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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이라는 왼팔로 건물을 오르고 있었다. 오른팔로는 학철의 허리를 붙잡은 상태였다.
“자, 잠깐….”
“쉿! 조용히 해요. 소리 내면 떨어뜨릴지도 몰라요∼?”
세이라가 장난기 있는 어투로 말했다. 하지만 학철은 그 말에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꽉 막았다.
세이라는 왼팔만을 이용해서 건물 외벽을 기어오르고 있었다. 도대체 왼손에 무슨 장치가 있는 건가 살펴보았지만 손은 마치 파리나 거미가 벽을 기어오르는 것처럼 아무 장치도 달려있지 않았다.
‘발? 발에 뭔가 있는 건가?’
학철은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언제 올라왔는지 벌써 건물 중간쯤을 오르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아찔해서 눈을 질끈 감아 버렸다.
“읍! 읍!”
학철은 절로 나오는 비명을 애써서 참으며 이 순간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잠시 후, 세이라는 건물 옥상에 도착한 후, 학철을 던지듯 옥상에 내려놓고는 자신도 옥상에 닿았다.
“으아아아악!”
학철은 참고 참았던 비명을 터트리며 몸서리를 쳤다. 세이라는 그런 학철을 안타깝다는 듯 한동안 지켜보았다.
“끝났어요?”
“뭐, 뭐가요?”
학철은 숨을 헐떡이면서 대답했다. 바지가 축축해지지는 않았는지 살짝 확인해 보았지만 천만다행으로 오줌을 지리지는 않았다.
“뭐, 뭐에요? 마법인가요? 도대체 어떻게 올라온 거예요?”
“아, 설명을 안 했군요. 이거에요.”
역시 신발이었다. 세이라는 발을 들어서 신발을 보여주었다.
“이 신발에는 주문이 걸려 있어요. 제가 의지를 가지면 벽에 달라붙을 수 있지요. 다만 집중이 흐트러지거나 하면 그대로 추락하니까 제대로 훈련받은 사람 아니면 이 신발 못 써요. 그러니까 이 신발, 빌려 달라고는 하지 말아요.”
물론 신발을 신고 건물을 오를 생각은 조금도 들지 않았다. 학철은 조금 전 아래를 내려다보았을 때의 아찔함이 떠올라서 오금이 다 저렸다.
- 도착했느냐?
리얀의 목소리가 목 뒤에서 들렸다. 학철은 태연한 척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깜짝 놀라서 움찔했다.
“예, 군단장님. 정찰에 딱 맞는 높은 장소가 있어서 올라왔어요.”
- 학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세이라가 임무 수행하는 것을 도울 수 있도록 하거라.
도대체 뭘 어떻게 도우라는 것인지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학철은 그러겠다고 대답은 했다.
“그런데 저기, 저건 뭔가요?”
세이라가 옥상 중앙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거기에는 H자가 원안에 크게 그려져 있었다.
“아, 이거 헬기 착륙장이에요. 서울 시내 높은 건물 중에는 헬기 착륙장이 있는 건물이 꽤 있어요.”
“헬기가 뭐죠?”
학철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좋을까 잠시 고민했다. 때마침 헬기가 하늘을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쉽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그냥 말로 설명하려니 쉽지는 않았다.
“강철로 된 탈것이에요. 하늘을 날아요. 그래서 이렇게 건물 옥상에 내리는 거고요.”
“강철로 된 탈것… 이라면 용 같은 건가요?”
“용이요?”
“예. 용기사들이 타는 거.”
“용기사가 뭐죠?”
“그건….”
뭔가 대화가 겉도는 것 같았다. 학철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검색엔진을 돌린 다음 헬기 사진을 보여주었다.
“헬기라는 건 이런 거예요. 이 위에 프로펠러가 돌면서 바람이 일고, 그 힘으로 하늘을 날아요.”
학철은 자신이 알고 있는 범위 내에서 자세하게 설명을 해 주었다.
“군단장님, 이거 보고 계신가요?”
- 나도 보고 있다. 이곳은 마법은 없지만 기계문명은 많이 발달한 것 같구나.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세이라는 감탄했다는 듯이 헬기 사진을 한동안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런데 전 헬기보다 이게 더 신기해요. 뭐라고 부르죠? 핸드폰? 스마트폰?”
“예, 그렇게 불러요.”
“보니까 대부분의 사람이 이걸 들고 다니더라고요. 이걸로 대화도 나누고, 이렇게 자료도 찾을 수 있는, 그런 거죠? 이건 처음 보는 거라….”
세이라는 학철의 핸드폰을 유심히 살폈다.
“하나 사셔도 돼요. 요즘에 단통법도 폐지되고 보조금도 올라서 그렇게 돈 많이 안 들어요.”
- 그래. 이곳 문화이니 익숙해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구나. 시간이 되면 하나 장만하기로 하고, 일단 지금은 정찰 임무에 집중하거라.
“예, 그렇게 할게요.”
세이라는 난간 쪽으로 걸어갔다. 학철은 세이라가 또 무슨 이상한 짓을 하지나 않을까 걱정이 돼서 한참 거리를 두고 지켜보았다.
- 학철. 세이라의 시야를 공유해 주겠다.
리얀이 말했다.
“공유요? 어, 어엇?”
학철은 다음 순간 놀라서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세이라의 뒷모습과 홍대의 야경이 글자 그대로 겹쳐서 보였던 것이다. 처음 보는 광경에 학철은 어지러워서 자리에 주저앉았다.
- 학철! 정신 차려라! 눈을 감아라!
리얀이 호통을 치자 학철은 얼른 눈을 감았다. 그러자 학철의 눈앞에 세이라가 보고 있는 홍대의 야경만이 펼쳐졌다.
- 스마트폰으로 다른 곳에 있는 그림도 불러올 수 있으면서 고작 시야 공유 정도에 놀란단 말이냐?
“그건 그거고요… 처음이니까 그렇죠. 앞으론 뭐 하기 전에 경고라도 좀 해 주세요.”
학철은 나름대로 불만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리얀은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자신을 보고만 있을 것 같았다. 눈을 감아도 표정이 눈에 선했다.
“학철. 저놈들 보여요? 여섯 명이 몰려다니고 있는데.”
세이라가 말했다. 하지만 학철의 눈에는 거리를 다니는 사람의 무리가 그저 개미 떼처럼 보일 뿐이었다.
“누구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잘 안 들려요! 이쪽으로 좀 와요.”
세이라가 고함을 쳤다.
“누굴 말하는 건지 모르겠다고요!”
“아, 진짜….”
다음 순간 누군가가 학철의 허리를 감아서 들어 올렸다. 학철은 반사적으로 눈을 떴고, 건물 옥상 바닥과 옥상 바닥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동시에 겹쳐서 보였다.
“으아, 으아아아!”
학철은 발버둥을 쳤지만 세이라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자, 눈 감아요.”
세이라는 학철을 난간 옆에 내려놓은 다음 말했다.
“알았어요, 알았어!”
학철은 바닥에 납작 엎드린 상태로 대답했다.
“자. 침착하게. 저기 중앙에 건물 보이죠? 빨간 불 들어온 건물요.”
“저, 어딜 말하는지 모르겠어요.”
학철은 솔직하게 대답했다. 세이라의 시야로 본다고 해서 더 잘 보이는 것도 아니고, 더 크게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군단장님. 도움을 좀 주셔야겠는데요?”
- 학철. 놀라지 말고, 눈앞에 보이는 것에 집중해라.
리얀이 말했다. 학철은 도대체 어디에 집중하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답답했다.
“자. 이 건물, 보여요?”
다음 순간, 세이라가 말한 건물이 크게 확대되었다. 마치 망원경으로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 보여요.”
“간판이 있군요. 홍대 샤브샤브. 보여요?”
“예… 보여요….”
학철은 자신이 보는 광경이 확대가 되고, 또 이동도 되는 신기한 경험에 감탄했다. 어쩐지 얼마 전에 체험해 본 VR 기기를 쓰는 것 같기도 했다.
“그 옆에 여섯 명, 보이죠? 덩치 큰 사람들.”
세이라의 말 그대로였다. 여섯 사내가 빙 둘러서서 뭔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어때요? 저 사람들, 적일까요?”
“그, 글쎄요….”
분명히 건달처럼 보이는 구석이 있는 사내들이었다. 하지만 그냥 동창회에 참석한 사람일 수도 있었고, 해병대 전우회일 수도 있었다. 보는 것만으로 단정 지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샤브샤브가 뭐에요?”
세이라가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샤브샤브요? 그거, 일본 요리인데, 국물에다가 고기를….”
-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여길 좀 봐라.
학철이 나름대로 샤브샤브에 대해 성의 있게 설명을 해주려는데 리얀이 끼어들었다.
그리고 시선은 여섯 사내를 넘어가 길을 걷고 있는 사내 쪽으로 옮겨갔다. 덩치가 아주 큰 대머리 사내였다. 씨름선수, 혹은 유도선수를 생각나게 하는 체구였다.
“맙소사! 자이스 장군!”
세이라가 소리쳤다.
- 맞다. 저건 분명 자이스 장군이다.
“아니, 그런데 자이스 장군은 3년 전에 대평원 전투에서 전사했잖아요? 이게 어떻게 된 거죠?”
- 전사하지 않았던 거겠지.
“생각해 보니까 그때 자이스 장군, 흑마법사하고 내통한다는 혐의가 있었잖아요. 전사하면서 그냥 넘어갔지만요.”
세이라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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