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1화 (121/133)

거머리 (1)

“그 새끼는 어쩌고 있어?”

“펄스킨스에 있습니다.”

펄스킨스는 강남에 있는 피부과로 케이 엔터테인먼트와 제휴를 맺고 소속 배우들 피부 관리를 해주는 병원이다.

주로 피부나 두피 등 외모적인 부분을 관리해주지만, 불미(?)스러운 일이 생겼을 때는 소문이 나지 않게 조용히 관리해주기도 한다.

“쯧.”

“어떡하실 건가요?”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었다. 이미 결론은 났고, 이동주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은밀하게 안기정과의 관계를 끝내는 것이었다.

“대충 몸 괜찮아지면 미국으로 보내.”

“가려고 할까요?”

“지가 안 가면? 이 와중에 어쩔 건데?”

“그다음에는요?”

“그다음에는 손 떼는 거지 뭐. 별수 있어. 사방팔방 소문 다 났는데. 그 새끼 다시는 대한민국 연예계에 발 들여놓을 수 없어. 병신 같은 놈. 남들은 그런 재능 얻고 싶어서 환장인데, 쯧쯧. 아깝지만 할 수 없지. 들어올 일도 없겠지만, 혹시라도 시나리오 들어오면 다른 배우들한테 돌려.”

“알겠습니다.”

이동주는 서지우와 약속한 대로 안기정을 서서히 폐사시킬 계획이다.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도록.

“아, 서 변호사는요? 어떡할까요? 여전히 <해결>하고 일하면 우리 배우들 못 쓴다고 할까요?”

“됐어. 저런 싸움꾼이랑 싸워봤자, 좋을 거 하나 없어. 일 다시 맡겨.”

“네?”

“가서 부탁하라고.”

자존심이 상했지만 어쩔 수 없다. 이동주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

똑똑똑.

“변호사님.”

출근 직후 일이 바빠지기 전, 유이헌이 서지우의 방을 노크하고 들어왔다.

엉망진창이었던 얼굴이 이제는 어느 정도 괜찮아 보인다.

“아, 오늘부터 출근한다고 했던가?”

“네.”

“원하면 좀 더 쉬어도 돼.”

“아니요. 괜찮습니다. 변호사님.”

“응?”

“감사합니다.”

감사하다는 비서의 말에 서지우는 미소로 대답한 후, 돌아나가려는 이헌에게 물었다.

“진짜 괜찮은 거야?”

몸 상태에 관해 물은 게 아니었다. 이헌도 그런 의도로 물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

안기정에 대한 고소를 취하하자고 한 건 이헌의 결정이었다.

뻔뻔하게 나왔던 그를 형사 처벌하고 싶은 마음 간절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얼굴이 그런 식으로 세상에 알려지는 걸 원치 않았다.

두려웠다. 승소해도 받게 될 세상의 손가락질이.

이헌은 안기정이 연예계를 떠나는 것으로 종결하기를 부탁했다.

“괜찮습니다.”

크게 한숨 내쉰 이헌은 일부러 더 활기차게 대답했다.

“그래, 그럼. 나가, 일 봐.”

서지우는 어쭙잖은 위로 따위 하지 않았다.

“넵.”

---*---

경기도, 일산의 한 대부업체 사무실.

사무실이 깨끗한 것이 제법 정식 허가 업체답다.

하지만, 사장이나 직원들의 인상은 아직 그렇지 못하다.

“야, 그래서 이 새끼 똥꼬충이었던거야?”

“네, 그렇다네요.”

“어쩐지 생긴 게 좀 그쪽 냄새가 나더라.”

“무슨 냄새요?”

“똥내지, 뭐야, 이 새끼.”

“형님, 안기정 좋아하지 않으셨습니까?”

“나? 아니. 내가 언제?”

“저번에도 노래방에서 안기정 노래를 부르셨던 거 같은데.”

“아니. 나 그런 적 없는데.”

“아닌데, 그때 ‘그대가 뒤에서 안아주었으면 해’ 부르셨었는데. 그 노래를 들으면 왠지 모르게···.”

“야! 내가 언제 이 새끼야! 이 새끼가 아주 누구를 뭘로 보고···.”

똑똑-

한가한 평일 오후, ‘제일머니’ 백 사장이 부하직원들과 잡담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을 때,

“어- 우 사장, 우 사장이 여기 웬일이야?”

사무실 안으로 우지만이 들어왔다.

“형님 보러 왔죠. 쟤가 왜 왔겠습니까?”

“들어와, 들어와. 커피?”

“아- 한잔 주십시오.”

“재성아, 여기 커피 두 잔만 타 가지고 와라.”

백 사장과 잡담을 주고받던 부하는 지시대로 커피를 가져와 놓고는 사장실을 나갔다.

“그래서? 요새는 어떻게 지내?”

“뭐? 이것저것 하면서 지내죠.”

“갈 사장 밑에서 일한다는 소문은 얼핏 들은 거 같은데.”

“와- 우리 형님 정보 빠르시네.”

“야, 이 바닥에 정보 없으면 어떻게 버티냐. 근데? 수배는? 수배는 떨군 거야?”

“해결하고 있어요. 쩝.”

“근데 이렇게 돌아다녀도 돼?”

“아니, 뭐 쟤가 사람을 죽였습니까? 사기를 쳤습니까? 그냥 돈 빌린 년놈들 잡으러 다닌 거밖에 없는데. 며칠 전에 신호위반으로 딱지 긁었는데도 확인도 안 하더라고요.”

“그래?”

이런저런 근황 이야기가 끝나자, 조용해지는 사무실.

우지만이 조심스럽게 본론을 꺼냈다.

“형님.”

“왜?”

“저 일 좀 주세요?”

“일?”

“왜 골치 앞은 건들 있잖아요. 돈 안 갚고 숨어버린 애들. 50% 떼어주시면 제가 가서 받아드릴게. 비용 따라 안 받고.”

우지만의 제안에 백 사장은 얼굴을 찡긋하며 곤란함을 표시했다.

“야, 우 사장, 우리는 더 이상 그런 안 해. 나 이제 진짜 금융권이야.”

백 사장은 작년 불법 사채업을 청산하고 합법 대부업을 시작했다.

“에이- 그래도 미수금들 있을 거 아니에요.”

“그런 거는 그냥 이제 악성부채 처리하고 세금 공제받아.”

“아- 형님 정말 이러실 거예요? 오랜만에 찾아온 동생 안 도와주실 거예요.”

“이러는 게 아니라 정말 안 해. 없어.”

“아- 형님!”

그래도 한때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도 같이 배우고 같은 숙소에서 먹고 자고 했던 사이.

백 사장은 차마 매몰차게 동생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던 모양이다.

“진짜 없어. 진짜 없는데···.”

사장실 철제캐비닛에서 서류철 하나를 꺼내 내민다.

“원하면 이거나 가져가.”

“이게 뭔데요?”

“예전 고객 명단이야. 미수금이 있는 것도 있고, 없는 것도 있고. 솔직히 오랫동안 연체된 물건들이라 받아내기 쉽지 않을 거야. 몇 명은 죽은 사람도 있어.”

우지만은 흥미로운 눈초리로 서류철을 대충 훑어봤다. 딱 봐도 견적이 나온다. 대부분 술집 여자들에, 돈 나올 구석이 없는 하류층 인생들이다.

그가 원하는 파일이다.

“제가 받아오면 그럼 저 50% 주시는 겁니다.”

“그냥 우 사장 다 해. 난 이제 손 뗐으니까.”

“진짜요, 형님.”

“관심 없다니까.”

만족스러운 우지만은 서류철을 들고 백 사장 사무실을 나왔다.

---*---

서지우는 정기 검사를 받으러 강남, 도산병원을 찾았다.

“다행이야. 별 차이 없어.”

나이가 지긋한 신경외과 전문의 고세윤이 서지우의 뇌를 찍은 MRI 사진을 보며 말했다.

“살짝 작아진 것 같기도 하고.”

“작아진 거면 작아진 거지, 살짝 작아진 거 같은 거는 또 뭡니까.”

“작아진 것 같은데, 차이가 워낙 미세해서 뭐라고 말하기 어렵단 말이야.”

“그럼 괜찮은 거죠?”

“괜찮기는 한데, 그렇다고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야. 여전히 비정상적으로 커. 3개월 뒤에 또 보자고.”

“이런 식으로 계속 비싼 MRI 찍게 하려는 거 아닙니까?”

“아니꼬우면 다른 병원에 가든 가.”

세월이 있다 보니 이제는 퉁명스러운 삼촌과 조카 사이 같기도 하다.

“아, 맞다. 지난주에 후배 녀석을 만났는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어. 그 후배가 본 환자 증상이 자기랑 비슷해. 근데 반대야. 그 환자는 오른쪽 해마체가 비대해.”

‘오른쪽 해마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던 서지우는 문득 몇 개월 전 받아본 김아인 변호사의 건강진단서가 떠올랐다.

‘김 변도 오른쪽 해마체가 비대하다고 진단받았다고 한 거 같은데 ···.’

“그 환자 이름이 어떻게 되나요?”

“왜? 만나서 커피라도 한잔하게?”

“그러면 안 되나요?”

“가서 법원 명령받아와, 그러면 물어봐 줄게.”

다른 환자의 신상을 아무렇게나 공개할 양반이 아니다. 설사 그게 조카처럼 친한 변호사 환자라고 해도.

“그럼 병원 이름이라도 알려주십시오. 후배분이 일하신다는.”

“왜? 진짜 법원 명령이라도 받아오게?”

“네. 받으면 그쪽에 직접 송달하지, 뭐 귀찮게 선생님께 하나요.”

농담이다. 그럴 마음 없었다.

농담을 농담으로 받았을 뿐이다. 그런데,

“은평자애병원.”

‘은평자애병원? 거기는 김 변이 입원했던 병원인데···.’ 서지우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왠지 그 후배가 말한 환자가 <해결>의 막내 파트너일 것 같은 기분.

하지만, 고세윤 의사의 다음 말에 서지우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귀신같이 그게 또 여자 환자인 줄은 어떻게 알아 가지고.”

“여자···요?”

‘김아인 변호사가 아닌가?’

---*---

법무법인 해결의 카페 같은 사무실.

점심을 같이 먹고 돌아온 정도와 아리.

이헌이 들어오자, 정도는 자신도 모르게 살짝 긴장한다. 그러지 않으려고 하지만, 모른 척하려고 하는 게 더 행동을 어색하게 만든다.

“변호사님.”

“응? 왜?”

“그냥 예전처럼 대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하지. 내가 안 그랬어?”

“그냥 불편하지 않으셨으면 해서요.”

“불편? 내가? 아니? 왜? 전혀? 안 불편해.”

정도가 어색하게 손사래를 치자, 이헌은 씩- 웃고는 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그렇게 어색했어?”

“네.”

“나, 진짜 아닌데.”

“진짜요?”

“진짜야. 나 깨어있는 사람이야. 그런 거 절대 없어. 나 게이 좋아해.”

“게이 좋아하세요?”

“응!”

그제야 자신이 한 발언의 뉘앙스가 이상하게 들릴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정도.

“아!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나는 게이 사람도 일반 사람들처럼 좋아한다고. 상관없다고. 진짜야. 나 솔직히 김 변이 유 과장이랑 사귄다고 해도 받아들일 수 있어. 진심이야.”

‘맙소사. 까먹고 있었다. 윤 변호사님이 나를 게이로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변호사님, 저 게이 아녜요.”

“응?”

“게이 아니라고요.”

“그럼 왜···?”

“제가 수지 씨한테 관심이 없으니까, 정인이가 수지 씨 자존심 상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한 거예요.”

“아- 진짜?”

“네.”

“진짜···인 거지?”

“네, 진짜 아니에요.”

“휴우- 다행이다.”

말을 그렇게 했지만, 꽤 불편했던 모양이다.

“그래, 그럴 줄 알았어! 김 변 같은 상남자가 게이일 수 없잖아!”

“방금 게이 사람도 좋다면서요?”

“좋아. 근데 일반 사람도 좋고. 다만.”

“다만 뭐요?”

“다만, 김 변이 게이면 같이 사우나도 한번 가고 그래야 하는데, 그런 걸 못 하니까.”

사우나? 그건 게이가 아니라도 같이 못 간다.

“그래! 말 나온 김에 오늘 밤에 퇴근하고 어때? 같이 갈래? 신사역에 내가 좋은 데 아는데.”

“아- 제가 사우나를 별로···.”

“왜? 저번에 좋아한다고 했잖아?”

“제가···그랬나요?”

“그래. 저번에 그랬는데, 존나 좋아한다고.”

아···그럼···.

“제가 무좀이 생겨서요.”

“엥? 진짜?”

“네.”

“아, 뭐야. 그렇게 안 생겨가지고. 야- 의외네, 김 변이 무좀이 있었다니. 그럼 못 가지. 그래, 그럼, 치료하고 나중에 가자.”

“네···.”

아- 비참하다. 게이의 탈을 벗었더니, 이제는 무좀 있는 남자가 되어버렸다.

---*---

동묘앞역 근처의 낡은 건물 2층.

밑에 생선가게가 있다 보니 비린내가 사무실 내에 진동한다.

“아이- 씨발, 진짜 별거 없네. 다 푼돈이네.”

백 사장이 준 서류철을 유심히 보고 있던 우지만은 쌍욕을 내뱉었다.

정말이지 푼돈밖에 받아낼 게 없는 것들에 실망한 그가 서류철을 닫으려는 순간, 그의 눈에 흥미로운 사진이 들어온다.

“어라.”

그가 죽이고 싶은 남자가 대표로 있는 로펌의 막내 변호사.

그와 똑같이 생긴 여자의 주민등록증 사본을 방금 그 안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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