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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20화 (2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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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대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누군가의 생각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지구를 정복하는 것도 간단하지 않을까?

“그렇지는 않소, 홍 대표.”

리얀은 일단 이렇게 결론을 낸 후 설명을 이어갔다.

“타인의 정신을 지배하는 일은 너무나도 큰 힘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제아무리 뛰어난 마법의 천재인 흑마법사라 해도 반나절 이상 지배하는 건 불가능하오. 기억을 지우거나 경험하지 못한 일을 경험한 것처럼 꾸미는 일도 가능하지만, 하루를 넘기지 못하고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오. 하룻밤이 지나면 잃어버린 기억은 되찾을 것이고, 경험하지 못한 일은 그것이 경험하지 않았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어 있소. 사람이 자면서 꿈을 꾸는 것은 자신의 의식을 정상적으로 돌려놓기 위한 우리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라오. 그렇기에 흑마법사도 내가 온 세계를 위협할 수는 있었어도 정복할 수는 없었소.”

‘꿈에 그런 의미가 있었나?’

학철은 리얀의 말을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흑마법사에게 한계가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좋습니다. 그럼 흑마법사가 이곳으로 도망친 것은 언제 아셨습니까?”

홍 대표가 물었다.

“흑마법사와의 최후의 일전이 끝난 직후 알았소. 흑마법사가 차원이동문을 열고 도망치는 것을 보았기에 바로 따라온 것이오.”

“…그건 좀 이상하군요. 그럼 흑마법사가 도대체 언제 이곳에 자신의 조직을 구축하고 또 그것을 키웠을까요?”

“나도 나름대로 추리를 해 보았소. 3년 전, 평원에서 큰 전투가 있었소. 흑마법사의 주력부대와 내 마법사 군대의 전투였소. 우리는 거기서 대승을 거두었소. 그리고 그 전투를 기점으로 전쟁 신은 흑마법사 쪽에서 우리 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소.”

“자이스 장군이 사라진 그 전투였지요.”

가만히 듣고만 있던 세이라가 끼어들었다. 홍 대표는 세이라의 말을 듣고는 스마트폰에 뭐라고 메모를 했다.

“그러니까 대략 3년 전부터 흑마법사가 패배를 예감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럼 흑마법사는 이곳과 그곳을 오갈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낸 뒤, 그때부터 이미 이곳으로 도망칠 준비를 하고 있었다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중에 자신을 추적할 추적자들을 물리칠 방법도 그때부터 준비하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는 말이지요. 권총이나 조직 같은 거 말입니다.”

홍 대표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이곳의 언어는 정신감응을 통해서 쉽게 습득했을 것이고, 비록 잠깐이라고는 해도 타인의 정신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한다면 그것을 통해서 이곳에서 나름대로 사업을 키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학철은 의뢰인의 말을 의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기 어려운 의뢰인의 말을 신뢰하고,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견해를 만들어내는 홍 대표의 능력에 감탄했다. 리얀은 홍 대표의 말에 고개를 깊게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렇게 보는 게 타당할 것 같소.”

“좋습니다. 그럼 제가 알고 있는 걸 말씀드리겠습니다.”

홍 대표는 스마트폰 앱을 조작했다. 미리 적어둔 자료를 찾는 모양이었다.

“이건 제가 마포경찰서에 있는 친구를 통해서 얻은 정보입니다. 오늘 홍대에서 사람이 하나 불에 탄 사건이 있었습니다. 119와 구급차가 출동해 즉시 병원으로 이송했지만 사망했습니다. 언론에는 알리지 않았지만 이 사람은 햇살용역이라는 회사 직원이었습니다.”

“햇살용역!”

차를 몰던 사장이 소리쳤다.

“예, 맞습니다. 리얀 님을 노리고 권총으로 무장했던 녀석이 바로 그 햇살용역직원이라고 하셨지요.”

“그래, 분명히 봤다고. 햇살용역 주임인가 뭐 그렇게 쓰여 있었어. 명함에. 내가 그거 보고 홍 대표한테 연락한 거야. 아무래도 내가 혼자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거 같아서 말이지.”

사장은 신이 나서 떠들었다. 홍 대표는 사장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조금 전에 또 다른 정보도 들었습니다. 신촌 주택가에서 폭발사고가 있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게 그곳에서 죽은 사람들도 전부 다 햇살용역 소속이라는 겁니다. 조금 전 리얀 님이 있던 곳 부근이지요. 신촌 주택가 폭발 사건도 리얀 님과 관련이 있는 게 맞습니까?”

홍 대표가 물었다.

“그렇소. 나를 노리는 자들이었고, 우두머리는 자이스 장군이었소. 3년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져 있던 인물이오.”

“10여 명이 죽은 것 같던데, 그들을 모두 마법으로 살해하신 겁니까?”

“그렇소.”

“알겠습니다.”

홍 대표는 스마트폰에 뭐라고 더 적은 뒤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 의뢰내용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리얀 님. 저는 리얀 님을 흑마법사가 있는 곳까지 안내하겠습니다. 위치를 알려드릴 수도 있고, 혹은 상황에 따라 직접 현장까지 갈 수도 있겠지요. 어느 쪽이건 흑마법사를 만난 다음은 리얀 님 몫입니다. 저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드릴 수 있을 뿐, 살인에 가담할 수는 없습니다.”

“좋소.”

“다만 보수가 문제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지요. 리얀 님이 말씀하신 목적, 즉 누군가를 살해한다는 것은 달성하는 순간 그 뒤에 벌어질 일을 예측할 수가 없습니다. 리얀 님이 혼자서 10여 명을 마법으로 살해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건 이미 증명이 됐습니다만, 그래도 대한민국의 경찰력을 혼자 감당한다는 건… 아무래도 어렵다고 봐야 할 테니까요.”

“이해하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리얀은 편하게 물었다. 대화를 통해서 홍 대표에 대한 신뢰를 가지게 된 것 같았다.

“여기 사장님과 학철 씨, 이 두 사람에게 보수를 일부 미리 지급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러면 저는 지급된 금화를 환전하는 과정에서 수수료를 얻게 됩니다. 그 수수료면 제 몫은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학철은 홍 대표의 제안이 지나치게 리얀에게 유리한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사실 홍 대표 정도의 능력이라면 리얀에게 금화 1천 개, 즉 100억 원을 요구해도 될 거 같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말이다.

“알겠소. 다시 말해서 내가 죽으면 보수를 받을 수 없을 테니 미리 받겠다는 말 아니오?”

리얀이 거리낌 없이 물었다. 홍 대표는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개인적인 감정은 없습니다. 일은 일이니까요.”

“좋소. 그러면 내일 홍 대표가 금화를 감정해 오면 그때 지급하는 것으로 하겠소. 하지만 미리 지불하는 것은 십 분의 일, 그러니까 금화 200개로 하겠소. 나머지 금화 1,800개는 내가 흑마법사를 죽인 직후에 지급하겠소.”

선금으로 20억을 주겠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한다면 얼핏 계산해서 세금과 홍 대표가 가져갈 수수료를 제한다고 해도 학철의 통장에는 현금 5억 원 정도가 들어오게 될 것이었다. 학철은 심장이 두근거렸다.

5억 원.

지금 시급으로는 평생 밥도 안 먹고 숨만 쉬고 돈을 모은다 해도 모을 수 없는 거금이었다.

“제가 할 이야기는 아닌 것 같지만….”

학철이 5억이 통장에 들어오면 동그라미가 몇 개가 되나 상상하고 있는데 불쑥 세이라가 말했다.

“…그렇게 하면 홍 대표님은 너무 손해 아닌가요? 따로 받는 돈도 없고, 수수료만 받겠다는 거잖아요.”

“세이라 님. 저는 돈 때문에 이 일을 하는 게 아닙니다.”

홍 대표가 세이라를 보며 말했다.

“물론 이 일을 해서 돈을 벌기는 합니다. 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 역시 한때 이 나라에서 이방인이었습니다. 이방인이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설움도 있었습니다. 저는 저와 비슷한 처지의 이방인들을 돕기 위해서 이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리얀 님, 세이라 님, 두 분 다 이방인이지요. 저는 두 분을 도울 겁니다. 그게 제가 이 일을 하는 보람입니다.”

홍 대표는 한 번도 막히지 않고 말을 쏟아내었다. 학철은 홍 대표가 다시 보였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백발의 외국인일 뿐이었지만, 지금 보고 있는 홍 대표는 너무나도 멋있는 홍대의 외국인 수호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럼 이야기는 이만하고, 오늘은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가서 쉬시지요. 저는 그사이에 흑마법사의 행방을 찾아보겠습니다.”

“찾을 방법은 생각해 본 것이 있소?”

“사람을 찾는 데에는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리얀 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사람 찾는 일을 아주 잘합니다. 어떤 방법을 택하건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대를 믿지 못하겠다는 것이 아니오. 그저 방법이 궁금할 뿐이오.”

리얀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홍 대표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곤 대답을 시작했다.

“조사는 햇살 용역부터 시작할 겁니다. 등기부 등본을 찾고 소유주를 확인해야겠지요. 햇살용역과 거래한 이력이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묻고, 또 경찰 기록도 검토할 겁니다. 그러다 보면 흑마법사의 존재가 떠오르기 시작할 겁니다. 흑마법사 역시 이방인이고, 불법체류 외국인이 회사를 소유하고 있다면 반드시 흔적이 나올 겁니다.”

학철은 리얀이 등기부 등본이나 거래 이력 같은 단어를 이해했는지 궁금했지만 표정만 보아서는 알 수가 없었다.

“좋소. 그렇다면….”

끼이이익!

리얀이 뭔가 말하려는 순간, 귀를 찢을 것 같은 고음이 울렸다. 차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소리였다. 차가 급하게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고, 덕분에 차 안에 탄 일행은 의자에서 굴러떨어져 뒤엉키고 말았다.

다행히 차는 쓰러지진 않았다. 학철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차가 급정차했는지 알기 위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위치는 게스트하우스 쪽 길로 들어가는 골목이었다. 검정 승합차 한 대가 길을 가로막고 있었다.

검정 승합차에서 사람이 내렸다. 대머리에 거대한 체구, 그리고 잊을 수 없는 얼굴이었다.

“자, 자이스 장군?”

세이라가 말했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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