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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얀은 세이라와 함께 골목에 숨어서 자이스 장군이 학철을 데리고 하늘을 날아오르는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 자식, 징표를 지웠어요. 게다가 날아서 이동하니까 들키지 않고 추적하는 건 어려울 것 같고요. 이제 어떻게 하죠?”
세이라가 리얀에게 물었다.
“징표를 지울 거라고 예상했다. 놈들이 학철을 찾아서 이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을 거라는 걸 예상했는데 그걸 예상 못 했겠느냐?”
리얀은 담담하게 말했다.
“그런데 놈들이 여길 어떻게 찾은 거죠?”
“아까 말해주지 않았느냐?”
“이해가 안 가서 그래요. 이 핸드폰 위치를… 알 수 있다는 건가요?”
리얀은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잠시 고민한 후, 차근차근 설명을 시작했다.
“잘 들어라. 이 세계의 컴퓨터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모방한 것이다. 그래서 정신감응 마법으로 컴퓨터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여기까지는 이해가 가느냐?”
“예.”
“내가 할 수 있으니 흑마법사도 똑같이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학철의 방에서 햇살용역이라는 회사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려고 했던 것, 기억하느냐?”
“기억해요.”
“흑마법사는 햇살용역을 찾아보는 컴퓨터를 추적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사용하는 정신감응 마법보다 더 강력한 뭔가를 사용해서 말이다. 이곳 말로는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 방법을 사용해 학철의 컴퓨터를 추적해서 집 위치를 알아낸 다음, 자신의 수하들을 보낸 것이다.”
“제가 쓰러뜨린 남자 둘, 여자 하나 말씀이시죠?”
“그렇다. 그리고 우리는 학철을 따라 모텔로 도망을 쳤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학철의 핸드폰을 가지고 정신감응 마법을 시험하다가 한 가지를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핸드폰의 경우, 그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어도 대략적인 위치는 알 수 있다.”
“그러니까… 흑마법사가 학철의 핸드폰 위치를 추적할 수 있다는 거지요?”
“그렇다.”
“아하. 그래서 핸드폰을 모텔 방에 두고 나오신 거군요.”
세이라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말했다.
“그렇다. 흑마법사는 우리가 이 부근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좋아요. 거기까지 알겠어요. 놈들은 이 근처에 학철의 핸드폰이 있다는 걸 알고, 여기를 감시했기 때문에 학철을 발견할 수 있었겠죠. 학철 얼굴이야 간밤에 봤을 테니까… 그래서 여기에 직접 온 걸 테고요. 그런데 놈들은 학철을 발견하고는 데리고 갔잖아요. 그건 왜 그런 거죠? 보통 그런 경우, 미행해서 우리 정확한 위치를 알아낸 다음, 기습공격을 가하거나, 그렇게 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 아니었을까요?”
세이라가 물었다.
“그건 수인족, 특히 도마뱀 녀석들의 방법이 아니다.”
리얀은 용족이라는 말 대신 굳이 도마뱀이라는 차별 용어를 사용했다.
“만약 그렇게 했다고 가정해 보자. 놈들은 나를 정면으로 상대해야 한다. 존재하는 마법사 중 최강 마법사의 마법을, 자신들이 익숙하지 않은 지형에서 상대해야 하는 거다. 그런 건 도마뱀 녀석들의 싸움 방식이 아니다.”
리얀은 말을 한 번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도마뱀 녀석들은 상대를 흥분시킨다. 그래서 흥분한 적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인다. 그 사이 자세한 정보를 수집하고 철저하게 준비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친 뒤 자신이 유리한 곳에서 싸우는 것. 이것이 도마뱀 놈들의 방식이다.”
“그래요. 그렇다면… 학철은 무사할까요?”
세이라가 조금은 걱정되는지 심각한 얼굴을 하고서 리얀에게 물었다.
“안전할 것이다. 놈이 원하는 것은 우리다. 너와 나에 대한 정보를 얻기 전까지는 학철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물론 팔이나 다리를 자를 수도 있겠지만….”
리얀은 여기까지 말하고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침묵이 이어졌다.
“그 길잡이, 기억나세요?”
세이라가 먼저 침묵을 깨고 리얀에게 물었다.
“물론이다. 그 길잡이에게 금화 1천 개를 주기로 하고 길 안내를 부탁했던 일, 기억하고 있다.”
“그럼 학철도… 그 길잡이 같은 존재인가요?”
세이라가 묻자 리얀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는 약속을 지키는 마법사다, 세이라. 학철은 금화 1천 개를 받게 될 것이다.”
“물론 저는 믿어요. 그 길잡이도 틀림없이 금화 1천 개를 받았을 거예요. 살아남기만… 했었다면 말이죠.”
하늘을 올려다보며 세이라가 말했다.
“학철은 죽지 않는다.”
다른 생각은 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 리얀이 단호하게 말했다.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해요. 그런데 이제 학철은 도대체 어떻게 찾죠?”
“방법은 있다. 찾으면 나오는 것이 방법이다.”
리얀이 말했다. 물론 방법이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굳이 그걸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다.
***
학철은 자이스 장군에게 붙들려 하늘을 날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대흥동 쪽으로 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세이라 덕분에 이런 상황이 많이 익숙해졌다고는 해도, 지상을 잘 살피기에는 너무나 흔들림이 심했다. 날갯짓을 한 번 할 때마다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몸이 붕 떴다가는 가라앉았다.
잠시 뒤, 자이스 장군은 대흥동의 한 건물 옥상에 착륙했다. 착륙한 자이스 장군은 학철을 그대로 옥상에 내팽개쳤다. 세이라와는 딴판이었다.
검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사내가 자이스 장군을 맞이했다.
“이놈, 묶어서 지하 창고에 감금해라. 내가 직접 심문할 테니 그때까지는 손대지 마라.”
사내는 케이블타이를 주머니에서 꺼내선 학철의 손을 등 뒤로 묶었다.
학철은 케이블타이를 푸는 방법을 몇 가지 알고 있었다.
케이블타이는 사람 힘으로 당겨서는 절대로 끊을 수 없지만 의외로 충격에 약해서 묶인 팔을 책상 같은 곳에 내리치는 정도로도 충분히 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팔을 등 뒤로 해서야 충격을 주기 어려울 것 같았다. 신발 끈을 이용해 케이블타이에 마찰을 가해서 끊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나 지금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다.
사내는 학철을 데리고 옥상에 설치된 엘리베이터로 데리고 가더니 지하 1층을 눌렀다. 덕분에 이 건물이 지하 2층, 지상 5층의 총 7층 건물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지하 1층은 주차장이었다. 하지만 차는 단 한 대도 주차되어 있지 않았다. 학철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사내에게 이끌려 주차장 구석에 있는 지하 창고로 향했다. 지하 창고의 문이 열리자 어둠이 학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요….”
짝!
학철이 뭐라 말을 걸려고 하자 사내가 학철의 입술을 손바닥으로 후려쳤다. 학철은 입을 꾹 다물 수밖에는 없었다.
“조용히 하고 기다려라.”
사내는 이렇게 말하면서 학철을 방에 놓여있던 의자에 앉혔다. 그러더니 손의 케이블타이를 풀어주었다.
‘어라? 이거 너무 쉽게 풀어주는 거 아냐?’
학철이 이렇게 생각하기가 무섭게, 사내는 의자 팔걸이에 학철의 팔을 강제로 고정한 뒤, 케이블타이로 단단하게 묶었다. 그리고 의자 다리에는 발목을 케이블타이로 묶었다. 학철은 이내 곧 꼼짝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렸다.
‘어쩐지 너무 쉽게 풀어준다 싶더라니….’
“얌전히 있어라. 죽기 싫으면.”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말로만 하는 협박은 아닌 것 같았다. 사내는 곧이어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학철은 조명 하나 없는 방의 어둠 속에 잠겨버렸다.
“아, 인제 어쩌지….”
“읍! 읍읍읍!”
학철이 한탄하는데 옆에서 기괴한 소리가 들렸다.
“으악!”
학철은 깜짝 놀라서 뒤로 넘어질 뻔했다. 하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의자 다리가 바닥에 완전히 고정되어 있었다. 아마도 이 방은 누군가를 잡아 왔을 때 감금하는 용도로 제작된 모양이었다.
“…누구세요?”
학철은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둠 속이라 명확하지는 않았지만 학철과 완전히 같은 상태로 묶인 남자의 그림자가 보였다.
“읍읍읍읍!”
남자는 학철과는 달리 말을 할 수 없도록 입에 재갈을 물린 모양이었다.
학철은 묶인 상태로 고개를 좌우로 돌려 방안을 살펴보았다.
그리 넓지 않은 방이었다. 학철의 자취방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공간이었다. 묶여있는 상태라 뒤를 돌아볼 수는 없었지만 가느다란 빛줄기가 등 뒤에서 새어 나오고 있었다. 빛의 세기로 보아 창문을 가린 틈새로 새어 나오는 빛인 것 같았다.
“읍! 읍! 읍읍!”
옆의 남자가 발을 구르며 뭔가 이야기하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등 뒤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들리는 소리가 아니라 바로 창문 밖에서 우는 소리였다.
“읍! 으읍!”
“괜히 힘 빼지 말고 조용히 좀 하세요.”
사내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소리를 냈다. 학철은 그만두라는 말을 하는 걸 포기했다. 게다가 고양이 울음소리도 계속해서 이어졌다.
‘어휴. 시끄러. 나, 지금 고문당하고 있는 건가?’
학철은 자신을 잡아 온 이들의 정체가 궁금했다.
‘분명히 자이스 장군은 죽었어. 죽은 자는 마법으로 살릴 수 없다고 했고. 그리고 자이스 장군은 무슨 수인족? 아무튼 그렇다고 들었는데… 정체가 뭐야? 아니, 그보다, 도대체 왜 날 잡아 온 거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하지만 그 답은 자이스 장군이 직접 이야기해 주기 전에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답을 알게 되는 순간은 곧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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