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7화 (127/133)

기적 (2)

“변호사님, 지만입니다.”

-어- 우 사장. 웬일이야?

“오늘 저녁에 시간 어떠신가요? 괜찮으시면 제가 술 한잔 대접하고 싶은데요.”

-우 사장이?

법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것이 있었다.

우지만은 성만희를 만났다.

“변호사님,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변호사 흉내를 내고 다니면 어떻게 되나요?”

“뭘 어떻게 돼, 이 사람아, 감옥에 가지.”

“사기인가요?”

“사기, 변호사법 위반, 횡령, 문서위조···. 변호사 흉내를 내서 뭘 했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

“변호사법이라는 것도 있나요?”

“아, 그럼 있지. 의료법도 있는데. 변호사법 107조, 108조인가 그럴 거야, 비(非) 변호사가 변호사 행위를 했을 때 받는 처벌이 나와 있는 조항이. 그런데 왜 그런 걸 물어? 설마? 우 사장, 변호사 사칭하고 다니는 거는 아니지?”

“에이- 설마요. 아닙니다.”

“그런 애들이 있어요. 보통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을 했거나, 이쪽 물 좀 먹는 놈들이 부동산 중개인들하고 ‘무슨, 무슨 컨설팅이다’ 해서 명함 근사하게 파서는 지방 같은 데 돌아다니면서 토지조서, 물건조서 같은 거 작성해주고 몇백만 원씩 받는데, 그거 다 변호사법 위반이야. 징역감이라고. 조심해.”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헤헤.”

술이 얼큰하게 올라 경계심이 없어진 성만희는 아무런 의심 없이 질문에 술술 대답했다.

우지만은 만족스러웠다. 평소 같았으면 무슨 일이냐고 꼬치꼬치 캐물었을 텐데···. 말이 좀 장황한 것 빼고는 괜찮다.

“그럼 로펌 대표는요?”

“로펌? 로펌 대표는 뭐?”

“그런 비(非) 변호사를 쓴 로펌의 대표는요?”

“뭔 소리를 하는 거야? 대한민국이 무슨 미국이라도 되는 줄 알아? 변호사도 아닌 사람이 무슨 수로 로펌에 들어가. 병신이야? 전화 한 통만 돌리면 바로 확인할 수 있는걸.”

“그럼 알았다는 거겠네요?”

“뭘.”

“자신이 뽑은 사람이 변호사가 아니라는 걸.”

“아- 자꾸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하는 거야. 변호사가 아닌 사람을 왜 뽑아?”

“그렇다고 가정하면요. 왜? 뉴스에 보면 병원 같은 데도 의사 아닌 사람들한테 가운 입혀서 대리 수술시키고 하잖아요.”

“뭐? 그니까 로펌 대표가 변호사도 아닌 자기 가족이나 친척을 변호사인 척 세워놨다는 거야?”

“그렇겠죠? 친한 사람 아니면 그런 짓을 안 하겠죠?”

“하-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네. 뭐, 어떤 또라이가 그랬다면, 그놈도 사기죄, 아니면 사기 방조.”

“몰랐으면요?”

“몰랐으면 형사 처벌은 없지. 민사는 남을 거고. 근데 변호사도 아닌 놈을 뽑은 그런 병신 같은 대표라면 변호사 일 하겠나? 쪽팔려서 변호사 그만둬야지. 어떤 의뢰인이 그런 멍청이 같은 놈에게 가겠어.”

우지만은 성만희의 마지막 코멘트가 마음에 든다.

“그렇겠죠. 흐흐흐.”

“아, 근데 아까부터 뭘 자꾸 묻는 거야?”

“아닙니다. 변호사님, 제 술 한잔 받으십시오. 헤헤.”

---*---

점심시간, <해결> 근처 은행.

“고객님, 64번이신가요?”

“네? 아, 네.”

알림과 함께 천장에 달린 모니터에 자신이 들고 있는 번호표의 순번이 떴는데도, 번호표를 뽑아준 안내 직원이 다가올 때까지 아리는 알아채지 못했다.

「“서 변호사님께서 김아리에 관해 물으셨다고요?”

“네, 변호사님.”

“왜요?”

“의도는 모르겠는데, 병 이력이랑 건강검진 기록, 그리고 현재 건강 상태에 관해 물어보셨어요. 전에도 물어보신 적이 있긴 한데, 그때는 막내 파트너의 상태가 궁금한 거였다면, 이번에는 동생 분, 그러니까 아리 씨에 관해 물으셨습니다.”」

‘왜 물으신 걸까? 뭐가 궁금하신 거지?’

가뜩이나 우지만의 협박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한 아리는 도무지 어떻게 이 상황을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

“고객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일단 최대한 시간을 끌어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지만, 서 변호사님 성격상, 조만간 다시 물어보실 거고. 제가 힘들다고 말씀드려도 방법을 찾아내실 겁니다.”

“네, 오늘, 내일 생각해보고 어떻게 대응할지 상의드릴게요.”

“알겠습니다.”

“부장님.”

“네?”

“죄송해요. 그리고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고객님?”

‘내 건강 상태가 왜 궁금하신 거지?

혹시 우지만이 대표님에게···?

아니다. 그랬다면 내게 직접 확인하셨을 거다. 굳이 뒷조사를 지시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면 다른 이유가 있어서라는 건데···도대체 뭐가 궁금해서 내 건강검진 기록이···.’

“고객님!”

“네?”

최성태 사무장과의 대화를 떠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던 아리는 그제야 은행직원의 부름을 들었다.

“무슨 일로 오셨어요?”

“아, 죄송합니다. 적금을 깨려고요.”

일단은 급한 불부터 꺼야 한다.

“고객님, 이거 지금 깨면 되게 아까운데···.”

“해지해주세요.”

---*---

동묘앞역, 비린내 나는 사무실.

우지만이 어젯밤 성만희한테서 들은 <변호사법> 관련해서 이것저것 인터넷을 찾아보고 있다.

“명준아, 너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변호사 행위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냐?”

“모르는데요.”

“변호사법, 제11장 벌칙. 제109조.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자는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캬-! 이 벌금과 징역은 병과할 수 있다. 으아! 변호사가 아니면서 금품·향응 또는 그 밖의 이익을 받거나 받을 것을 약속하고······.”

우지만은 마치 좋아하는 노랫말을 읊는 것처럼 중간중간 추임새까지 넣어가며 변호사법 벌칙 조항을 읽어내려갔다.

“아- 우리나라 법치국가야. 이런 법도 있고.”

바로 그때, 비린내 나는 사무실 안으로 돈 가방을 든 아리가 찾아왔다.

“아이고, 이게 누구십니까? 김 변호사님 아니십니까. 명준아, 가서 커피 좀 사 와라. 아닌가? 저녁이라서 커피 안 하시나? 그럼, 차? 둥굴레차? 흐흐흐. 이쪽으로 앉으시죠, 변호사님.”

비아냥거리는 우지만을 노려보며 아리는 그가 앉아 있는 소파 건너편 의자에 앉은 뒤, 돈 가방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아- 이게 그건 가요? 저 주시려고 가져오신? 어디 보자.”

가방 안에서 돈다발들을 꺼내는 우지만.

눈썰미가 좋다. 세기도 전에 눈치챘다.

“응? 작아 보이는데. 칠천? 7천만 원밖에 안 되는데. 그때 내가 잘못 말했나? 1억이라고 했는데.”

“이게 내가 가진 전부야.”

“어허- 내가 듣기로는 거기 로펌이 돈을 잘 준다고 들었는데, 사이닝보너스에 한 해에 보너스로 몇억씩.”

“그게 다야.”

아리는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았다.

“그래? 그러면 나한테 붙은 혐의는?”

“말했잖아. 그건 내가 어떻게 못 한다고.”

“흠···. 돈도 다 안 가지고 와, 혐의도 못 떨궈. 이거는 뭐지? 협상을 하겠다는 건가, 말겠다는 건가.”

“그거나 먹고 떨어져. 아니면 가서 신고하든지.”

아리는 우지만의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말했다.

“오호호. 세게 나오시네. 내가 못 할 거라고 생각하시나 보네, 우리 김아리 씨가. 그건 오산인데. 나 한다면 하는 사람인데. 명준아, 그렇지?”

우지만의 얼굴에 썩은 미소가 드리워진다.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그 잘생긴 대표님한테 가야지 뭐.”

“뭐?”

“아니, ‘돈도 없다.’ ‘혐의도 못 떨군다.’ 그러면, 돈도 있고, 능력이 있는 분을 찾아가야지,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서지우 대표님한테 가서 요구하겠다고. 명준아, 아까 변호사법 위반이 몇 년이라고?”

“7년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모르셔.”

“에이- 어떻게 몰라. 몇 년을 같이 일했는데, 당연히 알았겠지.”

“몰라! 모르신다고!”

“왜 화를 내고 그래? 아- 좋아. 몰랐다고 처. 근데 이 사건이 알려지면 사람들도 몰랐다고 믿을까? 고졸 여자가 남장하고 변호사 흉내를 로펌에서 2년씩이나 했는데, 그걸 누가 믿겠어? 막말로 지나가든 개도 웃겠다. 자, 솔직히 얘기해 봐. 그러면 내가 3천 디씨해줄게. 그 새끼도 아는 거지?”

우지만의 목표는 서지우였다.

알았다는 증언만 있으면 확실하게 잡을 수 있으니까.

“양아치 새끼. 차라리, 신고해.”

“와- 충성심인가? 뭐지? 막 이상한 게 느껴지려고 그러네. 21세기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런···아! 혹시 설마 둘이···?”

아리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냉정하게 행동하려고 마음을 다잡았는데, 예상치도 못한 도발에 몸 안의 피가 순간 얼굴로 솟구쳤다.

“뭐야? 진짜야? 그냥 던진 건데. 아, 근데 더 이상하잖아. 몰랐다고 치면, 둘이 남잔데···. 설마, 그런 취향이야? 잠깐, 잠깐, 밑에 뭘 단 거는 아니지?”

“야이- 개새끼야.”

“오호호- 입이 거네, 아가씨가. 어이- 열 내지 마. 벌써부터 열 내면 어떡해? 이제부터 시작인데. 자,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 똑바로 들어. 모자란 3천, 다음 주까지 만들어서 가지고 와. 그거 가지고 오면 다음은 얼마를 가지고 와야 하는지 알려줄 테니까.”

“미쳤어? 내가 너 같은 새끼한테 호구 잡힐 것 같아?”

“이미 잡혔어, 씨발련아. 신고? 지랄하고 자빠졌네. 그럴 생각 있으면, 이 돈 안 가지고 여기 안 오지. 니 발로 가서 자수했겠지.”

순간 누군가가 뇌를 송곳으로 찌른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아까부터 세게 누르고 있던 허벅지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아리는 싸늘한 표정으로 우지만을 응수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그 냄새 나는 곳을 빠져나왔다.

바지 안쪽에서 흐르는 피가 무릎을 타고 그녀의 양말까지 떨어졌다.

우지만은 그녀의 피 냄새를 맡았다.

---*---

순간 뾰족한 것이 머릿속 깊숙이 들어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무실에서 서류를 보고 있던 서지우의 입에서 절로 비명이 새어 나왔다.

“아!”

생전 아프다고 소리쳐본 적 없었던 그였다.

아무리 예고 없는 두통이었다고 한들 소리를 지르다니···.

하지만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처음 느낀 정도만큼은 아니었지만, 통증이 남아있다.

서지우는 진통제를 찾기 위해 휴게실로 향했다.

상비약들을 찾아 먹으려는 순간.

‘뭐지?’

비린내가 난다.

---*---

동묘앞역, 허름한 빌딩 2층.

우지만은 아리가 놓고 간 돈다발 중에서 오백만 원을 빼 부하게 건넨 뒤, 나머지는 사무실 금고 안에 넣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명준아, 이번에는 아주 제대로 물은 것 같다. 한 달에 돈 천씩 당기면 이건 연금 복권보다 더 좋은 건데. 안 그러냐?”

“네, 사장님.”

“기분도 째지는데, 술이나 한잔 빨러 가자.”

“어디로 가실까요?”

“오랜만에 시끄러운 데 좀 가볼까? 춤 좀 추고 싶은데.”

“양 부장한테 전화 넣을까요?”

“그래. 전화 넣어봐라. 아, 가기 전에 사우나부터 가자. 올 만에 헌팅하러 가는데, 몸에서 생선 냄새 내면서 갈 수는 없잖아.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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