지 되지 않았을 텐데.」

그녀의 마지막 말이 아까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렇게까지 그녀를 힘들게 하는 거라면···.

어쩌면 그녀 말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날이 없었더라면···.

“어디로 가시길 희망하시나요?”

그날을 지울 수는 없지만, 내가 삭제할 수 있는 게 하나 있다.

“라스베가스.”

---*---

띠리링- 띠리링-

-김 변, 어디야?

“변호사님, 작가님 찾은 거 같아요.”

-진짜? 어디 계신대?

“인천공항이요.”

-뭐어?! 인천공항?

서지우가 라스베가스에 도착했을 때, 아리는 이중기를 찾아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었다.

“거기는 왜?”

“모르겠어요. 거기 치안센터에서 연락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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