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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마법사 홍대 가다-27화 (27/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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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죽었느냐고요? 글쎄요. 아마 침대에 누워서 가족들의 애도 속에서 죽지 않았을까요?”

세이라가 애매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학철이 예상했던 불길한 답변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좋은 대답이었다.

“저, 그 말은요, 그 몸종이 늙어 죽었다는 이야기죠?”

학철이 확인하듯 물었다.

“음. 꼭 그렇지는 않아요.”

“침대에 누워서 가족들이 애도하는 가운데 죽었는데, 그게 늙어 죽었다는 뜻이 아니라고요?”

“학철.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사람은 어차피 모두 다 죽잖아요.”

“그건 그런데….”

세이라는 학철이 말하거나 말거나 지하철 의자 쪽으로 가서 앉더니 욕실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 보니 욕실에서 물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하고 있었다. 목욕을 시작한 모양이었다. 학철은 어쩐지 민망해서 얼른 방을 빠져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세이라는 분명 그 몸종의 운명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어떻게 죽었는지, 그것만은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세상에 좋은 죽음은 없다는 말도 있지만, 분명 좋은 죽음은 아니었을 것 같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그 종자의 운명을 알고 싶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알아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안녕히 주무세요.”

학철은 이렇게 작별인사를 하고 방 문고리를 돌렸다.

“예, 잘 자요. 학철.”

세이라의 작별인사를 들으며 학철은 지하철 테마 방을 나와서 감옥 테마 방으로 들어갔다. 감옥 테마 방은 위층이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바로 옆방이었다면 그냥 툭하면 문 열고 들어와서 날 귀찮게 하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방 테마가 하필 감옥이람.’

학철은 문을 열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감옥 테마라고는 했지만 벽지가 쇠창살 문양이라는 점만 빼면 여느 모텔방과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그래도 이제부터는 혼자서 편하게 쉴 수 있겠지.”

학철은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옷을 벗어던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깔끔하고도 고급스러워 보이는 욕조를 보면서 입욕제를 풀고 뜨거운 물에 몸을 담글까 싶기도 했지만 대충 씻고 자고 싶은 마음이 더 컸다.

학철은 샤워만 간단하게 한 뒤 욕실을 나왔다.

방에는 죄수복 디자인의 샤워가운이 비치되어 있었다. 학철은 잠옷 대신으로 샤워가운을 걸치고 난 후, 침대에 몸을 던졌다. 늘 누웠던 자취방의 매트리스가 아니라 제대로 된 더블베드라 그런지 몸이 편했다.

“아무리 그래도 저건 좀 그렇네.”

학철은 천장에 매달려 있는 쇠사슬을 보면서 말했다. 나름대로 감옥 느낌을 주기 위해서 그랬겠지만 쇠사슬을 설치한 건 좀 심하다 싶었다.

그러고 보니 너무 많은 일을 겪은 하루였다.

여느 날과 같은 날이라고 생각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창밖을 지나는 사람들을 보며 지루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때만 해도 그랬다.

그런데 어느 순간 리얀이 나타났고, 토카레프 권총으로 무장한 사람이 총을 쏘는 것을 보았고, 리얀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을 보았다. 세이라가 인간의 능력이라고 믿기 어려운 힘으로 자신을 둘러메고 뛰는 것을 보았고, 또 세이라가 사람들을 쓰러뜨리는 것을 보았다. 뿐만 아니라 마법의 힘으로 날아오는 총탄을 막고, 건물을 폭파시키고, 사람을 터트리는 것도 보았다.

너무도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났다. 일어난 사건을 잠깐 돌아보는 것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로 긴 하루였다.

‘자고 일어나면 다 꿈이었으면 좋겠다.’

학철은 이런 생각을 했다. 모든 게 다 꿈이라면 좋을 텐데, 라는 생각은 여자친구가 헤어지자고 했을 때 이후 처음인 것 같았다. 그때만 해도 이것보다 끔찍한 일이 자신의 인생에서는 생기지 않을 줄 알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지만, 삶은 늘 속이고 배신한다. 사람은 그럴 때마다 슬프고 노여워하게 되기 마련이다.

“내가 하는 일은 도대체 왜 다 이런 걸까….”

학철이 한탄하며 눈을 막 감고 잠을 청하려는데 진동음이 울렸다.

‘전화? 사장님인가?’

학철은 투덜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전화를 집어 들었다. 전화에는 발신자가 ‘발신자제한’이라고 떴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여보세요?”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가 학철은 전화를 받았다. 받지 않으면 편하게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학.철. 방.으로. 와.라.”

딱딱한 억양의 기계음이었다.

‘뭐지? 신종 장난전화인가?’

학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렇게 생각했다.

“리.얀.님.이.시.다. 얼.른. 방.으.로. 와라.”

리얀에게 전화기가 있었던가? 학철은 의아해하며 계단을 내려가 좀 전까지 있던 지하철 방으로 돌아갔다.

“리얀 님. 찾으셨어요?”

“거 봐라. 된다고 하지 않았느냐!”

학철이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리얀이 세이라를 향해 소리쳤다.

“진짜 되네요? 학철. 리얀 님이 정신감응 마법으로 전화기를 작동시킬 수 있다고 하셔서 제가 못 믿겠다고 했거든요. 와! 진짜로 될 줄은 몰랐어요!”

“전화기도 그렇고 컴퓨터도 그렇고, 그 원리만 깨우친다면 쉽게 마법으로 조종할 수 있다.”

리얀의 목소리는 들떠있었다. 아마 본인도 정신감응 마법으로 전화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고 신기한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전화기 없이 전화를 거신 건가요?”

“아니, 그런데 그 옷차림이 뭐냐? 흉한 가로줄 무늬 말이다.”

“아, 이건….”

학철이 걸치고 있는 죄수복처럼 보이는 샤워가운에 관해서 설명하려는데 그러고 보니 세이라와 리얀, 둘 다 샤워가운 차림이라는 게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 다 침대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는데, 지나치게 짧은 샤워가운 밑으로 하얀 다리가 거의 다 드러나 있었다. 게다가 앞섶은 너무 깊게 파여 있어서 속살이 훤히 다 드러나 보였다.

“왜 설명을 하지 못하는 것이냐?”

“음. 제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요, 보통 그렇게 입고 있으면 민망하다고 해요.”

학철은 솔직하게 말했다. 다만 시선은 자신의 발끝을 향하고 있었다.

“학철. 네가 입고 있는 그 흉한 가로줄 무늬 옷보다는 훨씬 덜 민망할 것 같구나.”

리얀이 말하자 세이라가 깔깔대며 웃었다. 학철은 사람들이 보통 ‘사장님 유머’라고 하는 게 리얀이 살고 있는 세계에도 적용되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재미없는 농담에 저렇게까지 웃을 필요는 없을 텐데.

“제 방은 테마가 감옥이라서 죄수복 복장을 입은 거예요.”

“이 세계에서는 죄수에게 그런 가로줄 무늬 옷을 입히느냐?”

“진짜 죄수복은 파란색이에요. 이 가로줄 무늬 죄수복은….”

학철은 설명을 하다가 멈췄다. 그러고 보니 죄수복이라고 하면 가로줄 무늬 옷을 연상하기는 하지만 그 유래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이다.

“가로줄 무늬 죄수복. 옛날 미국에서 죄수복으로 썼던 것이 관습적으로 남아서 지금은 전 세계로 널리 알려진 디자인이로구나. 미국이 이 세계에서 최고 강대국이라는 건 충분히 알겠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도 가로줄무늬가 아니라 주황색 죄수복을 입는다고 한다.”

학철이 말을 잇지 못하자 리얀이 대신 설명했다.

“…그, 그런 건 어떻게 아셨어요?”

“네 전화기를 통해서 알아내었다. 인터넷이라는 건 상당히 강력한 도구로구나. 그 장비만 있다면 도서관을 통째로 들고 다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리얀 님은 원래도 도서관을 통째로 들고 다니지 않으셨어요?”

세이라가 꼰 다리를 바꾸면서 물었다.

“그건 과장이다. 총사령관께서 내 머릿속에 도서관이 통째로 들어 있다고 하기는 했지만.”

자기 자랑을 참으로 겸손하게도 하는구나 싶었다.

“대한민국에서는 군인들도 주황색 옷을 입어요.”

“군복이 주황색이라고? 적에게 일부러 잘 보여야 할 이유라도 있는 것이냐?”

“당연히 전투복은 위장색으로 되어 있어요. 일과 시간 이후에 입는 활동복이 주황색이거든요.”

“그렇다면 탈영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말인데, 대한민국에서는 군인과 죄수가 비슷한 수준의 자유를 가지고 있는 모양이로구나.”

“부정은 못 하겠네요.”

학철은 자신의 발끝을 보면서도 리얀과 세이라를 자꾸 힐끔거리며 훔쳐보게 되었다. 이성의 매력 때문은 아닐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선을 완전히 차단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남성의 본능이라는 건 지나치게 강력한 건지도 모른다.

“학철. 네 전화기는 잘 알았다. 나는 잘 아는 전화기가 아니면 조종하지 못한다. 하지만 네가 오늘 좋은 지적을 해 주었다. 흑마법사라면 모르는 전화기도 조종할 수 있을 것이다.”

잘 안다는 말의 의미가 모호하긴 했지만 리얀의 능력이 어떤 것인지는 분명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다.

“학철의 거처를 떠나서 이곳에 온 건 좋은 판단이었던 것 같네요, 리얀 님.”

세이라가 리얀의 말에 덧붙였다.

“그것은 아직 모른다, 세이라. 어쩌면 내가 지나치게 신중한 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가 흑마법사라면 지나치게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것이다.”

“예,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저, 그럼 두 분 말씀 나누세요. 더 필요한 거 없죠?”

두 사람이 마치 만담처럼 말을 주고받는 것을 보다가 학철은 이렇게 말했다.

“없다. 가서 쉬어라.”

학철은 꾸벅 절을 한 다음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비록 잠시였지만 허연 속살을 봐서 그런지 침대에 눕자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아, 진짜….”

학철은 리얀이 싫었다. 아니, 싫다기보다는 무섭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았다. 마법사라는 것도 생소해서 받아들이기 힘들었고, 그 마법이라는 것이 머리통을 폭파시켜 버릴 수 있는 능력이라는 점도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철은 리얀이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이라고 느끼고 있었다. 이국적인 외모에 큰 키, 글래머러스한 근육질의 몸매. 세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짙은 피부색은 섹시했고, 리얀과는 달리 슬림하면서도 쭉 뻗은 몸매도 매력적이었다.

다만 학철은 자신이 리얀과 세이라를 매력적으로 느낀다는 사실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이, 진짜 내가 뭐 하는 거야. 제정신이야? 응? 정신 좀 차리자, 정신 좀.”

학철은 손으로 마른세수를 거칠게 하면서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러자 핸드폰 진동음이 울렸다. 이번에는 딱 한 번 울렸다. 문자메시지였다.

지은이 : 김상현

펴낸곳 : 툰플러스

펴낸이 : 이훈영

주소 : 경기도 부천시 부천로 198번길 18, 202동 1302호 (춘의테크노파크 2차 / 경기콘텐츠 진흥원)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ISBN : 9791157736300

© 김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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