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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11화 (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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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전투라고 했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는 보통 든든하게 식사를 하기 마련이다. 뭐가 이상한 건가?”

학철의 질문에 리얀이 반문했다.

“아니, 지금 간신히 다들 따돌리고 들어왔는데, 전투라고 하시니….”

“학철. 군사 경험이 있다고 하지 않았느냐?”

“예, 군대 갔다 왔어요. 행정병이지만.”

학철은 행정병이라는 부분은 조금 작게 말했다.

“그렇다면 전투를 언제 벌여야 하는지 이해하고 있지 않느냐?”

“저는 일개 사병이었어요. 그냥 시키는 대로 했다고요. 여기선 그런 걸 ‘까라면 깐다’라고 표현해요.”

학철은 자신의 군대 경험을 나름대로 최대한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런 복종심이 사병의 덕목이기는 하지. 아무튼 모르겠다니 설명해 주겠다. 전투는 이길 수 있는 때에, 이길 수 있는 장소에서 벌이는 것이다. 그것이 원칙이다.”

“자, 학철. 생각해 봐요. 그런데 지금 놈들은 분산되어 있잖아요? 찾는 대상도 망토 두른 여자, 아니면 마법사, 이 정도밖에는 모를 거고요. 그러니 지금이 공격을 가할 적당한 시간이지요. 이길 수 있는 장소이고요.”

세이라가 햄버거를 씹으면서 리얀의 말을 거들었다. 학철은 햄버거 한 개가 순식간에 세이라의 입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이거, 콜라라고 했나요? 콜라, 군단장님은 마음에 들지 않나 봐요.”

세이라가 콜라를 집어 들면서 말했다.

“그런 걸 많이 먹으면 죽는다는 진실을 말했을 뿐이다.”

“우리도 이런 거 먹어요, 군단장님. 이런 고약한 것은 며칠 굶은 상태거나 혹은 전투를 바로 앞둔 상태에 아주 큰 효과가 있어요.”

“세이라. 소마soma를 말하는 것이냐?”

“예. 소마.”

“잠깐. 그 소마라는 거, 무슨 종교에서 쓰는 마약 같은 거 아닌가?”

감자튀김을 씹고 있던 사장이 불쑥 끼어들었다.

“모르겠소, 주인장. 나는 이곳의 언어를 아직 완벽하게 모르오. 다만 내가 사용하던 단어와 가장 비슷한 단어를 찾아내서 사용할 뿐이오.”

리얀이 설명했다.

“아무튼 소마라는 건 이 콜라처럼 엄청나게 달고 끈적거려요. 굶어 죽어가던 사람이 먹으면 눈에 생기가 돌고, 전투 직전에 먹으면 힘이 솟지요. 이걸 먹으니까 생각이 나서요. 소마.”

세이라는 이렇게 말하면서 리얀과는 달리 콜라를 아주 맛있게 삼켰다.

식사는 곧 끝났다.

“자, 그럼 임무를 부여하겠다. 세이라는 지금 밖으로 나가서 정찰을 하며 놈들을 각개격파한다. 아주 특별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는 한, 그대에게 현장에서 독단을 취할 권한을 주겠다.”

“예, 그럴게요.”

세이라는 생글거리며 명랑하게 말했다. 학철은 세이라의 미소 짓는 얼굴이 꼭 가면처럼 느껴졌다. 조금 있으면 사람 죽이러 갈 사람의 표정이라고 생각하니 섬뜩하기도 했다.

“그리고 학철. 너는 세이라를 따라간다.”

“예? 저, 저도요?”

학철은 검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래. 세이라는 전투에는 능하지만 이곳의 문화는 아직 잘 모른다. 너는 세이라의 옆에서 세이라가 이곳 문화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지 않도록 조언을 해 주어야 한다.”

“저기, 세이라, 저분이 하겠다는 거, 전투라는 거, 싸운다는 말 아닌가요?”

“물론이다.”

“일단 제가 전투에 도움이 될 리가 없고요, 전투가 벌어지는 데 제가 옆에 있다가는 도움은커녕 방해만 될 텐데요? 안 그래요?”

학철은 좌우를 둘러보며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사장은 눈을 피하고 감자튀김을 씹는 데에만 열중했고, 오브라이언은 아주 고개를 푹 숙이고 빨대를 빨고만 있었다.

“아까 봤어요. 아주 잽싸게 엎드리던데요? 그 정도면 충분해요.”

“아니, 막, 그 암기 같은 거 휙휙 던지고 그러던데, 그러다가 맞기라도 하면….”

“그 정도 위험은 감수해야 한다, 학철. 그 정도 각오도 없이 금화 1천 개를 받으려고 했단 말이냐?”

“그, 그건 아니지만….”

금화 1천 개. 현금 100억 원.

학철은 리얀의 말에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끌려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권총으로 무장한 사내들가 명치를 가격했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제 말은요, 아무리 금화가 1천 개라고 해도 그게 살아야 쓸모가 있지 죽으면 소용없잖아요.”

“알겠다.”

리얀은 이렇게 말하더니 단검을 뽑아 들었다.

“으악!”

학철은 예리하게 벼려진 칼날을 보는 순간, 아무 소리 안 할 테니 살려달라고 소리칠 뻔했다. 하지만 리얀이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서 피를 낸 뒤, 학철의 머리 위에 떨어뜨리는 것이 먼저였다.

핏방울이 정수리에 떨어졌다. 학철은 뜨거운 기운이 머리에서 시작해 온몸으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뭐, 뭐하신 거예요?”

“보호 주문을 걸었다. 오늘 밤 동안은 유효할 것이다.”

“보호주문요?”

“그렇다. 나의 에테르가 너의 몸을 지켜줄 것이다. 다만 이 보호주문은 충격을 막아주지는 못한다. 그러니 네가 좀 전에 했던 것처럼,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엎드려야 한다. 내 말 알겠느냐?”

“예? 아, 예… 알겠습니다.”

학철은 리얀이 피를 떨어뜨린 자리를 손바닥으로 만져보았다. 피가 붙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어쩐지 힘도 나는 것 같았다.

“혹시 보호 마법 걸리면 힘도 세지나요?”

“아니다.”

리얀은 단호하게 잘라 말한 뒤 세이라를 불렀다.

“세이라. 그대에게 징표를 주겠다. 다만 혼선이 생길 수 있으니 나를 향해 동시에 말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런 경우에 보통 직급이 높은 사람이 먼저 대화의 우선권을 가져요. 그러니까 이 경우에는 내가 우선이라는 거예요. 내 말, 이해하겠어요?”

세이라는 전투에 투입되는 게 즐거운지 아주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학철은 알겠다고 했다.

“그런데, 오브라이언. 홍 대표는 왜 안 와?”

막 게스트하우스를 나서려는데 사장이 오브라이언에게 물었다.

“오늘 밤 의뢰가 이상하게 많아요, 사장님.”

오브라이언이 주눅이 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홍 대표가 상황 정리를 해 주면 편할 텐데… 알았어, 알았어. 그럼 나가서 일들 봐요. 학철아, 넌 다치지 말고 돌아와야 한다. 알겠지?”

사장이 당부하듯 학철을 걱정해주었다.

“예… 그랬으면 좋겠네요.”

학철은 이렇게 대답하고는 세이라와 함께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여전히 홍대의 밤은 축제였다. 술에 취한 사람들, 연인들, 이성을 찾는 사람들이 뒤엉켜 거리를 활보하고 있었다.

“그럼 시작해 볼까요?”

세이라가 학철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학철은 놀라서 움찔했다.

“겁먹지 말아요, 학철. 잡아먹지는 않을 테니까.”

“잡아먹기도 하나요?”

학철은 빈정거리는 투로 물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정말 먹을 게 없는 경우 아니면 사람을 잡아먹진 않는다고요.”

이 대답을 들으니 안심이 되기는커녕 새로운 걱정이 생길 것만 같았다.

세이라와 학철은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걸었다.

“이곳에서는 이렇게 다니면 눈에 뜨이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어요. 내 판단이 옳은가요?”

세이라가 거리를 걸으며 물었다. 학철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말로 세이라와 학철은 전혀 눈에 뜨이지 않을 것 같았다.

“예. 정말 그렇겠네요. 그런데 이렇게 무작정 돌아다닐 건가요?”

학철이 물었다.

“아뇨. 정찰부터 해야죠.”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투였다.

“정찰이라고 하면….”

“저기.”

세이라가 턱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턱이 향한 곳은 쇼핑몰과 극장이 입점해 있는 이즈파크 빌딩이었다.

“정찰은 높은 곳에서 하는 거잖아요. 안 그래요?”

“그야… 그렇죠.”

“그럼 저기로 가야죠. 저기가 이 근방에서 제일 높으니까. 그렇죠?”

결국 학철은 세이라와 함께 이즈파크 건물까지 걸어야 했다.

“내가 참 많은 나라를 돌아다녀 봤지만, 여기는 정말 부유한 것 같아요. 저렇게 높은 건물이 즐비하고, 가게들은 다 귀한 유리로 장식되어 있고. 사람도 정말 많고요. 처음 도착했을 때, 이곳에 무슨 축제나 종교행사가 있는 줄 알았지 뭐에요?”

세이라는 아주 재미있다는 듯이 수다를 떨었다. 학철은 대충 맞장구를 치며 이즈파크몰에 닿을 때까지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이 정찰 임무를 마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즈파크 빌딩 1층은 쇼핑몰이다. 꽤 늦은 시간이지만 아직 영업 중이었다.

“저기요, 일단 들어가는 건 문제 없을 텐데, 아마 3층부터는 못 올라갈 거예요. 영업시간이 지나서요.”

학철이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우리 이제 정찰을 할 건데요, 아무리 보호 주문이 걸려 있어도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어요.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죠?”

세이라는 학철의 말은 무시하고 이렇게 경고를 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죽는다는 건 어린아이도 다 알아요.”

학철은 옥상에 올라가면 난간 근처로는 가지도 않으리라 생각하면서 말했다.

“그럼 이리 와요.”

세이라가 학철의 손을 잡고 건물 옆 골목으로 향했다. 학철은 어쩔 수 없이 세이라를 따라갔다.

“헉!”

골목에 들어서자 세이라는 학철의 허리를 꽉 껴안았다. 급작스러운 행동에 학철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조심해요!”

세이라는 이렇게 말하더니 그대로 건물 벽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자, 잠깐만….”

하지만 이미 늦었다. 학철은 세이라의 품에 안긴 꼴로 홍대 부근에서 제일 높은 빌딩을 올라야 할 운명이 되고 말았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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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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