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9화 (119/133)

유인 (1)

MJ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여혜린은 The Dynasty 프로젝트 관련 보고를 차동석으로부터 듣고 있다.

“캐스팅 관련해서 론 실버 대표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우리 의견 잘 받았고, 내부적으로 상의해서 답변해주겠다고 합니다. 다만, 정난정 역에는 한윤정을 캐스팅할 생각이라고 합니다. 거의 확실한 듯합니다.”

“할리우드 가서 잘하고 있나 보네. 역에 잘 어울릴 것 같기는 하네.”

“성깔이 있어서 그렇지 연기는 괜찮으니까요. 매력도 있고.”

“케이 엔터 주가 좀 오르겠는데.”

“이미 많이 올랐습니다. 지난달에만 두 배 가까이 올랐습니다.”

“그거는 안기정하고 계약한다고 해서 오른 거 아니었어? 그래서 그건 어떻게 됐어? 기사들 많이 내려간 것 같던데.”

“게이라는 기사 말인가요?”

“응.”

“거의 다 내려갔습니다. 강력하게 대응하겠다고 엄포를 놓으니 팬클럽 중심으로 커뮤니티 쪽에서 역풍이 불고 있고요. 안기정이 워낙 팬들한테는 잘하고 연기며, 노래며 못 하는 게 없어서, 느낌상 사그라들 것 같습니다.”

“이 바닥이 그렇지. 유명한 말고 있잖아. ‘연기로 까지 말자.’ 웃기지 않아? ‘연기로 까지 말자’가 아니라 ‘연기 잘하니까 까지 말자’로 바뀌어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진실이 뭐야?”

“네? 안기정이 동성애자냐는 질문이신가요?”

“아니. 걔 이성애자인 거는 알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고. 그래서, 진짜냐고? 동성 성폭행.”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사진이 돌고 있긴 한데, 그것만 가지고는 판단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

“아무튼 이동주 대표는 안기정 지키는 데 사활을 건 듯싶습니다.”

“그렇겠지, 계약금만 30억 정도 줬을 테니. 그리고 원래 이 대표가 자기 배우 건드리면 가만히 안 두는 성격이잖아.”

“네. 그런데···.”

남 일처럼 듣고 있던 여혜린은 차동석의 다음 보고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동주 대표가 제작사들한테 무언의 압력을 넣는 것 같습니다.”

“무언의 압력?”

“네. 앞으로 <해결>하고 일하면 자기 배우들 못 쓸 거라고···.”

“진짜야? 왜?”

“성폭행 피해자 중 한 명이 <해결>의 비서인 듯합니다.”

여혜린은 곧바로 <해결>을 갈 때마다 그녀를 맞이했던 몸 좋은 남자를 떠올렸다.

“그 친구인가 보네.”

“네?”

“아니야. 그래서?”

“다들 몸을 사리는 분위기입니다. 케이 엔터랑 척 져서 좋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흥’ 혜린의 코에서 콧방귀가 나왔다.

“웃기네.”

“됐어. 그럼 우리는 <해결>한테 일 줘.”

“네? 원래 우리 상대로 일을 하는 로펌인데···.”

“제작사들이 발들을 빼면, 이제 우리를 상대로 하는 로펌이 아니게 되는 거잖아. 일 줘.”

“이사님, 이동주 대표의 영향력이 상당합니다. 굳이 저희가 도발을 할 필요는···.”

“아니. 도발은 저쪽에서 했지. 대한민국 배우 반을 포기해야 한다고 해도···.”

그녀는 서지우 편이다.

---*---

법무법인 해결,

“청아 공 대표한테서 연락이 왔습니다.”

자문 계약 해지했으면 좋겠다고.

“그 외에도···.”

이동주 대표의 영향력은 생각보다 컸다.

진행 중인 소송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기존의 자문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케이 엔터 눈치를 보지 않는 해외 쪽 클라이언트들만 반응이 없었다.

“사람 뽑는 거 그만둘···아니 미룰까요?”

정도의 질문에 서지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왜?”

“아니···애초에 추가로 사람을 뽑으려고 했던 이유가 한윤정 때문에···.”

“아니야. 우리 캐시 리저브도 많잖아. 그냥 뽑자고.”

“네, 알겠습니다.”

“그럼 유 과장 건에 관해 이야기해볼까?”

충원 관련해서 이야기를 끝낸 서지우는 유이헌 과장 사건을 언급했다.

“유 과장 사건 관련해서 신고는 했고, 이번 주 내로 중앙지검에 고소장 접수할 예정입니다. 문제는···.”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

“일반 성폭행이면 병원 입원 시 물적 증거가 남았을 텐데···이게 동성 간의 관계이다 보니까···.”

정도는 말끝을 흐렸다.

“병원 기록은 있을 거 아니야.”

“네, 일단 폭행에 관한 증거는 확보된 상황입니다.”

“그 기자는 어떻게 됐어? 맨 처음에 기사 올렸던 기자.”

“알아보니까, 피해자 형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래도 홧김에 올린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케이 엔터에서 이미 손을 써서 지금은 기사도 내려가고 합의를 한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음 주에는 정정 기사를 내보낼 예정이다.

“그래도 가장 문제는 유이헌 과장이 사인한 합의서입니다. 공개하면 폭행에 관한 사실을 증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계약서 내에서 유 과장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점을 인정하는 바람에 성폭행을 입증하는 데는 오히려 독이 될 것 같습니다.”

이동주 대표에 큰소리를 치기는 했지만, 쉽지 않은 싸움이었다.

---*---

대표와 회의를 마친 아리는 정도를 따라 그의 방으로 향했다. 궁금한 것들이 있었다.

“어려운 건가요?”

“흠···. 쉽지는 않을 것 같아.”

유이헌이 사인한 합의서에 따르면, 술집에서 일어난 폭행은 사소한 시비 때문에 일어난 다툼이었을 뿐이고, 그와 관련해서 안기정이 폭력을 행사하기는 했지만, 원인은 이헌에게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치료비를 상회하는 합의금을 받았기에 이제 와서 합의서의 내용을 번복하기는 불가능했다.

“합의금을 돌려주면 안 될까요?”

“저쪽에서 받으려고 하지 않을 거야. 설사, 법원에서 돌려주겠다고 해도, 그러면 법정은 우리 쪽 진술의 신뢰성을 좋지 않게 볼 거고. 여차하면 돈 노리고 안기정에게 접근한 변태 새끼 취급당하게 생겼어.”

그렇게 되면 최악이다.

아리는 왜 그렇게 서지우가 조심스러웠는지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아! 물론 나는 깨어있는 사람이야! 나는 그런데 전혀 편견이 없다고! 없어. 전혀!”

아리의 표정이 심각하게 어두워지는 것을 본 정도가 갑자기 손사래까지 처가며 항소했다.

‘왜 이러시지?’

“나는 성적 취향을 가지고 그 사람을 판단하거나 차별하는 그런 사람이 절대 아니야. 알지?”

“네? 아···네.”

“그러니까 내가 하려는 말은···.”

‘선배님이 갑자기 왜 이러시는 거지? 아!’

문득 정인이 해준 말이 떠올랐다. 관심을 보인 남수지에게 그녀를(김아인 변호사를) “그쪽 성향”이라고 말해버렸다고 한 말.

결국 정도의 귀에도 들어간 것.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붉어진 정도의 얼굴에 다 쓰여있었다.

‘맙소사, 남자가 된 것도 모자라서 이제 남자를 좋아하는 남자가 된 거야, 나?’

정정하기에도 이상한 상황.

아리는 어색하게 웃고는 자신의 사무실로 돌아갔다.

---*---

“오빠, 힘들어도 웃어요. 우리가 있잖아요.”

“기정 오빠, 파이팅!”

“오빠, 오늘도 너무 멋져요. 사랑해요!”

촬영을 마치고 차로 돌아가는 길, 어떻게 알고 어김없이 팬들이 길목을 지키고 있다.

차로 곧장 들어가려던 기정은 경호원의 만류에도 굳이 팬들이 있는 곳으로 다가가, 일일이 내미는 종이에 사인해주고 손을 잡아준다.

“나도 사랑해.”

“알죠. 우리는 오빠 믿어요!”

“고마워.”

“꺄아악! 사랑해요, 오빠! 죽을 때까지 사랑할게요.”

뒤편에 서 있던 하일구는 가증스러운 표정으로 그의 뒤통수를 바라봤다.

‘여우 같은 놈.’

팬 관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한다.

하지만, 하일구도 인정한다. 그게 이번 같은 사건이 났을 때도 그가 살아남을 수 있는 이유이다.

드르륵- 쾅.

차 문이 열리고 닫힌 뒤, 완전히 바뀌는 표정.

팬들의 시선에서 벗어나자, 곧바로 본색이 드러나는 안기정.

“형, 그년 빼라고 해.”

“누구?”

“이지윤.”

“왜?”

“아니, 그년이 갑자기 다가와서는 ‘요새 힘드시죠?’ 이 지랄을 떨잖아. 내가 힘들게 뭐가 있어?”

“그냥 하는 얘기지. 얼마 전에 기사도 나고 그랬으니까.”

“아니야, 그 눈빛이 더러웠어. 아무튼 빼. 나 걔랑 연기 못해.”

“야, 이제 와서 서브여주를 어떻게 빼. 드라마 촬영 이제 시작했는데.”

“아, 그러니까 빼라고. 이제 시작했으니까. 중간이었으면 말 안 해. 이제 시작했으니까 빼라는 거지. 안 빼? 좋아. 그럼 내가 빠진다.”

“야, 알았어. 알았어. 내가 말해볼게. 야, 근데 니가 그렇게 민감하게 굴수록 사람들이 더 이상하게 봐. 그러니까 그냥 별일 아닌 척 행동해.”

“지금 별일 아니게 됐어? 이 대표는 왜 일을 그렇게 해? 아직도 기사 한두 개씩 올라오던데.”

“정정 기사잖아. 그리고 아무리 이동주 대표라도 어떻게 다 막겠냐. 삼류 잡지 기사는 어쩔 수 없는 거 너도 알잖아.”

“에이씨- 그 병신 같은 새끼 때문에 진짜.”

“그러길래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인마.”

“아이 진짜! 그래서? 내 잘못이라 이거야?”

“그게 아니라. 그냥 좀 조심하라고.”

“아무튼 우리나라가 아직 미개해. 솔직히 장국영도 동성애자였고, 엘튼 존도 게이야. 샘 스미스, 조디 포스터, 크리스틴 스튜어트 다 내 과라고. 게이가 뭐가 문젠데? 바이가 뭐가 문제냐고? 아무튼 아직도 멀었어.”

‘게이가 문제인 게 아니라 네가 한 짓이 문제겠지.’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하일구는 꾹 참아 넘겼다.

아니꼬워도 안기정이 그의 밥줄이었다.

“그러니까, 이번 작품하고 할리우드로 가자니까. 거기서 놀면 되잖아. 이 좁은 한국에서 네 재능을 썩히지 말고.”

“그래서? 쓸만한 스크립트는 들어오고 있는 거야?”

“안 그래도 이 대표가 마블스(Marbles) 시리즈 제의 들어온 거 있다고 하더라.”

“진짜? 마블스?”

“응. 요새 거기가 PC에 아주 신경 쓰잖아.”

“그래, 그게 맞지. 아무튼 한국 문화가 많이 인기가 있다고 해도 미국에 비하면 산업은 멀었어. 실력만으로 평가해야지. 진짜 내가 이번 작품하고 미국으로 간다.”

“그래, 가즈아.”

---*---

밤늦은 시간.

서지우는 유이헌이 사인한 합의서를 만지작거렸다.

‘능력을 쓸 수밖에 없는 건가?’

증거가 없다.

없을 뿐만 아니라 족쇄까지 달려있다.

합의서만 없어도 어떻게든 싸워보겠는데, 너무나 명백하게 쓰인 합의서 문구로 인해 할 수 있는 항변이 별로 없게 되어 버렸다.

이헌을 안심시키기 위해 호기롭게 장담했지만, 솔직히 전망이 좋지 않다.

똑똑똑-

‘누구지?’

“변호사님.”

다 퇴근한 줄 알았는데, 밤늦은 시각, 막내 파트너 변호사가 노크를 하고 들어왔다.

“퇴근 안 했어?”

“네. 생각할 게 조금 있어서요.”

표정이 어두운 것이 아무래도 같은 사건을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무슨 일?”

“유 과장 사건 때문에 그런데요.”

“왜?”

“지금 있는 증거 가지고는 아무리 봐도 승산이 높지 않은 것 같은데, 맞나요.”

대답을 잠시 고민한 서지우는 솔직하게 밝혔다.

“맞아.”

그러자, <해결>의 막내가 단호한 표정으로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내밀었다.

“제가 미끼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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