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 (2)
“안녕하셨어요?”
“벌써 새 양복을 맞추러 왔어? 돈을 잘 버나 보네.”
동대문, 트랜스 양복점 할아머니는 언제나처럼 시크하게 아리를 맞이했다.
딱히 양복이 필요해서 간 건 아니었지만, 아리는 방문한 김에 겸사겸사 한 벌 부탁했다.
그리고는 치수를 잴 동안 조심스럽게 그곳을 찾아온 목적을 꺼냈다.
“할아머니.”
“왜?”
“혹시 음···그쪽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가는 술집 같은 데 아세요?”
“그건 왜?”
“네? 한번 가볼까 해서······.”
아리의 얼굴을 한번 힐끔 쳐다본 할아머니는 다시 무심하게 아리의 수치를 재면서 물었다.
“게이 바? 아니면 레즈 바?”
“아, 그게 나눠요?”
“상식적으로 나뉘는 게 맞지.”
“아···그렇네요.”
“어디?”
“게이 바요. 고급스러운 데요. 연예인들도 가는.”
“이태원 브랫.”
역시 거기가 유명한 곳이구나.
“거기 말고는 없나요?”
“연예인 누구?”
“네?”
“연예인들이 가는 게이 바를 찾는다며? 만나고 싶은 연예인 있어서 그런 거 아니야?”
와- 정말이지 눈치 하나는 끝내주는 할아머니시다.
“안기정이요.”
“종로 레인보우. 요새도 가는지 모르겠는데, 지금처럼 인기가 많지 않을 때는 거기 종종 나타났지.”
---*---
한때는 대한민국에서 악기 좀 다룰 줄 안다는 오빠들의 성지 같은 곳, 낙원상가를 지나, 유명한 아귀찜 거리를 지나, 좀 더 들어가면 ‘그들’의 거리가 나온다.
‘그들’을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이 걸려있는 가게들.
그곳마저도 지나 조금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일곱 가지 색으로 ‘(주) 무지개 페인트’라고 쓰인 간판이 걸린 허름한 건물이 나온다.
예전에는 페인트 회사가 입주해있던 건물이지만, 망하고 나간 지 오래.
이제는 건물 지하에 세 들어 있던 바(bar)의 주인이 건물주다.
여전히 예전처럼 간판 하나 걸려있지 않는 곳.
아는 사람들은 그곳을 ‘레인보우’라고 불렀다.
“어이- 오랜만이야. 이제 이런 데 안 오는 줄 알았는데.”
입 주위에 촘촘하게 난 수염이 인상적인 바텐더가 묻자, 안기정은 피식 웃어 인사하고는 가게 안을 둘러본다.
“여긴 똑같네.”
“그 맛에 오는 거니까.”
사람이 바글거린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제법 있다.
다양한 인종, 다양한 나이대.
20대가 주류를 이루는 이태원과는 또 다르다.
클래식한 맛이 있다.
“요새 물은 어때?”
“20년째 늘 오는 사람도 있고, 처음 오는 사람도 있고. 호기심에 와 보는 애들도 있고.”
바텐더의 말처럼 이곳은 누구한테는 집 같고 누구한테는 신세계 같다. 어찌 됐건 오래된 이곳이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건 유행에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여기는 여기만의 느낌이 있지. 어?”
주위를 둘러보던 안기정의 눈에 아는 얼굴이 들어왔다.
“내가 그럴 줄 알았지.”
“왜? 아는 사람이야?”
“오다가다.”
“지망생?”
“아니. 변호사. 자주 와?”
“아니. 며칠 전에 처음 왔는데, 거의 매일 오네.”
“후훗. 고픈가 보네.”
늑대의 눈빛을 한 안기정이 칵테일 두 잔을 들고 남장을 한 아리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갔다.
*
「며칠 전, 법무법인 해결,
“안 돼, 위험해.”
“괜찮아요.”
대표의 만류에도 아리는 단호하게 대꾸했다.
“함정수사야.”
그렇게 해서 증거를 얻어봤자, 증거력을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는 의미.
“어차피 법원에서 해결할 문제 아니지 않습니까.”
맞다.
서지우는 막내의 대꾸에 할 말이 없었다.
“이렇게까지 하려는 이유가 뭐야?”
“같이 일하는 사람이잖아요.”
서지우는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
“내가 케이 엔터 회의실에서 봤을 때부터 한눈에 알아봤지.”
양아치 보듯 힐끔 보고 무시하는 아리.
거기에 더 발끈하는 안기정.
클래식한 전략이 통했다.
“꺼져.”
“오호- 그렇게 나오신다.”
“우리 로펌에서 지금 너 상대로 고소 진행하는 줄 몰라?”
“그래서 찾아온 거 아니었어?”
“그래서 쌩까는 중이니까, 꺼지라고.”
안기정은 자신 앞에 있는 남자가 여자인 줄도, 그것이 함정수사인 줄도 눈치채지 못한다.
오히려 아리가 그렇게 나오자, 쓸데없는 자존심이 발동한다.
“어차피 여기서 벌어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본데. 너 내 타입 아니야.”
“뭐? 하하하. 종종 이런 식으로 도발하는 애들이 있지. 관심 없는 척, 아닌 척. 크크큭. 근데 속으로는 말을 더 걸어 주기만 간절하지. 아냐?”
“자뻑도 그 정도면 병이네.”
“자, 마셔.”
“얼굴도 별로인 게 머리도 안 좋은가 보네.”
장난인 줄 알았는데, 아리가 세게 나오자 안기정의 표정이 살짝 굳는다. 그의 소유욕을 건드렸다.
“곱상하게 생긴 변호사님이신 줄 알았는데, 입이 거네.”
“자꾸 말 걸 거야?”
“그쪽이 자꾸 그러고 싶게 만드네.”
아리는 짜증 나는 표정을 짓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안기정이 그녀의 손목을 확 낚아챈다.
예상치 못했다.
순간 움찔한 그녀.
혹시라도 여자인 것이 들켰을까 봐 조심스럽게 녀석의 얼굴을 보는데, 안기정은 그녀의 표정과 행동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한다.
“역시 몸은 다르게 반응하는데.”
휙- 아리는 손을 뿌리치고 놈을 노려봤다.
“유명인하고 얽히고 싶은 맘 없으니까, 꺼지라고.”
“누가 얽히재? 오늘 밤만 같이 있자는 거지.”
아리가 멈칫하자, 안기정은 곧바로 다음 무브로 들어간다.
“나갈까?”
걸려들었다.
---*---
한강 둔치.
아리가 탄 안기정의 차가 한적한 공간에 주차하자, 몇십 미터쯤 떨어진 곳에 또 다른 차 한 대가 시동을 껐다.
서지우와 최성태는 멀리 서 있는 안기정의 차를 보며, 리시버를 통해 그 안에서 나누고 있는 대화를 엿듣고 있다.
“변호사님, 괜찮을까요?”
아까부터 유독 불안해하는 최성태 사무장.
전직 강력계 형사라 웬만한 일에도 무덤덤한 그인데, 오늘은 이상하게 더 긴장한 듯싶다.
“김이 신호기를 가지고 있으니까, 신호가 오면 그때 개입하면 됩니다.”
오히려 서지우는 담담하다.
“혹시라도 신호기가 들켰거나? 아니면 누를 수 없게 되는 상황이 오면···.”
“그러면 저희가 듣고 있는 대화에서 벌써 이상한 점을 알 수 있었겠죠.”
“정말 괜찮을까요?”
“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똑똑한 친구니까.”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서지우는 최성태를 진정시키고 리시버의 볼륨을 올렸다.
---*---
한강 둔치.
안기정의 차 안.
“의외네. 호텔로 가자고 할 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네.”
안기정이 음흉한 표정으로 아리를 지긋이 바라보며 말했다.
아까부터 뛰고 있는 심장을 숨기기 위해 아리는 팔짱을 낀 채, 창밖을 내다봤다.
“여기 어때?”
“어떻기는 뭐가 어때?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래서 매력적인 거지. 아무것도 안 보여서. 주위에 아무도 없어서.”
아리는 그의 기분을 좀 더 맞춰주려고 했으나, 도저히 그럴 수 없었다. 슬슬 숨이 막히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리로 데려왔나?”
“뭐?”
“그래서 다 여기로 데려왔냐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기분 잡쳤어.”
“···.”
“흥이 깨졌다고. 나 갈래. 근처 가까운 역에 내려줘.”
일그러지는 안기정의 얼굴.
지금까지는 장난이라고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틱틱거리는 상대가 이제는 거슬린다.
“적당히 하지, 밀당.”
“착각하지 마. 유명인이래서 잠깐 호기심이 생겼을 뿐이야. 근데 다시 봐도 넌 내 스타일 아니야.”
“후훗- 네 스타일이 아니야? 이 새끼가···.”
욕지거리를 내뱉은 안기정의 손이 눈 깜짝할 시간에 아리의 턱을 움켜줬다.
“아!”
“야. 오냐오냐 봐주니까. 내가 우습냐?”
“아아-”
“너도 내 타입 아니야, 이 새끼야. 그냥 니가 변호사라서 어떤가 궁금했을 뿐이야. 뭐? ‘내 스타일이 아니야’? 병신 꼴값 떨고 있네. 내가 누군지 알고 어딜 감히···. 어?”
아리는 안기정의 큰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발버둥 쳤다.
하지만, 자신보다 15cm 나 더 큰 남자의 완력을 좁은 차 안에서 뿌리치기란 쉽지 않다.
좀 더 강하게 저항하기 위해 팔짱을 풀고 그의 팔을 밀어내려는데, 어깨 쪽으로 들어오던 안기정의 다른 손이 미끄러져 아리의 가슴 쪽에 닿는다.
“어! 너 뭐야?”
짝!
“변호사다, 이 범죄자 새끼야.”
아리의 손이 녀석의 뺨을 강하게 후려쳤다.
“이년이···.”
화가 난 놈이 아리의 얼굴을 가격하기 위해 큰 주먹을 들어 올리는 순간,
아리가 앉은 조수석 창 쪽으로 한 남자의 얼굴이 내려온다.
“뭐야? 저건 또.”
서지우.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파악이 안 되는 기정은 아리와 서지우의 얼굴을 이리저리 둘러봤다.
“뭐냐고?”
바로 그때,
똑똑똑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뒤에서 들리고, 동시에 조수석 쪽에 서 있는 서지우가 뒤쪽으로 보라는 손짓을 한다.
이제는 슬슬 두렵기 시작한 안기정이 고개를 돌리는데···
쨍그랑-
동시에 산산조각이 나는 유리창.
깨진 창 안으로 두툼하고 큰 손이 들어와 안기정의 멱살을 잡아채서는 짐보따리처럼 집어 들어 밖으로 끄집어낸다.
“아악-”
그리고는 들리기 시작하는 타작 소리.
퍽, 퍼퍽. 퍽. 퍽.
아무도 없는 한강 둔치.
“얼굴만은 때리지···.”
퍽!
“제발···.”
퍽!
“살려주세···.”
퍽!
“악! 아아악!”
그렇게 한동안 타작 소리와 애처로운 비명만이 울려 퍼졌다.
---*---
며칠 뒤, 케이 엔터테인먼트 대표실.
서지우가 내민 태블릿PC에서 나오는 영상과 음성 파일을 듣고 있는 이동주 대표의 표정이 똥 씹은 것처럼 썩어들어갔다.
영상은 최성태가 자동차의 유리창을 깨기 전에 끝났다.
“서 변호사 그렇게 안 봤는데. 생각보다 무서운 사람이네.”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 다르죠.”
이동주는 한동안 다음 말을 잇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음 수가 생각나지 않는다.
조금 전 그는 소속 배우가 게이 바에서 동성을 꾀어 (그것도 피해자 대리 로펌의 변호사를) 어찌해보려다가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까 폭행하는 장면이 담긴 영상을 봤다.
비록 플레이가 거기서 끊겼지만, 다음 장면은 아마도 헐크같이 생긴 로펌 사무장에게 얻어터지는 영상이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한들 그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런 영상을 공개해봤자, 그에게 득이 될 게 하나 없으니까.
“원하는 게 뭐야?”
“뭐겠습니까?”
“지금 나더라 안기정이 포기하라는 거야?”
“지금이라도 포기하시라는 조언을 드리는 겁니다.”
“그럼 내 30억 원은?”
“그래서 그때 저희 김 변이 배상조항을 넣자고 하지 않았습니까.”
끄응-
이동주는 신음이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좋아, 다 원하는 대로 해줄게. 게이인 것만, 밝히지 않게 해줘. 그것만 막아주면 모든 조건을 다 들어줄게. 제발이야.”
---*---
강남의 한 병원.
안기정의 입원실.
“어떻게 됐어?”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말했잖아! 그 새끼 여자라고. 여자였단 말이야.”
“야, 뭔 헛소리야! 야, 이 새끼야. 내가 몇 번 말했어. 조심하라고. 내가 몇 번 말했냐고! 네 좆 간수 잘하라고!”
“진짜야! 여자였단 말이야.”
“이 새끼가 쳐 돌았나. 야, 여자면 더 큰 일이야. 너 끝났어! 케이 엔터에서 계약 해지 통지서 날아왔어, 이 새끼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