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7화 (107/133)

엇갈린 작대기 (1)

“아는 사람이야?”

정말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김아인 변호사의 동생을 만났다. 머리 모양마저 똑같은 얼굴에 순간 깜짝 놀랐다.

“응? 아니, 회사 변호사의 여동생.”

“회사 변호사의 여동생?”

“응.”

“그렇게 닮은 거야?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쌍둥이야.”

“아-.”

물론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자신 앞에서는 늘 경직된 듯한 오빠의 모습과는 달리 훨씬 자유로워 보였다.

“귀엽게 생겼던데.”

서지우도 같은 생각을 했다.

젖은 머리가 찰랑거리는 모습이 마치 이제 막 운동을 마치고 나온 여학생 같아 보였다.

“응? 응.”

“뭐야? 아직도 그 여자 생각하는 거야? 이건 감점인데, 내 앞에서 다른 여자를 떠올리고.”

아니었다.

서지우는 지금 김아인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의 목소리가 어땠는지.

너무 닮았다, 목소리마저.

---*---

“아리야!”

“응?”

조금 전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서지우와 마주쳤다.

‘날 알아봤을까?

알아봤으니까 물어봤겠지, 여동생이냐고.

설마 의심했을까?

아니라고 잡아뗄 걸 그랬나?

그게 무슨 멍청한 소리야. 옆에 정인이가 있었는데.

말은 하지 말고 고개만 끄덕일 걸 그랬나?’

머리가 복잡하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응? 아무것도 아니야.”

“너 방금 만난 그 아인이 로펌 대표변호사 생각했지?”

“응?”

“나도 생각 중이었는데. 진짜 잘생겼다. 진짜, 진짜. 결혼했어?”

“응? 아니.”

“대표변호사면 나이가 많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 몇 살이래?”

“몰라.”

“에이씨- 알면 뭐 하냐, 옆에 저렇게 섹시하게 생긴 여자친구가 있는데. 피부는 또 왜 그렇게 좋은 건데. 피부과 의사인 나도 묻고 싶더라, 병원 어디 다니느냐고. 자연적으로 나올 수 없는 글로우(glow)야.”

“······.”

“김아리! 넌 또 무슨 생각을 하고 있길래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있던 여자가 누구인지 궁금해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혹시라도 자신을 알아봤을까 걱정이 앞섰지만, 지금은 온통 대표의 손을 잡고 서 있던 여자 생각뿐이다.

“누굴까?”

“응? 누가?”

“그 옆에 있던 여자.”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

월요일 아침,

법무법인 해결 회의실.

“좋은 아침. 어, 김 변, 헤어스타일 바뀌었네? 염색했어?”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차이점을 두어야 의심을 덜 살 것 같았다.

얼굴에 점이라도 찍을까 하다가 대신 머리 모양을 조금 바꾸었다. 색깔도 살짝 밝게 넣어봤다.

“회의 시작할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대표는 그에 대해 한마디 하지 않는다.

“주말에 다녀왔던 케이 엔터 한윤정 계약 건부터 시작할까? ···.”

---*---

삼십 분 뒤,

회의가 끝나고.

법무법인 해결의 카페 같은 휴게실.

“주말에 결혼정보회사를 다녀왔는데 말이야. 이게 생각보다 괜찮더라. 시스템도 체계가 잡혀있고. 약간 뭐랄까, 되게 과학적이야. 처음에는 막 가족 관계, 학교, 연봉까지 묻길래 불편했는데, 이상형 물어보고 여성회원 프로필 사진 하나 보여주는데, 딱 내 취향이더라고.”

아리에게 하는 이야기였으나, 마침 휴게실 안으로 들어온 유이헌 과장이 말을 받았다.

“결국 외모라는 말씀이시네요.”

“응? 아, 그렇게 되나?”

“그렇게 들리는데요.”

“그래도 과학적이지 않아? 한 번에 내 취향을 알아맞힌 거 보면?”

“남수지 씨 닮은 여성 회원이었나요?”

“어! 어떻게 알았어?”

“저도 과학적이니까요.”

유이헌이 씨익 웃으며 냉장고에서 셰이크를 챙겨 나갔다.

“내가 그렇게 뻔했던가? 하긴, 이상형이 누구냐고 묻길래, 남수지 님이라고 얘기했지. 참, 신기해. 예전에 선배들이 강남 뚜 아줌마가 소개해주는 여자 만나는 거 보고, 나는 저거 절대 안 한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결혼정보회사에 등록을 다 하고···.”

아까부터 혼자 떠들고 있다. 막내 변호사의 정신은 어디 다른 세계에 가 있는 듯한 표정이다.

“김? 김 변!”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아- 그냥 좀···.”

“집에 무슨 일 있어?”

“네? 아···네.”

“무슨 일? 어머니가 안 좋아지셨어?”

“아니에요.”

“그럼 왜? 왜 이렇게 정신이 반쯤 나가 있어? 김 변 답지 않게.”

“그냥···. 그런데요, 변호사님.”

“응.”

“서 변호사님 지금 사귀는 사람 있으신가요?”

“선배님? 아닐걸. 여자 안 사귀어.”

“여자를 안 사귀어요?”

“응. 여자랑은 일도 같이 안 하는데, 연애라는 걸 하겠어? 생각해봐. 저 나이에 이혼을 세 번이나 했는데, 여자를 만나고 싶겠어?”

“그런데, 왜···?”

“왜? 뭐? 변호사님이 여자랑 있는 거 봤어?”

“아···네. 제가 아니고 제 동생이···.”

“김 변 동생이? 어디서?”

“호텔에서···.”

“아- 연애를 안 하는 거지, 여자를 안 만나는 거는 아니지.”

“그건 무슨 말인···가요?”

“노 코멘트. 그건 선배님 사생활이니까.”

사생활······.

“아, 그런데, 김 변 여동생이 서 변호사님을 알아?”

“네? 아···네···뭐 회사 홈페이지에서 봤대요.”

“눈썰미 좋네. 하긴, 변호사님 외모가 인상적이지. 어디 가서 나쁜 짓은 못하실 거야.”

나쁜 짓···.

아리의 생각이 또 다른 곳으로 향하려고 할 때, 유이헌이 다시 휴게실 안으로 들어왔다.

“김 변호사님, 서 변호사님이 찾으세요.”

“저를요?”

---*---

똑똑똑-

“들어와.”

아리는 대표변호사실로 들어갔다.

“주말은?”

“네? 아, 잘 보냈습니다.”

“머리 스타일 바뀌었네.”

“···네.”

평소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닌데···.

“출장을 좀 다녀와야겠어.”

“출장이요? 어디···?”

이제는 좀 편해졌다 싶었는데, 주말 일 때문에 아리는 다시 ‘긴장모드’다.

“미국.”

“미국이요?!”

예상치 못한 행선지에 화들짝 놀란 나머지 목소리가 올라갔다.

“왜 이렇게 놀라?”

“아니요. 한 번도 안 가봐서···.”

“그럼, 이번에 가보면 되겠네. 배우 한윤정 씨가 할리우드 스튜디오랑 계약하게 되겠는데, 바로 촬영 일정이 잡혀서 이것저것 검토할 것이 생긴 것 같아. 케이 엔터 이동주 대표님이 그래도 변호사가 옆에 있으면 조금 마음이 편할 것 같다고 방금 연락이 왔네.”

“얼마나 가게 되나요?”

“2주 정도. 길어질 수도 있고.”

“2주···.”

“왜? 문제 있어?”

다른 생각을 하고 들어온 아리는 순간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듯했다.

아무것도 몰랐을 때야 해외 출장을 다녀왔지만, 지금은 얘기가 달랐다.

당시 일본 출장은 운이 좋게 어떻게 넘겼다 쳐도 미국은 다른 이야기였다. 경비도 몇 배는 삼엄하고 의심받을 만한 게 아무것도 없어도 몸수색을 당할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갈 수 없다.

“네.”

당연히 문제없을 줄 알았던 서지우는 단호한 막내 파트너의 대답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무슨 문제?”

“어머니를 두고 그렇게 오래 나갔다고 오기가 조금 그래서요.”

“어머니?”

“네.”

“어머님이 왜? 상태가 안 좋으신가?”

“네.”

아리는 침을 꿀떡 삼키고 대답했다.

“그래?”

“네.”

예상치 못한 대답에 서지우는 잠시 고민한다.

“흠···. 알았어.”

“네?”

“나가 봐.”

“괜찮은···건가요?”

몇 초도 안 되는 시간. 아리는 수많은 경우의 수를 떠올렸다.

그래도 결론은 하나였다. 미국 출장을 갈 수는 없었다.

서지우의 요청을 거절하기는 정말 싫었으나, 할 수 없는 건 할 수 없는 것.

“괜찮지 않을 이유가 있나?”

“아니···저는···그냥 죄송해서···.”

“어머님이 편찮으셔서 못 가겠다는 후배를 마음에 안 들어 할 정도로 이상한 선배는 아니야.”

“아···네···감사합니다.”

“어머니 잘 보살펴 드려. 회사에 필요한 거 있으면 말하고.”

“네. ···그러면 미국 출장은···.”

“그러게, 조만간 내가 홍콩 출장이 있어서 내가 갈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윤을 보내야 하나···. 여하튼 생각해보자고. 알았어, 나가 봐.”

“네.”

정수리에 솟은 땀이 목덜미를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큰일 나는 줄 알았다.

사표를 써야 하는 건가 하는 걱정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 그런 일은 피했다. 대표도 크게 개의치 않은 것 같고.

‘휴- 다행이다.’

속으로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돌아서는데,

“김 변호사.”

그가 그녀를 다시 불러세웠다.

“네.”

“김 변호사 여동생이 말 안 하던가?”

“제 여동생이요?”

“응. 주말에 강남의 호텔에서 마주쳤는데.”

“아···네, 들었습니다.”

“동생도 짧은 머리더라고.”

“네에?! 아, 네. 얼마 전에 그렇게 잘랐더라고요.”

“동생하고 똑같이 생겼던데.”

“저하고요? 전혀 아닌데요!”

아리는 강력하게 부인했다.

쌍둥이인데 똑같이 생기지 않았다고?

웃기는 말이지만 이해가 가는 항변.

“그냥 그렇다고.”

“저희는 이란성이라, 그냥 남매라고 보시면 됩니다!”

피식-

서지우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누가 뭐래? 동생하고 닮은 게 그렇게 기분 나쁜 거면 헤어스타일은 좀 다르게 하고 다니지 그랬어.”

“안 그래도 걔가 제멋대로 그렇게 자르는 바람에 이제 제가 기르려고요!”

“하하하.”

말하는 모양새가 우습다. 서지우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왜 웃으시죠?”

“좋을 대로.”

“네?”

“기르라고.”

“네, 감사합니다!”

남자처럼 짧은 머리를 한 여동생과 여자처럼 긴 머리를 한 오빠라. 재밌다.

“감사할 것까지는 없고. 아무튼 여동생에게 전해줘. 만나서 반가웠다고.”

“네, 알겠습니다.”

고개를 넙죽 숙이고 서둘러 돌아나가려던 아리. 이번에는 그녀가 멈춰 섰다.

“아···.”

“왜? 뭐 더 할 말이 있나?”

“동생 말이 마주쳤을 때 함께 계시던 여성분이 있었다고···.”

막상 말은 꺼냈는데, 하고 보니 묻는 자신의 모습이 이상하다. 대표가 주말에 만난 여자를 왜 궁금해한다는 말인가?

상대가 의도를 알아채 주고 답해주면 고맙겠지만,

“궁금한 게 뭐지?”

그럴 서지우가 아니다.

“아, 그게, 제가 궁금한 거는 아니고요. 여동생하고 같이 있던 애가 여동생의 친한 친구인데, 대표님이 싱글인지 아닌지를 매우 궁금해해서···요.”

서지우는 그날 상황을 잠시 떠올려 본다. 있었다. 여동생 뒤로 따라 들어온 여성분이.

“만나는 사람.”

“네?”

“더 설명이 필요한가?”

“아, 아니요. 아닙니다. 그럼.”

얼굴이 붉어진 아리는 도망치듯 서지우의 방을 나왔다.

---*---

서울의 한 호텔.

CF 촬영장.

화장을 짙게 한 여배우가 촬영 중간에 잠시 쉬고 있다.

남수지다.

“언니.”

수지는 매니저를 불렀다.

“왜? 뭐 필요한 거 있어?”

송세연은 수지에게 물을 건네며 물었다.

그녀다. 예전 Zoom 엔터에서 같이 일했던 사람. 배 농사지으러 간 사람을 결국 다시 불러내는 데 성공했다.

“나 어떡하지? 그 사람 자꾸 생각나.”

“누구? 그 변호사?”

“응.”

“그럼 한번 만나봐.”

“대표님이 싫어하지 않을까?”

“너 어리지 않아. 너 연기도 연애를 많이 해야 는다. 그리고 회사 대리 로펌의 변호사면 소문도 안 나고 괜찮네.”

“그렇지?”

“응. 그런데, 얼마나 멋지면 네가 자꾸 생각난다고 하냐. 궁금하다, 어떤 사람인지.”

“귀엽게 생겼어. 부드럽고.”

“진짜?”

“응. 아, 맞다. 내가 사진 안 보여줬던가?”

“응. 안 보여줬어.”

“언니, 나 핸드폰 좀. 내가 보여줄게.”

“사진도 있어?”

“아니, 그 사람 로펌 홈페이지에.”

“정말 마음에 드는가 보네. 이렇게 보여주고 싶은 걸 보면.”

“여기. 어때? 괜찮지? 멋지지?”

송세연은 남수지가 건넨 핸드폰 속 사진을 봤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다.

“어머! 얘 아리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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